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마태복음6장1절-4절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마태복음5장6장7장 6강,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마6:1-4)
오늘 계속해서 마태복음5장6장7장의 산상수훈의 말씀 중에6장1장에서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머릿속에 깊이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은 세 가지 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육의 눈과 또 혼의 눈과 마음의 눈입니다 그다음에 영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도 볼 수 있고 또 한 단계 올라가서 영의 눈으로 사물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 눈을 잘 조화를 이루면서 볼 줄 아는 그러한 사람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영의 눈이 더욱 밝아지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은 항상 중요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주님이 우리에게 정말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신앙생활하면서 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우둔한 자가 되어버리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럽니다,
신앙생활을30년40년50년을 하고도 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나중에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상급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급 없는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어리석을까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사람들이 사회사업이나 기타 등등 구제 일을 할 때 많은 부분에서 칭찬들을 받습니다,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육의 눈이나 혼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칭찬을 받을 수 있고 또 칭찬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영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하지 말라 그럽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 사람들과 다른가, 그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지난시간에 그랬습니다, 5장 마지막48절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면 산상수훈에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온전 하라 이렇게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지난시간에 제가 수학공식 말씀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처음에 율법더하기 은혜 또는 용서 또는 복음입니다
거기다가 또 하나를 보태는 것이 팔복의 삶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팔복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팔복의 레벨까지 가주어야 되는데 그런데 이 팔복의 레벨을 이렇게 보시면 제가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순서대로 하셔야 됩니다, 이 순서를 꼭 지켜야 됩니다,
제일먼저 마음이 가난해야 되는 겁니다, 우선 우리는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고 애통해야 되고 온유해야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리고 성령 충만에 목마르고 이렇게 한 다음에 내 마음이 긍휼한 마음이 오는데 이게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온전한 사람의 행세를 하려고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구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온전한 사람의 이 과정을 겪지 않으면서 긍휼을 베푸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 나오는 단계들입니다
가난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과 온유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서 그냥 긍휼을 베풀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게 소위 구제를 한다는 겁니다, 남에게 구제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구제를 하려고 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면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6장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서 순서를 밟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수하는 중요한 세 분야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구제 그다음에 기도 그다음에 금식 이 세 분야가 사람들이 가장 실수할 수 있는 다른 분야도 많지만 이 분야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가 되지 않으면서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이러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할 때는 문제만 야기하지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팔복의 여듭단계를 이렇게 보시면 제일 마지막단계가 뭐였습니까, 의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는다는 자체가 영적인 의미에서는 핍박을 받는다는 말로 귀결이 되어 버립니다, 왜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이 결론적으로는 핍박까지 가야되느냐 이겁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복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이 가난해지면서 나중에 가서는 완전히 더 가난해지게 만드는 겁니다, 핍박받는 것이 뭐냐면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 단계의 가난이 여듭 번째 가서는 더 가난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하고 주여 제가 똑똑한 줄 알았더니 똑똑하지 않군요,
나에게 붙어있는 레테르(letter)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 군요,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성을 완전히 인정하는 단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복 있는 자라는 겁니다, 그런 나약성을 제한성을 가지지 않고 남에게 구제하려고 할 때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나팔을 분다는 겁니다,
온전 하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죽었느냐에 따라서 어느 정도로 온전 하느냐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은 내가 얼마나 많이 죽었느냐 입니다, 그리고는 죽으면 내가 누구에 의하여 살아납니까,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많이 죽으면 죽은 것만큼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가 형성되어 있는 겁니다,
죽는 것만큼 그러니까 상급을 많이 받는 것은 뭡니까,
얼마나 많이 죽었느냐 입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들어와 있느냐 입니다, 그 사람이 영적으로 큰 자라는 겁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적은 자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낮아져라 그러면 영적으로는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매일매일 쇠태 되고 그리스도가 점점 증가된다, 그러니까 내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더 증가되고 나의 성품은 점점 점 줄어들고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나는 점점 되기를 소원하노라 그게 복 있는 자라는 겁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2장20절에 갈라디아서를 바울이 쓰셨을 때는 언제냐면 주후49년입니다,
이때가 언제냐면 바울이 주후5년에 태어났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30살 되는 주후35년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이분은 외로운 죽는 연습을 시작하는 겁니다,
아라비아에 가서3년 간 죽었고 그리고 다소 자기 고향에 가서7년 동안 죽었고 주후45년입니다 10년 동안 죽는 연습을 한 다음에 바나바가 바울에게 찾아가서 안디옥교회에 교육전도사로 임명을 하기위해서 바울을 모셔왔습니다,
그래서 주후46년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난11년 후46년에 이분이 1차 선교여행을 46년47년48년까지 1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분이 엄청나게 죽는 연습을 또 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어느 정도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갈라디아에 있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 겁니다,
갈라디아서2장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다시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모든 프라이드와 내 고집과 내 모든 지식과 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까 능력이 여기서 나온다는 겁니다,
팔복의 성품이 이제 서야 그 속에서 조금씩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고 긍휼한 마음이 들고 그러니까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게 이겁니다,
첫째 구제 할 때 내가 죽지 않는 단계에서 구제를 합니다,
그럴 때는 자기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왜냐면 구제해놓고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는 이미 하나님은 인정을 안 하십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느냐 그러면 내 인정은 끝났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분이 인격체이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을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6장1절에 그랬습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랬습니다, 주의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이 말보다 구원이 무효가 되는 게 아닙니다, 상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조심하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 상급을 못 받는다, 조심하라 상급이 없단다, 조심하라
이런 말이나 똑같은 말입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상급이 없단다,
상급이 없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왜 상급이 없습니까,
제가 다시 여쭈어 봅니다, 팔복의 단계를 가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팔복의 사람이 되려고 내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죽지 않았는데 이런 일들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하는 이런 일들이 범람하는 게 문제입니다 내가 죽지 않았는데
소위 그것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종교적 위선주의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내가 죽지 않았을 때 범하기 쉬운 문제점들입니다
외형적 경건주의 또는 과시적 경건주의 뭘 자꾸 선전하고 우리교회가 이런 걸 한다, 내가 이런 걸 한다, 우리교단이 이런 걸 한다,
자꾸 과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2절에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이 원어로 휘포크리시(hypocrisy)라는 말인데 한국말로는 위선자라는 소리입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데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종교적 자기중심주의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죽지 않을 땐 첫째 종교적 위선주의사상을 가지게 되고 두 번째는 종교적 자기중심주의 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종교라는 테두리를 가지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큰 행사를 합니다, 그 속에 깔려있는 것은 내 명예 때문에 하는 겁니다,
내 인기를 위해서 내 권력 확장을 위해서 내 욕심 때문에 내 만족을 위해서 이렇게 할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행사를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박수를 받았지만 황 목사야 너는 괜히 헛수고했다, 그렇게 돈 들여 가지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잘 짜서 했는데 그 예배는 내가 받지 않았다 주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왜냐면 네가 유명 해졌네 내 이름으로 그러시니까 제가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다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가하는 이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여기 황 목사가 칭찬받고 영광 받고 인정받고 존경받을 까 심히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매일 주님 앞에서 주여 내 마음이 가난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못한 것을 가지고 내가 애통하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내 마음이 가난하게 해주세요,
필요하다면 저에게 핍박도 주세요, 제가 주님과 매일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물질의 봉사 시간의 봉사 노력과 땀을 흘리고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이 보실 때는 너는 너가 좋아서 한 거다 상급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실까봐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것이 제 문제만입니까 우리 모두에게 다 문제인 겁니다,
이렇게 내 영광을 위해서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대게 어떤 사람들 보면 다툼이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체킹을 하느냐
과연 주님의 영광으로 하느냐 내 영광으로 하느냐 보면 나 이렇게 했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도 않아요, 그런 말도 안하면서 나중에 어떻게 하느냐면 다투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씹습니다, 그리고 경쟁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동기가 나중에는 그 공동체를 아프게 하는 겁니다,
그걸로 체킹할 수 있습니다, 그게 체크하는 겁니다,
저 사람이 과연 죽었느냐 죽어서 하느냐 안 그러면 살아서 하느냐 입니다,
살아서 하는 사람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에 다투는 겁니다, 그래서 남을 씹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공동체가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어지럽습니다, 세상공동체보다 더 어지럽습니다,
더 불편합니다, 왜냐면 죽은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구제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온전한 자가 구제하는 방법이 소위 죽은 자들이 구제하는 방법과 온전한 자라는 것은 죽은 자들입니다,
온전하지 아니한 크리스천들이 구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구제하는 방법을 여기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느냐면 이 사람들은 나팔을 분다는 겁니다,
나팔을 분다 할 때 여기서 누가 나팔을 붑니까, 자기가 부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기가 나팔을 불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팔을 부느냐면 가만히 집안에서 안방에서 혼자 부는 게 아니고 2절에 보면 회당과 거리에 나가서 나팔을 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 동네 사방에 나가서 나팔을 분다는 겁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팔을 부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나팔을 부는 겁니까, 동기가 자기가 인정받으려고 그러니까 내 중심인 사람입니다 소위 이것을 공치사 받으려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눈이 어디에 가 있는 사람입니까 육의 눈이 떠있고 혼의 눈이 바짝 떠있지만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공치사를 영의 세계에서 받아야 되는데 보이는 세계에서 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의 눈도 밝고 혼의 눈도 밝은데 영의 눈이 어두우니까 애꾸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 눈이 다 밝아야 되는데 한쪽 눈이 애꾸입니다
그러니까 세 눈을 다 떤 사람이 그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 애꾸구나 그래서 주님이 여기3절과4절에 그랬지 않습니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래서 은밀하게 하라 이렇게 온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팔을 부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뭐라고 그랬냐면 이미 저들은 상을 받았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온전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영광을 받지 못했으니까 잃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사항입니다 우리가 나팔을 부는 겁니다,
누가 선한 일을 했습니다, 구제를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도록 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나팔을 불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됩니까, 얼마나 죽어야 됩니까,
선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입이 간질간질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는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주위사람들이 그분의 모습을 보고 나팔을 불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개 집사님이 너무 사람이 괜찮아 저 사람이 저렇게 희생하면서 구제하니 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어줄 때 그 선한 일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어갑니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칭찬해줄 때 어떤 마음이 들어갑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누가 나팔을 불어주면 더 부끄러워합니다, 착한 일을 했는데도 왜냐면 자기가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아버지 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겉으로 내가 이런 걸 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부끄럽습니다, 어색해하고 사랑하지 않고 미안해하고 저는 그냥 하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저렇게 나팔을 부네요,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어가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진짜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로 상급 받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가 영의 눈으로 딱 보고는 아하 저 사람은 상급을 엄청나게 받겠구나,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이 정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팔복의 여듭 단계를 여러 번 성숙하게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50%만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면 저는 목회한다는 것은 그냥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제가 할 게 없습니다, 그분들이 다 목회해주니까 어느 교회나 보면 이런 사람들이5%에서10%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하늘나라에 가면 높은 계급에 있을 사람들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불 온전한 사람들은 자신이 나팔을 불기 때문에 자심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주고 씹고 다투고 결국은 분리까지 하는 이런 분들은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거침돌 역할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주님의 일을 많이 해도 상급이 없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가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는 과거에 자기가 쌓아놓은 상 까지도 무효화되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가 저축을 해놓은 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툼까지 올 때는 과거에 쌓아놓은 상 까지도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국은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의개념이 투철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런 측면으로 한번 진단해 봅시다,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상 사람들이 봐도 세상의 육의 눈과 혼의 눈으로 봐도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어린아이구나 아직도 온전한 사람들이 많지가 않구나, 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나라들의 크리스천들과 교회들과 한국교회를 비교해보면 한국교회가 얼마나 뿌리가 깊지가 않구나, 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 한국교회는 형식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또는 과시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경쟁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개교회 중심주의 교파간의 갈등주의 자교회 중심주의 자기교회 이름 날리기 주의 그러다보니까 이 사상이 선교지에 가도 한국선교사들의 사회에서 팽배해 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어디 가나 모든 전 세계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영광과 자기욕심 자기의 어떤 뜻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협조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 경쟁만 더 합니다, 자기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연합해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인데 그러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연합해서 사역을 잘 못합니다, 교회가 교회끼리도 못하고 교단과 교단끼리도 못하고 오늘날21세기의 세계기독교의 지도자들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 교단을 초월하고 나라를 초월하고 주 예수 안에서 우리는 동반자가 되어야 된다고 외치고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한국교회 만은 그것을 잘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교회를 들여다보면 영적으로 보면 온전치 못한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 그 공동체가 한국교회의 공동체입니다
평신도들은 말할 것 없고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선교현장에서 이런 걸 많이 봅니다, 중국에도 우리나라선교사들이 수천 명이 나가있는데 중국선교사들도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적대시하고 서로 협조안 하고 서로 피하고 서루 물어뜯고 같은 복음을 전하는데 그럽니다, 그리고 이쪽에 와서는 과시를 합니다,
신문에 대서특필로 무슨 선교를 이렇게 했다면서 과시를 합니다,
이북에 식량을 보냈다 세상 사람들이 보내는 것은 광고해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는 그런 걸 광고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특히 중국이나 소련은 공산권나라이기 때문에 미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문내면서 하면 안 됩니다,
미얀마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중국은 선교사들이 조심해서 들어가야 되고 이름도 내면 안 되고 그런데 우리는 그냥 나팔을 붑니다,
그러니까 중국선교가 한국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많은 길이 막혔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나팔을 너무 많이 불어놓아서 북한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팔을 너무 많이 불어놓았습니다, 그쪽 사람들이 누가 선교한다고 왔다갔다
하면서 과시하는지 다 압니다 왜냐면 나팔을 다 불어 놓았으니까
소련도 우리한국 사람들이 가서 나팔을 너무 많이 불어 놓아서 이제 한국선교사하면 학을 띠는 겁니다, 소련이 개방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련에 가가지고 길거리에서 할례루야 그러면서 기타 치면서 예수 믿으라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소련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자기네들은 지금 돈이 없지만 조그만 나라에서 온 키도 작고 눈도 작고 머리는 까만 자기들이 볼 때는 아주 별 불일 없는 민족입니다 동양 사람하면 소련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커고 잘 생겼습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예수 믿어라 그러니까 소위 러시아 정교회에서 한국선교사들을 향해서 쫓아내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선교사들은 장기비자를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나팔을 너무나 많이 불어놓았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소련선교사들은 그럽니다,
우리가 나팔을 너무 많이 불어놓았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신문에 내고 방송에 내고 그러지 않습니까, 자기가 뭐 했다 뭐했다하면서 과시를 하잖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팔복의 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는데도 뭘 하려고 까부니까 그것이 나타나는 게 그렇게 나타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이 팔복의 사람이 되지 않고 구제를 해 그러면 이렇게 된단다,
나중에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이미 상을 다 받았다 너에게는 아무 기억도 나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각도를 조금 내려가지고 우리교회를 한번 봅시다, 예를 들어서 우리교회주보를 보면 감사헌금 누가내고 십일조 누가내고 선교헌금 누가내고 하면서 잔뜩 쓰여 있습니다,
한국만 전 세계에 주보에 그렇게 쓰여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게 안 좋겠죠, 왜냐면 이렇게 돈 낸 분이 상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 한국교회교인들의 질이 낮다는 겁니다,
자기가 인정받기위해서 헌금을 많이 내는 겁니다,
주보에 십일조이름이 나오기 위해서 십일조 내는 겁니다,
우리가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갈급해서 새벽기도가 필요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집사가 되려면 장로가 되려면 권사가 되려면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안 된다는 그 강박관념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억지로 나와서 앉아서 기도도 안 나오는데 소리만 지르고 가는 겁니다,
그것도 누가 나왔나 안 나왔나 체킹하는 겁니다,
아무개 안 나왔구나, 그 사람 시험 들었나, 이러고 목사님 오늘 누가 안 나왔습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면 신령하지 않고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고 얼마 전에 제가 아는 캐나다에 있는 교회인데 북한에다가 국수공장을 설립했다고 그러면서 온 미국과 캐나다를 다니면서 국수공장을 우리같이 합시다,
면서 신문광고내고 기사내고 그분들 사진 나오고 그랬습니다,
비디오 찍어서 막 뿌리고 그래서 돈은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런 방법으로 하면 안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세상방법과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의하라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렇게 힘을 주어야 되는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어주어야 되는 겁니다, 이런 이슈들을 정말 조심하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상급을 받도록 우리가 조심하면서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주님 앞에 받친 헌신이 상급으로 이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상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하늘나라가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높은 계급의 조금 더 책임 있는 위치에 들어간다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저희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겁니다,
그냥 평범한 백성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소망을 가진 자들은 높은 계급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복 있는 자의 방법을 가르쳐준 겁니다, 이것이 팔복의 말씀입니다
항상 겸손하게 주님 저는 마음이 가난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를 가난하게 만들어 주세요, 저를 교만하지 않게 해주세요,
매일 팔복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이것은 매일매일 걸어가면서도 주여 내속에 교만이 있습니까,
내가 나타내려는 것이 있습니까, 주여 나를 가난하게 해주세요,
내속에 들어있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남을 씹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 모든 마귀의 마음들을 주여 뽑아주세요 그리고는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보좌 앞으로 옮겨서 항상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대화를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가면서가면서 어떤 마음으로 변하느냐면 저 사람을 보면 나 보다 나아보입니다, 제3자들이 볼 때는 내가 나아 보이는데 그런데 내 자신을 내가 보면서 저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나보다 나아보입니다
그게 주님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2장에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주님 저 사람이 나보다 낫습니다,
나보다 교육을 덜 받고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저 사람을 보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여 저 사람이 나보다 낫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장점을 내가 인정해주고 그분의 장점을 내가 나팔을 불어주는 겁니다, 그 대신에 그분의 단점을 보면 내가 감싸주고. 감싸주고 이렇게 할 때 나도 모르게 내가 복 있는 자가 되는 겁니다,
팔복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날 보고도 저 사람이 자꾸 변해가는구나 저 사람이 괜찮아지는구나,
저 사람 보니까 은혜가 있구나, 항상 모든 사람을 감싸주는구나,
이런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다시 말해서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뽑아내어야 됩니다,
마귀의 성품들을 제거해야 되는 겁니다, 매일매일 보좌의 기도를 통해서 또 우리는 매일매일 예배를 드리기 전에 깊은 찬양을 통해서 또 말씀을 깊이 상고하면서 묵상하면서 그래서 우리 속에 항상 성령세례를 매일매일 체험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매일 체험하고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 이런 삶을 저희들이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소위 성화의 삶이라고 그럽니다,
이 성화의 삶은 정적인 개념이 있고 동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성화의 삶은 정적인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수도원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원에 앉아서 매일 기도만하고 주여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해주세요, 거기서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사람들과 관계성이 없는 사람을 정적인 개념입니다, 성화는 동적인 개념으로 다이내믹(dynamic)이 있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에 들어와서 소금의 역할을 하고 빛의 역할을 하고 비추어주어야 합니다, 소금이 죽는 겁니다,
빛은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서 우리가 팔복의 사람이 되었을 때 매일매일 하루는 팔복의 레벨의 사람이 이만큼 되었는데 그 다음에 한 단계 더 높은 팔복의 사람이 되고 또 높은 단계의 팔복의 사람이 되고 팔복의 사람이 된다는 한 마디로 결론은 제가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뭐냐면 내가 죽는 겁니다, 내가 핍박받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이방사역을 이루시고 이런 사람이 나가서 한마디로 말하면 소금의 역할을 하고 빛의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서 전파되는 겁니다,
내 삶을 보고서 그리스도가 벌써 보이기시작하고 그런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어두움의 세력들이 쫓겨나가고 이러한 일들이 나타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시기를 너의 선한 행동을 나팔 불면서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팔 불도록 해주어라 언제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어주느냐면 내가 팔복의 순서대로 삶을 살아갈 때 다른 사람이 나팔을 불어주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정말 간구 드리며 그래야지만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저 세상에서 저 사람이 과연 복 있는 자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별것 아닌데도 내가 보니까 상당히 높은 자리에있구나,
저 사람 맡에 백성들이 엄청나게 많구나,
저 사람이 별의 나라를 엄청나게 많이 기업으로 받았구나,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부동산을 기업으로 많이 받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땅을 영토가 엄청나게 넓은 겁니다, 저는 주님 앞에 수십만 개가 아니고 수백만 개의 별을 저에게 주세요,
수천만 개 이런 욕심들을 우리가 다 가지고 저 나라를 향해서 우리가 달려가는 그러한 복된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사는 것은 이게 잠깐 왔다가 잠깐 있다가 가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이런 복된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