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요한복음14장5절-9절, 예수님의 신성
기독론 3강, 예수님의 신성(요14:5-9) 2007년3월25일 말씀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14장5절부터9절까지입니다 도마와 빌립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5절부터 읽겠습니다,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멘 오늘은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말씀을 하나하나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드리는 오늘 말씀은 성경말씀을 많이 인용할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잘 기억해주시고 또 주변사람들에게도 이 말씀을 잘 나누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최대 위기로 뭐라고 우리가 알 수 있느냐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또는 부분적으로만 시인하는 그러한 분들이 밖에도 많지만 교회 안에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이단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요즘은 큰 교단들이 주교단들이 이러한 사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이단이라고 또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룹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혼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곳에서는 그것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 그러한 교회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많이 혼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을 하면서도 어디 잠깐 한쪽구석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포장되어 있는 것이 신학에 지금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교회 안에서 정통교단에 속해 있는 크리스천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에 분명한 확신이 없는 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톨릭도 완전히 종교다원주의고 알다시피 여호와의 증인도 그렇잖아요,
여호와의 증인은 전 세계적인 교단이거든요
전 세계에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에서는 하나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그룹들입니다, 하버드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옛 청교도 그룹들이 유니타리아니즘(Unitarianism)이라는 교단이 있는데 유니타리아니즘 그것도 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는 분들입니다 통일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도 문선명이가 예수님의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사람으로 이야기하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은 성공하지 않았다,
라고 보는 것이 통일교입니다, 몰몬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예수님의 신성에 공격을 하는 교단들입니다 그게 다 이단들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이렇게 공격을 하면 다 이단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뭐냐면 예수님의 신성이 일반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렸습니다, 그걸 마귀가 붙잡아가지고 그걸 가지고 이제 우리 인간은 속이는 겁니다, 중국은 지금 기독교가 가정교회만 하여도 우리나라전체크리스천보다도 훨씬 숫자가 많습니다, 가정교회 소위지하교회만 우리보다 일곱 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삼자교회도 우리보다 세 배가 더 많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중국에 지금 이단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호와증인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다음 중국에 요즘 나오는 파룬궁이라고 그래가지고 예수교도 조금 들어있고 불교도 조금 들어있고 도교도 들어있고 이슬람도 다 잡동사니 비빔밥종교입니다 그런데 이게 병을 고치고 귀신 쫒아내고 축복하면 돈도 벌고 이래서 중국이 지금 엄청나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공산당에서 이 종교를 말살하려고 왜냐면 공산당보다 더 많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무서워하지만 이 파룬궁을 더 무서워합니다, 이 파룬궁은 동남아 웬만한 나라에 가면 길거리에 앉아서 막 전도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전도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개신교에서 이단이 나와서 골치 아픕니다, 그 사람들을 동방번개라 그럽니다,
이 동방번개가 중국에서 판을 치는데 이놈들은 뭐냐면 꼭 예수 믿는 가정교회 지도자들만 붙잡아다가 너 동방번개 안 믿으면 죽인다고 그래가지고 무력으로 해서 사람을 막 죽이고 이런 짓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팀 중에 몇 사람이 동방번개에 얻어맞아가지고 아주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굉장히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부분이 약해지다 보면 이런 잡다한 것들이 덤벼듭니다,
과거 2000년 기독교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신성 중에서 가장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삼위일체부분입니다 삼위일체부분에 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삼위일체는 알다시피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라고 하면서 삼위가 한 하나님이신데 세분의 위가 기능적으로 세 기능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쉽게 이해를 먼저 하세요 삼위일체 때문에 기독교가 많은 논란을 해 왔는데 이 부분만 우리가 알고 나면 성경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 하나님이신데 위가 세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위가 세분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기능이 세분이 각각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능이 어떻게 다르냐면 성부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이다 두 번째 성자하나님은 그 계획하신 것을 실제로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성령하나님은 뭐냐면 예수님께서 수행하도록 힘을 넣어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럽니다,
나는 꼭 아버지를 통해서 하는데 성령님이 어떻게 오시느냐면 아버지를 통해서 성자가 우리에게 오시고 또 성령님도 아버지가 발원이 되어가지고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분이 계급이 다른 게 아니고 한 계급입니다 질도 동질이고 묘한 관계에 계신 관계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이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니까 한 하나님이시고 삼위도 알고 보면 한분이시다 아까 말한 이단들은 뭡니까 성자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는 겁니다, 그런데 한분이시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여호와 성령님까지도 다 한분인 예수님이시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양태론 자라 그럽니다, 양태론 자 양태적인 삼위일체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것도 비성서적입니다 양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게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삼위하나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합니다, 삼위하나님이 이렇게 함께 회의를 하셨다 생각하시고 우리가 인간을 구원시키자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를 항상 쓰셨습니다,
창세기1장에 보면 그래서 실제로 구원시키자, 라는 회의를 끝내고는 회의 봉을 탕. 탕. 탕 세 번을 치시는 분은 성부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삼위하나님의 표가 하나씩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면 성부하나님이 제일 높으신 분 같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분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대표성을 가지고 계신 것뿐입니다, 우리 인간관계 속에서 그럴 때 이분이 그럽니다, 그러면 피조물에게 실제로 가서 피조물과 관계하는 분은 성부하나님이 아니시고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보고 인간에게 내려가라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겁니다, 그런데 창조에서도 보면 창세기1장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그러실 때 원어를 보면 엘로힘(Elohi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엘로힘은 단어로 보면 복수단어입니다
엘로(Eloh)하면 단수인데 im이 뒤에 붙으면 복수입니다 그래서 보면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시고 여러분이라고 이렇게 보입니다,
이름 자체에서 그래서 이것을 삼위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회의를 하셨든 겁니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결정하고 창조하는데 창조를 대표적으로 탕. 탕. 탕 두드린 분은 성부하나님이시지만 실제로 하신 분은 성자 예수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하나님이 혼자서 안하시고 또 성령하나님이 와서 도와 주셔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 피조물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직접 만나고 우리와 관계되는 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보고 성자하나님이 창조주시군요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부하나님이나 성령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의 피부에 땋게끔 창조하신 그분은 예수하나님이십니다 그다음에 우리에게 십자가의 보혈에 의해서 새 생명을 주신 이분도 실제로 우리 눈에 우리역사 속에서 보여주신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보고 우리의 구원 주되시고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그러잖아요, “주”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예수님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존경받으시고 칭찬을 받으시고 격려를 받으시면 똑같이 성부나 성령하나님도 동시에 같이 받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직접 관계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성부하나님은 볼 수 없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성부하나님께 하지만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 다 들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성부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없으니까 내 이름으로 이야기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이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게 이런 의미에서 그렸습니다, 그런데 삼위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보시면 우리 기독교인들의 상황의 태도가 이분들의 관계 속에서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분들의 삼위의 관계성을 보시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근방 보이는 게 삼위하나님은 서로 존중합니다,
서로 내가 잘났다 내가 세다 이런 짓을 절대로 안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한 마음이 되어가지고 서로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예컨대 내가 누구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럽니다, 성자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누가 말해줍니까 성자하나님은 누가 증거 해줍니까, 성부하나님이 우선 말해줍니다 순서가 성부하나님이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례를 받을 때 성부하나님이 세례요한에게 성부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 하는 겁니다, 이분이 이렇게 하시는데 성자하나님은 또 누구를 증거 합니까,
이분은 세상에 오셔가지고 누구 이야기를 합니까, 이분은 항상 그럽니다,
나는 아버지가 보내 주셔서 내가 왔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리고는 요한복음3장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할 때 그럴 때 그 하나님이 분명 성부하나님을 이야기하잖아요,
항상 성부하나님을 높이십니다, 아주 인격자들이십니다,
서로가 그리고는 성령님은 어떻게 됩니까,
사도행전1장8절에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누구를 증거 하느냐면 예수를 증거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이렇게 서로 서로가 증거의 대상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너희들이 성령 받으라,
그러잖아요, 성령 받기 전에 누구를 먼저 받아야 됩니까,
아버지가 소개한 예수님을 우리가 먼저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잖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아가지고 그다음에 예수님을 증거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불리 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마태복음28장19절에 너희들이 가서 모든 족속들에게 세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가서 증거 하라 예수님을 증거 하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 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첫째 이분의 모든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두 번째 사도바울도 항상 그분의 신학이나 그분의 편지 속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라고 항상 강조하였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 자신도 내가 하나님이시다, 라고 자꾸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말씀 안 하십니다 제일 마지막 때 가서 삼년공생애 마지막 때 본인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나중에는 성부께서도 또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 성경구절은 로마서9장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그러시는 겁니다,
또 빌립보서2장6절에서11절에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근본하나님의 본체시다 골로새서1장15절에도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골로새서2장9절에도 예수 안에는 신성의 모든 것이 충만하여서 그분의 육체에 거한다고 그랬습니다,
디도서2장31절에도 하나님인 구주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이게 바울의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고백들이 이렇게 표현이 되어있고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하신 표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6장15절부터17절에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도마도 그랬습니다,
요한복음20장28절에 나의 주 나의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이분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난 못 자국을 봅시다, 하여 보여 주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성령님이 도마의 마음을 열어서 나의하나님이시군요 이렇게 말한 겁니다, 또 사도요한에게도 말했습니다,
요한복음1장1절에서부터 보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이 예수님이시다 요한1서5장20절에도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제삼자들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한 후에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 자신이 자기가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자신이 첫째 마가복음14장62절에 또 마태복음26장64절에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그리스도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제사장들과 로마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질문을 받을 때 내가 그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그리스도입니까 당신이 그러니까 내가 말 하였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본인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보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요한복음10장25절에서33절 요한복음5장17절18절 여기 보면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그랬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그랬는데 이 하나라는 단어는 원어를 보면 분명합니다, 하나라는 단어가 원어로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라는 헨(HE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는 HEN이라는 단어를 섰습니다,
그런데 남성으로 쓰는 하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헤이스(HEIS)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갈라디아서3장28절에 바울이 쓰신 단어인데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또는 자유자나 다 예수 안에서 하나다 이렇게 쓸 때 쓰는 말입니다,
그때는 헤이서(HEIS)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와 하나다, 라는 단어는 무슨 단어를 섰습니까,
HEN이라는 단어를 섰습니다, 그런데 HEIS라는 단어는 남성단어입니다 HEN은 중성입니다 남성단어 HEIS는 어떤 뜻이 있느냐면 하나인데 그러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사회적으로 이렇게 하나지만 본질은 다르다는 겁니다, 본질은 여자가 성품도 다르고 계급도 다르고 다른데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하나라고 말할 때 HEIS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HEN이라는 중성 단어를 쓸 때는 다릅니다,
이것은 한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아버지와 나와 HEN하나다 이 말은 뭡니까 계급도 하나고 본질도 하나고 품성도 하나고 그냥 통째로 하나다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라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겁니다, 아버지가 공경 받는 것처럼 나도 공경 받아야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0세 잡수신 젊은 청년이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면 누굴 아는 겁니까, 아버지를 알았음이라 그러는 겁니다, 요한복음8장19절에 또 요한복음14장1절에서도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아버지와 나는 같은 수준에 같은 HEN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분이 요한복음14장8절9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면서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죄 사함을 할 수 있는 분은 그 당시 유대인 문화 속에서는 누굽니까,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거기에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던 겁니다, 이분이 거르는 게 내가 생명이다,
라고 주장하시고 내가 영생을 소유한 자니까 너희들이 내 속에 들어와야지만 영생을 가진다, 요한복음5장11절12절 요한복음14장6절. 마가복음2장5절에서7절 이분이 계속해서 요한복음5장27절에 내가 심판하는 권세를 가졌다, 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계속해서 본인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데 성부하나님께서 이분이 세례요한에게 아까 세례를 주시면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그랬잖아요,
똑같이 마태복음17장에서 변화 산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와 요한과 안드레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마태복음17장에서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개념으로 아들이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은 분명히 계급차이가 있잖아요,
이 문제가 지금 우리가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왜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른 표현은 없나 이겁니다, 아들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누구누구자손이다, 라는 뜻과 또는 누구누구의 반열이다 반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오더(Order) 멜기세덱이 예수그리스도의 반열이다 그런 말이 나옵니다, 반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차라고 쓰여 있습니다,
반차라는 것은 이런 뜻이 있습니다,
열왕기상20장35절에 선지자의 무리 중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뭐냐면 선지자들의 반열들 이런 말입니다 자손이라는 말이 반열이라는 말입니다 또 느헤미야서12장28장에 노래하는 자들이 그랬는데 그 자손들의 뜻이 뭐냐면 반열들 하는 그런 소리입니다 노래하는 자들의 반열들 그러니까 그분들의 아들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런 노래하는 사람들 다른 노래하는 사람들 그런 뜻입니다 똑같이 그 선지자의 자녀들이라는 소리가 아니고 같은 선지자그룹들 이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반열이란 보세요,
성서에서 예수님을 아들인데도 독생자라는 말을 섰잖아요,
독생자 그 말은 영어로 온니 비가틴 선(Only Begotten Son)그것이 한국말로 독생자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는 하나님의 반열자라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하나님과 같은 동급의 반열을 가진 분이라는 소리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게 독생자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뭐냐면 이런 분은 한분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생자 아버지와 동질이면서 동격이고 동등하면서 모든 게 같은 분인데 그런 분은 독생자 한 분 밖에 없는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저분이 신성모독 한다고 그러는 겁니다, 저 젊은 분이 어떻게 자기가 성부하나님과 하나고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그러느냐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이분들이 예수님이 저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으면 십자가에 못 안 박을 것 아닙니까 십자가에 못 안 박으면 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이 눈이 어둡게 된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성부하나님과 동격인 그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도록 만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보고 있잖아요,
그 예수님을 우리가 지금 하나님으로 우리가 봐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지금 모르는 분들이 전 세계교회 안에도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엄청난 복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우리와 똑같이 살다 가신 우리의 모습인 그 하나님 창조주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최대한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는 모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들이 볼 수 있는 최대한 하나님이 그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이 하나님께 경배하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지금 누구를 향해서 예배드리는 겁니까, 예수하나님께 우리가 예배드리는 겁니다,
인간이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나와서 목사가 설교 잘하나 못하나 그것 보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찬양 팀이 찬양을 잘하나 그것 보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교회 생활은 예수님을 경배하기위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예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예배드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피조물들의 최대한 존경입니다 경외심입니다 믿음입니다, 감사의 표현입니다, 창조주에게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나와 하나로 열람이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누군가 내가 열람이 되었을 때 마음이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성품들이 성화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배가 형식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와 나와 열람하는 겁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그래서 그 예수를 내가 바라보고 그 예수의 은혜와 그분의 평강과 그분의 것이 나에게 오도록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더러운 마귀의 성품들이 없어지고 예수님과 나의 성품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게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예수님을 만난다, 그러잖아요, 그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고 느끼고 만날 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씩 오고 그분의 자비를 내가 느끼고 은혜를 느끼고 이분의 위로를 내가 받고 격려를 받고 이분을 내가 이렇게 만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꼭 예수님을 향해서 해야 됩니다 왜 그렸느냐면 이 세상에 예배를 받을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4장16절에 예수님이 마귀가 와서 덤벼들 때 그랬습니다, 주 너희하나님께만 경배하라 그랬습니다,
나중에 요한 계시록을 다 받고는 천사가 와서 말해주는 것을 듣고는 천사가 고마워서 천사 앞에 가서 천사여 하면서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하는 말이 요한계시록19장10절에 그랬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시오, 나한데 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께만 경배 드리는 겁니다,
십계명에서 분명히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처음 네 계명이 하나님께만 예배드려라 경배하라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경배하느냐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면 우리가 좋아하는 요한복음4장24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라 경배하라 예수님은 삼년공생애 때 자기가 하나님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문둥병자가 와가지고 예수님께 무릎을 굵고 경배하는 모습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만두어라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경배를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나면서 장님이 된 분도 병 고침을 받고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니까 예수님이 가만히 놓아두었습니다, 제자들도 나중에 하나님 앞에 진실로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럴 때 이분이 아버지께 해라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다,
이분이 경배를 다 받으셨습니다, 왜냐면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자기가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2장에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되었다가 십자가에서 이분이 피 흘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다음에 그다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 만드셨습니다, 성부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모든 이름보다도 뛰어난 이름으로 만드셔 가지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천사들입니다 땅에 있는 자들과 우리피조물입니다 땅 아래 있는 자들과 음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예수이름에 무릎을 꿇는다고 그랬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다니면서 항상 이것을 확인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이나 방글라데시에 있는 사람이나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나 우리 모습이 다 다르고 가난에 찌들어서 그냥 맨발로 왔지만 전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굻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여러분들 예수님을 경배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냥 무릎만 꿇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인 예수님을 경배한다는 뜻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시군요, 깊이고백하고 묵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 속에서 매일매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시군요,
하나님이라는 뜻이 뭐냐면 창조주시군요,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는 겁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창조주시군요 하나님이 시군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시군요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하나님아버지와 동등하신 본질적으로 동등하신 분이시군요 그것을 항상 외치고 묵상하고 고백하는 겁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군요 무소부재하신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성육신하셔서 인간화되셔서 나의 구원주가 되셨군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인간들에게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부활이 되시는 군요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시군요, 성부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고 우리 삶 속에서 직접 내 속에서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시군요 그리고는 이 예수님이 나의 방패가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선생이 되시고 산 떡이 되시고 참 양식이 되시고 나의 친구가 되시는 군요 이런 엄청난 하나님이 나의 친구가 되시는 군요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예배드리는 경배 드리는 겁니다, 그냥 교회 와서 설교말씀 듣고 찬양 조금 드리고 말씀 듣고 배우고 헌금 조금하고 그러고 끝나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깊이 만나는 겁니다, 이렇게 진정과 신령으로 예수님을 경배할 때 그럴 때 나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참 위로가 있습니다,
참 격려가 있습니다, 독수리가 창공으로 나가는 새 힘을 받게 되고 어려운 환경을 내가 지배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들어옵니다,
시각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물질관이 변하고 지식관이 변하는 것은 예수와 깊이 만났을 때 변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예수에 대한 경배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질 때 내가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겁니다, 나의가치관이 변하여 버리는 겁니다,
문제가 내 앞에 있으면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소위 말하면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런데 예수님을 깊이 만나지 않고 요즘 뭘 하느냐면 예수님은 그냥 아웃사이드에 계시는 분이고 그냥 예수는 나의구세주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체적으로 예수를 만난 경험 없이 요즘 우리 크리스천들은 가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정세미나를 많이 합니다,
카운슬링을 많이 합니다, 신유사역을 많이 합니다,
아버지학교 영성세미나 이런 것 많이 합니다, 이런 것도 다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와의 교제가 없이 예수와의 예배 경배가 없이 이런 소위 테크닉 테크놀로지 노하우 이런 것만 자꾸 하다보니까 사람은 많이 모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한 달만 안 하면 또 옛날사람으로 되어 버립니다, 어떤 때는 별난 소리 다하고 다닙니다,
왜냐면 예수를 안 만나고 이런 노하우만 자꾸 배우다 보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방법론에만 자꾸 관심을 둡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은 예수그리스도하나님이심을 그분에 대한 구체적인 만남이 결여되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예배로 인도 받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만 이야기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저희들이 이 모임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내가 더 순종하게 해주시고 이러면서 우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수록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제일 크고 첫째 되는 계명 지상계명 이것을 우리가 더 확인하고 지상계명을 알기만하면 무엇합니까, 지상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지상명령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듣지 못한 미 전도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지상명령 아닙니까, 이것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지상명령은 지상계명 없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앞에 우리가 무릎 굻고 찬양도 예수. 예수. 예수 주일날 오시면 앉아서 예수님 여기에 계신 예수님 내가 예수님을 만나려 왔습니다, 사람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저 사람은 언젠가는 나한테 좋다가 언젠가는 나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믿지 마세요, 예수님만 믿으세요, 사람 찾아다니다보면 자꾸 교회 옮깁니다, 절대로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교회를 찾지 못하고 그러한 교회 분위기를 찾지를 못합니다,
한 때는 좋다가도 언젠가는 또 싫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원칙을 깨닫고 다른 것 다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으세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나중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숨 끝나고 가면 누구만납니까 예수님밖에 만날 분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예수님과 내가 매일 만나는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것은 보지 마세요,
주님만 쳐다보시길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F2FUTHt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