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호세아서
선지서17권 개관 12강, 호세아서
우리는 조금 특별하다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소리를 우리 예언서를 보면 다니엘도 그랬고 많은 분들이 그 직장에서 특별한사람들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그 특별할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의미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핍박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쪽을 다 기대하시고 특별하여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설 곳이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 이름 때문에 많은 족속들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고 나중에 죽임까지 당하리라 마태복음2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7절8절9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해당되지 않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 급에 들어오는 분들은 이것을 경험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다가 그랬습니다,
내 이름 때문이라 그랬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급습해오는 이때 내 이름이라는 말이 어떻게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됩니까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 진정한 그리스도가 없다 메시아가 없다,
라고 주장하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의 입장을 나타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주변에서 반응들이 옵니다 왜 불교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우리피부에 와 닿는 일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고 기독교인 중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사님도 신학자들이 거기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 때 살고 있기 때문에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체기독교인의 몇% 될 것 같습니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럽 같은 나라는 1-2%밖에 안 되고 그래도 가장 많은 나라가 아직도 미국입니다, 캐나다만 하여도 5%도 안 됩니다,
기독교인 중에 우리나라도 그 숫자가 퍼센트 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줄어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더 단단하게 이런 모임을 통해서 이 세대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준비하고 무장하는 계기가 되는 그러한 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걸로 보고 게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지난시간에 우리가 예언서를 보면서 주전722년 사건이 앗수르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망할 것을 그것을 미리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요엘은 주전830년분입니다 주전830년분인데 주전722년 사건을 미리 이렇게 알려 주셨으니까 830년에서 빼기 722년이면 108년이 됩니다,
그러니까 100년 전에 이렇게 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그리고 요엘에게도 바벨론포로사건 남 유다 패망이 주전586년은 몇 년 후입니까 약244년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여호와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을 미리 계획하시고 미리 알려 주시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요엘에게만 알려주신 게 아니고 또 다른 분들에게 계속 알려주시는 겁니다, 알려주실 때마다 너희들 이일 당하지 않게 너희들이 죄상이 많아서 그렇다 너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냐면 창조목적을 위반한 죄다 이죄 때문에 이런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회개하라 이런 말씀을 했는데 안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 가지고 이방나라사람들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여기에 염두를 두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거울이 되어가지고 신약 때 교회모습이 그렇겠다는 것을 크리스천들의 모습이 그렇겠다는 것을 미리 예언해 주신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완전한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보고 미스터리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앞으로 보지만 끊임없이 똑같은 메시지를 시대에 따라서 선지자들을 불려가지고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끄떡도 안 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끄떡도 안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왜냐면 다 회개해버리면 예언한 주전722년이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지금 거꾸로 보면 주전586년 사건이 다 회개하여 버렸으면 그것이 이루어집니까, 그렇게 보고 하실 때 만약 이렇게 하면 주전586년 사건이 올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하면 주전722년 사건이 올 것이다 라면서 만약이라는 말을 안 섰습니다, 회개하라 너희들에게 이런 일이 올 것이다,
라고 직선적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회개하면 안 올 거다,
라는 그런 투가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어떤 디자인이 있어가지고 그 디자인으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성경공부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연습을 지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선지자가 요엘이었고 두 번째 선지자가 요나였고 특별히 앗수르 원수나라에 선교사로 갔잖아요,
안 간다고 한 자체도 그게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안 간다, 안 간다,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어떤 때는 요나 같은 사람의 행위를 할 때도 전지하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걸 인정해주면서 시키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요나 같은 경험을 하게 하면서 더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경험도 주시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성경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삶과 적용시키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를 통해서 직접 뭘 보여 주었습니까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본인이 직접 현장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왜 오시냐면 이분이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훈련시키는 그 일에 주체가 되시는 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다,
그래서 우리가 요나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세 번째로 아모스에 대해서 우리가 공부하였습니다,
아모스시대는 주전760년에서 748년입니다, 요엘에게 주셨던 때보다 약80년 뒤에 분인데 요엘을 통해서 그렇게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아모스시대에 보면 더 나아진 것이 없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나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회가 엉망이 되고 지도자들이 부패해지고 소위 지도자들 중에서도 특히 제사장들이 부패해지고 정치하는 왕들 모습도 다 우상섬기고 백성들이 다 우상섬기고 그리고 사회상을 보아도 다시 말하면 수직계명도 안 지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용해서 돈 있는 분들이 그 돈 빼앗아가고 또 고아나 과부들을 별로 사랑하지 않고 이런 사회상을 우리가 쫘악 봤습니다, 이게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구약을 보실 때는 예수 믿는 사회를 보셔야 됩니다,
그것이 지금 똑같이 신약사회에서도 교회 안에 크리스천공동체 안에 문제점이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시해주는 겁니다,
크리스천공동체 안에 부자는 더 부자노릇하고 가난한사람 돌보지 않고 그러니까 크리스천끼리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천가난한사람 돌보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 아무리 돌보아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들 다 어디 갈 겁니까,
투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목적이 있어서 돌보는 겁니다, 뭐냐면 그분들을 예수님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돌보는 거지 그것이 주체가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구원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독교가 훨씬 다 많습니다,
우리 선교사들도 가가지고 복음전하는 것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복음은 안전하고 이런 사회사업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생각은 하다보면 이게 기독교기관이니까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겠지 하는 소망을 가지고 하는 그런데 복음을 안 전하는 겁니다,
이것은 제가 볼 때는 효과적인 투자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지금 구약에서도 보면 이스라엘사람들 유다사람들 보고 너희들 끼리 서로 도와주고 하라고 그랬지 너희들이 옆에 있는 애굽 사람들 도와주어라 앗수르 사람들 도와주라 바벨론 도와주라 이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모스시대가 끝나고 네 번째 선지자시대가 왔습니다,
네 번째 선지자가 호세아입니다 이분은 주전755년에서 주전710년입니다
그러니까 주전710년이니까 이미 주전722년이 지난 후입니다 이분은 주로 어디로 향해서 예언을 하였느냐면 북이스라엘을 상대로 이주 강하게 예언하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유다도 일부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부 유다에게 예언한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호세아1장7절 11절, 4장15절, 5장5절, 10장13절, 6장4절 11절, 11장1절2절, 12장2절 그런데 주로 이스라엘에 문제점들 가지고 말했습니다,
이분은 장수가 그래도 꽤 많습니다, 14장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는 대선지서에 들어갑니다, 호세아는 이름자체가 우리에게 관심을 주는 이름입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이 구원이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똑같이 구원자라는 이름이거든요 마태복음1장21절에 그래서 호세아라는 이름이 예수님의 그림자 같은 이름입니다,
구약에 여호수아도 같은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호세아가 구원하는 그런 이름입니다, 호세아 아버지이름은 1장1절에 보면 브에리 라고 유대문화에서는 항상 아버지이름을 꼭 적어놓습니다, 누구의 아들이다 그래서 이걸 말해서 부계사회라 합니다, 누구의 엄마의 이름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여자이름들이 나옵니다,
부친이름이 브에리 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성경에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호세아라는 분은 요나와 함께 북쪽 스볼론 족속이 갈릴리호수 주변입니다 요나와 같이 북이스라엘출신입니다
나머지 선지자들은 다 남쪽 유다출신들입니다 그래서 호세아하고 요나하고는 북쪽출신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분이 구체적으로 고향이 어디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서학자들이 이분은 북이스라엘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는 시작하는 1장부터 신기한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다fms 사람들과 조금 다릅니다,
뭐냐면 이분의 부인이름을 거론합니다, 부인 이름이 고멜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 여자이야기가 처음에 주욱 나옵니다,
고멜은 소위 우상을 섬기는 유대인의 하나의 표상으로 나타납니다,
고멜이라는 여자는 음란한 여자의 모습으로 남편은 괜찮은데 그래서 고멜이라는 이 여자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름이 이스르엘이라는 아들입니다 이 이스르엘이라는 뜻이 뭐냐면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이름 속에 이 여자가 성경에서는 여자하면 교회를 이야기하고 또 크리스천들을 항상 상징합니다,
신약에서는 그래서 고멜이 신약에서의 우상을 섬기는 교회와 크리스천의 하나의 표상으로 하면서 또 유대인들의 표상으로 구약에서 이 여자가 우상을 섬기는 그 일을 하는데 동참했기 때문에 이 여자들의 자녀들을 흩으려 버린다는 그런 상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여자의 이름 속에 그리고는 딸이 또 하나 있는데 딸을 보면 로루하마라 그랬습니다, 로라는 뜻은 아니다,
라는 뜻인데 로루하마 라는 뜻은 뭐냐면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들 이름도 흩으신다,
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주전722년을 자녀들 이름 속에서 보여주고 딸 이름 속에서도 주전722년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두 번째 아들 이름을 로암미라 그럽니다,
로라는 뜻은 유대말로 아니다, 라는 뜻이고 암미(Ammi)라는 뜻은 내백성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미가 어떤 사람은 구약에 나오는 암미라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아미가 그기에 M이 하나 더 붙으면 암미입니다,
암미라는 말이 이스라엘사람들을 사랑할 때 쓰는 내 사랑하는 내 자녀들아 할 때 암미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아미가 그런 측면으로도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미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여기는 로암미입니다 뭐냐면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 백성이 아니다 이것도 주전722년을 예표로 자녀들을 통해서 이렇게 보여 주시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호세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때의 시대적인 배경을 잠깐 보시면 호세아서1장1절에 시대적인 배경을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호세아서1장1절에 보면 유대나라 왕들 이름을 쫘악 적어 놓았습니다, 그다음에 이스라엘나라의 왕 우리가 지난시간에 공부해서 조금 익숙해졌을 겁니다, 유대나라 왕들 이름을 거기에 거론했습니다,
10대 웃시야, 11대 요담, 12대 아하스, 13대 히스기야 왕 여기서 괜찮은 왕이 누굽니까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다음에 50%우상을 타파한 왕은 웃시야, 그다음에 요담 왕까지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아하스 왕만 빼놓고는 괜찮은 왕들이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호세아1장1절에 보면 북이스라엘의 왕을 지칭합니다,
그 당시에 보면 12대 요아스 왕의 아들 13대 여로보암 2세입니다,
주전793년에서 주전753입니다, 이때 두 나라가 임금이 다릅니다,
여로보암 2세는 알다시피 안 좋은 왕입니다 여로보암2세가 주전753년에 끝냈습니다, 그런데 19대왕 호세아9년이 주전722년입니다 그 사이에 짧은 기간입니다 753년 빼기722년 하면 약30년입니다,
30년 전에 호세아를 통해서 주전722년 사건을 예언을 했는데 그러니까 어떤 예언은 100년 150년 후 예언도 하지만 그 예언들이 주욱 이어 오다가 지금 호세아 때는 실제로 일어나기 바로 코앞에서 예언하시는 겁니다,
그 사이에 왕이 몇 명이 있습니까, 14대 스가랴, 15대 살룸, 16대 므나헴, 17대 브가히야, 18대 베가. 19대 호세아 6명의 임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6명의 임금이 있는데 성경을 주욱 보면 6명 중에 4명이 살해당했습니다, 아주 격동이 심했던 때입니다,
마지막 소위 산통을 할 때 이 사회가 아주 시끄럽고 똑같이 그것을 예수님이 항상 무엇이라 합니까, 산통을 산고라고 그럽니다, 산고가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산고가 있었습니다,
6명의 왕 중에 4명의 왕이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중에 16대 므나헴 왕 이 사람만 아들에게 왕권을 제대로 넘긴 사람입니다 나머지는 살해당하고 그런데 마지막 호세아 왕은 이 사람은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고 왕국을 앗수르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이렇게 보면서 우리가 큰 그림으로 볼 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아픔을 주어서 이런 아픔의 역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목적이 지금 7000년 시간 세계로 우리를 던져 놓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게 큰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속에 떨어뜨려놓고 그중에는 두 족속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족속이 있고 사탄의 족속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족속안에도 아브라함의 자녀들 중에도 유대인이 있고 아랍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역사무대 속에서 이런 우상을 섬길 때 마다 고통을 당하는데 그럴 때 마다 고통을 주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면 아랍 쪽에서 고통을 주는 겁니다, 완전히 이방사람들을 또 사용하시고 그래가지고 목적이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상을 섬기게 하면서 그것 때문에 혼쭐을 내주는 그러면서 나중에 회복을 약속하시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으면 꼭 회복을 약속하시잖아요,
이러면서 뭐냐면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들이 알아라,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아라,
다시 말하면 여호와라는 뜻은 뭐냐면 예수님입니다 또 더 로드 여호와라는 뜻은 구약에서는 아도나이 본래 뜻은 계약하시는 분 그런데 그 여호와가 누구냐면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는 겁니다,
이사야서44장6절에 다시 말하면 인간시간 역사에 시작이요 끝이라는 겁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의미에서는 지금 시간세계에서 이야기할 때 시간의 시작이고 끝이고 또 영원차원에서 보면 영원에서 영원이고 거기에 주인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런 훈련을 시키는데 특히 주전722년 사건 약30년이 아주 그냥 격동의30년 엄청난 아픔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면 우리 예수님의 재림 전에도 예수님이 마태복음24장7절에서10절을 주욱 보면 예수님이 특히 8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너희들이 내가 오기 전에 지진이 많이 나고 전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기근이 일어나고 너희들끼리 너희들 핍박 많이 받고 세상이 아주 살 곳이 못되는 이것이 뭐냐면 산고의 시작이다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산고가 여러 종류로 나타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예언하셨는데 항상 산고의 신학을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또는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룰 때 꼭 그전에 산고를 경험해서 아픔을 통해서 겸손해지게 만들고 그리고는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만드는 여기서 지금 주전722년이 북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열 족속들 신약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아픔을 경험할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시고 과거 2000년 신약의 기독교역사에 보면 항상 이런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는 그다음에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유래 없이 크리스천들이 발 디딜 곳이 없게끔 되어 버린 겁니다,
이제는 기독교 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야기하면 이미 선진서구나 북미지역은 이미 목사님들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게끔 되어 버렸습니다, 엄청난 핍박입니다 그다음에 동성애나 이런 것에 대해서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이것은 법적으로 고소를 당하고 목사님들이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고 동성연애자가 결혼하는데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하면 목사님이 주례를 거부하면 그 목사님은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20만 불 낸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2억입니다 지금 미국이 그렇게 변하고 있고 캐나다도 그렇게 변하고 있고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이런 모양으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그 법을 통과 할 겁니다, 그것이 왜 그럴까요,
이 산고가 우리 눈앞에서 우리같이 이게 아니다,
라는 사람들은 코너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말하는 자체가 이제는 법적으로 말 못하지만 하는 사람이 따돌림 당하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녀들이 심각한 겁니다, 자녀들을 사랑하시면 우리가 똑바로 서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자녀들을 돌 보셔야 되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제가 지금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녀생각하면 주님 우리 아이들 우리 손자 손녀들까지 눈을 가려서 그런 것들 보자 못하게 하고 그다음에 영적지혜와 분별력으로서 이것을 구별할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제가 열심히 주님 섬기지 않습니까, 주님이 책임져 주세요,
가끔가다가 그 한마디씩 제가 합니다, 그것은 자주 안 합니다,
왜냐면 한번만 들어도 예수님은 됩니다, 자꾸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알았다. 알았다 이놈아 잠잠해라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말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내 마음을 주고 내 삶이 주님 앞에 가 있을 때는 주님이 그다음부터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 후손들 내가 돌볼게 그러니까 우리 후손들 보면 다들 예쁘게 자랍니다, 그런 가치관에 물들지 않습니다, 함부로 아이들 미국에 유학 보내거나 이런 것도 조심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끼고 있어야 됩니다,
호세아서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했다는 단어를 씁니다,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성경구절은 호세아서2장4절8절, 4장11절, 5장7절, 7장13절, 9장1절10절, 10장1절에서3절, 11장1절2절, 13장1절에서3절 이렇게 자주 이야기하는 겁니다, 호세아를 통해서 상령님이 예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 말해라 이 말해라 그런데 뒤에 나오는 여섯 왕들이나 백성들이 더 심하게 그 말을 안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가 말했다고 그래서 이게 되는 게 아닙니다,
더 심해지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외치지만 우리가 외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 소위 남은 자 그룹들은 더 눈을 크게 뜨고 여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르지만 대부분의 하나님자녀들은 NO1, NO2에 속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기에 빠지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더 이 메시지에 신경 쓰고 안하려고 하면 더 핍박을 하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예수 믿느냐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디지털시대다, 아날로그시대가 아니야 디지털시대다 이러면서 별난 소리 다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말이 없고 이제는 코너에 혼자 숨어서 왕따 당하고 이러고 있어야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안되려고 악을 쓰도 코너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죄상이 뭐냐면 특히 호세아가 그러는 겁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니까 이런 짓을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삼위일체가 약하고 기독론이 약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호세아서4장2절6절, 5장4절, 6장3절에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겁니다,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종교다원주의로 가버리는 겁니다,
자유신학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이런 것을 이미 예수님이 감람산설교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이제 예수님이 재림 전에 삼위일체가 변질되고 기독론이 변질되는 사건이 우리 눈에 다 보이고 있잖아요, 이것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호와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지식 훈련을 철저하게 받아야 되는 겁니다,
세 번째는 7장10절에 그랬습니다, 교만하다 그랬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여호와 메시지에 호세아의 메시지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들이 크리스천들이 관심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 재린 전에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바빠서 자기하는 일이 바쁘고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관심이 없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잖아요,
교회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잘 지내냐 그저 가정문제 해결하고 자녀문제 해결하고 내 마음 편하게 해주고 카운슬링해주고 이게 카운슬링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머리 굴려가지고 카운슬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카운슬링학과가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서방사회에서는 우리나라도 지금 그렸습니다,
신학교에 학생들이 제일 많은 학과가 어디냐면 카운슬링 과입니다,
성경구절을 여기저기 뽑아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정문제 있는 사람들 우월한 사람들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 부부간에 문제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카운슬링 하느냐 이렇게 가르쳐주면 들을 때 들을 만합니다,
크리스천 카운슬링은 성경을 가지고 카운슬링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멘이 아닙니다, 그게 들을 것 같은 데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면 삼위일체와 기독론이 없으니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집어넣어야 되는데 쓸데없는 것 집어넣고 테크닉을 집어넣으니까,
안 되는 겁니다, 이게 변질되어 버리는 겁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그것 밖에 길이 없습니다,
제대로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처음부터 다시 공부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7장11절에 죄상을 이런 표현을 합니다,
너희들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가 없다는 겁니다, 지혜의 근본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문제는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장해야 된다는 겁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왜 생겨났습니까,
삼위일체와 기독론이 변질되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자유주의가 왜 그렇습니까, 다 그런 겁니다, 교회가 왜 잠을 잡니까,
이 부분이 약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주전722년 사건이 일어날 것인데 그러면서 호세아서에서 주전722년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12번을 반복해서 말을 했습니다,
12번을 ①1장4절 ②4장9절 ③5장1절 ④7장11절 ⑤8장1절 ⑥8장8절 ⑦9장3절 ⑧10장6절 ⑨11장5절 ⑩11장14절 ⑪13장15절 ⑫13장15절 이렇게 12번을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주전586년 예언은 ①2장6절에서7절 ②2장13절 ③5장5절 ④5장8절에서15절 ⑤6장4절5절 ⑥6장10절11절 ⑦8장14절 ⑧12장1절2절 이렇게 8번 했습니다, 그리고는 감사한 것은 항상 너희들은 고생하지만 회복을 해줄게 회복을 하시는 예언이 있습니다,
호세아가 회복을 약속한 게 7번 회복을 하였습니다,
①2장7절 ②2장16절 ③3장1절 ④6장1절에서3절 ⑤11장11절 ⑥13장14절 ⑦14장1절 이렇게 고생을 시키겠다고 해놓고는 왜 회복을 약속합니까,
다시 말하면 병 주고 약주는 이게 우리가 인간적인 의미에서 보면 기독교하나님은 병 주고 약주고 하는구나, 똑똑한 사람은 호세아서를 읽다보면 병 주고 약주는 이야기가 있구나, 왜 이렇게 병 주고 약주고 합니까,
지금 이게 뭡니까 훈련입니다 이 개념은 창조목적이 얼마나 중차대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교육훈련입니다 그래서 한번 창조목적을 우습게 하는 행동을 한 다음에 혼쭐을 내어가지고는 그다음에 수고했다 이놈들아 그리고는 다시 회복해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셔가지고 이렇게 지금 하고 계시는 겁니다, 거기에 지금 선지자들을 지금 17명을 동원해가지고 계속 반복적인 메시지를 이런 모습으로 저런 모습으로 보내는데 400년 이스라엘역사에서 이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냥 이야기 거리로 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현장에서 역사 안에서 역사가 그렇게 돌아가도록 역사 안에서 이일을 세우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이게 실감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감나게 우리에게 지금 그림자로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이게 누구를 위한 겁니까,
신약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겁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가르침을 누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인 겁니다,
또 아랍사람들을 시켜가지고 그러니까 나중에 신약에 와가가지고 이스라엘사람들과 아랍사람들이 이 훈련을 한 다음에 그분들이 어떻게 합니까,
또 까만 눈이 되어가지고 예수님을 모르게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래가자고 거꾸로 또 어떻게 합니까, 기독교인들이 이 사람들을 핍박하는 겁니다, 기억나십니까, 반유대주의가 핍박을 하는데 거기에 누가 끼어가지고 핍박을 같이 합니까 아랍이 또 같이 끼어가지고 그러다가 이방인들의 숫자가 다 차면 다시 회복하면서 유대인들이 눈이 뜨일 것을 그러니까 아픔을 통해서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지만 생명이 살아나는 원칙이 다 여기에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 예언서를 같이 공부하면서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감지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지하여 주변에 있는 여러분들의 형제자매들에게 가르쳐주는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퍼뜨려야 되는 겁니다,
이것으로 호세아서를 마치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97chafvg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