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3강,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변명섭 2019. 9. 22. 15:27

 

 

로마서 3강,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2014년3월30일 말씀
오늘은 로마서 강해3번째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라는 제목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사도인 바울 우리가 사도바울. 사도바울 하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분을 심도 있게 서로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시간에는 제목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바울 기억나시죠, 
이 시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에 대해서 한번 보려고 그럽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실 때 이분이 자기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면서 또 사도입니다, 라는 그러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라는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사도라는 뜻은 헬라말로 아포스톨로스라 그럽니다,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또 보내심을 받은 자 그런 뜻입니다 사도라는 뜻이 사도하면 여기에 포함된 의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첫째 의미가 뭐냐면 요한복음13장16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보낸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보낸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 사도 그러면 거기에는 보낸 자가 있고 보내심을 받은 자가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가 있으면 그러면 뒤에 보낸 자가 있습니다, 보낸 자가 있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보낸 자가 보내심을 받은 자 보다 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13장16절에 이런 말씀을 하시고는 또 사도의 두 번째 뜻이 뭐냐면 사도는 선택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는 선택 받았다가 불리 움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러한 존재입니다 또 사도는 불리 움을 받아가지고 이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어느 목적을 위해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됩니다, 사도는 그래서 자기의 편안함에서 떠나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다 놓고 떠나는 순종을 해야 됩니다 
사도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은 자기고향이나 자기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부르신 분의 명령에 의해서 복음을 위해서 떠나야 됩니다, 어디로 가야 되는 이런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목적은 뭘까요 
사도의 목적은 보내는 자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떠나야 되는 사람입니다 
보내는 자의 뜻 그래서 이게 사도입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아주 신기한 표현을 한번 했는데 히브리서3장1절에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표현인데 예수님이 사도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주 특별한 표현을 썼습니다, 
히브리서3장1절에 예수님이 사도면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보내신 자는 누구입니까, 성부하나님이십니다 보내신 자도 성부하나님이시고 보냄을 받을 자가 사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항상 이야기할 때 그럽니다, 
요한복음3장16절에 성부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도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그 예수님의 사도인데 어떤 사도인가면 대 사도로 우리가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멋있는 분인 게 알고 보면 보낸 자와 보냄을 받은 자는 크기가 다르다고 그랬습니다, 같은데도 이분이 겸손하게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명령을 언제 결정하였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창세전에 거기에 대한 성구들은 여러분들이 이미 다 받았습니다, 사도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이분이 또 사도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분이 또 이제는 예수님이 보내시는 자로 해가지고 또 사도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보시면 어떤 사도들을 만들었냐면 첫째 이분이 열두제자들을 사도들로 임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6장13절에 이분이 특별히 한 말이 있습니다, 
누가가 한 말입니다 이 열두 명은 실은 알고 보면 한분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맛디아가 들어갖잖아요, 예수님이 이들을 택하시고는 밤새 기도하시고는 이제는 이분들을 다른 제자들이 거기에 있었는데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택하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열둘을 택하셨는데 이들을 사도라 칭하였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라는 이 사람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구나, 어디로 가야 되는구나 이렇게 우리가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예수님이 직접 불려서 직접 가라고 직접 사도로 지칭을 했는데 바울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겁니다, 
바울은 개종을 늦게 했잖아요, 주후35년입니다 바울은 이분이 내가사도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의 편지에는 꼭 사도라는 말이 거기에 포함이 됩니다, 자기의정체성, 몇 군데에서는 안 쓰셨지만 대부분의 그분의 편지에는 종이라는 말 보다는 사도라는 말을 대부분의 편지에 집어넣었습니다, 
바울이 그러니까 바울은 분명히 본인이 사도라는 겁니다, 
본인이 문제는 나중에 제가 설명하겠지만 열두제자들 특히 베드로 같은 분은 바울이 스스로가 사도라고 표현했는데 거기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이 어른은 핍박하고 나쁜 짓하던 사람이 무슨 사도냐 그런 고정관념이 베드로에게 있었습니다, 그 말은 나중에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다음에 성서에서 보면 사도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면 바나바를 사도라고 성서에서 표시를 합니다, 사도행전14장14절에 그리고는 성서에서 바울이 하시는 말씀 갈라디아서1장19절에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사도라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열두제자 중에 한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도라는 명칭을 예수님에게 받은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사도라는 명칭을 야고보가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이해하기 힘든 두 분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도라는 명칭을 가진 로마서16장7절에 이분들은 이름도 생소하고 이분들을 우리 로마서16장은 우리가 나중에 공부하겠지만 약30여명의 이름이 나오잖아요, 바울이 에베소에서 로마로 파송한 선교사 대열에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 30여 명 중에 특히 두 사람을 사도라고 불렸습니다, 
두 사람이 누구냐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로마서16장7절에 이렇게 지금 신약성경에서는 지금 제가 열거한 이분들이 사도라는 타이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세상에 사도인데 바울사도는 바울사도 데로 엄청난 일을 했으니까 우리가 사도라고 부를 수 있지만 바나바는 바울보다 조금 못할 거 같고 또 안드로니고나 유니아 같은 사람은 이름도 없는 사람인데 사도라는 명칭을 받은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질문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라는 이 명칭이 이 타이틀이 같은 파워를 가지고 같은 기능을 가졌냐면 아닌 것 같습니다, 성서를 주욱 보면 사도지만 모든 사도가 사역과 기능이 똑 같은 게 아닙니다, 크기도 똑 같은 게 아닙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하는 사역들을 성경에서 나열한 것들을 주욱 정리한 것을 보니까 이런 사역들을 사도들이 했습니다, 
사도들이 행정사역을 하고 또는 재정도 바나바 같은 사람은 자기 땅을 팔아가지고 열두제자들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재정 관리도 사도들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는 정치력도 있었고 또 신학을 정돈하는 일도 했고 또 전도도 했고 또 설교도 했고 또 가르치는 교사역할도 했고 그리고 리드 쉼도 발휘했고 또 격려의 일도 하고 봉사의 일도하고 교회개척도하고 다양한 이러한 기능들을 사도들이 발휘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같은 분을 보면 지금 열거한 모든 것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들을 이분이 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제가 바울은 어떤 사도인가 나름대로 제가 이분은 종합사도라고 할까요, 총체적사도라고 할까요, 이 모든 기능들을 다 가지고 있었던 사도로 보고 있습니다, 열두제자들 중에서도 모든 분이 다 이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만 보아도 제가 볼 때는 바울보다도 조금 낮은 수준의 사도가 아닐까 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은 더 이 기능들 중에 일부만 격려하는 사역이나 또는 가끔 가르치는 사역까지도 별로 안 하셨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 같은 분은 선교지에 바울과 같이 가서도 설교를 가르치는 일은 바울이 했지 바나바는 뒷전에 계셨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도지만 좀 다른 그런 기능을 가지지 않았나, 
야고보도 마찬가지고 또 안드로니고나 유니아는 봉사기능정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전도하는 기능 이런 기능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라고 그래서 다 같은 계급이거나 또는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았다고 우선 그렇게 참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도들 특히 바울 같은 사람들 또는 바나바 같은 사람들은 또 열두제자들은 이분들은 교회개척사역은 아주 도맡아서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장20절21절에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교회는 사도들이나 또는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 그럽니다, 
이분들의 터 위에 그런데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웠는데 거기에 모퉁이 돌은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터의 역할을 했다고 사도들이 보는 겁니다, 
성서에 보면 사도들이 사역내용을 제가 말씀드렸지만 그냥 참고 하시고 우리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이 로마서1장1절에 예수님이 지난 시간에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랬잖아요, 
종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시간에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안 해도 되고 사도라는 표현을 하는데 보면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종이라는 표현은 사도바울이 자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라는 표현은 아주 자주로 썼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썼고 고린도후서 또 오늘 공부하는 로마서 또는 에베소서 또는 골로새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이런데 다 사도라는 표현을 아주 자주로 썼습니다, 종이라는 표현은 몇 군데 안 됩니다 
잠깐 보시면 로마서에 종이라는 표현을 썼고 빌립보서에 썼고 그리고 디도서에 썼습니다, 그런데 사도라는 표현은 그의 대부분의 그분의 편지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사도라는 표현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강조 했을까요 이게 우리 의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분이 왜 사도라는 표현을 강조하였냐면 이분에 사도 권에 대한 도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분들이 교회를 개척을 하고 편지도 쓰고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 속에서 안팎에서 이분의 사도 권에 대해서 도전하는 당신이 뭐가 사도냐 라고 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교계 안에 꽤 많았던 겁니다, 딴 소리하는 사람들은 주로 누구였을까요 예루살렘교회의 열두제자들입니다 이분들이 특히 거기에 최고지도자가 베드로입니다 
이분들이 자꾸 딴소리를 하는데 자기들만 딴소리하면 좋지만 이분들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터키에 그리스에 심지어 로마까지 이분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울이 편지를 쓰거나 방문할 때마다 이분들이 자기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바울이 항상 방문할 때마다 그런 곳에 갈 때마다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을 알고 특히 사도 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 저사람 사도 아니야 그러니까 바울은 내가 사도인데 왜 나를 가지고 이러느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편지에다가 항상 사도라는 이야기를 이분이 강조하는 겁니다, 
내가사도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사도들보다 내가 더 소위 말하면 큰 사도고 유명한사도 다, 라는 것을 암암리에 자꾸 표시를 합니다, 
이분의 이런 것을 우리가 보면서 똑같습니다, 
이게 성서인데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것이 그대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적용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지만 이 안에 이런 보이지 않는 질투와 갈등들 텃세 부리는 것들이 깔려있는 겁니다, 
2000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것이 그렇게 되어 왔었고 왜 벌써 이미 사도라는 오리지널사람들도 이런 죄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그대로 제가 이렇게 한번 묵상해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왜 저렇게 바울을 싫어하는가, 
베드로의 입장에서 바울을 보는 시각을 한번 제가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 베드로가 이렇게 볼 때 저 사람은 똑똑하지만 경력도 화려하지만 교육도 많이 받았지만 정규제자출신이 아니다, 라는 우리 같으면 정규 신학교 나온 사람이 아니다, 라는 적어도 무슨 신학교라도 나와야지 그 신학교에서 적어도 어느 학위를 받아야지 라는 이 고정관념에서 베드로가 벗어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베드로는 그러는 겁니다, 
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지 아니 하였다 우리하고 비교가 안 된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런 교만기가 베들에게 깔려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교만 기 때문에 바울이 괴로웠던 겁니다, 
우리가 예루살렘교회를 개척했을 때 얼마나 우리를 괴롭힌 사람인줄 아느냐 우리교인들 다 흩트려놓고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핍박하고 교회를 풍지 박산 만들었던 장본인이 저 사람이다, 라는 겁니다, 
저 사람 때문에 예루살렘교인 다 잃어버렸다 한2만 명 정도 되는 교회가 풍지 박산 되어가지고 교회에 그 교인들 다 흩트려버리고 저 양반 때문에 우리가 지금 완전히 실패했다 속된 말로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교인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헌금도 안 들어오고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가난해 가지고 거꾸로 빌립보교회나 고린도교회에서 우리가 도움 받고 있다 저 사람 때문에 그런 쓴 뿌리가 깔려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사람 신학을 한다고 까불지만 알고 보면 반 복음주의자고 반 기독교주의자다 이런 깔려있는 잠재의식이 있는 겁니다, 
저 사람은 우리가 이렇게 핍박받아서 교인이 흩어졌을 때 다메섹에 우리 교인이 갔는데 다메섹까지 따라가면서까지 사탄의 행위를 했단다, 
저 사람이 우리 교인들 잡으려고 그렇게 사탄의 행위를 했든 시도했던 사람이 저 사람이야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다메섹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소문났다는 겁니다, 그 깡패가 갑자기 개종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조금 있다가 보니까 아라비아 내려가서3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하면 이런 별난 생각을 베드로가 다 했을 겁니다, 그리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바울이 예루살렘에 나타나가지고 바나바를 통해서 바울이 자기 앞에 오는 겁니다, 
바나바가 그래도 형님 이 사람 만나십시오, 
할 때 할 수없이 내가 만나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에서 다소까지 가가지고7년을 그냥 이름 없는 삶을 살다가 완전히 베드로나 이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겁니다, 
그럴 때 갑자기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전도사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선교사로 나갔다고 이런 소문이 들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보니까 신학이 자기와 다른 겁니다, 베드로의 신학과 바울이라는 사람이 외치는데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구원은 은혜로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신학은 뭐냐면 율법도 지켜야 된다, 
구약의 모든 율례와 법도를 지키고 그다음에 또 은혜를 따르는 것이다, 라고 이분의 신학과 상충된 겁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여러 가지 갈등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갈등 때문에1차 선교여행 끝나고 예루살렘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총회를 하였는데도 쳐다 도 안 보았겠죠, 
그런대 누가 중간에서 화해일을 하였습니까, 
야고보가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그런데 바울이 그 총회를 통해서 힘을 받고 하니까 베드로입장에서는 더 화가 난 겁니다, 저 사람에게 내가 힘을 실어주었구나 이 총회를 통해서 그리고는2차 여행3차 여행하면서 그냥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속으로는 예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괴심하고 질투심도 느끼고 왜냐면 점점 점 세력이 커지는데 자기 제자들까지도 이분에게 영향을 받는 그러니까 바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아하 지금 베드로선생님이 상당히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구나, 
라고 까지도 느끼겠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고린도교회를 봐도 이미 거기에 베드로파가 있는 겁니다, 교회는 자기가 세워 놓았는데 거기에 바울 자기파도 있고 예수님파도 있고 아볼로파도 있고 베드로파도 있잖아요, 
이미 이게 자기가 개척한 교회 안에 여러 파들이 있는데 베드로 파 아볼로파가 강한 파였거든요 이런 과정 속에서 바울도 성령님께 의탁을 했을 겁니다, 성령님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교계가 복잡합니까, 왜 저 사람들이 나의 사도 권을 인정을 안 합니까, 
그러니까 바울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편지 쓸 때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이분이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성령님이 이분에게 그것을 쓰라고 가르쳐준 겁니다, 
그래서 편지마다 이렇게 썼던 것 같습니다, 이해가 조금 됩니까, 
바울이1차 선교여행 끝나고 예루살렘총회에 참석했다가 그다음에 안디옥교회에 들어와서 첫 편지 쓴 게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쓰실 때 이분이 지금 두 가지의 갈등들이 있었던 겁니다, 첫째는 뭐냐면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은혜의 복음이라는 그것을 다시 명시하길 원하고 두 번째는 뭐냐면 자기 사도 권을 다시 한 번 그분들에게 알려주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그런 배경에서 보시면 이해가 근방 됩니다, 갈라디아서1장1절에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세요, 자기의 사도 권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내가 받은 이 사도 권은 사람들에게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나 바울은 그러는 겁니다, 
분명히 자기 입장을 이야기합니다, 
이게 내가 그냥 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에게 이렇게 시켜서 그러면서 이분이1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하는 복음이 사람의 뜻의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나는 사도 권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12절에 이는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과거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15절에 보면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사도 권을 받은 것은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 은혜로 나를 부르셔가지고 내가 이방인사도가 되었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욱 나가시면서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것 때문에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어머니 모태에서부터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래가지고 내가 아라비아에 가가지고3년 다시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내가 안디옥교회 전도사까지 되고 지금1차 선교여행까지 갔다 왔단다, 
그럴 때 지금 너희들 방문 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2장에 들어와서 보면 아주 심한 사도바울의 감정을 표시했습니다, 이분이14년 후에 그랬습니다, 14년 후라는 것은 자기가 개종을35년에 했잖아요, 거기서14년을 더하면 언제입니까, 49년입니다 지금 갈라디아서를 쓰는 것은 언제입니까, 똑같이49년입니다, 14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갔다 이게 예루살렘총회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내가 갔는데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자들에게12제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개인적으로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분이 내가 선교지에 나가서 열심히 은혜의 복음을 전했는데 이분들이 방해를 해가지고 내 복음 전하는 것이 헛되이 되지 않게 위해서 내가 할 수없이 이분들과 내가 화해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예루살렘총회에 갔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목회자 사회에 오늘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가나 똑같이 다 있습니다, 이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왜냐면 인간이 본질이 그렸습니다, 
목사라 그래서 신부라 그래서 사제라 그래서 가운 입고 아닙니다, 
그 속에는 다 이런 것들이 들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진짜 사랑했던 이분들 사이에도 이런 게 다 들어있는 겁니다, 3절을 보세요,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 때문이라 주욱 가면서 은혜와 율법까지 이야기하는데6절을 보세요,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12제자들 중에 특히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분들 그러면서 괄호를 쳐놓았습니다, 성서에는 괄호를 친 게 가끔 있습니다, 
괄호 친 것은 바울의 입장에서는 성령님이 나에게 직접 말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 생각이다 는 겁니다, 바울의 생각이다 그래서 괄호를 쳐놓았습니다, 괄호열고(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분명한 일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도 없고 도리어 조금씩. 조금씩 괄호 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 사람들 유력하다는 이들은 외모로는 사도들이야 외모로는 예수님과 3년 동안 같이 지냈고 외모로는 예수님의 특별제자들이야 거르는 겁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그런데 이분이 지금 무엇이라 말합니까, 괄호 친 게 굉장히 재미있는 말입니다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러는 겁니다, 나는 지금 늦게 배를 탔지만 내가 저 사람들 보다 났다는 것을 은근히 비치는 게 나옵니다, 
7절을 보시면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 할례자 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 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이게 뭐냐면 나는 이방인들을 상대로 하는 사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전 세계인구의99.9%가 이방인들입니다 그다음에 베드로 저 양반들은 너희들12제자들은 그 당시에 할례 자들 유대인들을 향한 사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급수가 다르다고 은근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기 지금 보시면 8절에 보면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이렇게 자기를 더 높인다는 겁니다, 지금 이게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겁니까,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인들이 누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9절에 보시면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 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하면 그분들과 내가 이렇게 교제하였는데 갈라디아교인들아 그 사람들은 고작해야 동네 게임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노는 사람이다 이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11절부터 보면 더 심한 말을 합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호통을 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 이 양반도 보통분이 아니십니다, 대 선배를 호통을 쳤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겁니다, 자기가 그동안 전해왔던 복음이 이분들에 의해서 사도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아 왔기 때문에 그러면서 알고 보면 그분들 보다 내가 더 센 사도라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시는 겁니다, 
내가 더 센 사도 권을 가지고 있다 실은 이러면 안 되는데 성령님이 바울의 심장을 그대로 이렇게 기록하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바울도 감정의 지배를 받고 아직도 보면 성품이 이런 성품인 것이 나타납니다, 바울이라고 그래서 성인이 아닙니다, 보면 성인 가까이도 못 갑니다 조금 자기가 기분 나쁜 일 당했으면 이렇게 성서에다가 적고 성령님께서 성서에 적어라 너 못난 부분을 그렇게 해서 적은 겁니다, 
우리도 우리목사님들도 바울보다 잘난 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다 피장파장이구나,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런 자기의 감정을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을 우리가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느냐면 바울이 왜 편지마다 나는 사도 다, 
사도 다, 사도 다, 했는가를 여러분들에게 설명해주기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9장을 보세요, 고린도전서9장은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자기 사도 권을 건들려놓아서 아주 섭섭해 하는 마음을 거기에 담았습니다, 이게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왜 섭섭했냐면 고린도교회 안에 베드로 파. 아불로 파. 바울 파. 예수님 파 이렇게 네 파가 있는데 자기파들은 괜찮지만 나머지 파들은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겁니다, 
무슨 부정적인 생각을 하느냐면 바울 저 사람 재주가 좋아가지고 다니는데 마다 헌금을 거두어가지고 헌금 거둔 것 가지고 복음사역에 쓰지 않고 바나바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냐면 이 사람들이 그 헌금을 남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랬습니다, 자기 가족들 데리고 자기 처 데리고 선교여행 다니고 이렇게 선교헌금을 남용한다, 라는 소문을 듣고는 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답변하는 내용이 9장입니다 나중에 답변하는 내용을 가지고 고린도후서11장12장에 또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재차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여기 보면 이분이 사도 권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9장에 한번보세요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그려는 겁니다, 자유자라는 겁니다, 사도가 아니냐, 자기가 사도라는 겁니다, 사도는 복음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예를 드시는 겁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2000년 전에도 아마 군인들도 봉급은 정부에서 받았던 모양입니다 
자기는 군인이라는 겁니다, 군인이 자비량을 하면서 군대 생활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 예화를 드시고 두 번째 예화는 포도 심은 농부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자기포도 자기가 먹는데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뭐냐면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이렇게 세 예화를 더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화를 또 하나 더는데 구약의 예화를 더는 겁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이렇게 네 예화를 더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당신들에게 고린도교회 교인들아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을 전해서 여러분들이 그 복음 통해서 믿음이 자라나고 영성을 받게 되고 나를 통해서 이것을 받은 자들아 너희들이 당연히 헌금을 해서 내 생활에 보탬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가 사도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돈을 받을 권한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권한을 쓰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너희들이 나에게 돈을 내어야 되고 내가 그 돈을 가지고 뭐든지 가족들 데리고 여행도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자유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안했다는 겁니다, 이분이 주욱 말씀하시기를 왜냐면 안한 이유가 뭐냐면 혹시라도 한사람이 그것 때문에 실족할까봐 혹시라도 그래서 이미 알고는 내가 안했다는 겁니다, 너희들 돈 한 푼도 안 썼다는 겁니다,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는 밤 낮 복음을 전하면서 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내가 일감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자비량으로 당신들에게 돈 받지 않고 그 이유는 뭐냐면 하늘에 상이 있음을 내가 알기 때문에 그랬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분이 주욱 하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하모로써25절에 보면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자기의 사도 권을 또 강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진정한 사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진정한 사도는 자기의 고난이 있지만 교회에 돈을 자기 개인용도로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돈은 주님의 사역에만 써야지 자기 치부하는데  쓰면 안 됩니다, 헌금을 낸 돈은 저는 이 생각이 투철하기 때문에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낸 헌금을 내가천원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혹시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바울이 이렇게 안 만졌던 이유가 뭡니까, 그냥 인간적으로 사람이 좋아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이분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서11장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다 우리 본 고향은 저기다 그리고는 저쪽에 올라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라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것이 가능한 겁니다,
 바울은 이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도 지금 여기 나중에 보시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던 것을 여러분들 하면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말을 안 들으니까, 
아직도 꼬투리를 잡고 내가 또 이야기한다, 
하고 한 것이 고린도후서11장12입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너희들 왜 내말을 이해를 못하느냐 내가 세상 적으로 봐도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최고학문을 공부한 사람이야 이미 주님이 나를 붙잡아 가지고 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주님이 나를 훈련시키려고 내가 온갖 고통을 다 경험했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받은 고통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매도 많이 맞고 하면서 주욱 이야기하다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왜 이것을 할 수 있는지 아느냐 그러는 겁니다, 고린도 전서는 55년에 썼습니다, 
이분이 41년에 다소에 있을 때 3층천에 갔다 온 이야기를 고린도후서12장에 하는 겁니다, 내가 이런 걸 극복할 수 있었는지 아느냐 나는 3층천 올라가서 저 세계를 보고 온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히브리서11장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짜 사도란다 그러시는 겁니다, 
자기사도 권을 지금 계속 변명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분을 통해가지고 사도 권을 계속 말하도록 이분의 편지 속에서 말하는 것을 아까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11장13절14절에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체험이 없는 사람이 사도라는 명칭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하고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복음을 전파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이분이 말하기를 거짓사도들이라는 겁니다, 거짓사도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14절에 그랬습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겁니다, 
사도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사탄의 자녀들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하나님의 물질을 남용한다는 겁니다, 
사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도라는 권리를 가지고 권리를 남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실족케 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면 나는 세계를 봤기 때문에 내가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사도 권을 남용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돈을 많이 내어야 한다, 내가 당신을 가르친 것만 해도 어디야 당신들 알지 군인들이 어디 자비량하는 군인이 있느냐 포도농사꾼이 자기 포도 먹는 게 뭐가 나쁘나 양을 키우는 목자가 자기 양젖을 먹는 게 뭐가 나쁘나 곡식 밟는 소가 망을 안 씌우게 한 것은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신령한 것을 너희들에게 많이 뿌렸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다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내가 안 간단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거짓사도가 아니라 나는 진짜사도다, 라며 사도 권을 자꾸 강조하는 겁니다, 특히 고린도교회에 사도 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분이 사도 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사도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주지 시켜주기 위해서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 사도 권은 그리고는 두 번째로 나는 귀 뚫린 종임을 확인시켜 주기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사도이기 때문에 내가 전하는 말씀은 내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강조시켜주기 위해서 인간의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네 번째로 나는 어떤 지역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총체적인 사역을 하는 사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행정. 재정관리. 정치. 신학. 전도. 교회개척. 리드 쉼. 격려사역 이런 모든 것을 나는 총체적으로 하는 사역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목적 때문에 이분이 내가사도다, 사도 다, 자꾸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 보면 야고보는 사도 권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처음 인사에서 한 가지 이분은 나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이것만 표시하였습니다, 왜 야고보는 명시하지 않았을까요, 
이분이 사도라고 말 안 해도 이분은 로열패밀리입니다 
기독교계에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로 사도라고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겸손히 나는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분은 기득권 그룹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두 권의 편지를 썼잖아요, 베드로전서는 이분이 순교가 65년인데 순교2년 전 63년에 베드로전서를 쓰시고 베드로후서는 순교1년 전 64년에 섰다고 보는데요, 이분이 그전에 이미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내가사도다, 했으니까, 
이분도 너만 사도나 나도 사도 다, 아마 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베드로후서를 썼을 때는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다, 이렇게 두 부분을 썼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 고백 때문에 로마 가톨릭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었을 때에 그리스에도 콘스탄티노플에도 교회가 있었고 희랍 정교회 안디옥에도 교회가 있었고 예루살렘에도 있었고 애굽에도 이렇게5대 교구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 로마제국에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가 자기네가 최고 사도 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들어 내어야 되는 겁니다, 이분들이 그래서 나머지4개의 교구들은 자기네의 수하에 있다는 것을 만들어 내어야 되는 그러한 유혹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서 만든 교황 사도 권 최고 사도 권 승계자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었냐면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태복음16장16절에서19절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가지고서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베드로의 승계자라고 그 성경말씀을 인용해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알다시피 로마의 첫 교황은 그레고리1세라고590년에 첫 교황입니다, 베드로와 첫 교황과의 관계는 약590년의 차이가 있는데도 로마 가톨릭에서는 베드로가 자기네 교회에 첫 교황이다 생각하고는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베드로부터시작해서 교황리스트를 웹 사이트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18절에 너는 베드로다 이때 베드로의 이름을 받은 겁니다, 
페트로스 헬라 말입니다, 히브리이름은 시몬 이였는데 이제부터 페트로스다, 페트로스는 조그만 돌입니다 페트로스다 그래놓고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반석이라는 말의 원어를 보면 베드로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겁니다, 로마 가톨릭이 해석을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에서는 아니다 다르다 페트로스와 페트라는 다르다 반석은 뭐냐면 베드로의 고백을 이야기한다, 라고 보는 겁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그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겁니다, 이게 정통적인 해석입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에서는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면 베드로야 너는 페트로스다 너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는 장본인으로서 해석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가 대단히 파워가 있는 존재로 그러면서 뭐냐면 베드로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열쇠를 가진 자가 베드로가 되어 버린 겁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되었다는 것은 로마 가톨릭 안에 들어와서 베드로의 리드 쉼 안에 있어야지만 로마 가톨릭 교황 밑에 있어야지만 구원이 있다는 겁니다, 로마 가톨릭 안에 있어야지만 구원이 있지 타 교회에 그 당시에만 해도 희랍 정교회 애굽 곱틱 정교회 많은 교단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교단들 보고 너희들이 우리 밑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주님의 말씀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잘 못 해석한 게 내가 천국열쇠를 내게 주노니 할 때 천국열쇠를 가진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 계시록3장7절에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천국열쇠를 가진 분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열쇠를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데 그것을 이 고백을 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열쇠를 나누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이 고백을 하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면 우리가 곧 열쇠를 받아가지고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하신 말씀인데 그것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본 겁니다 로마 가톨릭의 이 해석이 아주 잘 못한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들이 여기저기서 우호죽순처럼 나오니까 이분들도 이 교리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때 너희들은 구원 없다고 개신교사람들 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로마 카톨릭도 다른 교단을 인정하면서 이 부분을 자기네들도 순종을 해야 되는데 안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교단을 안아주는 어정쩡한 상황이 오늘날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은 베드로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바티칸에도 베드로성전이 크게 있습니다, 영국에 가면 성공회 사람들은 베드로보다 바울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바울성전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사도시대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우리교회 역사에서 사도시대라는 이것은 어떤 시대를 이야기하는가,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시작이 되면서부터 주후30년입니다 요한이 에베소에서 기름가마에서 순교를 당한 것이 주후96년입니다 그래서30년부터96년 다시 말하면 30년부터100년1세기를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를 때 사도시대라 그럽니다, 
이 말은 뭐냐면 진정한 성서적인 의미에서 사도는 그 시대에 계셨다는 겁니다, 사도가 그래서 그 시대로만 우리가 한정 시키고 그 당시에12제자들이나 바울이나 바나바나 많은 분들을 우리가 사도라 이렇게 부른다는 겁니다, 
그런데2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소위 기독교역사가들이 몇몇 분들을 교부라는 이름을 불려가지고 사도에 버금가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교부라는 이름은 2세기부터시작해서 특히2세기3세기 그때에 특별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뭐냐면 한 세 사람 정도를 특별히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성경을 썼습니다, 
그분들이 이분들이 예를 들어서 로마에 있는 학자 중에 한 사람이 클레멘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클레멘트서신을 썼습니다, 
이 사람이 95년에 한 권을 쓰고 그리고 두 번째140년에 썼는데 클레멘트라는 분이 성서를 썼기 때문에 이분들을 교부라 부릅니다, 
또 이그나티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어떤 사람이냐면 안디옥에 감독 이였는데 요한의 제자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로마에서 사자에게 뜯겨서 죽었는데 이 사람도 주후115년에 성경 한 권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그나티우스 서신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또 한분이 폴리캅이라고 이 사람은 서머나 교회 감독 이였는데 사도들에게 배운 최후의 제자입니다 제일 마지막 제자입니다 
폴리캅이라고 이 사람도 서머나 야외극장에서 장작더미에서 태움을 받았는데 이렇게 클라멘트나 이그나티우스나 폴리캅이나 이 사람들은 성서를 썼다 그래서 이분들을 교부들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알다시피 신약성경은397년에 카르타고3차 회의에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신약성경이 형성이 되었는데 이때 우리가 알다시피 개신교는66권이었는데 이 사람들의 편지를 삽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이 사람들의 편지를 외경이라고 그래서 삽입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 전통에 의하면 이 사람들을 교부들이다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사도들은 누군가 은밀한 의미에서 사도들은1세기 때 주님이 썼던 유명 인사들로 보시면 됩니다, 
좁은 의미에서의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약간 좀 벌려가지고 사도들을 계속 본다면2세기3세기4세기 이때 초대교회 때 유명인사들 이 사람들은 사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아까 그 세 명 빼놓고는 잘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의 이름을 제가 드리겠습니다, 이그나티우스라는 사람은35년에서107년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폴리캅이라는 사람은 70년에서155년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스틴 마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로마에서 참수 당한 사람인데 100년에서166년 이런 사람들은 사도로 쳐주는 겁니다, 이레니우스라는 사람은 프랑스 리옹의 주교였는데130년에서202년 또 카타르고 북아프리카 리비아쪽 사람 도투리안은160년에서230년 그리고 애굽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아주 유명한 사람이 세 분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신학이 로마가톨릭신학을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인데 알렉산드리아에도 클라멘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50년에서215년 그다음 유명한 오리겐이라는 사람180년에서254년 그다음에 키프리안190년에서258년 그리고 요세비우스라는 사람 이스라엘 가이사랴도시 출신으로 유명한 역사가입니다 
260년에서 345년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최고로 유명한 사람이 아타나시우스라고 295년에서373년 그리고 앱볼로져 이 사람도 유명한 분인데340년에서397년 독일분인데 이태리 밀란에서 주교를 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그스틴이라는 사람을 개종시킨 사람입니다 
어그스틴은 지금의 알제리 히포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제롬이라고 영어 이름이 히에로니무스라는 이 사람은 달마디아 지금 체코슬로바키아출신으로 구약의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바꾼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사도라고 부르는 역사가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사도라고 하면 나중에 종교개혁 후에 칼빈이니 루터니 낙스 장로교를 만든 분 웨슬리 감리교를 만든 분 스미스라고 침례교를 만든 분 그다음에 월리엄 부스라고 구세군을 만든 분 그다음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워리엄 캐리 같은 분은 인도선교사로 유명한 분입니다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도 사도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역사에서 이런 사람들을 사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도를 어디까지 제한합니까, 1세기 때 그분들을 사도라고 제한합니다, 그러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데 사도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사도가 되려면 모태에서 택함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불리 움을 받아야 되고 그다음이 준비케 하십니다, 바울의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고 준비할 때 쓴 뿌리를 제거시키려고 용광로에 집어넣고 성화훈련을 시키는데 말씀훈련 시키고 성화훈련 시키고 성숙훈련 시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대에 넓은 의미에 사도는 누굴까 이때까지 좁은 의미의 사도를 이야기해봤는데 넓은 의미의 사도는 사도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도라는 뜻이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음시간에 보겠지만 뭘 위해 보냄을 받았냐면 복음을 전하기위해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런 사람에 대한 정의가 사도라는 정의입니다, 그렸다면 넓은 의미에서 저나 여러분들은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조건에 의해서 뭐냐면 모태에서 택함을 받았다면 그래서 저는 저나 여러분들을 사도라고 부르기보다는 소 사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소 사도들 그러면 소 사도들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첫째 불리 움을 받기 전에 택함을 받아야 됩니다, 택함을 받고 불리 움을 받고 그리고는 준비과정 속에 집어넣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저나 여러분들이 그래서 이 준비과정 속에 들어와 있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꽤 됩니다, 택함을 받아서 사도는 이제 자기의 편안함 상태에서 그것을 놓고는 나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보니까 저희들이 지금 중국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갑니다, 
나가라 그러면 모든 걸 내려놓고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도 많이 다녀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갈 겁니다, 
소련에도 그렇고 일본에도 그렇고 최소한 이 세 나라에는 우리가 사도역할을 해야 되잖아요, 이러기 위해서 성경공부 열심히 하시고 시간을 내서 열심히 준비하시시고 물질도 거기에 받치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하는 걸 보니까 제 생각에는 아하 우리교회 안에 이 소사도가 꽤 있구나, 그러면 누가 나에게 물어볼 겁니다, 황 목사님 잘못생각하십니다, 아닙니다, 이 소 사도들을 보니까 이 사명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걸 제가 이렇게 보면 소사도 깜이구나, 제가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또 선교지로 나가는구나, 사도역할을 하는구나, 
그래서 소망이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있구나, 
우리교회가 주일에 잠깐 와서 설교한번 듣고 가는 그런 교회가 아니잖아요, 소사도 되려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그런데 이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히 모태에서 택함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걸 보면 이것은 모태에서 택함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멘, 모태에서 택함을 받은 걸 어떻게 아느냐면 뒤집어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아버지는 사도라는 보냄을 받는 자와 보낸 자의 원칙을 만드셔서 삼위하나님께서 예수하나님을 이 세상에 사도로 보내시게 하시고 삼위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계획을 수행하기위해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냄을 받은 예수님께서 또 삼위하나님의 목적을 우리에게 주시고 1세기에 또 사도들을 창세전에 모태에서 다 준비시켰다가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과거2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런 복된 자들 모태에서 이미 택하심을 받게 하시고 부르시고 많은 용광로훈련을 거쳐서 소화하게 하시고 저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상급을 바라보게 하시며 주님의 뜻을 이들을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 이러한 사도들 특히 소 사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저희들도 소 사도대열에 들어가게 하셔서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영광 드리는 귀한 삶이 되도록 은혜주시고 언젠가는 주님나라에 가서 잘했다 칭찬받는 복된 소사 도들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wtlLe7e3zms&list=PLJXDDlXMklslx2GGPLYakD7KGUXDcLw0f&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