2강. 고린도전서1장1절-3절, 고린도전서 개요
고린도전서강해 2강. 고린도전서 개요(고전1:1-3) 2009년3월22일 말씀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장1절에서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은 지난시간에이어서 고린도전서 전체적인 개요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인사부분을 제가 택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2절을 잠깐 보면 수신자들이 두 가지 사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뭐냐면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두 가지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부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이런 자들에게 바울이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고린도전서는 16장으로 상당히 길지만 제가 이것을 아주 짧게 요약을 해서 개요로 말씀드리고 또 여러분들과 같이 각 장마다 있는 말씀을 서로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교회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교회가 도시에 있는 교회였고 또 도시 안에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사는 교회였기 때문에 교회가 복잡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해가지고 복음을 받아서 크리스천은 되었는데 이분들이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공동체가 굉장히 시끄러웠습니다. 시끄러운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고린도전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시끄러웠냐면 모인 사람들의 인간 관계 속에서 갈등들이 심했습니다. 두 번째는 조금 똑똑하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학적인 문제들을 몇 가지 들고 일어나면서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은사가 터지는 겁니다. 방언이 막 나오기 시작하고 또 예언의 말도 하고 예배 도중에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여기저기서 막 일어났습니다.
이런 것을 이분들이 보고는 저 사람 방언하는구나. 예언 하는구나. 하면서 이분들이 내가 더 영성이 있다 내가 더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일로 인해서 그분들에 대하여 반발하는 세력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데 당신들의 삶을 보면 삶에서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윤리적으로는 크리스천모습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도 보면 크리스천들의 모습들이 아닌데 그런데 예언도하고 방언도 하고 소위 영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러한 문제들이 그 안에 있었기에 여러 가지로 교회 안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 교회가 개척 된지4년 만에 2차 여행 때 교회가 개척이 되었거든요 51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51년에 바울에 의해서 2차 여행 때 개척이 되었는데 바울이 3차 여행을 하면서 안디옥에서 에베소에 들렸잖아요. 주후53년에 3차 여행을 시작해서 53년에 에베소에 도착을 해서 그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두란노서원 건물을 이미 다 준비했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2년 동안 바울이 각 지역에 있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들 아시아 일곱 교회 마케도니아에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 또 데살로니가 바로 밑에 뵈레아교회 또 그리스로 내려와서 아테네 교회 고린도교회 그다음에 아시아지역에 실제로 여덟 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두아디라교회, 골로새교회 이렇게 세웠습니다.
이 교회 중에서 칭찬 받았던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서마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에 여덟 교회 중에서 칭찬 받은 두 교회니까 퍼센트지가 몇 퍼센트입니까? 25%입니다
이렇게 교회들이 개척이 되어가지고 개척된 교회에 지도자급들을 모아놓고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열어가지고 바울이 지도자들을 훈련시키시는 겁니다. 훈련시키는 과정 속에서 고린도교회가 어떤 문제들이 있느냐를 보고를 받은 겁니다. 에베소에 계셨을 때 보고내용인즉 뭐냐면 이 교회가 교파가 4개가 있다는 겁니다. 1장10절에서부터12절입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글로에의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바울이게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글로네의 가족들이 이 문제를 글로에의 가족들이 누구냐면 16장15절부터17절까지 보면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지방의 중심 도시가 고린도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 바울이 아가야 지방을 갔다는 말이 고린도로 가셨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는 성서에서 바울이 아가야에서 내가 어려움을 당했다 그러면 아하! 이분이 고린도에서 어려움을 당하셨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마제국이기 때문에 지방 끝에 아를 붙입니다. 이탈리아, 무시아, 아가야. 마케도니아, 아시아. 갑바도기아. 앗달리아, 갈라디아, 실루기아, 수리아, 사마리아 이렇게 단어 끝에 아자를 붙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지방을 아가야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15절에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 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이 세 사람이 바울을 찾아간 겁니다. 찾아가가지고 고린도에 문제 되는 부분을 고린도교회가 복잡한 것을 보고를 드린 겁니다. 이 세 사람들이 보니까 1장11절에 글로에의 가족들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1장11절을 다시 보시면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이렇게 네 파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그의 분열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인들끼리 미움이 있고 교회가 개척 된지 4년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이 안에 이 그룹들이 있는 겁니다.
게다가 교인들 끼리 법적투쟁까지 있었습니다. 이 교회가 영적은사인 방언 예언을 다 받았고 교인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이런 가운데 이 교회 안에 이런 파벌들이 있고 서로가 잘 났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이러한 일들이 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바울이 결론적인 말씀은 너희들 그런 것 다 필요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뭐가 필요 하느냐면 그리고는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예언도 방언도 부지하는 것도 병 고치는 일도 이런 것 다 필요하지만 이런 것은 어린아이 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희들 사랑이 있어야 된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사랑은 오래 참는 거다 왜 오래 참을 수 없느냐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저분을 만지실거야 저분은 예수님의 장중에 있다 나를 지금 저분이 괴롭히지만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예수님이 저분을 만지시고 계신다. 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저분이 저러면 언젠가는 주님한데 혼날 텐데 또는 저분이 저러면 천국에 가서 낮은 계급에 있을 텐데 나는 높은 계급에 있을 것 같고 그러한 믿음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적인 생각이 아니고 저 세상을 바라보는 그러한 사고 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믿음이 투철하게 있을 때는 참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주님께 다 맡겨버리면 되니까 내가 참으려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문에서 참을 인(忍)자를 쓰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인(忍)입니다 오래 참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오래 참는 것은 마음을 깨면서 오래 참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주안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깨어지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다 주님께 맡겨 버렸기 때문에 그렇지만 시작은 마음이 깨집니다. 그래서 오래 참은 것을 페이션이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영어성경에는 롱 스퍼링(long suffering)이라 번역했습니다, 스퍼링(suffering)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내 마음이 오래 동안 고통당하는 것을 오래 참는 것이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보는 이 교회 문제점들을 바울이 이렇게 해결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바울이 별로 똑똑한 분도 아닌데 이걸 어떻게 배웠습니까?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성령님이 바울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나중에 바울도 이 교회를 향해서 상당히 억울함이 많았습니다. 왜냐면 고린도전서는 이 교회 문제점들을 다루었지만 고린도후서는 조금 다릅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낸 후에 이 교회에서 바울에게 막 덤벼드는 상황이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이분이 고린도후서를 다시 쓴 겁니다. 이분이 고린도후서는 에베소에서 쓰지 않으시고 이분이 마케도니아에서 쓰셨다고 성서에 보면 나옵니다. 이 말은 뭐냐면 마케도니아 하면 두 도시가 빌립보 데살로니가입니다 두 도시 중에 한 도시에서 이분이 쓰셨습니다. 쓰셨는데 고린도후서에서 나오는 아주 중요한 두 내용이 있습니다.
뭐냐면 이분들이 고린도교회교인들이 사도바울의 사도 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짜사도다 이분이 고린도전서에서 가르치는 모든 내용들은 이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그 안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사도 성을 나는 사도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 고린도후서입니다. 두 번째 불평이 뭐가 있었냐면 고린도전서9장에도 나오지만 이게 큰 이슈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개척한 많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헌금을 거두어가지고 자기개인용도로 쓰고 다닌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의 말을 교회다가 퍼뜨리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고린도전서9장에서 반발을 하시고 또 나중에 고린도후서10장에서도 반발을 하시는 겁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을 통해서 고린도후서를 쓰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시끄러우니까 성령님께서 글로에 가족들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들 이 문제 너희들끼리 해결 못한다.
바울이 지금 에베소에 계신데 거기에 가서 말씀을 드려라 그러면 바울을 통해서 내가 말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받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가서 말하면 믿음이 없으니까 세 사람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보냈던 겁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이분들에게 다 듣고는 바울이 고민을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고민보다는 기분도 나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저 사람들 나를 통해서 천국시민이 되었고 나를 통해서 가족이 변했고 저 사람들 나에게 빚진 것이 많은데 어떻게 저를 수가 있느냐 라는 배신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왜 성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줄까요?
보여주는 이유는 앞으로 1세기2세기3세기 주욱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들이 있을 텐데 그 교회들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이런 고린도교회 같은 교회가 상당히 많을 것을 미리 예시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 같은 사라들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처럼 이런 고통을 경험할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의 예표로써 또 같은 교회 안에서 바울 같은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는 이 성서를 읽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까를 보는 겁니다. 저 사람들 나쁘다 좋다 이걸 보지 마시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까? 내 자신을 향해서 보시고 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고는 아! 이것은 당연히 있어야 되는 일들이구나. 라고 예! 하고 용납해주는 겁니다. 당연히 있어야 되는 일이구나 왜냐면 영적으로는 우리가 하루아침에 성숙하게 되지 못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세상 문화를 하루아침에 그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걸 이렇게 보면서 저는 사도바울과 비교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도바울의 이런 경험을 제가 이렇게 묵상하면서 제가 이런 일들을 당했을 때 적용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드리면 미얀마에 예를 드리면 10년을 그 형제들을 사랑해주고 저의 모든 삶을 거기다가 받쳤는데 그 중에 몇몇 분들이 그런 걸 이해는 하지만 자기의 어떤 개인 욕심 때문에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지에 갈 때마다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주요일 중에 하나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현지의 제자들과 자기네들끼리의 관계성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고 또 노력도 많이 하고 있고 기도도 하면서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할 때 성서 고린도 전 후서를 보고 에베소서나 빌립보서나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것을 이렇게 훌터보면서 묵상하면서 힘을 얻고 아이디어도 얻고 이러는 겁니다. 어디가나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그 안에 있는 자기네 스텝들끼리 서로 질투가 있고 누구 한 사람에게 잘해주면 반발이 있고 서로 저 사람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데 왜 한국에서는 저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지 와서 나에게 말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이간질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제 마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이 안에 자기네들끼리 그룹에 뭐냐면 족속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서로 다르고 같은 미얀마사람이지만 또 신앙연령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하니까 이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로 묽어서 주는 일이 우리의 일인데 이걸 어떻게 하나로 묽어주느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면 좋은데 바울도 그런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쪽에 사람들을 하나로 묽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다 보니까 그쪽 목회를 하다보니까 우리AMI교회 목회를 등한시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에게 주님! 저는 AMI교회교인들을 등한시하는데 제발 성질내고 파벌 만드는 사람이나 또는 이 안에서 네 가지 파가 있듯이 파벌을 만드는 사람은 그런 끼가 있는 사람은 저에게 보내주지 마세요. 저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AMI교회 교통 정리할 마음의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사람들은 보내주지 마세요.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봅니다. 그러면 주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의 교회는 그런 파벌 때문에 서로 싸움하고 그것 때문에 시간 보내고 그것 때문에 새벽기도매일 하면서 울며불며 산기도하는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면 선교지에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일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제 사무실에 앉으면 선교지 사람들을 하나로 묽어주는 일을 하느라고 기도하고 E메일 보내고 뭐하고, 뭐하고 제가 이렇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저희 교회는 그것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특히 파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시간을 빼앗아가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래서 항상 여러분들에게 고맙지만 우리예수님께 고마운 겁니다.
예수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1년이면 6개월을 교회에 없는 담임목사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교회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래서 제가 감사한 겁니다. 주님 우리교회 평신도들이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구나. 담임목사가 있든 없던 어떤 때는 담임목사가 안 계시는 주일이 더 은혜 서럽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에게 담임목사에게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의 담임목사 뿐이지 여러분들이 알아서 잘 할 때 그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아닙니까? 고맙습니다. 우리교회는 선교 일을 하는 교회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다 선교사들입니다 후방에 있는 선교사들입니다 바울도 선교를 하면서 특히 고린도교회문제를 이렇게 보면서 이분이 주님과 대화한 것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자기민족과 다른 민족을 섬기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들 중에 첫째 문제가 뭐냐면 바울은 유대인디아스포라거든요 그런데 고린도교회교인들은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헬라인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도시가 다 문화도시기 때문에 타 문화권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주로 헬라 권 사람들이 주류로 이루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문화적인 충돌이 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바울이 이런 사람들을 사역하려면 문화적인 이해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바울 스스로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역을 하기 위해서 바울을 예루살렘이나 또는 갈릴리지방에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다소에서 길리기아지방에서 유대사람이지만 헬라문화를 접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헬라교육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분의 문화관이나 가치관이 세계관이 유대사람이지만 헬라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완전한 헬라사람은 아닙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여러분들도 스스로 천천히, 천천히 선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땅에 있지만 이 건물은 주중에는 외국 사람들이 주로 사는 건물입니다. 그래서 우리AMI교회교인들은 여러분들도 모르게 서서히 외국 화 되고 있는 걸아십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식당에 주일 날 식사하시잖아요. 식당 젓가락이나 숟가락이나 밥그릇들이 외국 사람들이 먹던 것을 여러분들이 먹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먹던 젓가락이 아니고 숟가락도 다 그분들의 입김이 들어가 있는 그릇으로 우리가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지금 타 문화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바울도 그렇게 되었거든요 그와 동시에 우리도 지금 그런 모습으로 서서히 변화고 있습니다. 그래야지만 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이렇게 변화된 바울을 하나님이 사용했기 때문에 바울이 설수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베드로나 열두제자들 타 문화권에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말을 했을 때는 안 듣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타 문화권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바울로 하여금 개척케 하시고 그리고 그분들에게 편지를 다 쓰게 하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런 편지를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후서 같은 경우에도 베드로가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방크리스천들에게는 쓰지를 못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는 유대인에게 야고보도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쓴 거지 이방사람들에게는 쓰지를 못했습니다. 왜냐면 문화적인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바울이 쓴 편지 16장을 제가 지금 시간은 많지 않지만 간단하게 섭력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그때 들어가서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냥 전체적으로 그림만 한번 보세요. 그리고 제가 오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처음1장에서4장은 고린도교회가 서로 시기와 질투와 분쟁이 있어서 서로 대적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주욱 그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 1장부터4장입니다
그리고5장에 가서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냐면 자기아버지의 아내와 간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마 자기 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계모를 얻었던지 그런 경우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다 알고도 그냥 가만히 놓아두고 그 교회 안에서 어떤 중요한 일도 하게끔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시끄러웠던 겁니다. 그 만큼 이 교회가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기에 대한 답변을 바울이 하십니다.
그다음에 6장에 들어가서 교회 안에 이렇게 문제가 많으니까 자기네들끼리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이 문제를 법원에 가지고 가서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고소가 오가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어떻게 너희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저 이방사람들 저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가서 문제해결을 해달라고 하느냐 너희들이 더 지혜로운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 가 있느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저 이방사람들에게 가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이런 교회들이 전 세계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 세속화된 교회는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7장에 들어가서는 부부 중에 한분은 크리스천이고 한분은 아닌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오는 가정불화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처녀와 총각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교회 안에서 문제점들 가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처녀들은 어떻게 해라 총각들은 어떻게 해라 불신자와 신자의 부부관계는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씀을 7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8장에 들어가서는 교인들 중에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또 자기 친척 중에서도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귀신에게 드린다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어떤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제사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데 그걸 먹으므로 해서 어떤 사람은 실족해가지고 나 이제 큰일 났구나. 내가 큰 죄를 지었구나.
라고 생각하고는 그것 때문에 교회 안에서 저 사람 우상제물을 먹었으니 저 사람은 집사 자격이 없다 장로 자격이 없다 서로 싸움하고 이런 문제들이 막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기에 대해서 답변을 하는 장면이 8장전체입니다 9장에 들어가서는 이 교인들 중에 사도바울에 대한 불평하는 것이 개인적인 공격이 뭐냐면 저 사람이 베드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처럼 선교여행을 하는데 자기네들이 낸 헌금을 가지고서 선교여행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선교하는 게 아니고 여행하려 돌아다니면서 돈을 낭비한다는 겁니다. 그기에 대해서 바울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선교헌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내가 너희들을 영적으로 낳은 사람들이다 너희들 나 때문에 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그러면서 이분이 예화를 드는 겁니다. 무슨 예화를 드느냐면 9장7절에 애들아! 군인이 누가 자비량으로 병사를 다니겠느냐 첫째 군인이 누가 자기돈 내고 군대 생활하는 사람 어디 있느냐 그런 소리입니다
옛날에 로마 군인들도 자기 돈 내고 안했던 모양입니다. 정부에서 다 주지 않았느냐. 그런 소리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포도농사 짓는 농부가 자기가 지어놓고 그 포도 내가 따먹는 것을 누가 뭐라고 그러느냐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양떼를 기르는 목동이 자기 양의 젖 먹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이런 소리입니다 그다음에 또 한 가지 예를 드는 겁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소들도 이렇게 연자 맷돌로 곡식을 갈 때 입을 열어놓고 갈면서 배고프면 막으면서 갈아라 이런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내가 너희들이 헌금한 돈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런 권한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네 가지의 예화를 드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 권한을 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너희들은 내가 누린 것 같지만 내가 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이런 말을 할 까봐 내가 고린도에 있을 때 내가 따불 잡(job)을 뛰었단다.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저녁에는 너희들을 가르치고 낮에는 내가 텐트메이커 일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하고 같이 텐트메이커 일을 했습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이 텐트메이커 일을 내가 했잖느냐 그래서 그때부터 자기가 선교헌금을 자기가 만들어 내는 사람을 텐트메이커라 그러는 겁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말로 텐트메이커라는 말은 자비량선교사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혹시나 너희들 중에 내가 너희들 돈을 쓸까봐 뒤에서 지적하는 사람이 나올까봐 내가 이것을 미리알고 내가 이렇게 했단다. 한 사람이라도 그것 때문에 실족할까봐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했단다. 내가 너희들 돈 쓸 만한 자격이 있지만 그래서 그런 말을 주욱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25절을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 버림이라는 한국말이 번역이 잘 못 되었습니다. 자격이 상실된다는 소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는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열심히 희생하면서 내가 뛰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날에 상급을 주는 섞지 않는 면류관을 주는 그 대열에 들어가는 자가되도록 자격을 주신다는 겁니다. 내가 그 자격을 얻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희생하면서 한다는 겁니다. 돈을 받을 수 있지만 안 받았다는 겁니다. 왜 안 받았느냐면 혹시나 뒤에서 딴 소리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교회 안에는 꼭 딴 소리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헌금 해놓고는 이것저것 따지고 이것은 왜 이렇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또 헌금 해놓고는 뒤에 숨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 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다 숨어버리는 사람들 같습니다. 10장을 보면 너희들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 10장에는 이분들이 교인들인데 귀신에게 절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쫘악 나옵니다. 11장에는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라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들 나를 본받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그 유명한 성만찬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너희들 성만찬할 때 서로 분쟁하고 분당 짓고 싸우고 불평하는 사람들이여 너희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만찬할 때는 이걸 다 해결하고 성만찬을 받으라는 겁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12장은 은사 장으로 그 안에 방언하고 예언하는 사람들이 예배시간에 일어나서 막 말을 하는 사람들 이사람저사람 정죄하는 사람들 이사람저사람에 대해서 불평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12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장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은사는 제일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14장에 들어가서는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고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두 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겁니다. 특히 그러면서 너희들 될 수 있으면 방언도 다 해야 되지만 그러면서 바울이 내가 누구보다도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방언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방언은 누구나 다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은사 중에 하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주는 것뿐이지 방언을 못 받았다고 그래서 저 사람이 영적으로 더 낮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은사 중에 너희들 예언 은사는 받도록 노력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언은사를 받는 사람은 세 가지의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중에 하나는 예언은 목적이 영으로 말하면 덕을 세우고 이웃을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 중에 하나다 그다음에 위로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고 세 번째는 권면하는 것 힘을 넣어주기 위해서 예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예언의 목적이 세 가지라는 겁니다. 세 가지 안에서 예언을 해도 된다는 겁니다. 다음에 우리가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그렇게 해서 14장에서 방언과 예언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15장에 들어가서는 소위 부활장이라고 그럽니다. 이 교회 안에 소위 자유신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두개인적인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자유신학적인 가르침인데 이 사람들이 부활을 부인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전했는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잘못 가르쳤다 부활은 있는 것이 아니다
부인하는 그러한 이야기가 있었기에 사도바울이 15장에 아주 자세하게 부활은 실제적인 사건이고 교리적인 중요한 가르침이고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우리도 부활을 믿어야만 되고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15장 부활장입니다 그리고 16장에 들어가서 마지막 인사하시는 장입니다. 이렇게 16장으로 고린도전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몇 가지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사를 통해서 바울이 받은 교훈이 있습니다. 바울도 배워야 되잖아요. 고린도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깊이 대화하시면서 이분도 깨달음이 있는 겁니다. 첫째 깨달음이 뭐냐면 아하!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 4년 된 이교회사람들 바울생각에는 하루아침에 다 성인이 될 줄 알았는데 성인이라고 불렸지만 첫째 인사말에서 성인이 아니구나. 이분들은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영적으로 여섯 단계를 그쳐가야 되는구나. 이것을 이분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변하려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아라. 하나님나라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광야40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듯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광야 생활40년 필요하다는 겁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감사가 없었고 영적으로 어린아이 생활을 한 것처럼 고린도교회도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2세들이 들어간 거지 광야1세들은 못 들어간 겁니다.
그 말은 뭐냐면 영적 여섯 단계에서 영적으로, 영적으로 자라는 사람들은 애굽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빨리 졸업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생각에서 빨리 졸업하는 사람들입니다 애굽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영적으로 성장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바울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또 바울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은 바울아 너는 나를 섬기면서 너는 좋은 사람만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나 때문에 핍박을 각오해야 그래야 네가 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네가 나를 더 가까이 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걸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5장11절12절에 산상수훈에서 누가 너에 대해서 힐난하고 있는 말 없는 말로 너를 핍박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지 않았느냐 그것을 각오하라는 겁니다. 너를 사람 만들려면 네가 나와 더 가까이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면 이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너에게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너를 위한 것이다 이것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내용을 보면 강한 어조로 쓰지 않은 겁니다.
이걸 깨달았기 때문에 애들아 너희들 어린아이들 대하듯이 이렇게 대해줄게 이런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처음부터 이놈의 자식들 나는 너희들하고 안 논다 하면서 나왔을 겁니다. 이렇게 막 나왔을 텐데 그렇게 안하고 이분이 그래도 감정을 많이 추스르면서 우리가 이 편지를 읽으면서 이분의 이런 마음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배경설명을 해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아 오래 참으라. 이 사람들 변하려면 한참 간다. 이 안에 소수의 네가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을 통해서 지역복음화가 되고 세계복음화가 된다. 그러니까 잘 참으라. 다 내가 특별히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 우리에게 가르치는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보면 첫째가 영적성장에는 단계가 있구나. 여섯 가지 단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 중에 천국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상급 받는 사람들이 소수가 있구나.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구나. 라는 것을 바울의 편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천국은 계급사회구나. 높은 위치에 있고 낮은 위치에 있고 이것도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우리노력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은혜구나 라는 것을 이분의 편지 속에서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는 고린도교회 같은 교회가 수없이 많구나 라는 것을 또 깨달을 수 있습니다. 1세기부터시작해서 지금21세기까지 고린도교회가 수 없이 많구나. 그러니까 고린도교회를 우리가 만날 때마다 고린도 전 후서를 읽으면서 그 속에서 나에게 가르쳐주는 내용을 제가 깨닫고 내 눈에 보이는 고린도교회들을 내가 스스로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내가 스스로 이해하고 그분들을 다룰 수 있는 그러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그 안에는 소수의 제자가 있구나. 고린도교회에도 있었듯이 우리주변에 많은 고린도교회가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소수의 남은 자 우상을 섬기지 않는 자 제자 헌신 자들이 숨겨져 있구나. 그분들은 천국에서 유업을 받는 자들이구나. 고린도 전 후서에서 가르쳐줍니다. 저분들은 제가 잘 다루어야겠구나. 저분들은 천국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구나. 지금은 별로 안 보이지만 그것을 우리가 영의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되라고 영적분별력을 가지라고 고린도 전 후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1세기 때 여러 교회들을 통해서 앞으로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어떤 모습의 교회들이 될 것을 예언적으로 시사해주셨습니다.
이럴 때마다 사도바울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서 훈련 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이분이 우리 예수님 앞에서 메시지를 받아 여러 곳에 편지를 낸 것이 과거2천년 동안 기독교역사 속에서 각 교회나 교인들이 교본으로 이 편지들을 삼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우리에게 닥쳐있는 모든 환경들을 보면서 고린도전서 속에서 흘려 나오는 주님의 메시지를 받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또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또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하며 이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될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번 고린도전서강해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해주시옵소서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lnCnYUUx3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