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요한복음1장7절-18절, 초린의 주 예수님
기독론 11강, 초림의 주 예수님(요1:7-18) 2007년5월27일 말씀
요한복음1장7절부터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7요한이 예수에 대해서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과거형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세상에 왔지만 그 당시에 이미 이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특별히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영광을 받는다는 겁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이 이제 성육신하셔서 초림 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17절부터 보시면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멘,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초림 주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데 이 말씀도 여러분들이 잘 들으시겠지만 이 말씀을 머릿속에 잘 담아 두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초림을 우리가 맞추는데 좋은 훈련이 될 것으로 저는 믿고 오늘은 예수그리스도가 초림 주로 오신 분이다,
라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초림이라는 말은 재림이라는 말과 다른 말입니다, 처음으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시는 분을 초림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이분이 다시 오신다는 의미에서 재림 이렇게 다시 오신다는 것은 그분이 안 계시다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우리 눈에 보이도록 오시는 분 우리 기준으로 말할 때 초림 재림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분은 이미 계시고 계신분이신데 초림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이 말씀은 성경에서 어디에서 근거 합니까 창세기3장15절입니다,
창세기3장15절을 근거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주기 위해서 오신다는 겁니다, 분명한 말씀은 초림을 어디에서 예언하였냐면 창세기3장15절에서 예언 되었습니다, 어떻게 오시느냐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고 그 다음에 오셔서 뭘 하시냐면 하나님이신분이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피를 전수시켜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겁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분명히 한 다음에 그러면서 그때부터 시작을 해서4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에 이분이 이렇게 오실 것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암시해주고 보여주고 그럽니다,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구약 전체가 이 이야기입니다 구약전체가 이제 우선 한 가지 보시면 아담이 타락해서부터1000년 동안 노아까지입니다 그 안에 몇 사람이 있었습니까, 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창세기5장에 열 사람의 이름 속에 의미가 다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셋이라는 이름은 임명되었다는 뜻입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런 뜻입니다,
그다음에 게난은 슬픔이라는 이야기고 이 열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보면 그 이름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거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지정되었지만 그래서 슬픔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마할랄렐이라는 다섯 번째 사람의 이름이 뭐냐면 복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예수님입니다 마할랄렐이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하면 므두셀라의 이름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노아의 이름이 위로자입니다 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슬픔이라는 것은 노아 아버지 라멕이 슬픔이라는 소리입니다 라멕이 슬픔이 노아가 되었다는 겁니다,
위로를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열 명의 이름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그리스도가 창세기3장15절속에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천년 역사 속에서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1000년이 엄청나게 긴 기간이지만 그 속에서 지금 예수님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약동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방주사건도 다 예수님 이야기 아닙니까, 그 안에 역청을 칠하고 예수님의 보혈 그리고 나중에 500년이 지나가고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이삭을 바치라고 그럴 때 알고 보니까 아들이삭이 누구였습니까,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3일 만에 부활하는 사건 그 모리아 산에서 나중에 실제로 2000년 후에 예수님이 모리아 산에 십자가에서 또 이렇게 죽으시는 장면이 정확하게 다 나오는 겁니다, 모세 때는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성막을 지어라 다윗 때는 성전을 지어라 그랬잖아요,
이렇게 해서 계속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하실 것을 구체적으로 성전 속에서 보여주시고 이런 가운데 특히 선지자들을 통해가지고 주전1500년 모세 때부터 시작해서 주전400년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까지 약 1000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가지고 이 예수가 초림 해 오실 것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쫘악 설명하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면 그 예수가 어느 족보로 내려올 것이고 그 예수가 어느 동네에서 태어날 것이고 그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1000년 동안 쫘악 설명하여주시는 겁니다,
구약성경이야기에서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너희들 구약을 봐라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서에서나 어디에서나 우리는 예수님만 쳐다보아야 되고 예수이야기만 해야 되고 교회라는 것은 우리의 목적은 예수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예수 때문에 사는 것이고 예수와 친구 되면서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목숨이 딱 끊어지면 제일 먼저 만나시는 분이 그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과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가 빠져버리면 아무것도 소용없는 겁니다,
사탄은 교회가 예수가 빠져버리고 예수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라고 그럽니다, 그게 마귀가 우리에게 혼돈을 주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겁니다, 교회는 예수 외에 다른 것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구약에 보면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수백 개입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우리 귀에 익은 열일곱 가지의 예언의 말씀들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이걸 하나하나 성경구절을 적어놓아 보세요, 첫째 야곱을 통해가지고 창세기49장10절에 무엇이라고 그랬느냐면 메시아가 유다지파를 통해서 나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주전700년에 미가서5장2절에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겁니다, 유다지파로 나오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그랬습니다,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다 성취된 겁니다,
마태복음2장1절에 보면 정확하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유다지파에서 태어난다고 정확하게 그것이 실현이 된 겁니다, 그러면 요즘 통계학자들이 이것을 가지고 이 두 곳 예수가 유다지파에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통계학자들이 그 확률이 약2400대1이라는 겁니다, 그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확률이 두 번째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사야서40장3절에 메시아가 올 텐데 이 메시아는 이분이 나타나기 전에 광야에서 한 사람이 외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분이 메시아가 나타났다,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주전700년에 이사야에게 말한 겁니다, 그 사건이 그대로 세례요한을 통해가지고 마태복음3장1절과2절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유다족속에 나오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나타나셨다고 이 세 개가 동시에 성취될 확률이4800대1이라는 겁니다,
세 번째 예언은 이 메시아가 스가랴에게 주전500년분입니다,
스가랴를 통해가지고 스가랴서9장9절에 이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한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마태복음21장1절부터11절에 누가복음19장35절에서37절에 정확하게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말한 이 네 개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통계학자가 2.400.000대1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1000년 전에 다윗이 시편41편9절에 메시아가 태어날 텐데 이 메시아가 가까운 친구에게 배반을 당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천년 후에 메시아가 나타나가지고 예수님이 마태복음26장47절48절에 정확하게 가롯 유다에게 배반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이천사백만대일입니다 다섯 번째 다윗에게 또 말했습니다, 시편22편16절에 메시아가 나타날 텐데 이 메시아가 손과 발이 찔림을 당할 거다, 라고 그랬습니다,
이 메시아가 이것이 그대로 누가복음23장33절에 실현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12억대1입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가지고 별난 소리를 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과학적이고 성서는 엄청난 과학적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섯 번째로 이사야에게 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서53장5절에 하신 말씀이 메시아가 인류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서 징계와 채찍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서53장5절에 그대로 마태복음27장26절에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이 동시에 다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110억대1이라는 겁니다, 일곱 번째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스가랴11장12절에 메시아가 배반자에게 은 30냥에 팔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데 정확하게 마태복음26장15절에 성취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이 1조대1이라는 겁니다,
여덟 번째 이사야에게 이사야서50장6절에 매시아가 침 뱉음을 받을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마태복음26장27절에 대제사장 가야바 뜰에 가가지고 심문을 받을 때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침을 딱 뱉었습니다,
그 양반이 예수님께 침을 뱉을 때 예수님이 침을 뱉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이사야에게나 스가랴에게나 미가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시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시는 겁니다,
역사의 시작이고 역사의 끝을 맺으시는 분이시다는 겁니다,
그런 예수님을 지금 우리가 섬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자꾸 그냥 예수님이 그저 나에게 좋은 것 해주고 나에게 돈 좀 주고 할례루야 하는 이런 시시한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아홉 번째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도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스가랴서11장13절에 메시아를 배반하기 위해서 은 30냥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 양반이 후회하여가지고 그 돈을 성전에다가 집어던진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돈을 성전사람이 주어가지고 토기장이의 밭을 샀다고 그랬습니다, 스가랴서11장13절에 스가랴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27장5절에서7절에 이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200대1인데 아까12조라 그랬습니다,
12조 곱하기 200하면 숫자가 계산이 안 됩니다 열 번째 이사야서53장7절에 메시아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 앞에서 양같이 아무 말도하지 않고 불평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이사야에게 그랬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27장12절에서14절에 이것은 12조 곱하기200곱하기100입니다 열한 번째 이사야서53장12절에 메시아가 강도들하고 같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대로 마태복음27장38절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확률이 200곱하기100곱하기10곱하기12조입니다,
열두 번째 다윗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시편22편28절에 메시아 옷을 빼앗아가지고 그 옷을 가지고 제비뽑기하고 그러한 짓들을 한다는 겁니다,
그대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옷을 벗기다가 서로 제비뽑았던 겁니다, 그대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옷을 벗기다가 서로 제비뽑았던 사건들이 요한복음19장23절24절에 있었습니다,
확률은 이제 너무 커서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열세 번째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옆구리에 창으로 찔림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스가랴서12장10절에 요한복음19장34절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열네 번째 다윗에게 시편34편20절에 그랬습니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려있는 환상을 다윗이보고 이분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있는 분인데 뼈가 꺾이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19장33절에 두 강도는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고 뼈를 꺾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숨이 끊어졌기 때문에 뼈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시면서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을 시편에 하신 말씀을 응하기 위해서다 그랬습니다,
정확하게, 열다섯 번째 메시아가 몸이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을 다윗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편16편10절에 그대로 사도행전2장31절에 베드로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열여섯 번째 이사야서53장9절에 이 메시아가 죽은 후에 부자의 무덤에 들어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정확하게 아리마대 요셉의 부자의 무덤으로 예수님이 들어갔습니다,
마태복음27장57절에서60절에 마지막 열일곱 번째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아모스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죽을 때 기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아모스8장9절에서 하신 말씀에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하고 땅을 캄캄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침9시에 달려서 낮12시까지 고통을 당하시다가12시가 되고 오후3시에 숨을 거두시는데 그 3시간동안 암혹이 깔렸다 그랬습니다, 이 모든 열일곱 가지의 말씀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4800억 곱하기10억 곱하기1조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초림을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을 하시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초림은 우리가 다윗의 지손으로 오신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서11장1절에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 이 말씀도 그냥 기가 막히게 이루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었느냐면 예수님의 육의아버지인 요셉과 마리아의 족보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의 족보는 마태복음1장1절에서16절에 나옵니다, 이 두 족보를 보면 요셉도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다윗에서부터 갈라집니다,
요셉은 다윗의 아들이 열아홉 명이 있는데 다윗의 마지막부인인 밧세바의 네 번째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으로 해서 나온 것이 요셉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3장에 보면 마리아의 아버지가 똑같이 밧세바의 세 번째 아들 나단을 통해서 마리아의 아버지 엘리가 나왔고 엘리의 사위가 요셉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위이름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엘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마리아하고 요셉사이에서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도 정확하게 다윗의 자손인 겁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보면 이런 모든 부분에서 보면 정확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이분이 대단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더 깨닫게 하고 그분에게 더 무릎을 꿇으라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분에게 무릎을 꿇으세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또 다른 측면에서도 가르쳐주는 곳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출생과정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출생하는 장소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왜냐면 이분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미가선지자에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미가선지자의 예언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삭으로 가지고 있을 때 어디에 있었냐면 북쪽 갈릴리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있었습니다,
만약에 나사렛에서 태어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예언이 맞지가 않습니다,
그 예언을 이루시기 때문에 마리아가 만삭이 되어 있을 때 로마 시저 왕이 명령을 내렸잖아요, 인구조사를 하려면 각자가 자기 조상 고향으로 가야 됩니다 우리 추석 때 고향으로 내려가듯이 그래서 할 수없이 고향으로 가는 겁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가는 겁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말자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수님의 탄생도시까지도 섬세히 준비하시고 예언하신 것을 이루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들러다 보면 기가 막힌 겁니다, 복음을 들러다 보면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 초림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목적은 간단합니다,
요한복음3장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생을 받기 위해서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 인간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은4000년 동안 거시적으로 표현 했습니다, 창세기3장15절부터 시작해서 지금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4000년 기간은 거시적으로 보시면 이 안에 별난 사건들이 다 일어나면서 사건 하나하나가 다 이분이 태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들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거시적인 눈이 거기에 깔려 있는 겁니다,
이분이 이렇게 오셔가지고 인간이 되셔가지고 우리에게 미시적인 눈으로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애들아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성만찬 있죠, 이 엄청나게 크신 분이 우주를 한 손에 가지고 계신 분이 우리에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우리는 떡이다 그러면 좋아하는 겁니다, 그분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이런 미시적인 눈으로 가르쳐주는 겁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 떡이다 참 양식이다 내 피다 마셔라 먹어라 우리는 자꾸 이렇게만 생각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거시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미시적으로만 알게 됩니다,
이분이 그게 다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다 모형이다 비유다 이렇게 알려주면서 너희들 진정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인 큰 틀 안에서 나를 좀 보아라는 겁니다, 큰 틀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창세기3장15절입니다,
큰 틀에서 나를 보라는 겁니다, 이분이 이렇게 해서 제자들에게 수천 년 동안 보여 주시고는 이분이 이 엄청난 큰 틀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 못을 박으시고는 이분이 숨을 거두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한복음19장30절에 그랬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끝났다 하는 것은 시작이 있는 것 아닙니까
창세기3장15절부터4000년 동안에 이 일을 그냥 여러 모습으로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다 이루었다 그러는 겁니다, 이 피조물들인 우리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크리스천들이지만 그냥 교회 나오고 예수님께 찬양 조금 드리고 헌금내고 그냥 신앙생활하고 우리는 크신 하나님의 시각을 내가 가지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저 미시적으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가지고 이것 가지고 내가 가지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저 미시적으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가지고 이것 가지고 예수님이 나를 조금 도와주면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겠다, 라는 내 생각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애들아 내가 엄청난 일을 너 네들을 위해서 했는데 아직도 눈은 개미 눈이 되어서 너 앞에 있는 것만 가지고 좋다 나쁘다 억울합니다, 저 사람이 나한데 어떻게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어떻고 사업이 잘 안 되고 지금 어쩌고저쩌고 우리 삶 속에서 이것 가지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목숨이 딱 끊어지면 이 세상을 떠날 것인데 그때 가면 엄청난 뉴스를 내가 보는데 지금 우리가 그 소망을 가지지 않고 우리는 이 세상 여기에 영원히 사는 곳으로 생각하고 이 안에 있는 모든 일 때문에 그냥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눈이 소위 말하면 거시적인 눈은 없어져 버리고 미시적인 눈만 가지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교회가 나의 문제 해결하여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그저 나에게만 좋게 해주는 복음이 그런 줄 압니다, 복음이 변질되어가는 겁니다, 예수가 그런 예수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예수 그렇다고 우리가 미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완전히 인간이 되셔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지금 눈에 보이는 이 미시적인 부분에서 예수님도 갈등을 하셨습니다, 왜냐면 이분이 빌립보서2장에 보면 신성을 포기 하셨잖아요, 포기하셨기 때문에 이분도 미시적인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이신데도 완전히 인간이 되셔가지고 걱정도 하시고 화도내시고 피곤하시다 그러시고 배도 고파하시고 이분이 부동산도 가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새들도 제 집이 있는데 나는 내 집이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배반을 할 때 마음 아파하시고 나중에 제사장이나 로마 군인들이 침 뱉고 이럴 때 자존심에 상처받고 고민도 하시고 좌절도 하시고 나중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직전에 겟세마네에서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 이 잔을 내가 안 받게 하세요,
이분이 창세기3장15절 말씀을 하셔놓고 지금 완전히 딴 소리를 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완전한 인간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이 그러시는데 우리도 당연히 이 세상의 문제를 보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당연히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것 안 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럴 때 성령님이 오셔가지고 예수님의 눈을 거시적으로 보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이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이 적게 역사하시면 또 눈꺼풀이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실 때 우리 예수님이 오시기전4000년 동안도 그랬지만 이분의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이분은 목표지향적인 거시적인 눈을 가졌던 분입니다 그런데 잠시 미시적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분이 인간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너희들은 지상계명을 지키고 지상사명을 나가서 땅 끝까지 복음전하라는 이 목적을 이분이 가지고 계셨고 이 목적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성육신하신 것은 그냥 두루 뭉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어쩌다가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렇게.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나하고 만나자는 목표가 없는 그러한 삶을 사셨던 분이 아닙니다,
이분은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주님과 같이 목표가 뚜렷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12장2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미시적인 눈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 속에서 고민하시면서도 이분이 장차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보좌 오른편 있고 이 만물을 지배하려는 그 꿈을 목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눈을 크게 뜨면 그것이 보이는 겁니다,
안 뜨면 또 밑에 것만 보이고 그래서 우리 보고도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자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의사 부끄러움을 게의 치 아니하였다는 겁니다,
미시적으로 보면 어려운 것이 많은데 이분이 저쪽을 내려다보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에서도 분명히 그랬습니다,
빌립보서2장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그분이 완전히 자기를 비어 버리시고 이분이 나중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베푼 다음에 11절12절에 보면 왜 그분이 그렇게 포기하시고 그렇게 하신 줄 아느냐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여호와라는 소리입니다,
저분이 여호와시구나 라고 시인하고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이분이 미시적으로 되어가지고 이 세상에서 나중에 십자가에까지 달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엇입니까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예수님이신데 우리도 목적이 뚜렷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왜 섬깁니까, 지금 여러 가지 어려움을 예수님도 다 당하셨다고 그랬잖아요, 그 어려움을 어려움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 마시고 이 어려움을 그냥 밟고서 눈을 눈꺼풀을 거시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세요, 그래가지고 이 세상이 내 세상이 아니다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간다, 부동산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언제까지 가지고 가느나 없는 사람은 지금 내가 셋방 살지만 그것 가지고 갑니까, 똑같습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저 나라 가는 것은 똑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부동산을 많이 가졌던 돈이 많던 그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가지고 갑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자녀들에게 주잖아요,
자녀들도 40-50년 있으면 똑같이 놓고 가는 겁니다,
조금 편하게 사는 것뿐이지 돈을 많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관리능력이 있으니 많이 주시는 겁니다, 물질을 안주시는 분은 관리능력이 없으니까 안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 없는 사람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관리를 못하니까 하나님이 안 주는 것뿐입니다,
안주나 주나 하루 세끼 먹는 것은 똑 같습니다, 제가 엊그제께 책을 하나 보니까 돈 있는 사람이 고민이 더 많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돈을 어떻게 집어넣고 어디에다가 집어넣어서 돈 관리를 어떻게 할까 없는 게 백번 낫다는 겁니다,
부동산 많이 가지고 있어보세요 매일 고민합니다,
주식투자해보세요 매일 주식에 대해서 봐야 합니다,
그게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두 가지 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직장 문제도 있고 가정문제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건강문제도 있고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있고 질투심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아픔도 당하고 이런 것이 당연히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도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걸 피하려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따라 다니는 겁니다, 이걸 피하려고 도망가면 그놈들이 따라오는 겁니다, 피하지 마세요, 그대로 다 있는 겁니다,
이걸 피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이 공기에 박테리아가 있듯이 있는 겁니다,
항상 따라다니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눈을 올리면 됩니다, 눈꺼풀만 올리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희미하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도 파도를 지배하면서 파도 위를 걸었잖아요,
우리가 이 문제를 그냥 놓고 그냥 올라타고 걸어 다니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저 세계가 보이니까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대 계명과 대 사명을 바라보면서 이까짓 거 그냥 걸어가면서 우리는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두면 떠날 텐데 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눈에 보이니까 그쪽을 보고 가는 겁니다, 그것을 못 보는 사람들은 저 사람 돌았다,
미쳤다 이런 말을 하여도 이런 말 들으셔야 합니다,
시각이 다르거든요, 이 시각이 이런 시각을 가지면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너를 핍박하는 사람 사랑해주어라 용서해주고 기도해주어라 그게 가능한 겁니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이 왕 침으로 나를 때려도 그때 알았다 이렇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내가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고 자비를 베풀 수 있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겁니다, 시각의 변화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평강이 따라옵니다, 평강이 파도가 치는데 그 파도가 나를 지배를 못하는 겁니다, 주 안에서 평강 하라는 찬송이 있잖습니까,
환경은 그대로 있는데 주 안에서 우리가 평강을 가지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초림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이분도 거시적인 눈이 있고 미시적인 눈이 있었듯이 우리도 그런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이 4000년 동안 초림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시각적으로 보면 4000년 엄청난 긴 시간입니다 그 엄청난 긴 시간 동안에 이분이 자기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400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을 오래 참으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잠깐 보여주고 요셉을 통해서 이삭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이사야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자기의 사랑을 조금 조금씩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4000년 동안 보여 준 겁니다, 그게 예수님의 하나님의 크신 마음입니다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면 그 예수님의 오래 참으시면서 역사적으로 크게 보이는 그러한 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오래 참으신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오래 참는 것을 배우려면 예수님의 시각을 가지면 됩니다,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면 오래 참을 수가 있습니다,
참는 게 괴롭지가 않습니다, 참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게 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믿으며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시각이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면 그렇게 됩니다,
이 연습을 하셔야 됩니다, 이 연습을 그러면 제가 여쭈어 보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은 눈꺼풀이 올라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눈꺼풀이 올라간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눈꺼풀이 올라간 사람입니다 이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고 성령 충만 이게 잘못됩니다,
성령 충만 해서 모이는 곳에 자기 유익을 위해서 성령 충만해져야 합니다, 자기 어떤 이익을 위해서 나의 만족을 위해서 종교가 그렇게 변질되어 버립니다, 우리 기독교 종교는 눈꺼풀이 올리는 게 기독교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다가 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이것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예수 잘 믿어봐라 잘된다,
잘된다, 눈꺼풀이 내려온 사람들이 말하는 겁니다,
성경에 예수 잘 믿어 잘 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눈꺼풀을 올리는 연습을 하는 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 눈꺼풀을 올렸다 내렸다 잘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올리기만 하면 곤란합니다, 이게 자주 내려와야 합니다, 내려왔다가 딱 올라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게 빨리 빨리 됩니까, 윤활유기름 성령의 기름 부으심 기름만 발라서도 안 됩니다 모터가 돌아가야 됩니다,
파워가 있어야 됩니다, 엔진이 돌아가야 됩니다,
그 엔진이 무엇입니까 파워는 하나님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줍니다, 하나님말씀을 묵상하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시면 이 눈꺼풀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겁니다,
어려울 때 환경이 어렵고 죽고 싶을 때 그럴 때 빨리 눈꺼풀을 쫙악 올리는 겁니다, 그러다가 또 밑으로도 보고 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걸 잘하는 사람보고 성령 충만한 사람예수님 사랑하는 사람 복 있는 사람 예수님 닮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초림을 생각하면서 그 초림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심을 오늘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2Im1vC3KC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