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로마서 2강,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2014년3월16일 말씀
오늘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오늘말씀은 지난시간과 같이 그렇게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을 것도 많아야 되고 그렸습니다,
지난시간에 하신말씀을 잠깐 복습해보면 지난시간에는 로마서를 저술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이럴 때 로마서는 세 단원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1장부터8장까지 이것은 교리적인 측면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구원 주 되신다는 것을 교리적으로 설명한 것이1장부터8장입니다, 그다음에9장부터11장은 두 번째 단원으로 유대인이스라엘사람들과 이방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이 언제 이 관계를 만들었고 이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 관계 때문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라는 이런 모든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9장에서부터11장입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에 유대인들도 있었고 이방인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에게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단원에서12장부터16장까지는 우리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세 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서가 세 단원으로 되어 있는데 로마서의 저자는 우리 알다시피 바울이고 또 수신자는 로마에 있는 이방인과 또 거기에 있는 유대인크리스천들이고 저술년도는 주후57년으로 로마로 파송을 한30여명의 바울의 제자들이 로마에 있는 크리스천들의 문제점들을 보고를 한 것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저술을 한 겁니다, 로마서는 모든 성서중에 꽃 봉우리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산정상이다 그리고는 신학총서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57년도니까 주후57년 이전에는 바울이 쓴 서신들이나 또는 야고보가 쓴 서신들 이전까지는 신학총서의 서신을 쓰지를 않았습니다,
단편적인 부분을 썼는데 로마서는 총체적으로 썼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질문을 몇 가지 드렸습니다,
왜 개종하자말자 총서를 쓰지를 않으셨는가, 또 두 번째 질문은 왜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많은데 왜 이분들은 총서를 쓸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는가, 혼의그릇 그래서 하나님은 혼의그릇이 된 사람을 선택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울이다 그래서 이분을 첫30년 동안 태어나서부터 개종까지 주후5년에서35년까지 혼의 그릇을 크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개종 후35년부터 약22년 걸려가지고 로마서를 쓸 때까지 혼의 그릇은 커졌지만 혼의 그릇이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뽑아내는 일들을 하셨다 22년 동안 그래서 마음을 순수하게 만드는 일들을 하셨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순수하게 된 것이22년 후에 이분에게 영의 메시지를 거기에다가 담아 둔 겁니다, 그래서 영의 그릇으로 하나님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이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까지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로마서 강의를 시작하려고 그럽니다,
바울의 서신을 어떤 분들은13권을 썼다고 그럽니다,
어떤 분들은 히브리서까지 합하면14권을 썼다, 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13권을 이렇게 보면 거기에 형식이 있습니다,
바울서신에 공통적인 형식이 있는데 이 형식이 뭐냐면 다섯 가지 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분의 서신형식을 보면 첫째는 항상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단원에서 그리고는 두 번째 단원에서는 꼭 수신자가 누구라는 것을 꼭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단원에서는 인사말을 하고 감사표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주고 그리고는 네 번째로 본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다섯 번째는 결론을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시작할 때도 인사할 때도 꼭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시고 끝나면서 또 마지막에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것이 이렇게 바울서신들의 형식입니다,
이런 걸 염두에 두시고 오늘은 로마서를 이렇게 우리가 시작하면서 바울이 똑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일먼저 기록을 하였습니다,
로마서1장1절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분이 뭐라고 기록하였냐면 예수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뜻이 다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스는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1장21절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구약의 유대인말로 똑같이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시작이 이렇게 나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이게 이분의 정체성입니다, 여기 보면 두 가지로 나옵니다,
나는 누구의 종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리고 나는 사도 다,
라는 겁니다, 오늘은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종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다음시간에는 제가 사도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종이라는 단어가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라는 단어가 뒤에 이어지고 이게 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도바울의 다른 서신들을 순서대로 우리가 잠깐 보면 우리가 이런 시각훈련을 해야 됩니다, 제일먼저 이분이 쓴 서신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주후49년입니다 49년에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분이 뭐라고 썼냐면 1장1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면 뭐가 빠졌습니까,
종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사도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는 주후51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 때 여기 보면 자기정체성을 이야기를 안 합니다 정체성호칭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정체성이 없습니다, 51년에 두 권을 썼는데 왜 없을까, 이렇게 보면 이분이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고린도에서 쓸 때 교인들에게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놈들아 너희들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이러면서 성령님께서 이분의 감정을 이해하시고 자기가 누구라는 것까지 이야기할 틈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바울의 서신중에 이렇게 정체성을 말 안한 서신이 이 두 권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히브리서를 썼다고 그러면 히브리서에서도 보면 정체성이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다 바울이 자기 정체성을 서술하였습니다,
네 번째 편지가 우리가 잘 아는 주후55년에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전서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사도라는 자기 정체성을 말했지 종이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이게 주후55년입니다 또 주후55년에 고린도후서를 쓰실 때도 똑같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그랬습니다, 보면 사도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했지 종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째 편지가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주후57년입니다, 더디어 이분의 시작을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그러면서 사도는 뒤쪽에 썼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면서 사도는 뒤쪽에 써놓았습니다, 종이라는 말이 제일먼저 튀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몇 년 있다가 주후60년에 빌립보서를 로마가택연금당해서 쓰실 때도 똑같이 그리스도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이렇게 나옵니다, 종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똑같이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나 이런 것에는 똑같은 옥중서신인데 종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이야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옥중서신인 빌레몬서에는 이분이 다른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스도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러면서 옥에 갇힌 자된 표현을 썼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표현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열한 번째로 주후64년에 디모데전서를 쓰실 때도 사도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열두 번째로 주후65년에 디도에게 편지를 쓸 때 디도서에서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그리스도사도인 디도에게는 자기가 종 되는 모습을 오래간만에 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편지 열세 번째 디모데후서를 순교1년 전67년에 썼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다음시간에 제가 왜 이렇게 사도를 강조 많이 하였나를 다음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부분은 이분 편지에 많이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유언적인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자기 정체성을 디모데후서1장1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야 내가 복음을 위해서 반포자다 반포자라는 말은 설교자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는 사도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교사다 그랬습니다, 이 세부분을 강조를 합니다,
자기제자 디모데에게 나는 설교하는 사람이야 복음을 위해서 그다음 나는 보냄을 받은 자야 여기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야 이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는 나는 선생이야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제 마음에 항상 염두에 두고 황용현 목사야 너는 누구냐 그러면 저도 바울처럼 설교하는 사람입니다 티처입니다, 그런데 보냄을 받은 사도입니다 그런데 나는 바울처럼 선생입니다, 이 말씀을 설교로서 감동을 주지만 그것을 정리해서 선생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바울은 그러니까 선생이었기 때문에 편지를 조직적으로 잘 쓸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편지를 보면 하나하나가 다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학자의 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학자의 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사야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런 은사를 받으신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지금 적고 계신 겁니다, 이 은사를 받으셔서 바울 외에 다른 사도들이 계시잖아요, 이분들이 자기네가 편지를 쓸 때 어떻게 자기네 정체성을 이야기했느냐면 우리 야고보를 보면 야고보서를 쓰시면서 자기가 예수님의 종이라고 먼저 시작을 합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입니다
상당히 의미가 깊은 게 야고보라는 사람은 야고보의 동생 유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인데 이분들은 예수님의3년 공생애 때는 예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예수님을 비난하고 그랬습니다,
너가 뭔데 이렇게 사도역할을 하느냐 뭔데 설교하느냐 하며 형제들이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후에 이분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이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이런 형제들이 지금 고백하는 게 뭡니까, 야고보가 자기 바로위형님보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또 유다도 마찬가지고 유다서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안했습니다, 전서에서는 그냥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했지만 후서에서는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책을 많이 썼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도 쓰시고 요한1서2서3서 또 요한 계시록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 다녔던 분인데 이분의 서신에는 한마디도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인사말에서 쓰지를 않았습니다, 오늘 강의 제목인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바울 종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베드(Ebed)라는 말인데70인 역이라고 주전300년에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번역할 때 에베드를 둘로스로 번역한 겁니다,
“둘로스 배”라는 말 들어보았을 겁니다, 둘로스라는 말이 종이라는 뜻입니다, 에베드도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간에 꼭 알아야 될 것은 종과 상전과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를 할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이 지금까지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누군가하면 성부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성부하나님의 종이라는 겁니다, 신기한 게 우리가 기독론을 공부했지만 예수님과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은 같은 수준에 같은 파워를 가지신 위만 다르지 파워나 위치나 다 같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할 때 하나를 헨(Hen)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서에서 다른 분야에서 그 아버지의 종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성서에서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우리가 공부를 해야 됩니다,
누가복음을 쓰신 누가가 표현한 게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표현한 것이 성령님이 자기에게 감동을 준 겁니다
사도행전3장13절에 또 3장26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한다, 그 종이라는 그 종 예수를 다시 말하면 성부하나님의 노예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또 사도행전4장27절30절에는 똑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 성부하나님의 종이라는 겁니다, 이사야에게 이 내용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사야는 주전700년입니다 이분에게 이사야서42장1절에 보면 하나님이 붙드시는 하나님의 종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시는 장면인데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종이라는 겁니다,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2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예수님께서 우리 잘 아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럴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러는 겁니다,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 하면 죽이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피하셨다 합니다,
그것이 마태복음12장9절부터16절인데 피하셨다 그래놓고 이 피하신 이유를 설명하는 겁니다, 뭘 설명하느냐면 피하신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씁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사야서42장1절에서4절의 말씀을 마태가 인용을 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을 때 성부하나님의 종인 예수님은 다투거나 이런 사람들에게 위협하거나 그러지 않고 그럴 때는 이분이 피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사야에게 예언을 하신 겁니다, 이 하나님의 종은 온유하시고 이래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피하신다, 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사야서42장1절부터9절은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하나님의 종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이사야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언적인 설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은 외치지도 아니하고 목소리도 높지 않고 소리를 지르면서 길거리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며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공의를 세우며 백성들의 언약과 이방인의 빛이 되며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나오게 하며 이런 표현을 이사야에게 하셨습니다, 누가 이런 모습으로 오십니까,
예수님이 그런데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종의 모습으로 이 종은 무엇입니까, 종은 주인의 말을 무조건 순종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부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면서 완전히 성부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이사야에게 이런 말까지 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소위 고난의 종의 모습을 이사야에게 고난의 종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을 주신 것이 이사야52장13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13절에는 그분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그러면서53장 전체다 그 유명한 이사야53장은 우리 다 알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의 고난의 종으로 오시면서 어떤 모습이냐면 연한 순 같고 모양도 없고 형체도 없고 창조주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그러면서 이분이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그 유명한 말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는 유명한 말씀을 왜냐면 이 창조주께서 성부하나님의 종이 되어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섬길 것을 이사야에게 예언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한다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을 나중에 바울이 깨닫고는 유명한 주후60년에 빌립보교인들에게 이 모습을 설명하였습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유명한 빌립보서2장6절에서11절입니다, 우리 알죠, 너희들이 그 예수님을 닮으라,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또는 형체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람의 모습으로 왔는데 종의 모습이 되셔서 그러니까 둘로스 종이 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신데 그래가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왜 죽으셔야 됩니까,
이사야에게 이미 다 예언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빌립보에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라는 종이 아니고 “상전”이라는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바울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바울신학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 예수님을 닮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포기하고 종이 되실 때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의 종입니까,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래가지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이제 높임을 받는다는 겁니다, 종의 신학입니다 특히 마가는 예수님의 고난의 종의 모습을 마가복음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10장45절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여기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누굴 섬깁니까, 하나님아버지를 섬기는 겁니다,
그분의 명령에 따라서 자기가 순종하는 겁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함이라 아버지께서 이렇게 결정하셔서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내었는데 아버지의 종으로 보내어서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있다, 그러면 이분이 마가복음14장49절에 그랬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고난의 종으로 하는 이유는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는 겁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지금 이렇게 고난의 종이 되었다 그러면 아하! 성경의 삼위하나님이 결정을 하셔서 이 성자하나님이 고난의 종으로 와서 이런 일들을 할 것을 이미 다 예언 하셨구나,
이렇게 우리가 볼 수 있는 겁니다, 그 예언의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지금 고난의 종이 되었다 고난의 종이 되셔가지고 십자가에 숨을 거두는 순간에 이분이 하신 말씀을 요한이 이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19장30절에 그러니까 이 플랜이 다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말씀을 잘 듣길 바랍니다, 이렇게 다 이루었다 하는 이 말에는 숨겨져 있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계획이 있어가지고 계획을 수행을 언젠가는 하기 위해서 계획이 언제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다 이루었다, 라는 말은 뭐가 이것을 계획을 한 것이 고난의 종으로 내려 올 것을 성자하나님이 그리고 계획을 했으면 어디에서 했으며 언제 이 계획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그런데 이분이 고난의 종이 될 것을 이렇게 하면 이것이 성서 어디에 기록되었냐면 우리 잘 알다시피 고린도전서2장7절 로마서16장25절에서26절 베드로전서1장19절20절 디모데후서1장9절 여기에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고난의 종으로 내려 올 것을 창세전에 준비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에게는 대단한 질문입니다
왜 창세전에 이 예수님이 아버지하나님과의 같은 위치에 계신 그 세력이 있으신 창조주하나님이 고난의 종으로 내려와야 되는가,
이것은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천국의 하나님나라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그래서 예수님이 이 신비를 너희들이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면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우리 삼위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 아십니다 미래도아시고 현재도아시고 과거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중요한 전제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약에 이분이 전지하지 않으신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으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뭘 알았냐면 장차 피조물들을 만들 텐데 사람을 만들 텐데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 텐데 이 피조물들이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지 못할 것을 왜냐면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은 피조물들의 한계성입니다 만약에 피조물이 완전한 존재가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기대치에100%맞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피조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렇게 만들어놓지 않으십니다,
피조물을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100% 같은 능력자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피조물은 한계가 있습니다,
연약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자기네 마음이100% 들지 않는 겁니다, 안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피조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피조물들이 이제 모든 것을 다 무료로 받게 될 때 예컨대 인생도 무료로 받고 의식주도 무료로 받을 것이고 모든 것을 다 무료로 받으면 창조주가 왜 창조했는지 창조의 목적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라고 전지하신 하나님이 미리 아신 겁니다, 무엇이던지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을 무료로 노력 없이 대가없이 받을 때 피조물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피조물들의 한계성입니다, 우리가 공기를 봐도 그렇고 우리가 햇볕을 봐도 그렇고 우리가 물을 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들인데 우리가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료로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은 이분들을 훈련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훈련 이 창조목적을 가치 있게 볼 수 있도록 그래서 훈련시키는 것은 간단합니다,
이 모든 무료 선물들을 다 한 번에 빼앗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빼앗아 놓고 는 이분들이 아이고 정말 필요한데 이것 다 빼앗아 버리면 영생을 빼앗아 버리고 환경을 빼앗아 버리고 다 힘들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이제는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창조주시여. 창조주시여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라는 마음까지 가지게 하였을 때 창조주 되시는 아들 예수님께서 이제 내려와서 이분들의 그 필요한 것을 채워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도록 그래서 예수님께서 삼위하나님께서 이것을 창세전에 이미 준비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바울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그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13장에 보시면 피조물들이 이것을 이해하려면 완전히 소화하려면 그것은 미스터리수준에서 소화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이 타락하면서 시간 속에 집어넣어 버린 겁니다,
아담이 그래서 우리가 그 시간 세계가7000년의 시간 속에다가 집어넣고는 이제는 예수님을 보내서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영원세계로 회복하는 그 계획을 세우신 겁니다, 그래가지고 너희들이 영원세계에 이제 들어와서 무엇을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창조를 왜 하셨나, 너희들아 피조물들아 창조의 목적은 창조주 삼위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다,
이럴 때 너희들에게 한량없는 행복이 만족이 너희들에게 오게 된단다,
이 훈련하는 기간을7000년 시간세계 속에 집어넣어서 하도록 준비 하신 겁니다, 이런 것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가 고난의 종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창조의 목적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깨닫게 하고 순종케 하기 위해서 이 삼위하나님 중에 두 번째 위되시는 예수하나님이 고난의 종으로 오실 것을 이미 예정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오셔가지고 이분이 철저하게 자신이 성부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단히 겸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보시면 예수님이 요한복음3장16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내가 이 세상에 왔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를 높이는 겁니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아버지와 나와 같은 수준인데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내려왔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시고 아주 정확하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24절에도 요한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많습니다, 5장24절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그랬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누구입니까 성부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이 말은 이분이 내가 아버지의 종이라는 겁니다, 그분 시키는 되로 한다는 겁니다, 또 요한복음5장43절에 나는 내 아버지이름으로 왔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37절에는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온다는 겁니다, 이게 칼빈주의의 예정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데 예정이 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나에게 그 사람들을 보내준다는 겁니다,
이분은 내가 실력이 있어가지고 너희들이 내가 자석처럼 내가 하나님이니까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꼭 아버지가 보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겸손하신 우리 예수님이십니까,
요한복음6장38절에서39절에 보면 계속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이게 삼위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를 숨겨놓고 아버지를 올리는 겁니다, 왜냐면 아버지의 종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분들의 사고방식들이 철저한 겁니다,
아버지의 종이니까 이분들은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온 것이지 내 뜻을 이루려고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단순하게 문자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뜻만이지 예수님의 뜻이 아니구나, 라고 볼 수 있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한 단면만 보는 겁니다, 이 안에 여러 가지 입체로 보면 역동적으로 보면 이것이 예수님의 뜻도 되고 성령님의 뜻도 되는데 이분들은 꼭 아버지의 뜻이라고 아버지를 올리시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분이 아버지의 종의 모습으로 왔을 때는 자기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6장44절에도 같은 말을 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는 겁니다, 기가 막힌 겸손한 말씀입니다, 아버지를 올리시는 겁니다,
요한복음10장17절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리라 다시 말하면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일은 피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이게 누구의 태도입니까, 아버지의 종의 태도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높이시는 장면이 요한복음10장29절에 저희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이분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주에 요한복음12장27절28절에 우리가 예수님의 인성을 공부할 때 이분이 이제 마음이 민망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자기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시고는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그런 말씀 우리 다 아시잖아요,
이분이 인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신 겁니다,
요한복음12장50절에는 이분이 종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왜냐면 내가 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 꼭 아버지가 시켜서 말한다는 겁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할 말과 내가 무엇이라고 명령할 것을 이런 것을 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이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가 이런 모습으로 왔다가 이제 승천해서 갈 터인데 내가 너희들을 예수님의 제자들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을 내 종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보세요, 예수님은 누구의 종입니까, 하나님아버지의 종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종의 모습을 다 실천하시고는 이제는 나의 이 종의 모습을 너희들에게 이제 전가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이제 내 종이 되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이라는 게 누구입니까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선택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그럽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총체적으로 이스라엘사람을 부를 때 뭐라고 부르느냐면 나의 종들아 그러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을 부를 때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약에서 우리크리스천들 보고 일반적으로 부를 때 예수님의 종들아 그래서 이 종들아 그랬는데 우리가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의 여호와하나님의 종들인데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분들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종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은 주인만 섬기는 겁니다,
주인의 말을 듣고 옆집 주인을 섬기면 안 됩니다,
자기를 데리고 있는 그 상전만 잘 모셔야 되는 겁니다,
상전이 시키는 것을 잘 듣고 그런데 이스라엘사람들이 구약에서 보면 여호와의 종들인데 여호와를 섬겨야 하지만 주로 누구를 섬겼습니까,
이방신들을 많이 섬겼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사람들이 옆 동네 나라들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보이는 우상들을 그것 때문에 상전께서 화가나가지고 앗수르 사람을 불려다가 혼쭐내고 그럴 때 마다 또 회개하고 바벨론사람들 불려다가 혼쭐내고 그럴 때마다 또 회개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편해지면 또 그런 짓 하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바벨론 다음에 페르시아제국 페르시아제국다음에 헬라제국 그다음에 로마제국 계속해서 이스라엘사람들을 이 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항상 그 안에는 소수가 있었습니다, 소수가 우상을 섬기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 남은 자들이라 이렇게도 표현하고 또는 제자들이라 이렇게도 표현하고요 또 선지자들이라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이 사람들 소수만 예수님을 섬기는 겁니다,
여호와하나님을 구약에서 섬겼던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종들인데 이 종안에는 두 종류의 종이 있음을 구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지만 크게 대변해서 두 종류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미스터리를 꼭 예표로 이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표로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예표가 꼭 달라붙습니다, 구약에서 그림자로 다 보여 준 겁니다,
예표로 그래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잖아요,
십계명을 받은 것이 출애굽기20장전체가 십계명을 받은 내용들이 적혀있습니다, 십계명을 이분이 받고는 그러니까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고는 21장에 십계명을 받은 후에 모세야 내가 너에게 이스라엘사람들의 노예제도에 대한 율례를 줄게 그러는 겁니다, 십계명을 받자마자 그다음에는 노예제도에 대한 율례를 던져주는 겁니다, 출애굽기21장1절에서부터6절입니다,
보면 그때 노예제도를 줄 때 뭐냐면 너희들이 히브리사람들을 노예로 할 때 히브리사람이 히브리사람을 노예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사람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노예화할 때 내가주는 원칙이 있다는 겁니다, 그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 원칙을 제가 간단하게 설명하여드리겠습니다,
모세야 이방인이 아니고 히브리사람들을 너희들이 노예로 만드는데 노예를 너희들이 사올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노예가6년 동안 너를 섬기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7년 째 되었을 때 이들에게서 돈 받지 말고 댓가 받지 말고 그냥 자유케 하라는 겁니다, 6년 동안 노예를 하다가7년 되었을 때 그냥 놓아주라는 겁니다, 나중에 이 말씀을 신명기에서 신명기는 뭐냐면 광야생활40년 끝나고 마지막 되었을 때 광야에서 태어난2세들에게 예전에 받았던 모세가 받았던 것을 다시 재 확인해주는2세들에게 하는 그 스토리가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우리말로 두 번째라는 소리입니다 같은 말인데2세들에게 예전에 그 말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가 신명기입니다
그리고는 그 말이 다 끝나고는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예제도도 확인을 다시 시켜주는 게 신명기15장12절에서18절입니다, 확인을 시켜주는 똑같은 이야기인데 약간 거기다가 살을 조금 붙였습니다, 뭘 붙였냐면6년 된 종을 이제 풀어줄 때7년 되어서 풀어줄 때 공수로 하지 말고 공수로 라는 말은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이들에게 아까는 돈 받지 말고 그 대신에 공수로 보내지 말고 양이나 동물들이 있으면 주고 가서 살 수 있도록 곡식도 조금 나누어주고 포도주도 조금 나누어주고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조건을 달았습니다,
6년 된 종이라고 제가 이름을 붙였는데 이 사람들이 종으로 왔을 때 단신으로 싱글로 왔으면 싱글로 다시 보내고 만약에 장가들어서 마누라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면 마누라도 함께 자유케 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노예로 있을 때 장가갔습니다, 성서를 보면 너무나 자상합니다,
노예로 있을 때 장가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누라와 자녀들은 보내지 말고 그 사람만 보내라는 겁니다, 왜냐면 올 때 단신으로 왔으니까 그래놓고는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종이 그러는 겁니다, 상전에게 저 상전을 사랑합니다, 내 처자들도 제가 사랑하니 나를 자유케 하지 마십시오, 저 상전의 집에 그냥 있고 싶습니다, 라는 종이 또 있다는 겁니다,
자유를 누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머슴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상전이 해야 될 일이 있는 겁니다, 이런 머슴이 있으면 상전이 이분을 데리고 재판장에게 가는 겁니다, 가서 재판장이 머슴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너 진짜 이집에 종으로 그냥 있겠는가, 물어보는 겁니다,
종이 그냥 있겠다고 그러면 문이나 문설주 앞에 데리고 가서 송곳을 가지고 귀를 뚫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귀를 뚫어 놓고는 하시는 말씀이 너는 영원한 귀 뚫린 종이다, 상전을 영원히 섬기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에베드인데 영어성경에는 본드 세번드(bond servant)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드(bond)라는 말은 붙는다는 소리입니다 연합되었다는 소리입니다 본드 세번드(bond servant)라는 것은 주인과 밀착이 되어가지고 연합이 되어서 이제는 떨어질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영원히 이제는 나갈 수 없다는 이런 종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언제 모세에게 가르쳐주었습니까, 십계명을 주시고 그 즉시로 이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 시스템이 우리가 이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 중에 히브리사람 중에 두 가지의 노예가 있다는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두 가지의 노예는 무엇입니까,
6년짜리 노예와 그다음에 귀 뚫린 노예 또는 귀 뚫린 노예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영원한 노예 또는 상전을 사랑하는 노예 이런 노예를 나중에 신약에 와서는 제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또는 남은 자 우상을 섬기지 않는 자 한 주인만 섬기는 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6년 종의 특징을 우리가 좀 봅시다,
6년짜리 종의 특징은 6년짜리 종은 숫자로 보면 다수입니다,
우리구약의 이스라엘역사를 보면 그럽니다, 다수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면 첫째 상전에게 자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또 이분들은 상전이 필요 없는 겁니다,
또 이분들은 스스로상전을 만들어서 의지합니다,
예컨대 잡신을 상전으로 만들어서 의지하는 겁니다,
그래야 안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분은 본인과 처자식의 생사화복이나 교육이나 행복을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구약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보면 이런 분들이 여호와하나님을 부를 때 뭐라고 불렸냐면 우리의 주님이시여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상전이시여 내 상전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여호와시여 이렇게 불렸습니다,
이미 자유를 얻어서 스스로 이제 살지만 입으로는 항상 옛 주인의 이름을 불렸습니다, 똑같이 우리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은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6년짜리의 종들이 상당히 많지만 우리는 그냥 입으로 주님. 주님 하는 겁니다, 내 상전입니다. 상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상전이 들으면 기분 나쁘시겠죠, 너희들이 나를 상전으로 취급안 하고 너희를 자유자가 되었는데 그리고 너희들 멋대로 사는데 왜 나를 자꾸 상전, 상전하느냐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상전이 아닌데도 진짜로 이분들이 급하면 상전을 찾습니다,
그래서 주여. 주여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럽니다,
그러면 상전이 이렇게 보고 있다가 너는 나를 상전 취급 안하는데 입으로 상전. 상전 하면서 주님. 주님 하면서 급하면 나를 찾아오는구나,
이분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을 한 게 있습니다,
하도 와서 이것 도와주세요, 내 자녀들 문제 있습니다, 건강문제 있습니다, 돈 문제 있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주님. 주님 하면 주님이 성가셔서 야 너 가져라 이러신다는 겁니다, 그런 예화를 예수님이 드리는 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지만 상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지만 급할 때마다 상전으로 잠깐 생각하면서 그럴 때마다 성가시게 할 때에 예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겁니다,
탕자의 모습으로 예화를 더는 겁니다, 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탕자를 사랑하잖아요, 똑같이 이분들이 다 마귀의 자녀들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이 고난의 종으로서 생명을 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이런 자녀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노예제도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세 단계 단계로 NO1,NO2,NO3,NO1믿음의 소유자들 그냥 하나님의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주되심을 믿고 그리고는 그냥. 그냥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NO1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NO2믿음의 소유자들은 뭡니까,
이분들은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말씀공부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전도도 하지만 이 모든 시각이 이 세상 행복을 위해서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NO2믿음의 소유자들이라고 그럽니다,
이 NO1,NO2믿음의 소유자들이6년짜리 종의 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이분들은 세상을 더 좋아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가끔 상전도 필요하면 또 섬기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두 주인을 섬기면 안 된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은 다른 크리스천들은 두 주인을 섬겨도 되지만 제자가 되려면 다시 말하면 귀 뚫린 종이 되려면 이것은 소수인데 두 주인을 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귀 뚫린 영원한 종의 특징을 몇 가지 보겠습니다,
이분은 상전을 온전히 섬기는 사람입니다 상전과 상전의집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상전과 상전의집을 떠나면 물고기가물을 떠나는 것과 같은 그러한 느낌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이분을 상전이 자기의집과 가족과 특히 의식주 건강 모든 일체를 책임진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상전이 그렇기 때문에 상전의 장중에서 평안과 행복을 느끼는 그러한 종입니다, 그리고는 항상 상전의 장중에서 나와 내가족의 생사화복이 달려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상전을 기쁘게 해주는 길은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상전을 의지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우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이게 운이 좋아서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잘나서 이런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그런데 만약에 저나 여러분들이 이 귀 뚫린 종으로 선택이 되었다면 이분이 서서히 이런 귀 뚫린 종이 되도록 이끄실 겁니다, 바울도 보면 모태에서 이미 이런 사람이 될 것을 선택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15절에 그런데 이분이 첫30년은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한 혼의 그릇훈련을 시키고 그다음에 개종 후에 22년이 되었을 때 지금 로마서를 쓸 때 이분이 이제는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다 공식적으로 알리는 일을22년 동안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면서 준비시키시면서 하다가 그때 와서 공식적으로 나타내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귀 뚫린 종이 되기 위해서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이분이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도 귀 뚫린 종이라고 간접적으로는 비추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10절에 보면 이때가 49년입니다
내가 귀 뚫린 종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런 말을 썼습니다, 이분이 그러니까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라는 말을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 간접적으로 지적을 합니다,
갈라디아서1장10절에 그렇지만 이분이 갈라디아서를 쓸 때 인사말에는 자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는 이 말을 안 썼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그 말까지 쓸 만한 그러한 마음이 아직까지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하나님의 이제 귀 뚫린 종이다 하면 두려움이 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모든 것을 다 집어던져야 되고 이제는 완전히 예수님께 붙잡혀 가지고 내 처자식 어떻게 해 별난 고민을 이분도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는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가서 있으면서 그 고민을 하였을 겁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가족들 다 집어던지고 한번 덤벼볼까 아니야. 아니야.
3년 동안 마음고생 하였을 겁니다, 그리고는7년 동안 고향에 가서도7년 동안 고민했을 겁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이 고민이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41년에 3층천 구경시켜주었잖아요 그래도 이분이 고민하는 겁니다, 이분이 어느 정도 그래도 고민이 해결되었다 했을 때 이제 안디옥교회도 주님께서 바나바를 통해서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래도 거기에서 그 고민을 하는 겁니다,
이것은 풀타임의 사역자가 되었는데도 자가기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갈등이 있는 겁니다,
이 갈등이 저나 여러분들에게도 다 있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분을 1차 선교여행을 한번 시키는 겁니다, 현장에 가서2년 동안 선교사 역할을 하면서 거기서 여러 가지의 모든 일어나는 일들과 또 그분에게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이분이 조금씩. 조금씩 아하! 내가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입장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1차 선교여행 갔다 와서 예루살렘총회에 가서 한번회의를 하고 난 다음에 갈라디아서를 쓸 때 갈라디아서에다가 자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는 쓰지를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네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이러면서1장10절에 간접적으로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겁니다, 이렇게 표현해 놓고는 이제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쓸 때 여기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그리고는 또4년 후55년에 고린도 전 후서를 쓸 때도 인사말에 그 말을 안 썼습니다,
이만큼 갈등한 겁니다, 이분이 뚫린 종이 되기 위해서는 이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분이1차 선교여행2차 선교여행3차 선교여행 마지막 끝을 내면서 로마서를 쓸 때 확신이 그래서 로마서1장1절 처음시작이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라고 담대하게 말하는 겁니다,
여기 까지 오는 데는 엄청난 갈등과 시련과 또 예수님의 오래 기다리심이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고 저도 지금 이 나이에 예수님이 여쭈어 보실 때 야! 황 목사야! 너 귀 뚫린 종이냐 이렇게 물어보면 제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아직도 아닙니다, 라고 아닙니다,
아직도 내 자녀 걱정하고 아직도 의식주 걱정하고 아직도 이 세상일 걱정하고 그러니까 아하! 황 목사 너도 아직 멀었구나,
그러니까 제가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앞으로 제가 제 욕심은 20년30년을 주님을 더 섬기고 그러니까 어느 때가 되면 주님이 야! 너 이제 공식적으로 말하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마 우리아이들도 다 커가지고 나이가 40,50되면 제가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때가 되면 이런 갈등이 바울에게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없다, 라고 생각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여러분들이 이러한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으면 주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주님께서 이쪽으로 가도록 인도하시는 겁니다,
조금씩. 조금씩 억지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바울처럼 말씀에 깊이 들어가고 또 때가 되면 바울처럼 선교지에 가서 현장경험을 하고 이방선교사로써 형장경험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1차2차3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현장경험을 하고 또 편지를 써가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장경험을 해야 되고 선교지에 자꾸 다녀야 되고 여러분들도 선교지에 자꾸 다녀야 되고 만약에 이 대열에 들어가시는 분은 그런데 다니기 싫어도 주님이 다니도록 그쪽을 생각하고 그쪽을 향해서 기도하도록 이끄십니다, 이것이 신기한 게 우리교회는 교회 플러스 선교센터입니다 안디옥교회처럼 그르려면 철저하게 말씀으로 훈련되어야 되고 또 현장경험을 하셔야 합니다, 현장에 가서 일을 말씀으로 무장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셀 모임에 앉아서 공부하셔야 합니다,
셀 모임은 말씀공부만이 아니고 앉아서 이 안에 있는 우리형제 자매들끼리 QT하는 아주 보배로운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주일 날 되면 아예 만사 다 제쳐놓고 주일날은 내가 하루 종일 마음의 각오를 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끝나고 뭐해야 되고 뭐해야 되고 뭐해야 되고 그런데 우선순위를 메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 뚫린 종이 되려면 주님께서 우선순위를 바꾸도록 인도하십니다, 강제로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이 주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인도하는 메시지가 나에게 오면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안하면 또 예수님이 기다리십니다, 편안하게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부담을 가지지 마시고 우리가 구약에서 귀 뚫린 종들이 여러 명 있을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하나님의 종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아브라함이 창세기26장24절에 하나님의 종이다 그랬습니다, 귀 뚫린 종입니다 야곱도 이사야서41장8절 44장21절에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14장31절에 신명기34장5절에 그리고 아브라함도 귀 뚫린 종이 되기 위해서75세까지 기다린 겁니다,
모세는80세까지 훈련시키는 겁니다, 다윗도 똑같이 사무엘하7장5절에 이사야도 이사야서20장3절에 그러면서 아모스에게 아모스3장7절에 말씀하시기를 구약의 선지자들이 다 귀 뚫린 종들이라는 겁니다,
이분들은 절대로 지금 구약의 사람들을 보면 잘 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스스로 노력해서도 이렇게 불리 움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부르셨습니다,
선택한 후에 때가 되니까 부르신 겁니다, 그리고 인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훈련시키기 시작하신 겁니다,
그리고는 준비시킨 다음에 진짜 귀 뚫린 종으로 이끄시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이분들이 귀 뚫린 종이 되었을 때 언제 이분들이 귀 뚫린 종으로 예정되었나, 이것도 우리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유명 인사들이 성서에 보면 그랬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 예레미야야 너는 귀 뚫린 종이 되기 위해서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 너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서1장5절에 야곱에게도 하신 말씀이 이사야서44장2절과 24절에 태에서 너를 귀 뚫린 종으로 내가 너를 이렇게 예정하였다,
다윗에게도 시편139편13절에서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형질이 이루기 전에 내가 너를 귀 뚫린 내가 준비했다는 겁니다, 신약에서 귀 뚫린 종 몇 사람은 우리가 보면 야고보도 그랬고 베드로도 유다도 지금 이 바울도 마찬가지로 귀 뚫린 종의 모습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시면서 더디어 본인이 내가 귀 뚫린 종이다,
라고 고백할 때 이분의 심정이 어땠을 까요 로마의 그 지식인들 앞에 로마에 날고기는 세계적인 영향력 있는 많은 분들에게 또 자기 제자들에게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럴 때 빼도 박도 못하는 완전 귀 뚫린 종이다, 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로 이분이 감정의 느낌이 어땠을 까 하고 제가 혼자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열 가지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나는 예수님의 영원한 노예다, 라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나의 상전이시다 세 번째 이 상전만을 나는 주인으로 섬기겠다, 네 번째 나는 두 상전을 섬기지 않겠다,
다섯 번째 나는 상전의 집만을 사랑한다,
여섯 번째 이 상전과 상전의 집을 떠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과 같다 나는 죽는다, 라고 고백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곱 번째 나의 자신과 내 가족의 생사화복이 이 상전의 장중에 있다 나의 모습과 내 가족의 생사화복이 이 상전의 장중에 있다,
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덟 번째로 이 상전이 나와 내 가족의 의식주 건강 안정 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은 책임지신다,
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겁니다, 아홉 번째 나는 오직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만 순응 하련다, 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열 번째로 마지막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만 영광 올리겠다,
이런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시고 로마서 내용에 보면 이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부터 이분이 옥중서신을 쓰실 때나 디모데 전 후서를 쓰실 때나 또는 디도서를 쓰실 때나 보면 이 사상이 깊이 있게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의 가치관과 사상이 아주 완전히 변해버린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 몇 마디 드리면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귀 뚫린 종이었습니다, 그렸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성부하나님을 상전으로 모시고 이 시간 속에 내려 오셔서 일을 다 마치시고 이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려가지고 너희들도 귀 뚫린 종이다 이것은 너희들이 잘 나서가 아니고 내가 선택을 했다 지금은 준비 안 되었지만 언젠가는 너희들은 귀 뚫린 종의 모습 이것이 다시 말하면 나의 모습 예수님말씀이 나의 모습대로 너희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나는 아버지에게 내 주장을 펼치지 않았단다,
아버지의 뜻만 펼쳤단다, 내 의견이 없었단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귀 뚫린 종이 될 것이라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로마서부터 시작해서 이분이 편지를 이런 모습을 가지고 쓰셨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고 유다도 또는 야고보도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우리가 귀 뚫린 종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 뚫린 종이라고 만약에 가정을 해도 아직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귀 뚫린 종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부터 시작해서 아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그 귀 뚫린 종으로 부르셔서 썼으면 그쪽 방향으로 끌고 가실 겁니다, 그런데 끌고 가시는데 어떤 사람은 지금 이쪽에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정도에 있고 각자 자기위치가 다릅니다,
그런데 뭘 보면 알 수 있습니까, 귀 뚫린 종인지 아니지를 소위 징조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사인, 이분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그러니까 이제 우리의 기도제목은 주님 제가 귀 뚫린 종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쪽 반열에 주님 저를 집어 넣어주시면 어떨까요, 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그리고는 내 삶 속에서 귀 뚫린 종의 징조들이 나타나도록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너가 모태에서 내가 이미 선택했단다, 이런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 마이 갓 모태에서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부르셨군요, 이렇게 응답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를 이렇게 훈련시키시는 군요, 그런데 이 훈련기간이 예수님께서 알다시피 특히 바울을 보면 이게 단기간이 아닙니다,
장기간을 훈련시키십니다, 훈련시켜서 훈련기간에 경험을 많이 하게 하시면서 성숙하게 하여 때가 되면 바울처럼 로마서1장1절처럼 나는 귀 뚫린 종이다, 라고 만방에 외치는 이런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한분. 한분이 조용히 옆에 계신 예수님에게 말씀하세요, 예수님 예수님이 귀 뚫린 종들을 예정하시고 선별하셔서 이분들을 통해서 창조의 목적을 만방에 전파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저에게도 이런 귀 뚫린 종의 선택받은 운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들은 나중에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만이 아니고 내 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내 자녀들 중에서도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모태에 안고 있을 때 자녀들 중에서 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 자녀만이라도 이런 귀 뚫린 종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바라면서 내 자녀 중에 이런 귀 뚫린 종이 될 때 주님 저에게 조금씩. 조금씩 계시해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이런 귀 뚫린 종의 반열에 들어와서 이 귀 뚫린 종에게 주신 특징들이 나의 삶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조용히 옆에 계신 예수님과 대화하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예수님이시여 귀 뚫린 종으로써 주님을 섬기다가 주님나라에 가셨던 이 종들의 고백이었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이 고백을 할 때 저들이 우리의 모습을 천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주님 저희들도 이 고백을 하다가 주님에게 가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후손들도 저희들을 따라서 이 고백을 하는 때가 오기를 간구합니다,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주님의 때가 되었을 때 우리 사랑하는 후손들도 이 고백을 하다가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을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 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이 우리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 하옵나이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XKhSISFk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