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암모스3장7절, 선지서의17권 분류
선지서17권의 개관 1강, 선지서의 17권 분류(암3:7) 2017년11월24일 말씀
이제 선지 서에 대해서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제가 서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지서하면 우리 알다시피 대 선지서 그걸 영어로 메이저 프로펱스(Maior Prophets)라 그럽니다,
그다음에 소선지 서를 마이너 프로펱스(Minor Prophets)라 그럽니다,
이 선지서는 어떤 것이 중요 한가 아닌 가를 가지고서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성경기록자들이 성경을 만든 분들이 어떤 기준으로 했냐면 두께 얼마냐 두꺼운가에 따라서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대선지서는 이사야서가 66장이 있고 예레미야서52장이 있고 에스겔서가48장이 있고 호세아서14장이 있고 그리고 스가랴서가14장 이렇게 다섯 권을 대선지서라 그럽니다, 그리고는 소선지서가12권이 있는데 두께에 따라서 제일먼저 다니엘서가12장이 있고 아모스가9장이 있고 미가서가7장이 있고 예레미야애가5장이 있고 요나서가4장이 있고 요엘서가 3장이 있고 나훔서가3장. 스바냐서3장. 하바국3장 말라기3장. 학개2장 오바댜1장 구약에서 제일 조그만 성경이 오바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조그만 성경이 학개입니다 우리가 이제 질문이 있는데 왜 우리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이렇게 택하였는가, 그리고는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모스3장7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행동을 하시기 전에 항상 선지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다 그랬습니다,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지 않고는 어떤 일을 하지 하지를 않으신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3장7절에 그리고는 선지자는 어떻게 선택하시냐면 그러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선지자는 내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형성되기 전에 미리 알고는 예지하고 그리고는 때가 되어 예정하시고는 부르신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떤 좋은 행동 때문이 아니고 행위 때문이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분이 선택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예언자들을 선택하시고는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미리 말씀을 하실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그렇다, 라고 우리가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이것은 무슨 말씀이냐면 하나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실 때 피조물의 한계성인 데요 하나님이 어떤 지시를 할 때 모든 피조물들이 경청하지를 않을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을 것을 아십니다, 왜냐면 우리 피조물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보이는 것에 그렇기 때문에 이 피조물들의 음성에 그분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에 지배를 받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해서 지배를 받지 않는 그런 속성 때문에 미리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하나님이 마음을 전해주는 겁니다,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전해주는데 이전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 선지자는 누구에게 말하느냐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탄의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지자의 음성을 듣고는 경청하는 그래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나중에 순종하느냐 안하느냐를 잣대를 가지고서 나중에 결정을 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왜 그러느냐면 꾸중을 줄 사람은 주어야 되고 칭찬을 할 사람은 해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잣대가 필요한데 하나님의 요구에 선지자를 보내가지고 선지자가 잣대역할을 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개를 보내서 이런 말을 했잖아 그런데 왜 너희들은 안 들었나, 라고 할 때 그러면서 꾸중을 줄 수 있는 또는 칭찬을 줄 수 있는 잣대의 의미에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공의라는 것은 재판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결정하려면 꾸중을 하려면 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을 설정하는 데서 선지자가 하나의 도구로 사용 받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개 선지자를 통해서 말했잖아 그런데 너 왜 이것 안했니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 스스로가 그분에게 잣대를 가지고서 스스로 그분에게 소위 덤벼들게 되었습니다, 너 참으로 잘했다 너 이놈아 그러면서 꾸중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보여주기 위해서 선지자가 어느 시대나 꼭 있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때를 따라서 신기하게도 소수만 그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왔던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주욱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신구약을 통해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청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구약에서 그것을 다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미 구약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날 신약의 모든 상태를 우리가 이해를 하고 조명을 하려면 구약에서 이렇게 했다, 라는 거울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약을 소화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공부를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였느냐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지는 아주 단순합니다, 간단합니다,
창조의 목적에 순응해라는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인 자녀들인 피조물들에게 창조의 목적에 순응해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십계명에서 수직계명을 그래서 수직계명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창조하실 때 피조물들을 통해서 섬김을 받으시려고 창조를 하였습니다,
이분이 우리가 그것을 이사야서43장7절 또는 21절에 우리 알다시피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라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칼빈도 그러잖아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만들어졌다 성경에도 분명히 말하고 우리도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게 위해서 또는 이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피조물들을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피조물들은 뭡니까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분의 마음에 합당한 행위를 하면 하나님이 만족해하면서 기분이 좋으셔가지고 이분이 우리에게 자기의 기분 좋은 것을 그 행복함을 우리에게 부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신분이신데 더 이상 가질 필요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본인이 가지고 행복하신 것을 기분 좋으신 것을 우리에게 다시 다 부어주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행복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피조물들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의 행복을 마음껏 나누어 주면서 이 피조물들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싶은 것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아담부터시작해서 주욱 지금까지 보면 피조물들이 이 목적대로 살지 못했다는데 상당한 이슈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신 목적이 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아 하나님의 자녀들아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 창조의 목적대로 한번 살아봐라 그러면 상당히 행복해질 거랍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의 목적대로 살지 못했던 유대인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라하고 그분들을 통해서 다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예언서들입니다 예언서들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아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라, 왜 눈에 보이는 타종교의 유상들을 섬기느냐 그러지 말아라,
라는 메시지가 선지자들의 메시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지자들이 그런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다수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경고를 경청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구약에서 주욱 보겠지만 경청을 하지 않고 창조목적에 위반되는 행위를 아주 철저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런 말씀하십니다,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제국들을 강대하게 만들어가지고 너희들을 공격하게 할 거다, 그래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거다, 라는 메시지를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그 예언이 이제 성취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역사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자세히 볼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선지자들의 메시지들을 보낼 때 보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 메시지에 응답하는 모습들이 있는 겁니다,
선지자들도 다시 말하면 창조의 목적에 우상을 섬기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구약에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그루터기들이라고 그럽니다, 그루터기라는 말은 뭐냐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숨겨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똑같이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때가 되면 그 숨겨져 있는 그루터기들이 순이 나가지고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남은 자들이라 표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우리 눈에 보이거나 또는 일반기독교인이거나 세상 사람들까지도 저 사람은 참으로 괜찮다 저 사람은 참으로 유명하다 성공했다
이런 사람들은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왜냐면 그루터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에서 보면 그루터기들 지금 우리가 17명의 선지자들을 보아도 거기에 또 엘리사 엘리야를 포함하여 20여명의 알려진 선지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누구에게 핍박을 받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겁니다,
이방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나중에는 돌로 맞고 죽임까지 당한 겁니다, 신기한 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핍박을 받는 겁니다, 신기한 게 이것이 그대로 신약교회에도 적용이 그대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신약교회에서 선지자다 그루터기다 남은 자다 제자다 하는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또는 기독교 안에서 인정을 못 받고 미움 받고 나중에 핍박받고 죽임가지 당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과거 2000년 기독교역사를 보면 이름난 사람만 역사책에 거론이 되지 진짜 이름 없이 빛도 없는 사람은 역사책에 거론 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겁니다,
이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구약을 공부하다보면 보입니다, 특히 우리 17권의 선지 서를 우리가 볼 터인데 보면 이런 미스터리들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또 선지 서를 읽다보면 어떤 사람들이 나오느냐면 소위 기독교인들인데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인데 아브라함의 후손들인데 진짜 선지자들이 있느냐면 또 그 안에 가짜 선지자들을 또 등장시킵니다, 그냥 이스라엘사람들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혼돈 하도록 하나님이 그걸 또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짜 선지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런 가짜 선지자들을 기독교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이렇게 허락하였을까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가짜선지자들을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들이 많은 겁니다,
가짜들이 진짜들처럼 보이는 겁니다, 분별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짜가 있어야지만 진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짜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짝 통이 있어야지만 진품이 진품의 가치가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가짜들을 많이 허락하시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분별력을 가지면 성경 안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가르치는 그 성경의 메시지를 보면 분별력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는 것도 이런 분별력을 가지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선지 서를 보면 구약에4000년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이4000년에서 선지서는4000년의 뒤 쪽에서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이4000년의 뒤 쪽 부분을 우리가 나중에 자세하게 볼 것입니다 우리가17명의 선지자들을 보면17명의 그분들의 사역의 내용이 다릅니다, 다 같은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대가 다르고 17명이 나중에 20명까지 엘리야. 엘리사 이렇게 보면 약500년 동안20여명의 선지자들이 활동을 했습니다,
약500년 동안 이분들의 시대도 다르지만 메시지의 방법도 다르고 또 표현도 다릅니다, 그리고는 사역의 범위와 규모도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당시 그때 사건들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더 확대를 해서 시간적으로도 그 당시만 해도 주욱해서 신약3000년 심판 때 까지를 짜악 보면서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 사역범위도 다릅니다, 사람마다 주님이 주신 은사가 다른 겁니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른 겁니다, 영적각도도 다르고 또 영적 볼륨도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1장으로 끝나고 어떤 분들은 50장 52장 어떤 분은66장까지 모든 부분에서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딱 하나입니다 창조의 목적을 위배한 사람들에게 창조의 목적대로 살라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을 훈련시키느냐면 주변에 강대국들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변의 강대국을 앗수르제국이니 또는 바벨론제국이니 이런 제국들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그런 일들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보면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사라를 통해서 나온 족속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그럽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을 히브리사람들이라 그럽니다,
이 사람들을 누가 훈련시키느냐면 이스마엘과 그두라 자녀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갈과 그두라의 자녀들 하갈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마엘입니다,
그두라도 6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이야기 했지만 이 두 여자 분들의 후손들을 이스마엘은 12명의 아들들 그두라도 6명의 아들들이 18명의아들들이 성경학자들은 아랍사람들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아랍사람들을 통해서 사라의 후손들을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앗수르도 아랍의 후손들입니다 바벨론도 아랍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을 주욱보면 다 아랍의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분들이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사용하셔가지고 한 족속은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라하고는 역사 속에서 드라마의 주연배우처럼 그 목적대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잘 안사는 그러한 모습들로 보여주고 또 한쪽은 조연급으로 잘 안살 때 혼쭐을 내는 그러한 어시스트(assist)배우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이 구약의 역사드라마가 흘려가는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소위 선지자들 또는 그루터기들 또는 남은 자들 이런 사람들은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에게 핍박을 받느냐면 아랍사람들에게 핍박받는 게 아니고 누구에게 받습니까,
동료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겁니다, 묘한 관계가 성경 속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사람들을 훈련시킬 때 주변에 강대국들을 세워가지고 훈련시키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운 나라인데 큰 나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나라로 세워놓았습니다, 약소국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은 강대국들을 세웠습니다, 우리 알다시피 로마서13장1절2절에 우리 예수님이 모든 임금들 권세 자들을 다 예수님이 세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한 왕 그 당시에는 네로 왕입니다 네로왕도 바울이 보니까 예수님이 세우신 분이라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네로왕도 그러니까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그러잖아요, 그분도 예수님이 세우신 분이며 그분 때문에 핍박을 받지만 나중에 네로 왕에 의해서 바울이 로마서를 57년에 썼는데 68년에 바울이 네로 왕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거든요,
로마서를 쓰시고 11년 있다가 또 65년에 베드로가 이분에 의해서 순교당하고 그런데 베드로도 똑같이 그러고 바울도 이분이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세우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에 대한 부정적인 말씀을 바울이나 베드로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편지에 보면 반제국주의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신학적인 이해는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우리나라도 조그만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를 동방의 이스라엘이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왜냐면 이 조그만 나라가 전 세계선교사들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내고 십자가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전 세계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북으로 딱 갈라져있고 그리고 이스라엘처럼 강대국들로 둘려 쌓여 있는 겁니다, 그 강대국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장중에서 우리가 있지 않으면 우리가 하루도 견딜 수 없는 그런 가운데 또 같은 민족인데 남쪽은 남쪽대로 이 안에서 문제가 심각하고 이런 일들은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누구의 장중에 지금 있습니까, 예수님의 장중에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장중에 있는 이 조그만 우리가 구약을 이렇게 보면서 이스라엘역사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대 한국 남쪽 북쪽 대한민국은 남쪽만이 아니고 북쪽까지 다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을 주님이 특별히 예수님이 재림 전에 쓰시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이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만 북한까지 지금 기근 때문에 많이 탈출하는 이분들 이분들이 나와서 디아스포라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또 성경적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가지고 주변나라에 살게 해서 디아스포라들이 복음을 받고 다시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 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해왔고 이와 같이 또 디아스포라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분들을 통해서 하시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앗수르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이 디아스포라를 많이 만들어 내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또 바벨론을 통해가지고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되어가지고 그 디아스포라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대부분이 다 해외에서 머물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 받으셨습니다,
똑같이 지금 우리 민족들이 우리 한국의 선교를 하나의 책임으로 믿고 사는 우리 한국민족을 약1000만 명 가까이를 디아스포라로 해외에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외에 나가서도 어떤 민족과 차이점이 있냐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디로 가든 교회를 세우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민족이 지금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어디로 가도 열사람이 모이면 그곳에 교회를 세웁니다, 절간은 안 세우는데 미국이나 캐나다나 오스트리아 뉴질랜드나 유럽에 한인교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인도네시아도 그렇고 베트남도 그렇고 라오스도 그렇고 미얀마도 그렇고 한인교회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디아스포라들의 데이트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퍼센트 지가 얼마냐면 약70%의 디아스포라들이 크리스천입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한국은 기독교인의 퍼센트 지가 정부통계에 의하면 약18%지만 실제로는 15%될까 말까 같습니다, 더더욱 보수적으로 보면 10% 한번 여러분들이 고향사람들 모였을 때 동창회 모였을 때 10명이 모여 있으면 보세요,
기독교인이 몇 명인가를 그러면 한 두 명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권사인데도 보면 날라리 권사입니다 진짜 권사가 진짜 장로가 실로 보면 한 두 명입니다 10명의 동창들이 모이면 기독교인의 퍼센트가 우리도 10%정도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있는 디아스포라들은 기독교인의 퍼센트 지가 데이트에 의하면 약70%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을 옮기시는 겁니다, 여기에서는 신앙생활이 힘드시겠다,
자기 본국에서는 그러면 해외로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가지고 어떤 분들은 잠깐 회사에 주재원으로 보내고 또는 학생으로 유학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이민도 보내고 그런데 그쪽에 가가지고 이제 교회를 다녀서 기독교인이 되어 주재원으로 있다가 기독교인이 되어서 본국에 와서 회사사표내고 신학교 가는 사람도 있고 유학생으로 갔다가 그런 사람도 있고 별난 사람이 다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의 주어진 장중에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런 부분도 우리가 예언서를 보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똑같이 남북을 갈라놓은 것은 남북 이스라엘을 갈라놓은 거나 똑같이 우리도 그 패턴대로 예수님이 지금 갈라놓은 겁니다,
갈라놓고 있다가 지금 북쪽이 힘들어지면서 기근을 주셔가지고 디아스포라를 보내는데 다 합하면 약30만 명 넘는다고 그럽니다,
그중에 3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와 있고 나머지는 중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상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돕는 분들이 누굽니까 우리 밖에 없습니다, 내 민족을 우리가 도와야 되는데 놀랍게도 기독교인들이 돕고 있는 겁니다, 중국에 가서도 그래서 그런 일들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있고 그 일들을 지금 하고 있는데 한국 땅까지 넘어온 디아스포라들이 다는 아니지만 그 중에 소수가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곳에 보냄이 틀림이 없는 겁니다,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이 수 없이 나갔지만 나중에 소수가 하나님께 잡혀서 사용을 받았습니다,
똑같이 소수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3만 명 중에서 이 남쪽 땅에 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우리가 주님의 허락하심 아래에 섬길 때가 오리라 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구약에서 나오는 선지자시대의 상항을 보면서 그 때도 신약에 예수님이 재림 전에 나타날 시대상항과 우리와 비교하면서 같이 볼 때가 올 겁니다,
이 선지자시대는 예수님의 초림 전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입니다
초림 전에 똑같이 예수님의 초림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그대로 재림 전에 사건들 하고 똑같이 이렇게 같은 패턴으로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또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17권의 선지서 공부는 우리에게 상당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우리가 선지 서들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aoIFA2lD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