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이사야1장9절; 로마서11장5절, 은혜로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가자
하나님을 아는 시리즈 1강. 은혜로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가자(사1:9,롬11:5)
이사야1장9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로마서11장5절 말씀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우리는 아주 혼돈 된 세대에 살고 있음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혼돈 된 세대에 우리가 선기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인가?
이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그동안 공부를 많이 해왔지만 이번시간부터 계속해서 시리즈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한 시리즈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시작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시리즈로 첫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첫 시간은 은혜로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가자 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같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나누려고 그럽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더욱 풍성 합시다.
라는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 지난시간에 하신 말씀 기억나시죠.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그 이상 뭐가 더 필요 있습니까?
또는 저희들이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해왔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는 어느 정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상 어떻게 더 있어야 됩니까?
라는 질문을 혹자는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는가?입니다. 우리의 대답이 구약시대도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십계명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인 것을 구체적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은 그런데 신기하게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사람들아 너희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주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적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충만치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많이 공부했지만 호세아서4장6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하게 되었도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호세아가 4장6절에 이때가 언제냐면 북이스라엘사람들이 앗수르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이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당하는 그 이유가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아 당신들이 지식이 부족해서 이렇게 고통을 당한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이 있는 겁니다. 무슨 지식입니까? 그러니까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장6절에 무슨 지식을 이야기하였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지식을 이야기할 때 호세아6장6절에 그러니까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호세아야 말해라 내 백성이 크리스천들이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약간 있는데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어로 레크(lack) 부족하다는 겁니다. 충분치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앗수르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럴 때 솔로몬이 여기에 대해서 대답을 했습니다.
솔로몬이 언제 대답을 했느냐면 이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도 이 지식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이분이 무엇을 보느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분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까 없었던 겁니다. 솔로몬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었고 어떤 지식을 이분이 받았냐면 그냥 이 세상지식입니다 이성적 지식입니다
솔로몬이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솔로몬이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동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동을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까지 지어놓고도 이방신들을 모셔 들이고 이방여자들과 결혼을 하고 700명 플러스300명 그래서 이것 때문에 남북이 갈라진 사건우리 알잖아요. 솔로몬이 이런 죄를 다 지은 다음에 성령님께서 이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무슨 은혜를 베풀었냐면 죽기 전에 회개하게 하신 겁니다.
이분이 회개하면서 깨달은 것을 글로 쓴 것이 잠언입니다 그리고는 전도서입니다 그리고는 아가서입니다 잠언 쓰시고 전도서 쓰시고 아가서를 쓰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죽기 전에 이것을 쓴 것은 엄청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헛 지식인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잠언을 쓰시면서 잠언 첫 장에 말하기를 1장7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지식의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 알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일반적 상식적 혼적 지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를 못했다는 겁니다. 세상 것은 다 가졌는데 명예도 가졌고 돈도 가졌고 권력도 다 가졌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참 지식인데 자기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게 잠언입니다 전도서입니다 아가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 것은 무슨 지식이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호세아서6장6절에 그래놓고는 솔로몬이 거기다대고 다시 설명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잣대가 무엇일까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가? 넉넉한가? 둘로 갈라놓으려면 뭐가 잣대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안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안하느냐에 그기에 맞추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 인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약간 있느냐 아니면 넉넉히 있느냐 입니다. 그래서 우리 지난시간에도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랬지만 당신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빌립보서1장8절에서10절에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내가 원하노라 성령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인들도 선한 일을 많이 하지만 이 지식이 없이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넉넉지 않으면 솔로몬처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호세아이야기를 하잖아요.
참고로 호세아는 언제사람인가? 호세아는 주전755년에서710년 사이에 선지자사역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에 패망한 것이 그걸 다 본 겁니다. 주전722년입니다 그때 이분이 살아서 예언까지 하면서 그걸 다 본 겁니다.
이때가 앗수르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주전722년에 망했으니까 앗수르에 의해서 망한 그때의 왕 이름도 호세아입니다 그런데 20대 왕 호세아 이분은 732년에서722년까지 왕 노릇했던 마지막 왕입니다 우리가 공부했지만 북이스라엘의 20명의 왕들이 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있었습니다.
지식은 있었는데 그것이 부족했던 겁니다. 부족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를 못했던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다는 것은 뭐냐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섬기지는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까 대신 보이는 피조물들 우상들입니다 보이는 피조물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그놈들을 섬겼던 소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못했던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외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가능 하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호세아가 이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겁니다. 신기한 것은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이 망할 것을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대표적으로 호세아서에 말씀한 것은 호세아서1장2절에서5절에 호세아서4장12절에서1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주전722년에 그대로 성취된 겁니다. 그러면서 호세아를 통해서 또 말씀하는 게 있습니다. 뭐냐면 호세아를 통해서 앞으로 남 유다도 똑같이 망할 거라는 겁니다. 남 유다도 그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누구에게 망하느냐면 구체적으로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망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 참고로 앗수르제국은 언제 부터냐면 주전860년에서 주전626년까지의 제국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제국은 언제부터냐면 주전626년에서 주전539년까지의 제국입니다 제가 연도를 꼭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벨론제국은 호세아가 살아 있을 때 있었던 제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연도를 드리는 겁니다. 호세아는 언제 선지자사역을 끝냈습니까? 주전710년에 끝난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나라에 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제국은 주전626년에 나타난 제국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호세아 입을 통해서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남 유다가 망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호세아서 1장6절에서7절과 호세아서6장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호세아가 바벨론제국을 이야기할 때는 남 유다11대왕 12대왕 때입니다 그 당시에 11대왕 12대왕 때 13대가 누구냐면 히스기야입니다. 이 때 지금 호세아가 예언한 겁니다. 그러다가 언제 망했습니까?
주전586년입니다 마지막 시드기야 왕 때 망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연도를 이야기하면서 두 왕국이 패망한 이유가 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누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신약 때 크리스천들도 똑같습니다. 경외 이분을 무서워하고 존경하고 이런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눈에 보이는 우상 신들을 섬긴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하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첫 번째는 창조목적에 순종하는 행위를 말하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행위는 구체적으로 뭐냐면 첫 번째로 삼위하나님이 창조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삼위하나님이 창조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입니다 이 말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삼위하나님을 항상 존귀히 여기며 찬양 드리며 감사드리며 그 분에게 경배 드리며 예배드리며 영광 올려드리는 행위가 창조목적에 순종하는 행위며 삼위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면 이걸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이렇게 못하게끔 디자인 해놓으셨습니다. 성서에 보면 조금 있으면 제가 말씀드리려고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 피부 적으로 상식적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누구시다 그분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예수님이 그냥 삼위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어가지고는 절대로 창조목적에 순종할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신에 창조목적대로 안 산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뭐냐면 피조물들을 경배대상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피조물들을 이게 신기합니다. 이 사실을 구약이스라엘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가르쳐 주시냐면 이 사실을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깨닫고 가르치라고 그리고 본인 것으로 만들어서 나누어주셔야 됩니다. 구약에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면 신기하게도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느 정도만 가지고 있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더 이상 주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소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많이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소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소수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서 이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셨습니다. 구약스토리를 보면 그 소수를 누구라고 이야기합니까?
남은 자들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렘넌트(remnant)라고 그럽니다. 이게 남은 자들입니다 이게 우리의 큰 질문입니다 소수에게는 이분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제가 볼 때는 다른 분들과 별 차이가 없을 터인데 이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디자인 하셨습니다.
이것을 구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통해서 뭐라고 그러냐면 구약의 이 스타일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창조목적에 위배하는 행동을 할 것인데 소수의 렘넌트(remnant)들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만드셨는데 신약 교회시대에도 이 패턴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겁니다.
바울의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구약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을 신약 때 크리스천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예표로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예표로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2장28절에서29절에 로마 교인들에게 바울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똑같이 바울이 로마서9장6절에서8절에 그랬고 갈라디아서3장29절에도 그랬고 빌립보서3장3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신비한 겁니다. 실제로 그러면 우리가 구약에서 이렇게 남은 자들만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하는 스토리를 구약에 최소한 다섯 부분에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구절하나하나 드리면서 예를 드려 드리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야기가 첫 번째로 엘리야시대에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주전850년 때 분입니다 열왕기상19장10절에서18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가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보니까 하나님의 자녀들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보이는 우상들 바벨론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것 때문에 호통을 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를 내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엘리야를 너 이놈아 하고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엘리야야 겁내지 말라 너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7천명을 내가 남겨놓았단다 그러는 겁니다. 7천명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남겨 놓은 것이 그기에 중요한 단어를 썼습니다. 7천명을 남겨놓았는데 나를 위해서 내가 7천명을 남겨놓았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남겨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내가 볼 때는 이분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이분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는 마음을 주신 겁니다. 이분들에게 신기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항상 남겨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원어를 보니까 헬라어로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카타레이포(kataleipo)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면 카타(kata)라는 단어와 레이포(leipo)라는 두 단어를 혼합 한 겁니다. 카타(kata)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레이포(leipo)라는 단어는 남겨두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카타레이포(kataleipo)라는 두 단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위해서 뜻에 따라서 남겨진 사람들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냥 막연히 남겨놓은 게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숨겨져 잇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신학적으로 남은 자 신학이라고 그럽니다.
영어로는 렘넌트 디오로지(the ramnants theology)그럽니다.
그래서 보면 엘리야시대에 이렇게 남겨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엘리야의 사건을 그대로 예수님이 인용을 시키십니다. 바울에게 로마서11장1절에서5절까지 보면 뭐냐면 바울이 똑같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 제가 이렇게 예수님을 섬기는데 이방인들만이 아니고 유대인들 까지도 나를 이렇게 괴롭힙니다. 당신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우상섬기지 말고 그러면 나를 죽이려고 그럽니다. 바울이 똑같이 엘리야처럼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850년 전에 엘리야에게 내가 한 것 기억나느냐 그러는 겁니다. 바울에게 그러니까 바울이 구약에 정통하니까 바울이 압니다,
그러니까 그 때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던 7천명을 남겨두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로마서11장1절에서5절에 그러니까 바울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바울아 너도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지금 너희시대에 너도 남은 자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 때 7천명의 남은 자가 주변에 있듯이 너에게도 소수의 남은 자들이 너 주변에 있단다. 그러는 겁니다. 바울시대에도 그러니까 힘내라 너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보면 지금 이 세상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도 예수님의 감람산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제가 아까 기도 속에서도 말했지만 이 세상이 악하니까 이악한 놈들을 무찌럽시다.
세상에 불의가 심하니까 공의를 세웁시다. 이것을 외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그게 맞는 말인데 예수님의 디자인은 거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디자인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이 세상을 오기 전에 세상이 불의가 심하고 악해지고 자연재해가 많고 교회가 부패하고 적그리스도가 난무할 터인데 너희들은 깨어서 내가 오는 것을 준비하고 땅 끝 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해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데 나쁘다, 나쁘다, 나쁘다만 소리 지르면 됩니까? 나쁘다. 라고 소리 지르는 분들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메시지를 거기다가 꼬리표를 달아야 됩니다.
나쁘다, 라고 말하지 마시고 그러니까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금 속이고 있는 겁니다. 혼돈 시키고 있는 겁니다. 저는 그게 안타까운 겁니다.
나빠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반드시 나빠야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반드시 헬라어로 데이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속임을 당하면 안 되는 겁니다. 이럴 때 마다 나빠야 되고 왜 나빠야 되느냐면 나빠야지만 우리가 정신 차리고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디자인입니다 왜냐면 산고를 예수님이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 산고를 나쁘다고 외치면 안 됩니다 나빠야 되는 겁니다.
지금 남은 자 신학에 대해서 첫 번째 구약의 예를 엘리야를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1장9절에 10장20절에 11장11절에 28장5절에 이사야는 주전739년에서 주전680년 때 분이십니다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예레미야에게도 똑같이 남은 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전625년에서 주전586년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586년 시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23장3절에 또 네 번째로 스가랴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는 주전520년에서 주전480년대의 선지자입니다 스가랴서8장12절에 다섯 번째로 에스라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에스라는 주전440년 사람입니다 에스라서9장8절에 이렇게 구약에서 최소한 다섯 분에게 남은 자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우리 질문이 있습니다. 왜 남은 자들을 이렇게 준비하셨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 왜 그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은혜로 남은 자들을 준비하시는 목적이 무슨 목적입니까? 남은 자를 남겨놓으신 것은 라고 우리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서1장9절에 보면 목적이 거기서 보입니다. 뭐냐면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사야야! 네 민족이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내가 남은 자들을 남겨 놓은 것이 왜 남겨 놓았느냐면 내가 남겨 놓지 않았더라면 내 백성 북이스라엘이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될 거다
이 말씀은 남은 자들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네 백성이 이렇게 못된 짓을 하지만 남은 자들 때문에 네 백성을 다시 살리고 은혜를 베푼다는 겁니다.
남은 자들 때문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주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우상 섬기면서 엉뚱한 짓을 하지만 남은 자들을 내가 준비를 시켜서 남은 자들을 하나님나라를 잘 섬기도록 내가 이렇게 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자들이 착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 때문에 너희들까지 내가 나중에 다 봐주겠다는 이런 말씀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남은 자들을 우리가 알다시피 자기네가 잘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구원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자들 때문에 전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이 다시 살리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디자인 하셨을까? 이게 우리의 질문 중에 질문입니다
왜 이렇게 디자인 하셨을까? 앞으로 우리가 공부를 때가 되면 하겠지만 아하!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창조목적학교구나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창조목적학교구나 그래서 이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과훈련 중에 공부를 제대로 못합니다. 창조목적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이래놓고는 그 안에 공부를 잘하는 그룹들 소수를 만들어 가지고 공부를 못하는 그룹들이 항상 선생님에게 종아리를 맞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교장선생님인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워라 창조목적을 배워라 해도 안합니다. 그런데 소수가 열심히 공부를 잘 해서 그 소수들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계속해서 눈감아 줄게 이렇게 교육디자인하신 겁니다. 이 디자인이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다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스템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시대 전반에 걸쳐서 다 똑같습니다. 구약 때는 남은 자들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 구원하셨습니다. 신약에 와서 보면 첫 초대교회시대 500년 때 보면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지만 그런데 항상 그 안에 남은 자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그 남은 자들 때문에 신약교회에 초대교회 500년 동안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셨고 그다음에 중세교회 천년 동안도 500년부터 종교개혁까지 똑같은 원칙으로 종교개혁부터 지금까지 현대교회도 그 원리가 똑같은 겁니다.
항상 그 안에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약하도록 만들어 놓은 겁니다. 소수의 만은 자들만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또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오늘날에 우리가 적용해봅시다.
남은 자가 되려면 여러분이나 저나 뭐가 있어야 됩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가려면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넉넉히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ABA공부 열심히 하고 주일 마다 설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제가 설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넉넉해야지만 내가 남은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넉넉해지면 무엇이 따라 옵니까? 지식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따라오는 겁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넉넉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성령님께서 삼위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게 아닙니다. 약간 있거나 충분치 않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을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사람은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저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려면 어떤 자가 되어야 됩니까? 그러면 뒤집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넉넉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넉넉해야 되는 겁니다.
그냥 지식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은혜를 받은 자기 때문에 넉넉해지기를 소원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넉넉해지도록 소원을 주십니다.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간 사람은 그 소원을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의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의의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목말라 하고 배고파 하는 증세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AMI교회교인들은 제가 보면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간 사람들이 틀림없습니다. 왜냐면 열심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노트정리 열심히 하시고 이걸 가지고 나누시고 또 가르치시고 그러는 걸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갈급해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남은 자 반열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 빌립보서1장에서 지난시간에 봤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내가 날로, 날로 넉넉해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고 그랬습니까?
영적으로 분별력이 생긴다고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통찰력이 생긴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보는 지식이 생기고 명철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산고를 보는 분별력, 지식, 명철, 지혜, 시대를 읽는 지식, 명철, 지혜 이것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지금 돌아가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보는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명철이 생기는데 어떤 사람에게 생기느냐면 그냥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데 어떻게 해야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까? 지식으로 충만해져야 됩니다.
넉넉해져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세상지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시리즈라 그럽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진 사람이 남은 자들입니다
지금 오늘날 제가 이런 신학을 가지고서 선교지에 이방나라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보면 반드시 어느 나라에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소수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에 갈급 하는 사람들 더 가르쳐주세요. 더 가르쳐주세요. 더 가르쳐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 NK사역도 하지만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핍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다가 남은 자라고 저는 안 보고 있습니다. 지금 NK사람들 3만 명 정도가 남한에 와 있지만 그 안에 기독교인들이 제가 10%정도로 본다면 그 안에도 보면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갈급 하는 NK들이 있습니다. 소수가 다가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권에 가도 마찬가지고 불교 권에 가도 힌두 권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가 크리스천들인데도 소수가 말씀에 갈급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주님께서는 이 소수들 남은 자들을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지만 신약시대도 주욱 그랬지만 특히 오늘날에도 남은 자들을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분들을 그냥 봐 주십니다 신기하죠.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도 남은 자들이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한국을 붙잡고 계시고 한국교회를 붙잡고 계신 겁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남은 자 그룹에 들어가야 되는데 남은 자 그룹에 들어오려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남은 자 그룹에 들어온 사람은 말씀에 갈급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성서말씀에 세상이야기 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일반 설교가 아닙니다.
말씀 중심에 말씀 속에서 갈급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스스로가 만은 자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아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뭘 통해서 자기가 유명해지려고 그러고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로 교회 성장하려고 그러고 이걸로 더 인기 끌려고 그러고 이걸로 더 자기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이것은 아닌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바울도 마찬가지였고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지만 동료 하나님의 백성들 우상섬기는 백성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료크리스천들에 의해서 미움 받고 핍박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보면 압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어서 대형교회를 만든 사람들 그분들 지금 어떤 모습인지 여러분들 아십니까? 전 세계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저는 선교지를 다니면서 보면 조금 성공했다는 인기 있는 현지 지도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도 서양나라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인기몰이로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남은 자들이 아님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분별력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복잡한 사회로 예전에 구약 때 인구와 지금의 인구와는 엄청난 차이가 초대교회 때 중세교회 때 현대교회 때 특히 마지막 때 세계인구가 80억입니다 그중에 소위 기독교인이 약33%입니다
그 안에 가짜 크리스천들 가짜 그리스도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남은 자들도 보통 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종합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자들입니다 과거 단순사회 때 남은 자들과 다릅니다. 오늘날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아주 종합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종합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중에 결론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이것은 내 실력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은혜를 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반열이구나. 그러면 내가 그 반열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떤 현상을 보고서 내가 들어왔나 안 왔나를 알 수 있을까?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실래요. 아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 하느냐 안 하느냐 그다음에 말씀에 갈급 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안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봐도 별로 관심이 없어지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경외하게 되도록 성령님이 이끄시는 겁니다. 크신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모두가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예수님 성령님 아버지하나님 우리에게 이 은혜를 구약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은 자 은혜를 주셨던 것처럼 교회시대2천년 동안 남은 자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오늘날은 더 복잡한 이 사회 속에서 신앙산고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자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특히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갈증을 가지고 배고파하는 한 분 한 분 되도록 은혜위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아버지 바울과 그 팀들이 1세기 때 남은 자의 반열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들이 잘나서가 아니고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남은 자 반열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계속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배고파하고 갈증을 느끼도록 이런 복 있는 자가 되도록 복을 내려 주시되 삼위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 사랑 베푸심과 능력 베푸심이 우리에게 항상 떠나지 않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은혜로 남은 자 반열에 들어가자(사1:9,롬11:5)
1. 구약시대 호세아(주전755-710)에게 하신 호세아서4장6절, 6정6절의 말씀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2. 호세아의 예언 당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영적상태는 어떠했습니까?
3.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을 향한 예언 호세아1장2절에서5절, 4장12절에서19절과 남유다에 관한 예언 호세아1장6절7절. 6장5절을 찾아봅시다.
4. 상기 두 왕국의 패망원인은 무엇이라고 호세아가 말했습니까?
(호세아4장4절, 6장6절)
5. 이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여부를 이떻게 가늠할 수 있습니까?
(잠언1장7절)
6.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은 어떤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7. 구약의 이스라엘역사가 신약의 교회와 크리스천 삶의 예표인 것을 성서에서 찾아봅시다. (로마서2장28절29절, 9장6절-8절; 갈라디아서3장29절; 빌립보서3장3절)
8. 구약의 예표에서 소수만 하나님을 경외했었는데 이에 대한 가르침이 다섯 부분에서 발견되는데 이것들을 열거해 봅시다?
9. 남은 자들을 남겨놓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0. 왜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족케 하여 창조목적에 불순종하게 디자인하셨습니까?
11. 내가 은혜로 남은 자 반열에 들어온 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 할 수 있습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jxScinlFw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