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18강, 누가복음3장23절-38절, 예수님의 족보

변명섭 2020. 9. 16. 18:01

누가복음 강해 18강, 예수님의 족보(눅3:23-38) 2016년9월25일 말씀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말씀은 누가복음3장23절에서3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조금 길기 때문에 제가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읽겠습니다, 
23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이렇게 해서 그 위는 그 위는 쭈욱 반복해서 표시가 나옵니다, 마지막38절을 보세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마태복음에서 마태가 기록한 족보와는 여러 모로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를 한번 비교하는 그런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사간에는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말이 있습니다, 그림자세례와 진품세례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4복음서를 이렇게 보면 족보에 대해서 기록한 두 복음서에서 발견이 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족보에 대해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족보가 기록내용과 시기와 배경과 스타일과 목적이 다름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시기를 잠깐 보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언제 썼냐면 예수님이3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30세가량 되었을 때 쓰신 겁니다, 
이 족보를 쓰기 바로 직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을 우리가 지난시간에 섭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가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물세례를 예수님이 받으시면서 하늘에서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내려오기를 이분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삼위일체에서 제2위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누가가 기록한 즉시 그다음에 성령님이 누가를 보고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라 그래서 이분이 길게 기록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스토리가 있기 전에 제일 먼저 예수님의 족보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물세례 받기 훨씬 이전에 그러니까 시기가 다른 겁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의 특징을 보기 전에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한번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기에 특징들이 있는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제가 쭈욱 분석해보니까12가지의 특징이 있음을 
제 나름대로 제가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12가지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적으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특징은 족보의 위치입니다
족보의 위치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시작 첫 머리에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두 번째 특징은 유명인사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마태복음의 족보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1장1절에 유명인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유명인사 두 분의 지적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유명 인사들을 천년간격으로 계신 분들입니다 주전2000년에 아브라함 그다음 주전1000년 다윗입니다 이렇게 두 분이 계신가 하면 부속으로 중요한 인물 두 분이 또 기록이 됩니다, 그게 누구냐면 다윗의 아들들입니다
다윗이 부인이 일곱 명이었습니다 아들만20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를 범해가지고 밧세바가 여덟 번째 부인이 된 겁니다, 
이런 것이 다 우연이 아닌 겁니다, 왜냐면 이 족보를 보면 이게 우연이 아닌 겁니다, 밧세바 사건도 왜냐면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들이 다윗까지는 똑같은데 다윗부터 어떤 아들을 사용하셨냐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마태복음에서는 사용하신 겁니다, 이 솔로몬이 누구냐면 다윗의 여덟 번째 부인의 네 번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밧세바의 네 번째 아들입니다 
사무엘하5장14절과 역대상3장5절에 이 두 성경구절을 보면 밧세바의 네 아들들 이름이 나옵니다, 순서대로 첫째 아들이 시므아입니다 
두 번째 아들이 소밥입니다 세 번째 아들이 나단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제일 마지막 여덟 번째 처의 마지막 아들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다윗까지 나오고 그다음에 솔로몬이 나오다가 그다음부터는 주욱 밑으로 내려와 가지고 요셉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요셉을 통해서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기간입니다 기간을 보면2000년 동안의 기간을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 주전2000년부터 예수님까지2000년 기간의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기록한 순서가 누가복음과 다릅니다,
기록한 순서를 보면 누구부터 시작이 됩니까, 마태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가지고 주욱 요셉까지 가서 그다음에 예수님으로 귀결이 됩니다, 순서를 보면 아브라함은 누굽니까, 
유대인들이 볼 때 유대인들의 조상입니다 왜냐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쓴 복음서가 마태복음입니다 마태가 언제 썼습니까, 
주후50년에 다시 말하면 주후30년부터 시작해서 주후30년은 예루살렘교회가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유대인들이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정확하게 정돈해둔 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역사적인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책을 기다렸기 때문에 상령님께서 마태를 통해가지고 역사서를 특히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유대인 입장에서 유대인을 위해서 쓴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게 하는 겁니다, 왜냐면 아브라함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유대인들이 볼 때도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다윗이야기가 나오고 예수님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분들이 볼 때는 마음이 편한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순서를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 특징은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마태복음1장1절에 보면 계보의 제목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를 적은 책이다 이런 소리입니다
세계라고 하는 것보다는 족보를 적은 책이다 이렇게 쓰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로 반복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낳았다,
낳았다 를 원어를 보니까 에겐네센(ἐγέννησεν)이라는 동사를 썼는데 이게 뭐냐면 수동형으로 이렇게. 이렇게 태어났다 이런 말을 그냥 한국말로 낳았다, 낳았다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일곱 번째 특징은 이방 여인4명이 이 족보에 등장 합니다, 오늘본문 누가복음족보에는 이방여인들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방여인들의 이름을 4명을 열거했습니다, 
3절에 다말이라는 여자와 5절에 라합이라는 여자와 또5절에 룻 그다음6절에 밧세바 이렇게 4명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여덟 번째는 요셉의 아들이 예수님으로 나오면서 요셉의 아버지이름을 야곱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의아들 마리아의남편요셉 그래서 마태복음은 요셉중심의 예수님의 계보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마무리를 하면서 그기에 뭐라고 썼냐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를 제일 마지막에 집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여자 이름이 다섯 명이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 네 명의 이름들은 이방여자들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로 보면 마태가 대수를 정리를 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를 그래서17절에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그러니까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사건도 이게 다 계획된 사건들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관해서 이미 계획된 바벨론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뭐가 잘못되어가지고 그냥 우연히 바벨론에 사로잡혀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사로잡혀 간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열 번째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열한 번째는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 중에 솔로몬계통의 후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열두 번째는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뭐냐면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래서 다윗의 후손이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이분의 족보이야기가 마태가 끝낸 다음에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동방박사이야기로 시작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2장에 들어가서 이 말이 뭐냐면 다윗의 후손 예수님이 왕 중의 왕 이라는 것을 실제로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기위해서는 동방박사이야기를 꺼 집어내어야 하는 겁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동방박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겁니다,  
동방박사들이 킹메이커들이거든요 그래서 킹메이커 이분들이 예수님께 오셔서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렸다고 말씀을 해주는 겁니다, 
왜냐면 황금은 아기예수가 왕이시고 유황은 아기예수가 하나님이시고 몰약은 그분의 죽으실 것을 예언하는 시사적인 내용들이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 속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누가복음을 공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 대해서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비교를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에는 첫 번째 아까 제가 말했지만 언제 쓴 겁니까, 마태가 주후50년에 쓴 겁니다, 이분은 과거20년 동안 복음화가 된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가르쳐 주기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쓸 때 마태라는 사람을 사용하신 겁니다, 
이분이 유대인입니다 세리입니다 왜냐면 유대인인 써야지만 정확하게 쓸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논 높이로 저술이 가능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마태를 사용하셨는데 그런데 보면 오늘 마태복음1장에 나오는 모습을 봐도 그렇고 계보를 봐도 그렇고 마태복음1장에 나오는 스토리를 보면 마태가 요셉을 중심인물로 해가지고 글을 씁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요셉이 예수님이 탄생하는데 주 인물로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이 되었지만 요셉이 탄생에 주 인물로 표기를 합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을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유대인들은 남성위주사회이기 때문에 요셉을 부각을 시키는 겁니다, 그기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제가 드리겠습니다, 신기한 게 가브리엘이 예수님이 잉태될 소식을 마태복음에서는 누구에게 전한 줄 아십니까, 요셉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을 중심인물로 보는 겁니다, 마태복음1장19절에 그래가지고 마태복음1장24절에 보면 요셉이 이 소식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데리고 왔다 그랬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 후 헤롯왕이 아기를 죽일 것을 요셉에게 현몽을 보여주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셉에 자기부인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 간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주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렇게 표현해야지만 이게 소화가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눈높이사상을 가진 우리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헤롯왕이 죽은 후에도 애굽에서 다시 나사렛으로 가라 그럴 때도 요셉에게 현몽으로 가르쳐주는 겁니다, 마태복음2장19절에 보면 그래서 요셉에 주 인물이 되어가지고 부인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렛까지 간 것도 요셉이 데리고 갔다 그랬습니다, 마태복음2장21절에 보면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을 향한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메시지가 유대인의 눈높이에 맟도록 그분들의 마음에 맟도록 편안하게 구성한 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족보특징 중에 아까 잠깐 봤지만 이방 여인 네 명이 출현하는 것이 누가복음의 족보와 차이점입니다 
왜 이 여자들 네 명을 그기에 삽입을 시켰느냐 이것도 우리의 의문점입니다, 
첫 번째 여자가 다말입니다 다말이라는 여자는 유다의 며느리인데 가나안여자입니다 나중에 시아버지와 관계에서 쌍둥이를 낳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그 쌍둥이 중에 큰 아들이 베레스인데 베레스가 예수님의 조상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별로 바람직한 여자가 아닙니다, 
두 번째 여자는 라함이라는 여자입니다 똑같이 가나안 여자입니다 
그런데 기생출신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를 통해서 보아스라는 유명한 분이 탄생하는 겁니다, 세 번째 여자가 룻이라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과부로 모압 출신입니다 이 여자를 통해서 오벳이 태어납니다, 
네 번째는 우리아의 아내 우리아도 헷 족속이거든요 가나안족속 중에 하나입니다 밧세바도 과부출신입니다 그런데 이분을 통해가지고 솔로몬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네 여자들이 정상적인여자가 아니고 또 이방여자들인데 왜 이 여자들이 등장이 되었을까 이유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순수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여자들을 봐도 두 번째는 예수님이 순수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서인 겁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유대인을 포함한 이방인 만민을 위한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말하는 게 있습니다, 
아기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태복음1장21절에 그런데 이는 그러면서 예수의 이름을 풀어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때 자기백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어를 보면 자기백성이라 할 때 라오이(Laoi)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분명히 자기백성을 구원할 자 그러니까 예수라는 이름 그 자체에 뭐가 있느냐면 이방인백성을 구원할 자가 아니고 유대인 자기백성을 구원할 자라고 우리가 직역할 수가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유대인입니다
이방인이라면 뭐라고 써야 됩니까, 에뜨네(Ethne)라고 써야 됩니다, 
라오이(Laoi)그리고 에뜨네(Ethne)이렇게 해놓지 않고 라오이(Laoi)유대인 자기백성을 구원할 자 이렇게 말해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대인들을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4장15절과16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두움의 갈릴리지방에 있는 이방사람들도 빛을 보게 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유대인만이 아니고 이방갈릴리에 있는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큰 빛이 되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마태가 아까 처음에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원자로 보이지만 나중에 와서 이방인을 구원시키는 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만민을 구원시키는 자인데 상황에 맞추어서 유대인의 감정을 나빠지지 않게 만들려고 눈높이로 표현을 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 족보의 특징을 같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족보의 위치입니다 3장22절까지 예수님이 물세례를 마치시고 예수님이30세 가까이 되었을 때 누가가 족보를 쓴 겁니다, 
그래서3장 마지막에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주요 인물들을 보면 마태복음에는 주요인물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주요인물을 보면 제일 마지막 절에 보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는 아담입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다음에 다윗입니다 그리고 부속인물로 다윗의 아들 중에 나단이 등장하는 겁니다, 나단은 밧세바의 셋째아들입니다 
이 나단이 나중에 보면 마리아의 조상입니다 세 번째 특색이 뭐냐면 기록의 순서입니다 기록의 순서를 보면 마태복음의 족보기록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쓰 있습니다, 어떻게 쓰 있느냐면 마태복음은 아브라함부터시작해서 예수님까지 가는데 누가복음에서의 족보는 예수님부터시작을 합니다, 
예수님부터시작해서 주욱 가다가 하나님까지 가는 겁니다, 
아담 그다음에 하나님까지 가는 겁니다, 네 번째로 누가복음족보의 기간을 보면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2000년입니다 누가복음의 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부터시작해서 아담 그리고 예수님까지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영원부터시작해서 주욱 예수님까지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간이 엄청납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은 왜 이렇게 마태복음과 다를까요, 누가복음은 독자가 누구겠습니까, 마태복음은 주후50년에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했습니다, 주후50년 이후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기독교인들이 마태복음을 읽다보면 잘 소화를 못하는 부분이 있고 마태복음 유대인중심으로 글을 쓴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이방인인 누가를 통해서10년 후 주후60년에 이방인을 위해서 이방인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써라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를 그려라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부활사건 승천까지 33년을 누가가 이방인시각에서 쓴 겁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의 시각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족보도 이방인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아예 창세전부터 하나님부터시작해서 아담부터시작해서 주욱 해서 예수님까지입니다, 
모든 인류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 시각의 차이고 접근방법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로 제목을 보면 마태복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제목이 있었는데 누가복음에는 이 제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 30세쯤 되었더라 이 말씀이 시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이 제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이 뭐냐면 30이라는 숫자입니다 예수님의30이라는 숫자는 구약에서민수기4장4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30세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시는 나이가30세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강조점이 몇 개가 있습니다, 
첫 번째30세쯤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암시해주고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마태복음에서 충족치 못한 이방기독교인들에게 보안시켜주는 작업을 누가가 해주는 겁니다, 마태복음의 보충교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 번째는 독자대상이 유대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했는데 누가복음은 확장된 독자층입니다 네 번째 특징은 공생애시작직전에 누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정체성을 알려 주기위해서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100%하나님이시고 100%사람이신 예수님의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기위해서 족보를 쓴 겁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100%하나님이시지만 왜냐면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잖아요, 38절 마지막에 아담으로 나타납니다, 
똑같이 예수님이100%신성을 가졌지만 또 인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부각시켜주기 위해서 족보에 아담에 후손으로 또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깊은 영적인 신비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섯 번째 특징이 뭐냐면 반복되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이상은 이러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한국말로는 이상은 이라고 해놓았는데 원어를 보면 휴이오스(HUTOS)라 그랬습니다, 
휴이오스(HUTOS)가 무엇입니까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누구누구의 아들은 이런 표현인데 한국말로 이상은 그 이상은 그랬습니다, 나중에 왜 그런지 알게 됩니다, 일곱 번째로 보면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이방여자들 네 명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여덟 번째는 이 족보는 나단의 후손인 마리아중심 계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이름은 안 나오고 요셉이름이 나옵니다, 요셉의 부친이름을 헬리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헬리라는 사람이 마리아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그기에 왜 요셉이름이 나옵니까, 마리아 대신에 왜 요셉의 아버지가 헬리라 그랬습니까, 그러면 여러 가지 잡다한 학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학설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요셉이 마리아집에 대리사위로 들어가지 않았나,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위주사회면서 대리사위이기 때문에 헬리를 요셉의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홉 번째로 마태복음에도 그렇고 또 누가복음에도 그렇고 그기에 공통점이 뭐냐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왜 다윗의 후손으로 내려와야만 되는가,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다윗의 후손으로 내려와야만 되는가, 여기에는 성서에서 보면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예언이냐면 이것은 굉장히 유명한 예언입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자기 열두 아들들을 예언하면서 축복을 하였습니다, 창세기49장에 예언을 하실 때 세 번째 아들인 유다에게 예언을 하시면서 유다에게 복을 내렸습니다, 창세기49장8절부터10절에 보면 유다 너는 새끼사자 같고 너 후손 중에 왕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을 지팡이이라고 그랬습니다, 왕이 지팡이를 들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 예언대로 유다의 후손 중에서 다윗이 나오는 겁니다, 우연히 다윗이 왕이 된 게 아닙니다,
야곱의 예언 때문에 왕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한계시록5장5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유대지파의 사자고 다윗의 뿌리시구나 라고 나옵니다, 이 말은 뭐냐면 다윗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이분이 왕 중의 왕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도 요셉도 다윗의 후손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계보에 다윗의 후손으로 요셉도 마리아도 쫘악 나타나는 겁니다, 열 번째 특징 중에 하나가 왜 이 두 계보가 서로반대가 되었느냐 입니다, 순서가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왕 되심과 신성을 강조하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신성과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아담까지 쫘악 내려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두 족보들 속에서 예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잘 설명하여주는데 특히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우리가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첫3장 족보를 말씀하시기 전에 첫3장 속에서도 우선 예수님의신성과 인성을 우리에게 먼저 예비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100%인성이 되심을 누가복음에서 기록한 것을 제가 불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처녀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오신다, 누가복음에1장27절에 인성을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로 누가복음3장6절에 임신기간이9개월이 된 겁니다, 
그것도 우리인간과 똑같은 기간입니다 실제로 누가복음2장7절에 말구유에서 탄생하시고 또 누가복음2장21절에 이분이 태어 난지8일만에 할례 받으시고 사람이 하는 걸 그대로 하시는 겁니다, 또 누가복음2장42절에 열두 살 되었을 때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장면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누가가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2장40절과2장52절에 이 내용을 보면 다 예수님이100%인간되심을 누가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누가복음을 쭈욱 공부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보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인성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해야 됩니다, 신학에 굉장히 중요한 개념들이 여기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누가는 예수님의 인성부분을 이렇게 쭈욱 설명을 했지만 또 신성부분도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족보를 쓰시기 전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겁니다, 누가복음1장31절에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1장32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다 신성을 의미하는 겁니다, 
또는 누가복음1장35절에 성령으로 잉태되신다, 또 누가복음1장32절에 다윗의 위를 받으시는 분이다 그다음에 누가복음1장33절에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분이다 그리고 이 아기의 나라가 무궁하다 누가복음1장47절2장11절2장30절에 이분은 구원주가 되신다, 2장11절2장16절에 이분은 그리스도시다 또 누가복음3장22절에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렇게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간접 직접적으로 표현하시면서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그 당시 예수님의정체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또 이방인크리스천들에게도 예수님의정체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양면적 존재임을 이분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특히 누가는 예수님의 신성부분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인성부분에 집중을 했습니다, 신성부분을 다루었지만 이분은 인성부분에 더 강조를 두고 자기의 방향을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 속에 보면 누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인성을 우리가 소화하는데 아주 중요한 첫 단추입니다 제가 첫 단추라는 말로 표현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는데 누가가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다보니까 많은 유대인들이나 또는 이방인기독교인들이 주후60년대에 들어와서 마태복음을 읽다보니까 예수님의 신성부분들이 조금 약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후67년에서69년 그사이에 요한을 통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자들마다 제각각 특색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인성부분을 강조시킨다음에 신성 쪽을 요한복음을 통해서 강조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주후70년까지만 해도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요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이 사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100%의 신성과100%의 인성을 나름대로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그 후에 사도바울의 서신들 속에서도 예수님의100%인성과100%신성을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역사를 보면 1세기 때 또2세기3세기4세기5세기 가명서 특히1세기 때 크리스천들 중에서 아주소수만 100%신성과100%인성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소수만 예수님의 은혜로 이게 소화력도 은혜가 따라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열두제자들이 소화하기 시작했고 바울과 바울의 제자들도 이 부분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100%하나님이다 하는 부분에 대한 의문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것을 소화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의 기도교인들이었습니다, 1세기 때 이미 그 유명한 에비오니즘(Ebionism)이라는 예수님의 인성은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 못하는 이단 가르침이 범람했습니다, 1세기 때 이미 그런 사상이 주욱 오다가 4세기 들어 와가지고 아리우스(256년-336년)라는 사람으로 아리아니즘(Arianism)이 범람 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전 기독교계를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교계에 골칫거리가400년 동안 있어왔던 겁니다, 1세기에서5세기까지 이런 가운데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의문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1세기부터 그렇기 때문에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은혜가 따르지 못하면 이것이 소화가 안 되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따라와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1세기 때 유명한 예수님의 인성에 의문을 가졌던 학설이 도케티즘(Docetism)이라고 그럽니다, 
도케오(doceo)라는 헬라 말이 뭐뭐 같이 보인다, 라는 뜻입니다 
이게 뭐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됩니까, 그러니까 사람처럼 보일 따름이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학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그렇게 누가를 통해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족보를 통해서 가르쳐주었는데도 이것을 소화를 못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따라와야 됩니다, 
아무리 설교 듣고 아무리 신학공부하고 아무리해도 잡 소리하는 사람은 항상 잡 소리합니다, 왜냐면 이게 소하가 안 되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화하는 사람들 상대로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소화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가서 소화하도록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성서에 보거나 또는 교계역사를 보면 끝까지 죽을 때까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됩니까, 이것은 은혜입니다
1세기 후반에 아주 유명한 학설이 뭐냐면 영지주의(Gnosticism)라고 그럽니다, 영지주의는 뭐냐면 1세기2세기 때 있었던 아주 굉장히 유명한 기독교계를 강타했던 철학사상입니다 이게 뭐냐면 영적인 것만 진리고 육적인 것들은 물질적인 것들은 다 가짜다 그것은 더러운 거다, 이런 개념입니다 
그런 개념 속에서 예수님을 조명하는 겁니다, 어떻게100%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더러운 물질세계에 들어오셔서 썩어가는 인간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영은 우리가 소화하지만 예수님의 인성은 소화 못하겠다, 하는 사상이 영지주의(Gnosticism)입니다
그다음에4세기에 들와가지고 아포리나리안니즘(Apollinarianism)이라고 이게 뭐냐면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라는 사람으로390년에 죽은 사람인데 예수님의 육체는 완전한 인간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이다 신성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절충안입니다 이사상도 나중에 이단으로 정제 받았습니다, 또 네 번째로5세기에 와서 유명한 네스토리안니즘이라고 중국에까지 와 가지고 중국경교(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마리아가 예수님 잉태할 때는 사람을 잉태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하여 애기를 키우다가 나중에 세례를 받았는데 아기가 세례를 받는 순간에 하나님이 되셨다는 겁니다, 
이렇게 절충안들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철저하게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무장되지 않으면 과거2000년 기독교역사속에서 이 사상들이 항상 범람해왔고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실족되면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면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아야 되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400-500년 동안 초창기 이런 엉터리들이 많았는데 진짜 크리스천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400-500년 동안 이런 나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그대로 방치해두셨나 이겁니다,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또 전지하신 하나님이 과거도아시고 현재도아시고 미래도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일어날 것을 미리 아셨나, 
이것도 우리가 한번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렇게 이단 문제가 시끄럽기 때문에 당시3-4세기 때부터 크리스천지도자들이 모여서 공의회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중에 제일 마지막공의회가 451년에 칼케톤 공의회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공의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꼭 알아 놓아야 합니다, 칼케톤은 오늘날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그 지역에 있는 조그만 도시입니다 칼케톤 공의회에서 예수님의100%인성과100%신성을 결정한 겁니다, 그때부터 모든 기독교의 공식적인 교리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또 질문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승천해 올라가시고 예루살렘교회가 생긴 게 주후30년인데 주후30년부터 지금 주후451년까지 약420년 동안 왜 이런 잡다한 이단적인 이런 교리들이 범람하도록 그대로 놓아두셨나,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칼케톤 회의의 결정을 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정확하게 제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셔서 이것을 정해놓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왜 이걸 정해놓지 않으시고420년을 이렇게 두었다가 그냥 이것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게 되고 이것 때문에 기독교계가 분열되고 다툼이 있었고 혼돈되고 불신이 있었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400년 동안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저는 산고가 있었다라고 보는 겁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 기쁜 소식이 있기 전에 일어나는 아픔입니다, 
그것이400년입니다, 4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중요하게 준비시키고 훈련시키는 숫자가4입니다 이걸 주셨던 겁니다, 왜 이런 산고를 허락하셨나, 입니다, 
이 산고를 허락하신 이유가 40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화하지 못하고 분별력도 없고 지식 명철 지혜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그 안에 소수의 남은 자들 소수의 하나님이 신실하게 쓰는 사람들을 통해서 산고를 겪으면서 영의 눈이 뜨여서 이 말씀100%신성과100%인성의 이 신학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갈급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 겁니다, 다는 아니지만 소수가 항상 그렇기 때문에 탄산가스가 있어야지만 산소의 필요성을 깨닫듯이 항상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비 진리를 먼저 범람시켜가지고 그놈들이 까불게 해놓는 것이 하나님의 산고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감람산 설교에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재림하기 전에 너희들이 산고를 겪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이 지진으로 아픔을 당하고 복음이 종교다원주의로 아픔을 당하고 물이 더러워지고 공기도 더러워지고 이것을 예수님이 산고라 그랬습니다, 또 기독교인등이 핍박받고 나를 따르는 자들이 내 이름 때문에 미움 받고 죽임까지 당하는 이 사건들이 일어날 거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산고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하시고 산고를 허락하시고 준비하신 겁니다, 기독교역사를 보면 항상 산고가 있은 후에 그다음에 진리가 나타납니다, 로마가톨릭이 완전히 부패해져서 그때 산고를 경험한 사람들이 루터나 쯔빙글리나 칼빈 같은 사람들이 나타난 겁니다, 항상 이 과정이 있습니다, 똑같이 산고를 경험하도록400년 동안 허락하신 겁니다, 
이 칼케톤 공의회가 열려가지고 예수님의100%신성과100%인성사상부분을 결정을 했는데 결정해놓고 또 기독교교단사이에서 또 싸움질을 하는 겁니다, 
우리예수님이 싸움하는 것을 보시면서 씨익 웃을 겁니다, 
예수님이 애들아 왜 싸움을 하느냐고 따지지 않았을 겁니다, 
씨익 웃을 겁니다, 왜냐면이것도 다음단계의 산고가 필요하겠다는 겁니다, 
진리가 더 발전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준의 산고가 따라오는 겁니다, 
우리인생도 똑같습니다, 어려움이 항상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핍박이 없으면 어떤 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적인 어려움 관계 속에서 어려움 영적인 어려움 가족 간의 어려움 이것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산고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똑같이 칼케톤 회의에서 이렇게 정했는데 그 안에서 또 싸움이 벌어지는 게 뭐냐면 애굽 정교회와 시리아정교회와 에티오피아정교회와 알매니아정교회를 전문가들이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라고 동양정교회라고 그럽니다, 이 사람들이 단성론이라는 학설을 만들어 낸 겁니다,
칼케톤 회의에서 그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단성론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이분들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이100%신성이시고100%인성을 가지신 분이지만 하고 토씨를 단 겁니다, 신성을 위주로 한 본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성은 있지만 숨어버리고 신성이 부각된 본성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인성부분이 약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강조하는 것을 이분들의 신학을 단성론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성이 강하고 인성이 약해진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보면 애굽 곱틱 교회나 시리아정교회나 에티오피아정교회나 알매니아 정교회나 그분들의 신학을 들여다보면 인성부분이 굉장히 약합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이렇게 칼케톤 회의에서 들고 나오니까 아니다 하고 나오는 그룹들이 로마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 이렇게 두 그룹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양성론을 주장했던 겁니다, 
다시 말하면100%신성이시고100%인성이시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양성론과 단성론이 서로가 싸움이 붙어가지고 이때부터 이 두 그룹이 완전히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고집을 부리다보면 항상 이런 짓들을 합니다,
451년에 칼케톤 회의에서 원수가 되어가지고 지금까지1500년 동안 서로 대화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칼케톤 공의회에서 인성100%신성100%에 대한 로마가톨릭이 나중에 자기네 그룹 안에서 또 딴 짓을 하는 겁니다, 
자기네 교황의 파워를 조금 더 강화하기 위해서 이분들이 거기다가 양성론을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산고를 경험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이것이 소위 마리아사상입니다, 마리아사상이 예수님의100%신성에 약간 병질을 도모한 겁니다,  칼케톤 회의 때 이분들이 마리아종신처녀설과 마리아성모설을 가지고 나와서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마라아가 기도의 중보자로써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마리아에게 기도해야 된다, 그런데 디모데전서2장5절에는 중보자는 예수님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100%인성을 인정하면서 거기에다가 조미료를 약간 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발전되어가지고 이 사람들이 신성을 인정합니다, 인성도 인정하지만 변질된 인성을 만들어 낸 겁니다, 마리아학설을 가지고 종교개혁 이후에 마리아학설을 더 발전시키는 겁니다, 1854년에 비오9세가 마리아 무죄잉태 설 또 마리아 계속무죄 설 이 두 가지로 만들어 내어가지고 1950년에는 비오12세가 마리아승천설입니다, 그리고는 1962년에서65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마리아 성부하나님아내 설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의 아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 낸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마리아를 통해서100%인성의 예수님의 모습이 많이 변질되고 왜곡되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로마가톨릭이 때가 되니까 예수님이 감람산 설교에서 예언하신 것처럼 때가 되면 모든 종교가 서로가 통일되면서 하나의 종교가 되면서 종교다원주의로 갈 것을 예수님이 예언 하셨는데 갑자기 지금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교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느냐면 인상 신성 이런 것 가지고 서로 싸움하지 말자 그것은 그대로 두고 이제부터는 모든 종교는 알고 보면 하나다 모든 종교는 하나고 하나님도 한분이시다 하나님의 만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만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면 만인구원론입니다 종교가 어떻던 관계없이 인간은 다 구원받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이걸 전제로 해놓고 로마가톨릭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는 일을 과거30년 동안에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면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100%하나님이시고100%사람이신 예수님이 기독교에서 보는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소리입니다 기름 부음자로 기독교인의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불교인들은 부처가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인들은 부처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가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호메트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힌두교는 비슈나라는 힌두교의 여러 신들을 통해서 그 신들이 힌두교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예수님이100%인성을 얼마나 격하시키는지 모릅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의 약70-80%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무서운 사상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100%신성을100%인성을 아주 격하시킨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부처가 그리스도로써 같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써 공통적인 존재들이지만 같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는 기독교에만 있는 그리스도고 다른 종교에도 마호메트그리스도 부처그리스도 비슈나그리스도 조그만 종교들에도 똑같이 그 속에는 창시자가 있는데 그 창시자가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분을 통해서 구원받는 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때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허락하신 계획하신 산고입니다 마태복음24장에 주욱 나옵니다, 이 산고가 있을 때 마다 과거2000년 기독교역사에서 보면 이 산고를 통해서 진리를 갈급 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붙잡는 일을 산고를 통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소수였습니다, 기독교역사에서 보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도 지금 이렇게 종교다원주의가 일어날 때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라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괴로워해야 합니까, 진리 이게 아닌데 그럴 때 무엇을 해야 되느냐면 예수님의100%신성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되고 예수님의100%인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필요성을 느껴야 됩니다,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진리를 갈급 하는 필요성을 느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산고를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소수고 그루터기크리스천들이였고 남은 자 크리스천들이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협소한 문으로 들어가는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생명의 길이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7장13절에서1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에 관한 길은 좁은 문이고 협착한 길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 제가 누가가 우리에게 보여주실 예수님의 족보 속에서 또 마태가 보여 주신 족보 속에서 예수님의100%신성되심과 예수님의100%인성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는데 그럴 때마다 소수는 여기에 눈을 뜨고 갈증을 느끼고 진리를 매달리고 그 진리 때문에 이 소수들이 나중에 핍박받고 죽임까지 당하고 그 사회에서 미움까지 당하는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소수가 되려면 은혜가 따라와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족보공부를 왜 해야 됩니까, 
소수가 되기 위해서도 또 이 시대를 알기위해서는 산고가 있을 터인데 그 산고가 있을 때 공격을 무엇으로 하느냐면 예수님의100%신성과100%인성에 대해서 공격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으로 조직적으로 순서적으로 이해를 했을 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겁니다, 
막연히100%하나님이시다 막연히100%인간이시다 이렇게 해서는 힘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100%사람이 되셨는데 사람이 되실 때100%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빌립보서2장7절에 바울이 예수님이 신성을 비우셨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신성을 비워버렸다는 겁니다, 100%신성을 비워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100%인간이 되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100%나와 여러분들처럼 되신 겁니다, 
33년 동안100%인성을 가지고 계실 때는 이분이 우리와 똑같이 배고파도 하시고 목말라도 하시고 피곤해하시기도 하시고 주무셨고 육체의 고통도 느끼시고 마음에 상처도 입어셨고 제자들을 통해서 또는 로마 군인들을 통해서 그리고는 이분이 시간과 공관에 제한도 받으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지는 것을 생각하시면 괴로워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100%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스스로 한계인간이 되신 겁니다, 한계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이분은 우리가 누가복음을 계속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계속 발전시킬 겁니다,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들처럼 한계성을 가지신 분이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시면서33년 동안 이것을 극복하시려고 예수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자기가 동격이고 동질이고 동일 되시는 그 아들 예수가 사람이 되신 것에 도움을 주셔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가지고 또는 천사를 보내서 이렇게 도와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3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100%인간으로써 앞으로3년 공생애하실 것을 이분이 고민하시면서 금식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아주 절박한 그분의 마음입니다 금식기도에 들어가셔서 능력을 받으시고 거기에 또 사탄이 와서 집적거리기도 하고 열두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도 이분이 아버지께 밤새워 기도하시고는 지혜를 받아서 열두제자들을 선택했습니다, 십자가사건 전에도 이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실 때에 천사가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가 항상 묵상하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100%하나님이신 이분이 창조주 되십니다,
이분이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이100%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신상을 포기해버리시고 양보하시고 희생하시고 왜냐면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지만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렇게 사람이 되셨는데 우리와 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물들을 배려하시는 마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크셨던 그분을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이십니다,
배려심이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창조주 되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지고 계시는 이 예수님이 힘없는 피조물처럼 인간이 되셔서 매도 맞으시고 슬퍼도 하시고 배고파하시고 상처도 받으시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그 위대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되셨습니까, 나를 위해서 나에게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 주기위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예배드립니다, 
경배 드립니다, 영광 올려드립니다, 이 표현이 마음 속 깊은데서 쫘악 나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시스템을 알아야지만 이게 마음속 깊은데서 나옵니다, 막연히 그냥 예수님 감사합니다, 날 위하여 죽으셔서 이 수준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3년 공생애 동안에 완전한 사람이었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분은 끊임없이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시고 천사들을 선물로 받으셔서 이분은 병자도 고치시고 귀신도 쫒아내시고 5병2어 7병2어시건도 일으키시고 물위로 걷기도 하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십자가전 후사건 때 고통을 이길 수 있었고 이분이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있어서 가르칠 수도 있었고 비유의 말씀도 주시고 여러 가지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분이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이분은 저나 여러분들이나 같은 인간이었는데 이분이 성부하나님께 도움을 받아가지고 이 능력을 받았기에 이것이 가능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을33년 동안 하시고는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19장30절에 그러시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쳐 주기위해서 이렇게 내가 다 이루었다 이렇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한 마디가 창세전부터 계획하셨던 이런100%인간까지 되셔서 이런 일들을 하신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감격이 그기에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33년 동안 특히3년 공생애 때100%인간이 되셔서 인간들의 모든 부분들을 직접 체휼하셨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니까 이 말씀을 잘 듣고 오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이분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시지만 피조물들이 겪었던 이 모든 딜레마들을 직접 체휼은 하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100%사람이 되시고 나니까 이분이 신성을 포기하여버리니까 입누이 우리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딜레마들을 직접 이분이 체휼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인간들을 보시면서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더럽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나오는 그것이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고 그 속에는 악한 생각이 있고 음란한 마음이 있고 도둑질하고 속이고 간음하고 욕심이 많고 악독하고 이런 모든 것이 사람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쓴 뿌리가 사람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이분이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다 보신 겁니다, 그러니까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피조물들 전부가 더럽다는 겁니다, 이분이 직접 체휼하신 겁니다, 
인간과 인간으로써 같이 살아보면서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의지했다가는 큰 코 다치시는 겁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알고 보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겁니다, 
바울도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교인들을 섬기면서 편지를 쓰면서 그러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아 너 네들 예수님 때문에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아직도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강간 서로 때리고 서로 미워하고 이런 말씀을 갈라디아서5장19절에서21절 고린도전서6장8절에서11절 로마서12장1절에서21절에 보면 다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크리스천들인데도 쓴 뿌리가 있어서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이 있고 악독이 가득하고 속이고 남을 깎아내리고 질투심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다 있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변화는 게 사람입니다 바람에 흔들이는 갈대입니다 피조물들은 예수님이 이것을 다 체휼하신 겁니다, 사람들과 살면서 사람은 가까웠다가도 언젠가는 관계가 나빠지면 멀어지고 친했다가도 언젠가는 원수가 되고 같은 교회에 다녔다가도 나중에 원수가 되어서 길에서 만나면 피하고 이게 사람입니다 
지금은 우리끼리 권사님 집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목사님 이러지만 조그만 자기 비위를 건드려 놓으면 딴 사람이 되어가지고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걸 다 보신 겁니다, 
100%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이 이렇다는 갈 직접 체험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인성을 쫘악 보면서 우리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사람을 믿으면 안 됩니다, 나부터 시작해서 다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건들면 저도 딴 사람이 됩니다, 누구하고 친했는데 내가 저 사람에게 잘해주었는데 하면서 지금 왜 저렇지 이게 당연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겁니다, 
저 사람도 변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변할 수 없는 사람인데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변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열두제자들도 형편없었는데 가면서. 가면서 인격이 변하는 겁니다, 그래야 변화를 주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10년 전이나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안아주어야 됩니다, 왜. 왜 그러지 마세요,
사람은 의지하는 대상이 되면 안 됩니다 왜냐면 그 사람을 기대고 있다가 그 사람이 넘어지면 같이 넘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용서해주고 용납해주고 자비를 베풀어주고 은혜를 베풀어주고 사랑해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 수준까지 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100%인간이 되셔서 그 모습을3년 공생애 동안에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의지할 준재가 아니고 사람은 있는 그대로 내가 안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내가 비평하는 것은 그것은 어딘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 겁니다, 그대로 놓아두어야 됩니다, 우리가 그냥 안아주는 겁니다, 비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소수의 남은 자를 예수님의 제자 화를 시키기 위한 그러한 후보생들은 예수님의 예정 안에서 그렇게 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변화시켰습니다, 
열두제자들도 그렇고 바울도 변화되었듯이 과거2000년 기독교약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은 때를 맞추어서 하나님이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시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주님의 종일지언즉 변화를 받아야 되고 부목사님들도 선교사님들도 전도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안수집사님들도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날로. 날로 우리가 변화를 경험하는 변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공동체 안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아무나 비평하면 안 됩니다 대신 있는 그대로 안아주면서 격려해주어야 됩니다, 격려사역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런 스타일로 제자들을 다루었습니다, 칭찬해주고 긍정적으로 항상 말해주고 격려와 칭찬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먹고서 자라납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자기 속에 있는 쓴 뿌리를 조금씩 없애줄 수 있는 그러한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격려와 칭찬을 먹으면서 자라난 어린아이들과 비판을 받으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지금도 나와 여러분들은 지은 죄가 많지만 항상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면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잖아요, 그와 같이 똑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지고 우리는 앞으로 인성 그분의 인성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는지 항상 묵상하면서 이번에 이렇게 누가를 통해서 주신 예수님의 인성부분을 누가복음을 통해서 더 깊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인성생활을 끝내시고 볼 일을 다 보시고는 부활하시고는 완전히 신성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신성에 계시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겁니다, 이분은 창조주 이분은 전지전능자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에게 예수님찬양 드립니다, 찬양받으십시오, 그러면 이분이 기분이 좋아가지고 우리를 계속 격려해주시고 칭찬해 주십니다,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앞으로 절대로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기뻐할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창조주 되시고 전능자 되시고 전지 자 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 주기위해서 창세전에 이미100%사람이 될 것을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이렇게 오셔서 우리에게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주는 과정 속에서100%인간으로써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체휼하기고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체휼하신 것을 우리에게 사람으로 감싸주시고 또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시기를 너희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나를 따르라 모든 사람이 할 수는 없지만 소수의 복된 자들은 이렇게 할 수 있음을 저희들이 말씀 속에서 역사 속에서 배워왔습니다
예수님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을 닮은 이런 소수의 남은 자들이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한국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의 각 나라에도 중남미에도 중국에도 유럽에도 북미에도 남미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하셔서 주님이 홀로 기쁨 받으시고 이 세대에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요긴하게 사용 받는 복된 자들로 만드시고 저들이 낙원에 올라가서 높이 주님께서 들어 쓰시는 복된 자들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한 코너에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3NLXxqh9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