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요한복음4장1절-54절, 사마리아여인과 두 번째 표적
요한복음강해 12강. 사마리아여인과 두 번째 표적 (요4:1-54) 2010년5월9일 말씀
오늘은 요한복음4장입니다. 요한복음4장 전체를 제가 설명할 터인데 보통 설교할 때는 어떤 때는 한 두절을 뽑아다가 그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지금 한 장 전체 안에 숨겨져 있는 주님의 소원인 말씀을 전하다보니까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아주 짧게 하려고 노력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준비를 하시고 열심히 노트정리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오늘도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 우리가 항상 지도를 보면서 성경을 보면 더 쉽습니다.
여기 제가 이스라엘지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2장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였습니까? 가나의 혼인잔치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라고 북쪽 갈릴리지방 가나에서 혼인 잔치하는 장면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속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기독론과 구원론에 관한 정체성을 우리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리고 2장 두 번째 부분이 무엇입니까? 가나의 혼인잔치가 끝나고 그다음에 예루살렘성전을 청결케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디로 내려오신 겁니까?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2장에서는 두 지역으로 갈라집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는 이 안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구원론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3장은 누구이야기입니까?
니고데모의 이야기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어디서 만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만났습니다. 니고데모는 공의회회원이니까 예루살렘에서 만나서 니고데모와 여러 대화 속에서 구원론이야기 성령 론 이야기 기독론이야기를 주욱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와 끝난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다음 3장 후반부에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인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예루살렘과 가까이 있는 도시에 계시다가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요단강가까이 유대지방이지만 이쪽 요단강가까이서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시고 하는 이야기들이 주욱 나옵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3장이 끝납니다.
3장이 끝나고 4장으로 들어와서 오늘 사마리아여자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면 유대지방의 요단강가까이 계시다가 그러다가 4장으로 들어와서 이분이 갈릴리지방으로 올라가시려고 그러는데 이분이 이번만은 그렇게 하시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보통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스라엘가운데 지방이 무슨 지방이라고 그랬습니까? 중부지방이 사마리아지방입니다 남쪽에 유대지방 사람들이 북쪽으로 올라갈 때 사마리아 가운데 도시를 거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마리아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만나기도 싫어하고 대화하기도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은 괜찮으시지만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올라가실 때는 항상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예루살렘에서 사해북쪽에 여리고에 들렸다가 요단강을 타고서 갈릴리지방으로 항상 올라갔습니다.
사마리아를 피해 갔습니다. 사마리아에 중요한 도시가 두 개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라는 도시가 있고 그다음에 수가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지금 학설로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수가와 세겜이 다르다는 학설이 하나 있습니다. 또 두 도시는 같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여러분들에게 같다고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다를 수도 있지만 같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수가 성 하면 세겜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겜은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딜 때 제일 먼저 방문한 도시가 세겜입니다. 수가입니다 그만큼 수가라는 도시가 이름난 도시입니다
그다음에 수가를 끼고 양쪽에 유명한 산이 두 개가 있습니다.
북쪽으로 있는 산이 에벨 산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수가와 그의 붙어서 남쪽으로 산이 있는데 그리심 산이라고 있습니다. 그리심 산을 끼고 가운데 세겜, 수가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사람들은 그리심 산에다가 자기네가 성전을 지어 놓고 이분들은 이 성전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전이라고 믿고 거기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하면 이 축복이 광장한 하나님의 축복이 된다고 믿고 에벨 산에서는 축복하지 않고 저주를 하는 말을 에벨 산에서 합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에서 축복하는 게 우리가 좋아하는 신명기28장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보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자를 만나는데 그 배경을 이야기하기 전에 소위 사마리아여자라는 그분을 만나려 가는 겁니다.
사마리아여자의 특색을 제가 일곱 가지로 정리를 해 봤습니다.
사마리아여자는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나 세례요한과 다른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관원이고 부자고 권력자고 지식인이고 소위 대표적으로 상류계층사람을 대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사람들도 기독교인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상류계층사람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 세례요한은 대표적인 종교인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존경받고 인기 있고 소위 거룩한 그런데 이분은 검소한 종교인이었습니다.
마가복음1장1절부터8절까지 이분이 얼마나 검소했느냐면 복음을 전하지만 이름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소리라고 그러면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종교인이지만 아주 검소했던 종교인의 하나의 표상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예수님을 전한다는 겁니다. 이제 세 번째 인물로 사마리아여자입니다
이분은 대표적으로 하류층 소외계층을 대표로하는 여자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여자의 특색 중에 하나가 이 사람은 미움, 차별의 대상인 사마리아사람이고 또 남존여비사상이 강했던 그런 사회에서 여자고 또 남편에게 다섯 번 이혼을 당한 그리고 지금 있는 남편도 법적으로 남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이 여자 분은 종교인이었습니다. 메시아를 대망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예배를 열심히 드렸던 자입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에서 열심히 예배를 드렸던 자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많은 여자들은 이름이 있지만 이분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분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는데 오늘 4장에 보면 사마리아여자와 만남을 통해서 성경에 나오는 굉장히 중요한 신학학설들을 최소한 여섯 가지의 신학학설을 이 여자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론, 구원론, 예배론, 기독론, 전도론, 선교론입니다 이 여섯 가지의 중요한 학설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우리예수님께서는 이 학설을 그 당시에 초대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또 교회시대 2천년 동안의 크리스천들에게 이 학설들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앞에 나온 니고데모나 세례요한보다도 더 소중하게 이 여자를 사용하셔서 이 여섯 가지 학설을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를 만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걸 다 계획하시고 이 여자를 만나서 따라온 제자들에게 또는 사마리아사람들에게도 이 학설을 직접 간접으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지금 여기 3장에 남쪽 유대지방 요단강근방에서 계시다가 갈릴리지방으로 가지 않으시고 이분이 이번에는 수가로 직접 가시려고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인드가 그러는 겁니다. 제자들은 그쪽으로 가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4장3절에 보면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그랬습니다.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꼭 가야된다는 겁니다. 사마리아를 통과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계획이 계시다는 겁니다. 보통 때는 이분이 꼭 요단강을 통해서 여리고로 해서 가는데 이번에는 갈릴리 쪽으로 가야 데는데 일부로 사마리아를 통해서 가야되겠다는 겁니다. 왜냐면 누굴 만나냐면 이 여자 분을 만나려 가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자 분을 만나는데 어디서 만나느냐면 수가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만나는 겁니다. 야곱의 우물 그것도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그럽니다. 왜 거기서 만나실까? 이런 배경을 먼저 깔아놓고 먼저 우리가 사마리아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마리아가 도대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이 북 왕국이 있고 남 유다가 있잖습니까? 북 왕국에 왕이 몇 명이 있었습니까?
20명이 있었습니다. 남 왕국도 20명이 있었습니다. 북 왕국20대 마지막 왕 이름이 호세아라는 왕입니다 주전732년에서722년입니다 북 왕국의 대부분의 왕들이 우상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20대 왕인 호세아 왕 때는 아주 심해가지고 하나님께서 앗수르 제국의 왕 이름이 살만에셀이라고 이 왕이 열왕기하17장에 보면 주욱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마리아를 침략하게 합니다.
그 당시에 사마리아지역에는 어떤 지파가 살았냐면 므낫세지파 에브라임지파 스블론지파 그리고 아셀지파입니다 이 네 지파가 그 지역에 살았습니다.
이 네 지파의 사람들을 잡아가지고 앗수르로 끌고 갔습니다.
성서에 보면 열왕기하17장6절에 보면 27290명이 잡혀간 후에 앗수르제국이 얼마나 크냐면 오늘날 시리아와 이라크의 북쪽 전체지역이 앗수르제국이었습니다. 앗수르제국이 주전860년에서 주전626입니다 약240-250년간 지속하였으며 주전626년에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바벨론제국시작이 주전626년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제국을 하나님이 사용해가지고 주님이 북 이스라엘을 공격을 시키는데 북이스라엘사람들을 27000명을 데리고 갔지만 또 자기 제국 안에 있는 여러 타민족들이 있었는데 타민족들 앗수르민족 외에도 타민족들을 사마리아지역으로 인구이동을 시켜버렸습니다 열왕기하17장24절에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가지고 사마리아 여러 도시 성읍에다가 인구이동을 시켜가지고 그분들이 서로 혼혈민족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사마리아사람들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이 혼혈 족속들을 그런데 혼혈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시켰느냐면 여기에 대한 내용은 성서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역사기록에도 사마리아에 대한 역사기록이 자세하게 문서로 되어 있는 기록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앗수르라는 제국이 북이스라엘만 공격한 게 아니고 그의 똑같은 시대에 유다지방도 공격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유다왕은 누구였냐면 유명한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13대 왕입니다
주전715년에서 주전686년 같은 시기인데 열왕기하18장13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니까 앗수르제국이 남쪽 유다제국도 공격을 했습니다.
이 두 왕국을 왜 공격을 했느냐면 성서에서는 그 이유를 가르쳐주십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열왕기하17장17절에서18절에 나오고 유다왕국을 공격한 이유는 열왕기하18장9절에서19절 또 37절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이 두 나라가 다 성전이 있는데도 성전 주변에다가 산당을 만들어놓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놓고 일월성신을 섬기고 그다음에 점쟁이들이 깔려 있고 그랬다는 겁니다. 그 왕국이 그런데 북쪽 왕국만 앗수르 왕이 지배하고 남쪽 왕국을 공격을 했는데 남쪽 유다왕국이 앗수르군대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성서에 보면 이유를 말씀합니다.
왜냐면 히스기야 왕이 우상을 제거해버린 겁니다. 열왕기하18장1절에서부터 8절까지 주욱 보면 그렇게 우상을 제거해버렸다는 겁니다.
우상을 제거하니까 파워가 생긴 겁니다. 남 왕국이 승리한 이유가 우상을 제거했고 앗수르군대가 왔는데 185000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왜냐면 남쪽 유다가 군대도 많지 않았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말하면 천사들이 와가지고 앗수르군대 185000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천사들이 와가지고 그리고 세겜에 관한 이여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세겜은 수가와 같은 도시로 기억하시고는 첫째로 아브라함이 첫 번째로 방문했던 도시로 창세기12장6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창세기33장18절에 보면 야곱이 이 땅에 발을 디 딛고는 지금 세겜이라는 이 땅을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지나갔던 땅으로 이 땅을 사버렸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땅이 되면서 그기에 야곱의 우물을 팠던 겁니다. 이 우물을 팠다는 것은 구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4장6절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우물 이렇게 했는데 그런데 창세기33장 18절에 땅을 샀다고 되어 있는데 34장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일어나는 희한한 일들이 있습니다. 뭐냐면 야곱의 딸 이름이 누굽니까? 디나라는 딸이 있습니다. 디나가 세겜에 있는 추장이름이 세겜입니다.
추장인 세겜이 디나를 겁탈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후부터 이스라엘사람들과 이미 혼혈이 시작되었는데 우리 알다시피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과 세셈을 따라다니는 주변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창세기48장21절22절에 야곱이 이 땅을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땅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요셉이 거기서 애굽으로 갔잖아요. 애굽의 총리가 되었잖아요. 그리고는 요셉이 죽은 다음에 요셉을 뼈를 애굽에서 세겜으로 가지고 와가지고 지금 세겜에 요셉의 뼈가 묻혀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겜은 사마리아사람들이 볼 때도 봐라 요셉의 무덤도 여기 있으니 우리는 정통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전승을 보면 사마리아인들의 전승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사마리아사람들의 전승을 보면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승들입니다 첫째가 뭐냐면 그리심 산에다가 성전을 지은 것은 여호수아가 지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리심 산이 예배 중심 처였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에게는 그 당시는 예루살렘성전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 생각에는 여호수아가 지은 성전이 그리심 산에 있기 때문에 그리심 산을 이분들은 아주 성역화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사무엘상1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이 실로라는 곳이 그리심 산 남쪽에 실로 바로 밑이 벧엘이고 그 바로 밑이 예루살렘입니다 실로에서 엘리 제사장이 성전을 드나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분이 실로에다가 엘리 성전을 지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성전이 두 개가 된 겁니다. 처음에 그리심 산에 있는 여호수아가 지은 성전이 있고 그다음에 엘리 제사장이 지은 성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승에 의하면 블레셋사람들이 엘리 성전을 파괴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주전1000년에 사울 왕이 그리심 산에 있는 여호수아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다음에 사마리아인의 정의를 내리면 사마리아인은 누군가? 사마리아지방에 사는 이스라엘족속지파 중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구약의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사마리아사람들이라 그러는 겁니다. 나머지유대인들은 어디를 이야기합니까? 예루살렘성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때부터 시작해서 사마리아사람들은 나머지 유대인에게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천대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천대받았던 기록을 제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구약에 보면 외경이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39권외에 외경들이 10여권 이상 됩니다. 외경 중에 전도서라는 외경이 있습니다.
전도서50장24절에서26절에 보면 사마리아사람들은 나라가 없는 세겜에 사는 바보 같은 사람들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라가 없는 세겜에 사는 바보 같은 사람들 이런 말이 나오고 그다음에 또 외경 중에 레위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레위기하고 다른 레위기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뭐라고 써놓았느냐면 세겜은 바보들의 도시다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보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어떻게 보느냐면 첫째 요한복음 오늘 본문입니다
4장9절에 보면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하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가까이 하지도 않는 상종하지를 아니하는 요한복음4장9절에 그랬습니다. 두 번째 누가복음9장54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사람들을 저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같이 사마리아마을에 들어가서 숙소를 빌리려고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숙소를 주지를 않습니다.
이분들이 안 주는 이유는 자기네 족속이 아니니까 특히 유대인이니까 그러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이 두 분이 형제입니다. 이 두 분이 화가 나가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냥 저주를 해버리는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저 새끼들 이렇게 이런 게 성서에 나옵니다. 누가복음9장54절에 보면 그다음에 세 번째는 예루살렘교회가 열두제자들이 지도자들로써 예루살렘교회가 커졌잖아요. 그럴 때마다 예루살렘교회에 열두제자들이 사마리아로 복음을 전하러 가지를 않는 겁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사도행전1장8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그다음에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로 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죽어라고 안가는 겁니다. 왜 안갈까요? 우리보고 북한가라는 소리나 비슷하겠죠? 안가는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교회가 핍박받고 흩어졌잖아요. 흩어지면서 그중에 집사 한분이 있었습니다. 빌립집사가 사마리아로 전도로 나간 겁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선교사호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8장5절에 보면 첫 사마리아선교사가 빌립집사입니다 빌립집사가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그 상황을 보고를 받은 겁니다. 보니까 이분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빌립지사스토리에 보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야! 사마리아도 복음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도 가보자 그래서 사도행전8장14절에 보면 그 야기가 주욱 나오고 8장14절부터25절까지 보면 이분들도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합해서 아주 사마리아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바꾸어서 예수님이 보는 사마리아인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 첫째로 예수님은 아까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인들을 저주했습니다. 저주를 할 때 예수님이 옆에 계시면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야 이놈들아! 하고 꾸중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9장51절부터56절에 예수님이 꾸중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본인은 유대인이지만 두 번째로 예수님이 비유를 드실 때 선한 사마리아인비유를 드셨습니다.
누가복음10장30절에서37절에 보면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제사장들도 사마리아사람들 보다도 못해 레위인도 못해 아주 유대인사회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사람들을 주님이 사마리아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예화를 드시는 겁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제자들에게 생각을 바꾸어주기 위한 레슨을 시키는 겁니다. 너희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다음 세 번째로 보면 예수님이 누가복음17장11절에서19절에 보면 문둥병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한 문둥병자가 누구냐면 사마리아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아하! 이 사마리아인을 엄청 사랑하시는구나. 네 번째로 오늘 본문말씀인데요 요한복음4장40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자를 전도를 한 후에 사마리아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구세주로 믿고 그러니까 이분들이 예수님을 자기네 집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사마리아사람들 집에 들어가서 이틀을 주무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파격적인 겁니다.
그 당시에 모든 정서에 비교하면 파격적인 겁니다. 이런 걸 볼 때 하나님은 사마리아사람들 소외되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사마리아인들의 신학 교리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분들은 똑같이 구약의 여호와하나님을 믿고 있는 겁니다.
특히 이분들은 구약의 모세오경만 믿습니다. 나머지 구약들은 안 믿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나머지 구약들은 예루살렘이야기들이 자꾸 나오거든요. 예루살렘이야기만 나오면 이 사람들은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오경만 믿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사마리아여자도 마찬가지였잖습니까? 요한복음4장25절에 보면 메시아를 대망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분들은 할례도 하고 유월절도 지키고 속죄절도 지키고 안식일도 지키고 그다음에 유대인들이 먹는 음식법이 있습니다.
코셔(kosher)법이라고 유대인들이 성서에서 나오는 음식규범입니다
그걸 코셔(kosher)음식이라고 그럽니다. 이 음식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먹습니다. 그다음에 이분들이 믿는 구약의 여호와하나님을 이분들이 믿습니다.
그다음에 이분들은 예배를 그리심 산에서 보는 겁니다. 그리심 산이 예배의 중심지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육신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사두개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마리아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존재하느냐면 기록에 보면 사마리아사람들이 이스라엘에 가면 텔아비브라고 그기에 국제공항이 있습니다. 텔아비브주변에 그리고 그리심 산 주변에 약400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은 유월절 속죄절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하시고 이런 배경을 가지고 4장 공부를 간단하게 할 터인데 4장을 공부할 때 이런 생각을 하세요. 4장을 공부하는 수강자들이 누굴까요 이걸 공부하는 수강대상들이 요한복음을 쓴 목적이 누구를 위해서 썼습니까? 주후30년부터 주후70년까지 40년 동안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을 위해서 요한복음을 쓰는데 무슨 목적으로 썼느냐면 예수님의 신성을 알려주고 또 그걸 깨달음으로써 크리스천이 되게 하는 목적이라고 요한복음20장3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걸 생각하시면서 이 복음서를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첫째 이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대상이 누구냐면 이 사람들입니다 주후30년부터 주후70년 사이 40년 동안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그리고 특별히 좁은 의미로는 사마리아여인과 사마리아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지금 4장을 이야기하고 조금 더 크게 보면 주후7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회시대에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해서 4장을 써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강의의 제목이 뭐냐면 제가 아까 여섯 가지 드렸습니다. 성령론, 구원론, 예배론, 기독론, 전도론, 선교론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마인드를 가지고서 지금 수가 성으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수가 성으로 들어가실 때 그기에 이미 다 준비해놓으신 겁니다. 누구를 준비해 놓았습니까? 사마리아여자도 준비해놓으시고 특히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에 가시기로 이미 다 결정하신 겁니다.
그런데 보면 이분의 가르치는 스타일이 성육신적인 스타일입니다
성육신적인 스타일로 강의를 하시는 겁니다. 본인이 직접 그 지방으로 방문하셔가지고 그쪽사람들과 직접만나가지고 구원사의드라마의 배우로써 이분이 지금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수가 성의 야곱의 우물에 도착해서 4장6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이분이 곤하셔서 우물곁에 그대로 앉았더라. 그랬습니다. 우 리가 지금 드라마를 보는 겁니다, 이게 드라마인데 예수님이 지금 예수님이 하고 싶어 하는 그것을 우리가 대강 짐작하잖아요.
우물곁에 앉으신 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낮12였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해 빛이 아주 뜨거운 겁니다. 그래놓고 예수님이 앉아계시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였냐면 4장8절에 보면 제자들보고 이제 상황 화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어떻게 시키느냐면 제자들보고 그러는 겁니다. 애들아 너희들 저 밑에 마을에 가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던지 점심을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 그러면서 제자들을 그쪽으로 보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홀로 야고보우물 곁에 앉아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여자하나가 물동이를 들고 예수님께로 걸어오는 겁니다. 이것이 계획이 되었겠습니까?
안 되었겠습니까? 다 계획이 된 겁니다. 사마리아여자가 오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여자야! 물 좀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저 멀리 마을로 내려 보냈을까요? 제자들이 옆에 있었으면 사마리아여자와 예수님이 대화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제자들이 뭐라고 그랬겠습니까?
선생님! 골이 비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방해를 할 겁니다. 예수님이 그걸 다 아시고는 너희들은 내려가 있어라 면서 예수님은 이런 상황 화를 잘 하십니다 여자에게 물 좀 달라 그러니까 여자가 한 번에 거부를 해버리는 겁니다. 9절에 보면 당신은 유대인으로 어찌하여 사마리아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합니까? 제가 그래서 배경설명을 해드리는 겁니다.
역사적인 설명을 이게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여자가 볼 때도 예수님과 대화를 안 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물도 안 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4장9절에 써놓 게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이 여자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면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소정의 교육목적을 당성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하셨는데 신기한 게 예수님이 이 여자와 대화를 하는 겁니다.
대화를 한 다음에 결론이 뭐냐면 이 여자가 당신이 메시아군요 그다음에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됩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된다고 말했잖아요. 27절에 보면 이 대화가 딱 끝나니까 이 여자가 예수님을 완전히 깨달은 겁니다. 이때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여자와 말씀하신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묻는 이가 없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대 낯에 이 여자와 대화가 심합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없는 사이에 볼일을 다 보신 겁니다. 그러면 상황 식으로 강의하는 모습을 잠깐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느냐면 생수를 주고 싶어 하는 겁니다. 생수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수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입니다 일반 물은 생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입니다. 나중에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 피다 참 음료다 그리고 나중에 7장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너희들에게서 생수가 강같이 흘려 나올 터인데 그 생수는 곧 성령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에게 생수를 주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성령님을 부어주기 위해서 야고보의 우물가에서 이 여자를 만나도록 계획하신 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생수를 먹어라 이렇게 하지 않고 여자여 나에게 물 좀 줄래 그러는 겁니다. 여자가 당황하여 거부하잖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네가 만약에 너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또 이 말을 하는 내가 누구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구할 거야 이런 말씀을 갑자기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이 너에게 생수를 줄 거야 그러는 겁니다.
갑자기 생수로 발전시켜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대답하는 겁니다.
주여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우리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고 그러면서 당신이 야곱보다 큰 자입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하는 겁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 마려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소생하는 샘물이 되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프뉴마(Pneuma)성령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가주는 샘물은 프뉴마(Pneuma)성령님이라는 겁니다. 그 속에 한번 들어가면 우물물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그러는 겁니다.
15절에서 주여 이런 물을 네게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또 여기 물 길러오지도 않게 하소서 이제 주님께서 상황적으로 생수에 대한 강의를 성령님에 대한 강의와 구원론에 대한 강의를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생수는 무엇입니까? 일반물이 아닙니다. 포도주입니다
참 포도주고 예수님의 피고 인자의 피고 참 음료입니다 그리고 생수의 강이고 성령님이신 겁니다. 7장9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생수다 그런데 성령님의 이름이 다양하게 성서에서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의 영이라 그랬습니다. 성령님은 마태복음10장20절 16장17절 로마서8장11절 아버지의 영이라 그랬습니다. 또 아들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4장6절에 또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9절에 베드로전서1장11절에 또 예수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사도행전16장7절에 또 하나님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9절에 고린도전서3장16절에 또 성령이다 그랬습니다. 누가복음11장13절 사도행전16장6절 이사야서63장11절에 또는 주 하나님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이사야서61장1절 61장6절에 그다음에 생수의 근원은 누구인가? 예레미야2장13절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예수님)가 내가 생수의 근원이다 그랬습니다. 또 시편36편9절에 내가(여호와가) 생명의 원천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원천이 어디입니까? 그러면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데 본래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내가 여쭈어서 항상 성령을 오게 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우리가 ABA에서 필리오케(Filioque)라는 말은 이것 때문에 로마가톨릭에서 희랍정교회가 갈라진 겁니다. 이게 뭐냐면 4대 공의회 첫 번째 니케아 공의회 두 번째는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세 번째 에베소공의회 네 번째 칼케톤공의회 두 번째 공의회에서 무엇을 결정했느냐면 성령님은 성부에서 발원해서 성자를 통해서 오신다. 라고 한 겁니다.
삼위일체 확립에서 성령님의 발원이 성부지만 똑같이 성자를 통해서 오신다. 이것이 정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그런데 1054년에 로마가톨릭에서 그리스정교회가 분리된 것이 이때 몇 가지 서로의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교리적으로 이 부분입니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뭐라고 했냐면 성부에서 직접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신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이것 때문에 일어난 학설의 논쟁이 필리오케(Filioque)논쟁이라 그럽니다. 필리오케(Filioque)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면 생수의 근원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아들을 통해서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실 때는 꼭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영도 되고 예수님의 영도 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수가 나의 마음 깊이 들어 가버리면 내가 구원받았다 그러잖아요. 그 생수를 마시는데 우리가 어디까지 마셔야 됩니까? 카르디아(Kardia)까지 하트(heart)까지 마셔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혼에 네 층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첫 층이 힘(Strength),
두 번째는 뜻(Mind), 세 번째는 혼(Spirit) 또는 목숨, 그다음에 마음 하트(heart)그랬습니다. 이 하트(heart)로 내려와야 되는 겁니다.
이 생수가 예수님의 영이 아버지의 영이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니고데모에게 말했죠. 거듭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할 때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랬습니다. 물은 성령과 다릅니까? 똑같습니다. 물과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이렇게 지난시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구원론을 이 여자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리고 생수의 능력과 해택입니다 생수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과 해택이 무엇이냐면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는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한다. 영생을 얻게 한다. 다 요한복음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멸망하지 않게 한다. 심판받지 않게 한다.
이 모든 해택들이 생수를 통해서 온다는 겁니다. 이것을 지금 이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목을 다시 바꾸어서 생수가 임하는 장소는 어딜까?
생수가 거하는 장소는 요한복음7장38절입니다. 7장38절에서 생수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려나오리라 하시니 39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라 이게 미래형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미래형이거든요 이 말씀을 언제 하신 겁니까? 3년 공생애 중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말씀을 받을 때 크리스천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언제 크리스천이 됩니까? 주님이 그랬습니다. 가나혼인잔치에서도 내 때가 아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피 흘리는 때가 언제 입니까? 십자가사건이고 그다음에 부활사건입니다 이게 때거든요 이 사건이 끝나면 그다음부터 믿는 자들이 그것을 믿고 예수님의 모든 정체성을 믿는 사람들은 그 때 배(하트,heart, 가장 갚은 곳)에 여기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는 겁니다. 여기서 성령님의 강이 생수가 흐른다는 겁니다. 그 생수가 성령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장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겁니다. 장래에 언제지 아시죠. 성서에서 제가 예전에도 많이 말씀드렸지만 이 하트(heart)를 마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속사람 또는 배속 또는 중심, 심령 이렇게 말했는데 이사야서12장3절에 보면 구원의 우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구원의 우물 속사람 도는 우리의 마음을 구원의 우물 이사야서12장3절에 그 안에 생수가 있다는 뜻을 구원의 우물입니다 다시 한 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 생수를 마시게 됩니까?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 이후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영광 받으신 후에 그래서 아까 7장39절에 그러는 겁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영광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입니다 8장28절, 12장32절, 12장34절에 영광을 받는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생수를 우리가 성령님이라 그랬습니다. 원어로 성령님을 프뉴마(Pneuma)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보니까 성령님이 지금 같은 성령님인데 두 가지의 성령님이 기능적으로 분류가 됩니다. 첫째 성령님이 구원을 주시면서 성령님의 기능적인두 부분입니다 구원을 주시면서 생수기 때문에 생수가 내속에 있으니까 씻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쓴 뿌리들을 씻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구원과 성화를 주시는 프뉴마(Pneuma)성령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성령님은 포도주가 되시고 예수님의 피가 되시고 생수가 되시고 주욱 말했잖아요.
이런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은 출애굽기12장8절에서 쓴 나물과 같이 먹는다고 그랬잖아요. 제 생각에는 이 성령님이 쓴 나물의 성령님입니다
왜냐면 쓴 나물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쓴 나물은 우리의 독소를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의 보혈이 독소를 제거하는 게 무엇입니까?
백혈구입니다 그래서 쓴 나물은 예수님의 보혈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또 샘물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쓴 뿌리들이 우리에게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이 쓴 뿌리들을 더 성화를 독촉시키고 강화해주는 무기가 필요 한 겁니다. 그 무기를 보혜사성령님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혜사성령님이 조금 강한 역할을 해주는 그래서 우리가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그럽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면 예수님께서 같은 요한복음14장16절에 그러는 겁니다. 14장은 예수님이 성만찬하시는 때입니다 성만찬하실 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라 그랬습니다. 여기 보면 다른 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다른 이라는 말이 어나드 헬퍼(another helper) 원어로 알로스(Allros)라 그랬습니다. 알로스(Allros)라는 헬라어로 무슨 뜻이냐면 본질은 같은 데 기능의 차이가 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알로스(Allros)같은 성령님이신데 기능적으로 다르게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을 원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파라(para)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옆에 계시다 그러니까 밖이나 내속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내 옆에 계신 겁니다. 그리고 클레토스(kletos)는 초청받으시는 분입니다 초청받으시는 분이 클레토스(kletos)입니다
그러니까 내 옆에 계셔서 내가 초청하지 않으시면 오지 않으시고 초청을 해야만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초청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분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물어보는 겁니다. 황 목사님 그러면 성령님이 두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한분이십니다. 보세요. 성령님은 우주에 편만합니까? 안 합니까? 우주에 편만하십니다. 성령님은 내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주에 편만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도 계시고 내 곁에도 계시고 그런데 내속에 계신 그분은 나에게 구원을 주신 선물을 주신 분이십니다 구원의 선물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이 똑같이 내 속에도 계시면서 바깥에도 계십니다. 내속에 계신 그분은 나를 씻어주는 물같이 역사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깥에 계신 분은 내가 초청할 때 강하게 나에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어떻게 나타나십니까? 불같이 사도행전2장2절에 2장3절에 바람같이 그다음에 빛같이 사도행전9장3절에 다메섹에서 바울이 만나는 그 성령님입니다
빛같이 오셔가지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마태복음3장16절에 이렇게 예수님의 영이 이렇게도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보혜사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성화시켜주는 프뉴마(Pneuma)성령님도 성화시켜주지만 보혜사성령님도 성화시켜주는 겁니다. 팔복에서 복 잇는 자 이야기할 때 처음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심령이 하트(heart)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랬습니다. 이미 하트(heart)가 가난하다는 소리입니다 하트(heart)가 가간한 사람은 왜 주님의 성품이 내속에 없을까하면 이미 내속에서 프뉴마(Pneuma)성령님이 벌써 역사를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프뉴마(Pneuma)성령님은 어떤 역사를 하느냐면 로마서8장26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내 빌 바를 모르나 내속에 계시는 성령님이 탄식하시면서 나를 위해서 중보 해 준다 그랬습니다.
그 성령님이 프뉴마(Pneuma)성령님입니다 내속에서 그러니까 혼자서 묵상하면서 내가 왜 이렇습니까?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러면 벌써 내속에 나를 성화시켜주는 그분이 누굽니까? 프뉴마(Pneuma)성령님이십니다
로마서8장26절입니다. 그런데 팔복에서 두 번째가 무엇입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내속에서 애통한다는 겁니다. 내가 애통하고 프뉴마(Pneuma)성령님이 애통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위로 자가 누굽니까?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입니다 파라클레토스(parakletos)그래놓고는 헬퍼(helper) 그리고 컴퓨터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뉴마(Pneuma)성령님을 통해서 나의 더러운 성품 때문에 내가 애통하면 그 즉시로 주님께서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 바깥에 계신 성령님이 불같이 와서 나를 태워주시고 바람같이 오시고 빛같이 오시고 비둘기 같이 오셔서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기능의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7장에서 너희들이 나를 믿는 자들에게는 프뉴마(Pneuma)성령님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만찬할 때 그러는 겁니다. 이 프뉴마(Pneuma)성령님을 너희들이 나중에 받겠지만 어나드(another) 다른 컴퓨터를 내가 너희들에게 주겠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사도행전1장 승천하시는 그날에 사도행전1장4절5절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너희들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그랬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한 것 그것이 올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십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 이 사람들은 이미 프뉴마(Pneuma)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언제 받았습니까? 부활하는 그 순간에 이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프뉴마(Pneuma)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40일이 지나갔습니다. 40일 되는 마지막 날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약속한 것을 너희들은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도행전1장5절에 그러면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받는 그 사건을 성령세례라 그럽니다.
그리고 2장5절에 저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소리나 같은 말입니다
사도행전2장4절에 보면 그러니까 같은 동의어들입니다 프뉴마(Pneuma)성령님을 받는 것은 단회 적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세례 받는 것은 다회 적입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 받는 것을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바울도 요한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사야까지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61장2절에 바울에게는 고린도후서1장21절에 요한에게는 요한1서2장20절 또는 27절에 이렇게 해서 지금 사마리아여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 론을 설명 들었고 구원론까지도 설명을 들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그 다음에 예수님께 질문하는 게 있습니다.
예수님 알겠습니다. 예수님 우리조상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지금 저 아래에 있는 다른 형제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도대체 어디서 드리는 것이 참 예배입니까? 라고 물어 보잖아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성령 론과 기독론을 깨달은 다음에 예배 론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됩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있다는 겁니다. 예배는 누구에게 드리는 겁니까? 아버지께 드리는 겁니다. 아직까지 십자가사건이 일어날 때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리심 산에서 드리지만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인데 그 때는 어느 때냐면 십자가사건 부활사건 이후에 이때는 이 산도 아니고 저 산도 아니라는 겁니다. 장소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약에 와서 교회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단어입니다 그걸 교회라고 한국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처어치라 그러는데 에클레시아(ecclesia)로서 ‘ek(밖으로)’와 ‘caleo(부르다)’합성어입니다 에클레시아(ecclesia)는 불리 움 받아서 나온 사람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ecclesia)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령님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불리 움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사탄의 손에서 놓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딩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셈블리(assembly)라 그러는 겁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단 중에 하나님의 성회라 그러잖아요. 순복음 교단을 부를 때 어셈블리 오브 갓(ASSEMBLIES OF GOD)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성회라 그럽니다. 어셈블리라는 말은 크리스천들의 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8장20절에 그랬습니다. 최소한 두 세 사람이 모이면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혼자도 성전이지만 두 세 사람이 모이면 그게 교회라는 겁니다. 빌딩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1세기 때 2세기 때보면 카타콤교회라는 것은 이게 빌딩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크리스천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편지를 쓸 때도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게 이게 빌딩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빌딩을 지어놓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아무개 집 어떤 때는 뜰에서 크리스천들의 모임입니다.
에베소교회에 내가 말하노라 에클레시아(ecclesia)를 말했습니다.
빌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빌딩, 빌딩, 빌딩을 이야기합니다. 로마가톨릭부터 정교회부터 그분들이 빌딩을 조직체가 되면서부터 빌딩에 관심을 두고 왜냐면 이게 구약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을 지어야만 된다는 그래서 가톨릭예배당 안에 내부구조를 보면 성전처럼 해놓았습니다. 예배의 대상은 누굴까요 삼위하나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이 성부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분이 제일 높으신 분이 아니지만 항상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이렇게 존 귀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배방법입니다 예수님이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방법은 우리가 잘 아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겁니다. 이제는 건물 지어놓고 건물 안에서 동물 잡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령과 진정입니다 이게 한국말로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혼돈합니다. 진정이라는 것은 열심히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제일 먼저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인 스피릿(in Spirit)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성령이 주시는 지식으로 성령이 주시는 가르침으로 성령의 열매들로 성령의 은사들로 성령이 주시는 영 분별력으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성령이 주시는 평안으로 성령이 주시는 격려하는 마음으로 안위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성령입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예배를 잘 드려서 칭찬받기위해서 또는 내 만족을 위해서 조직의 뜻을 위해서 프로그램 중에 하나기 때문에 우리교단에서 전통으로 하니까 해야 되고 이 모든 것들은 다 쓰레기들입니다. 그런 교단에 교리에 전통 때문에 예수님의 신령과 성령 안에서의 예배가 많은 방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예배는 이렇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여자가 물어 봤습니다.
참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니까 성령님이 함께하는 예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시간에는 찬양할 때도 박수칠 사람은 박수도 치시고 손 올릴 사람은 손을 올리시고 완전히 성령님에 사로잡혀서 이것에 계신 성령님과 예수님의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찬양을 할 때 주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진정으로 그랬습니다. 진정은 똑같이 요한복음14장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라 그랬습니다. 그걸 진리라 번역을 안 하고 왜 갑자기 진정이라 했느냐 사탄이 우리를 혼돈 시키는 겁니다. 번역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의 가사들을 보면 비성서적인 가사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가사내용을 듣다 보면 어떤 것은 성서적이고 어떤 것은 아니고 비빔밥으로 되어 잇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참 찬양을 하다가 혼돈스러운 것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찬양선곡도 아주 잘해야 합니다. 오늘날 특히 마지막 때 복음성가들 특히 그렇습니다. 진정이라는 말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뜻이 다른 말로 무엇입니까?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모든 가르침이 기독론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감동된 기독론입니다 기독론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처음에 그랬습니다.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말씀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진리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성령으로 감동된 예수님에 관한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공부도 그렇고 설교도 그렇고 찬양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고 다 예수님의 집중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빠진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말씀을 전해도 그렇고 뭘 해도 그렇고 우리는 성령과 그다음에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이야기만 하는 그분만 쳐다보는 예배가 그게 참 예배라는 겁니다. 이 참 예배의 정의를 깨달은 사마리아여자가 하는 말이 당신은 그러면 메시아군요 그리스도군요 4장25절에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사람들이 똑같이 4장42절에 그러는 겁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구주군요 예수님께서 맞다 내가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 이 이야기가 끝나는 이때에 27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여쭈어 가로되 이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였나이까? 어찌하여 이 여자와 말씀하십니까? 이런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더라 이렇게 27절에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지금 이 여자를 통해가지고 주님이 지금 하시고자 하는 그 뜻을 가 이룬 다음에 아마 천사들을 보내가지고 애들아 선생님께 가봐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다음부터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들이 지금부터 숨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의 가이드라인을 이분이 배우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을 하고 메시아라는 말은 유대말로 메시아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같은 뜻입니다 기름 부으심을 받은 분이라는 뜻인데 메시아나 그리스도나 같은 뜻입니다 이렇게 하시고는 제자들이 올라 왔잖아요. 올라와가지고 예수님과 만났는데 제자들이 오니까 이 여자는 기분이 언짢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28절부터 보면 그랬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 심을 깨닫고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랬습니다,
이게 굉장히 파워풀한 메시지입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뭐냐면 가나의 혼인잔치에 여섯 개의 돌 항아리 있었습니다.
이것과 같은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를 우리가 구약의 율법으로 보는 겁니다. 똑같이 물동이도 구약의 율법으로 보는 겁니다.
이 여자가 구약의 율법을 집어 던져버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기와 같은 족속인 사마리아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심을 전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전도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는 겁니다. 기독론입니다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사마리아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다음에 31절부터 보면 정말 해석이 힘든 부분입니다 신학자들도 이 부분을 해석을 잘 못합니다.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우리가 알고 나면 굉장히 쉬운 부분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이여 그러면서 31절에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네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약식이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이분들이 아래 동네에 내려가서 예수님의 도시락을 사가지고 왔던 모양입니다 점심시간이니까 그래서 예수님보고 예수님! 이 도시락 잡수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점심시간이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다음부터 아주 묘한 말씀을 하십니다.
32절에 예수님이 이르시되 네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그다음에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나의 양식은 이 양식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여기서 뭐냐면 지금 제자들이 점심도시락 드십시오. 하는 것은 가장 배고파하는 것이잖습니까.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지금 배고파가지고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러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도시락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배고파가지고 이것 먹었으면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러면서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다음에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는 겁니다.
행하는 것만이 아니고 이루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다음을 보면 여러분들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이해 못합니다. 35절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어떤 책을 봐도 시원하게 말하는 책이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도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분들보다도 더 유명한 신학자들 같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예수님이 지금 배고파하는 게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다음에 이루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 너희들 봐라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이 말은 일곱 절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일곱 절기에 보시면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십자가사건 부활사건이 초림입니다 초림 하시고는 50일 후에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이미 보혜사성령님과 프뉴마(Pneuma)성령님을 받은 분들이 나가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전하는 일입니다
제가 가르친 일곱 절기를 자세히 보면 오순절이 끝나는 게 레위기23장21절입니다. 그리고 나팔 절이 시작하는 게 레위기23장23절입니다.
중간 22절이 남습니다. 성경에 22절에 동그라미를 쳐놓았습니다. 그게 뭐냐면 그게 이방인 추수기간입니다 레위기23장15절부터21절이 오순절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23절부터 25절까지가 나팔 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중간 22절에 동그라미를 쳐놓았습니다. 22절이 오순절과 나팔 절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기간 동안은 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이 먹는 양식을 밭에서 다 수확하지 말고 나그네와 이방인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겁니다. 복음이 제일 먼저 누구에게 갑니까? 유대인에게 갑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에게 갑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갑니다. 22절이 무엇을 뜻하느냐면 오순절사건 이후부터 교회시대가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오순절이 3월6일입니다 그리고는 나팔 절이 7월1일입니다 4개월입니다 4개월 동안은 유대사람들이 똑같습니다. 오순절 때를 맥추절이라 그럽니다. 맥추라는 게 밀입니다
밀을 추수하고 여러 가지 곡식들을 수확한 다음에 나머지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다 자르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4개월 동안은 건기인데 영적으로 말하면 교회시대입니다 교회시대에 뭘 하느냐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들어가서 이방인들이 복음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4개월을 이방인 추수기간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사건이후부터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가 이방인 추수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방인 추수가 시작되었잖아요. 그러면서 주후70년 이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방인 추수가 그의 끝나 가면 유대인들 중에 144000명이 눈을 뜨게 되고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24장14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가 이 천국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가리니 이 족속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족속은 에뜨네(Ethne) 이방인입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에뜨네(Ethne)에게 가리니 이방인 사람들이 복음화가 되는 거제서야 끝이 오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뭐냐면 이방인의 주어진 숫자가 끝나면 나팔을 부는 겁니다. 나팔을 부니까 공중 재림이 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여자에게 사마리아여자는 이 말을 못 알아듣잖아요. 제자들도 이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마지막 때 요한복음4장35절에 우리에게 너희들 봐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인 개념이니까 이걸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이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말입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나팔절)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이미 지금 농사도 시작도 안했는데 4개월이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사마리아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측면에서 보면 이방사람들입니다
이미 이 사람들이 지금 복음을 받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마리아부터 언 유대와 사마리아부터 받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이미 이방사람들이 이미 다 희어져 가지고 익어가지고 추수가 끝났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보면 추수하게 되었구나. 다시 말하면 이 말이 무엇입니까? 이미 정해진 이방인들이 이미 다 정해졌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정해진 사람들인데 너희들은 가서 따기만 하라는 겁니다.
4개월 동안 누구누구 누군가 복음을 받을 것을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이미 희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희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36절에 그러는 겁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거두는 자가 누굽니까? 사마리아여자입니다. 사마리아여자가 전도 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만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사마리아여자가 잘 났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다 하나님이 허락하여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주님의 은혜로 이 여자가 복음추수사역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는 그냥 따기만 한 겁니다. 그랬더니 삯도 받으신 겁니다.
상급도 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은혜입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대열에 들어간 것만 해도 이것은 큰 은혜인 겁니다.
어쩌다가 이 대열에 들어 온 겁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로 그러니까 이 여자도 물 길러왔다가 그것도 자기 뜻이 아니잖아요. 주님이 다 그렇게 하신 겁니다. 다시 봅시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다시 말하면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그 여자가 모으는 겁니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 여자 때문에 영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랬습니다. 뿌리는 자는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한다는 겁니다.
거두는 자가 누굽니까? 사마리아여자입니다 사마리아여자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함께 즐거워한다니까 우리의 즐거움은 무엇을 말합니까?
공중혼인잔치 그러니까 사마리아여자가 이게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잖아요.
이는 은혜입니다 그다음에 지금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도 우리가 잘나서 선교 전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미 다 정해놓은 밭은 희어져 졌습니다. 그냥 가서 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캄보디아니 미얀마니 아프리카 케냐니 에티오피아니 인도니 내가 잘나서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가서 따기만 하는 겁니다. 따기만 하면 그런데 따는 일을 하도록 선택받은 이게 큰 은혜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37절을 보세요. 그런즉 한 사람이(예수님) 심고 다른 사람이(사마리아여자)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이게 하나님의 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38절에 내가 너희(제자들)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이 제자들도 자기가 잘나서 제자들이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중에 추수할 텐데 너희들이 노력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노력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구약의 이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이런 비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분들은 구약의 무대에서 우리에게 연극을 하면서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그다음39절부터 42절까지 뭐냐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틀 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까 예수님 친히 우리에게 말했는데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그다음에 43절부터 마지막54절은 간단합니다.
이 사마리아여자를 만난 이틀이 지난 후 다시 말하면 사마리아여자 집에서 사마리아사람들과 이틀을 지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서 예수께서 다시 거기를 떠나 갈릴리지방으로 올라가신 겁니다. 갈릴리지방으로 올라가서 이분들이 가나에 들린 겁니다. 44절에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도 말했지만 나사렛에서도 이분이 별로 높임을 받지 못했거든요 똑같이 제자들에게도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대부분이 갈릴리지방출신인데 너희들 갈릴리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 고향에서 고향사람복음을 위해서라면 내가 너희들 부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향사람들이 너희들을 싫어하게끔 만들어 놓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고향에 앉아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에 앉아 있지 말고 너희들은 바깥으로 나가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46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들려가지고 가나에서 왕의 신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아파있는 겁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아픕니다.
그러니까 그냥 말로 나았다 그래서 그냥 나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여호와라파신 겁니다. 치료의 예수님이심을 또 보여주는 겁니다.
보세요. 지금 이런 모든 4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우리가 4장에서 주는 메시지 여섯 가지를 우리가 묵상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령론, 구원론, 예배론, 기독론, 전도론, 선교론까지 이 여자에게 암시적으로 다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4장을 묵상하면서 이 여섯 가지의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우리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론까지의 결론을 내려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성령 론. 구원론. 예배론. 기독론, 전도 론까지 해도 이것은 내 민족입니다
사마리아사람들까지 해도 선교론에서 여기서 스톱해버리면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가장 예수님이 배고파하는 도시락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은 이미 다 추수하도록 다 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서 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따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사마리아여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중에 한 가지 분명히 저희들이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적인 다루시는 방법과 상황을 잘 파악하시고 상황에 맞추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교육방법고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뜻은 이미 다 이루어져서 밭이 희게 되었다 하신 이 말씀 이미 우리는 그냥 거두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하신 이 말씀에 저희들이 힘을 받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거두자의 대열에 들어가는 믿음의 우리 모두가 되도록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이 메시지에서 떠나지 않도록 우리가 왜 이방선교를 해야 되는지 이것이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고 우리가 능력 있어서가 아니고 주님이 다 해놓은 것을 가서 따는 일만 하는데도 우리가 안하려고 그러면 우리는 우둔한 사람이고 복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주시고 여기에 동참케 하시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즐거워하시며 참여하는 우리가 되도록 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1RX0Gh8o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