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창2장-3장, 프리 아담마이트(아담전 사람들)
창조론 2강, 프리 아담마이트 (아담 전 사람들) 창2장-3장)
우리가 알다시피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이라 이렇게 우리가 참고로 아는 겁니다, 오늘은 제가 자세하게 안하고 그냥 섭력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우리가 창세기1장을 지난 시간에 잠깐 봤는데 오늘은 창세기2장과 관계되어 가지고 신학적으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들이 조금 있습니다, 특히 아담의 창조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참고로 알아야 될 것이 한두 개가 있습니다, 그걸 제가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아담이 한분이다 안 그러면 아담이 두 아담이다 이런 학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아담은 한분이다 그런데 전통이 아니면서도 많은 신학자들 중에서 그렇게 하면 성경이 풀리지가 않는다,
라고 보고 두 아담 설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참고로 그냥 두 아담 설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거기에 대해서 100% 확신이 없지만 이것은 우리가 학문을 서로 이야기를 하는 걸로 생각하시고 참고로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여섯째 날에 만들었잖아요, 그 아담이 과연 누구냐 창세기2장7절에 또 아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아담은 또 누구냐 그래서 전통적으로 한분의 아담을 이야기하는 이분들의 전통적인 개념은 뭐냐면 창세기1장26절27절에서 말하는 아담과 창세기2장7절의 아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은 동일한 아담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1장에서는 그 아담을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하고는 일반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2장에서도 자세히 설명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2장은1장의 연결된 설명부분이다, 라고 보는 전통적인 학설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또 성서적으로 안 풀리는 부분이 있다 그래가지고 두 아담 설을 설명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 두 아담 설은 프리 아담마이트(pre adamite)라 그럽니다, 한국말로 하면 아담 이전의 사람들 이런 개념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창세기1장26절27절 이분은 아담 전 사람들이고 창세기2장7절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2장7절의 사람을 아담마이트(adamite)라 그럽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다르냐면 이게 연구대상인데 이것 때문에 논란들이 조금 있습니다, 창세기1장26절27절에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룹은 다른 그룹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이분들이 아담 전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의 모양은 있지만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그 형상은 뭘 말하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사랑이 많으심 일반적인 성품들을 다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2장7절의 아담은 하나님의 생령을 집어넣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령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집어넣어서 만들어진 사람과 성령님이 없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위 이걸 이야기하면 복잡해지지만 그렇지만 참고로 간단히 알고 계세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두 가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를 낳았잖아요,
그런데 누가 죽었습니까, 아벨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가인 하나만 남았잖아요, 그런데 성서에 보면 가인이 누구하고 결혼했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4장16절에 보면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 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여기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전도할 때 물어봅니다,
도대체 이 아내들은 어디서 나온 사람입니까 이렇게 물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도 대답해주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뭐라고 그러느냐면 아담과 하와가 아이를 가인과 아벨만 낳은 것이 아니고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겁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지만 그러니까 그중에 딸 하나를 낳고 형제간에 근친결혼을 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전통적인 이해입니다, 또 아담 전 사람들이 있다, 라고 보는 사람들의 견해는 뭐냐면 가인이 하나님의 영이 없는 아담 전의 사람들의 자녀와 결혼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지금 전도하기위해서는 이런 부분들을 알고 있어야 되기에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다가 창세기6장을 보면 노아 때 사람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려가지고 사회가 상당히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노아 때 모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6장1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이야긴데 어떤 신학자들은 이 아담 전의 사람들과 아담 후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냐면 아담의 후손들 하나님의 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다음에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의 영을 가지지 않은 아담 전의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아담후손들은 창세기2장7절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그분들은 그분들 끼리 결혼해야 되는데 그냥 섞어서 막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나오다보면 우리가 칼빈주의를 생각하다보면 칼빈주의는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많지 않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칼빈주의를 믿는 분들 중에는 이걸 가지고 아담 전 사람들 지금 우리 한국에 기독교인이20%입니다 그러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분에 의하면 나머지80%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다 아담 전의 피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게 아담의 성령의 피를 받은 하나님의 창세기2장7절의 사람들이다 이렇게 극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걸 이렇게 보면서 목사님은 그러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저도 대답 못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조금 도 들어가다 보면 더 복잡하게 됩니다, 어떻게 복잡하게 되느냐면 만약에 이렇게 되었다고 가정을 할 때 노아홍수 때 어째든 이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아담 전에 태어난 사람이나 아담 후 2장7절 사람이나 다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누굽니까 노아와 노아의 처 노아의 아들들 셈. 함. 야벳에 처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부8명만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칼빈 주의적인 시고방식을 가진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오나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으니까 분명히 창세기2장7절의 사람입니다 노아의 처도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셈도 함도 야벳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장7절의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며느리들은 우리가 알 길이 없는 겁니다, 며느리들 그러니까 혹시 이 며느리들 중에 1장26절27절의 피를 가지고 있었다면 노아의 후손들도 그 피가 또 섞어지는 겁니다,
그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또 오늘날 지금 크리스천이 이 만큼 있고 비 크리스천이 이만큼 있고 하는 것이 이걸로 이해를 시킬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정말 죽어라고 전도를 해도 주님 앞에 안 오니까,
오는 사람들 주님께서 이미 구원을 준비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칼빈주의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분명히 갈라지거든요 이미 태초에 그분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은 이걸 여러분들이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전도할 때 이걸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조금 안다고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할 때 이 방법으로 이걸 설명해주는 겁니다, 필요할 때 예컨대 왜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한된 사람들만 예정된 사람들만 예수 믿고 천국 가느냐고 물어볼 때 그런 것은 이렇다, 라고 설명을 한번 해줄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의 문제는 이것이 맞는 학설이다 안 맞는 학설이다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설명을 받아서 혹시 이분이 이걸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좋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방법도 한번쯤 사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렇게 보는 겁니다, 분명히 제가 말씀드리지만 나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께 이걸 한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실은 여쭈어 볼 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계속해서 창세기2장에서 계속해서 집고 넘어 가겠습니다,
2장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질문을 합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었습니까,
이겁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왜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선악과라 하는데 선악과가 아닙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왜 이 나무를 따 먹지 못하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 에덴동산에 성령님도 계셨지만 악령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왜 하나님이 악령을 쫓아내지 않았을까요, 왜 에덴동산에 악령을 그대로 두었을까 우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역할이 뭐냐면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여기에 성령님이 계시고 악령이 있다, 라고 하는 그 지혜를 우리에게 주는 나무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나무를 쳐다보면 여기에 성령님이 계시고 악령도 여기에 있어서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알게 하는 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그러면 그 나무만 쳐다보면 악령이 있든 없던 관계가 없습니다,
그 나무만 쳐다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악령을 쫓아내는 악령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줍니다, 그 나무가 그러니까 주님이 그랬습니다,
그 나무를 절대로 먹어서 없애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면 너에게 손해라는 겁니다, 이 나무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우리에게는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마귀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존재를 우리가 알 수 있고 말씀으로 우리가 무장되어 있으면 그놈들이 우리를 공격 못합니다,
그러데 성경말씀을 없애 버리면 그 나무를 먹었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그럽니다,
똑같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것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위해서 주신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처음부터 마귀를 없애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없이 그걸 우리에게 주지 않았으면 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나올 수 있잖습니까 처음부터 마귀를 거기다가 왜 집어넣었습니까, 아예 없애 버리지 그런 질문을 하실 때 하나님은 그럽니다,
우리가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피조물들은 그냥 가만히 놓아두면 창조주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유스럽게 놓아두면 그렇기 때문에 피조물들은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가끔 누굴 통해서라도 건드려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도록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과 가까이 합니다, 어항에 고기들 중에 다른 고기를 괴롭히는 특별한 고기 한 마리 꼭 집어넣어주어야 됩니다,
그러듯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듯이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하나님과 가까이 만들기 위해서 사탄을 허락하여 놓은 겁니다,
그렇지만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도구는 주셨습니다, 그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것만 딱 보고 있으면 거기에 의지만 하면 사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사탄을 주셨지만 그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무기까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것만 보고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지를 잘못 발동하는 겁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 사탄의 계교는 무엇입니까,
사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뭡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없애버리면 사탄은 자기 정체가 들어나지가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없애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신학적으로 근본적인 문제인데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미리 다 예정하셨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미 예정하셨다 그걸 우리가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면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수준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이미 거기다 갖다 놓았을 때는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을 것을 하나님이 다 아셨습니다, 아셨기 때문에 지난시간에 둘째 날에 하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인간이 나중에 죄를 지을 때 노아의 홍수까지도 하나님이 미리 다 생각을 하셨던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언젠가는 사람을 다시 구원하실 것을 다 계획하시고 우리가 볼 때는 그게 수천 년인데 어째든 하나님이 인간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 가능성을 하나님이 보시고서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사탄이 가장 원했던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를 유혹했습니다,
그 부인을 왜 부인을 유혹했을까요, 남자를 유혹하지 않고 여기에 대한 질문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자가 더 감수성이 있다 남자들보다 감정적이다 이기적이 맞다, 라고 일반적으로 보는 겁니다,
요즘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센데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3장1절에 보면 뱀에 관한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이런 말을 합니다, 왜 하필이면 성경에서 이런 말을 썼을까요,
그다음에 왜 뱀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제가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옛날에 한번 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에 대한 설명에서 자세하게 나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제가 말씀을 드리면 사탄이 동물의 혼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동물의 혼도 돼지 혼이나 혼의 모습이 다 다르거든요 뱀이 가장 혼이 간교하다, 간교하다, 라는 말이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아주 머리가 명석하고 상황판단잘 하고 이런 의미에서 간교함입니다,
동물 중에서 가장명석하고 상황판단잘 하고 영리한 동물이 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혼속에 들어간 겁니다, 같은 메시지를 제가전해도 여기에 아주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이 있느냐면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했는데 그걸 받아가지고 소화해서 그걸 남에게 전하는 걸 보면 똑 같은 사람인데도 다 다르거든요 똑같이 돼지를 사용하지를 않았습니다, 또는 개를 사용하지 않고 뱀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뱀의 혼속에 들어간 겁니다, 들어가 가지고 뱀이 본래 간교한 성품이기 때문에 나쁜 의미의 간교가 아닙니다,
똑똑하고 영리하고 아주 그냥 눈치 빠르고 이런 혼의 성품 속에 딱 들어가서 보니까 거기에 악령이 들어가니까 더 악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뱀을 사용했다 그러는데 그 뱀이 나중에 사탄의 하나의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뱀이 그래서 그 뱀이 여기 보면 나중에 꾸지람을 받고 저주를 받거든요 3장1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기어 다니는 그 전에는 기어 다니지 않은 겁니다,
그 전에는 날라 다녔던 겁니다, 그래서 본래는 용이었습니다, 용이었는데 그놈이 저주를 받아가지고 옛 뱀 다시 말하면 용입니다,
그래서 본래는 용이었습니다, 용이었는데 그놈이 저주를 받아가지고 뱀으로 땅에 기어 다니는 모습으로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불교 절간에 가면 용들이 많잖아요, 그리고 뱀들이 많잖아요, 왜냐면 부처도 마찬가지거든요 어떤 영성을 찾는다고 찾다가 나중에 가서 누굴 만났느냐면 용을 만나 겁니다,
사탄을 만난 겁니다, 용을 만났는데 거기에 새끼 용들이 많잖습니까,
만나가지고 그 용들이 와서 자기를 도와주었거든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용을 섬기는 겁니다, 전 세계 어느 종교나 용을 섬기거나 뱀을 섬기고 또는 코브라를 섬기고 왜냐면 그런 모습으로 그놈들이 영계에 가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안을 Em고 보면 마귀들이 용의 모습으로 뱀의 모습으로 코브라의 모습으로 있는 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나 어느 종교에 보면 전부 용을 그려놓고 뱀을 그려놓고 다 그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그게 그분들이 그걸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자기네의 악령에 충만해 있으면 그게 보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중국에 가면 지금도 용의 나라라 그러잖아요,
식당에 가도용이 그려져 있고 그러니까 용 같은 것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용 젓가락이니 용 그림 다 던져 버리세요, 제가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 유명한 목사님이신데 자유주의계통의 유명한 목사님이신데 그분 사무실에 내가 갔더니 책상 뒤에 용 그림을 크게 그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이것 뭡니까, 말할 수도 없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목사님이신데 그래서 제가 이분이 영안이 어둡구나,
용을 뒤에다가 크게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욱 나오다가 하와가 유혹을 당해잖아요 아담까지 유혹을 당하는 이야기가 주욱 나오는데 그러면서 창세기3장15절이 성경에서는 제일 유명한 절이 창세기3장15절입니다,
다 아는 것을 제가 오늘 복습하는 겁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지금 보면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이 말씀이 소위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마리아의 후손으로 보내주시는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것을 말씀하는 장면이 창세기3장15절 말씀입니다, 14절에 보면 여호와하나님이 그랬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게 여호와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자하나님이 지금 누구에게 말씀하십니까,
15절에 보면 내가 하니까 여호와하나님이 예수님이 너도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보면 너로 할 때 너가 누굽니까 뱀입니다,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그러면 여자가 누굽니까 여기서 문자적으로 보면 그 여자가 누굽니까,
하와입니다, 그대로 문자적으로 보면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와하면 하와라는 뜻이 뭐냐면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하와라는 뜻이 그래서 영어로 라이프라 합니다,
생명이라는 뜻인데 이 생명이 누굽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나중에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다시 말합니다, 내가 하면서 예수님이 너로 뱀입니다,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그러니까 하와와 원수가 되는데 하와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와라는 것은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은 또다시 신약에서 예수님입니다, 예수와 원수가 되게 하고 그런 소리입니다, 그다음에 너의 후손도 너의 후손은 무엇입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뱀의 후손들입니다, 뱀의 후손들은 누굽니까,
마귀들입니다 마귀들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한다는 겁니다,
여자하면 여기서 하와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하와의 후손 그렇게도 됩니다,
여기에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또는 이걸 그냥 신약에 와가지고 하와의 후손이니까 예수님의 후손으로 그리고 이것을 또 다시 여자의 후손으로 신약에 와서 보면 어떻게 되어있느냐면 여자의 후손은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그게 예수님입니다 갈라디아서4장4절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짝을 찾아야 된다고 합니다,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보면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이런 말은 뭐냐면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항상 자녀는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아버지이름을 됩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전통을 벗어나가지고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 이러지 않고 여자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입니다,
갈라디아서4장4절에 왜 여자의 후손입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의 육신의 아버지피를 우선 가지지 않았습니다, 전혀 안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없는 그러한 모습으로 어머니의 마리아의 자궁에서 나왔지만 마라아의 피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형식상으로 보면 여자의 몸에서 나온 겁니다, 아버지가 없는 여자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죄 없는 인간으로 나오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의 피를 받지 않고 인간의 죄 성을 가가지 않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렇게 택하신 겁니다, 이렇게 언제 택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이 방법을 택하신 겁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성자하나님이 내려오실 것을 이 방법으로 택하여 보여 주신 겁니다, 그리고는 보세요,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게 십자가사건이거든요 십자가에서 여자의 후손은 마귀의 사탄세력에 급소를 때렸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는 겁니다,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건이 급소를 때리는 머리를 때려버리겠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발에 못이 박혔거든요,
손에도 박히고 그래서 발꿈치를 상하게 하겠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것을 상징적으로 이렇게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3장15절은 성경전체에서 볼 때 등뼈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해서 계시록마지막까지 이 말씀이 줄기가 되어 가지고 등뼈가 되어서 가지를 쳐서 나가는 겁니다,
이 말씀이 창세기3장15절이 성경에 등뼈가 되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내려오시겠다는 이 말씀 이때부터 시작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이때부터 구약은 전체가 다 피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예를 간단히 드리면 이 말씀이 끝나자말자 21절을 보면 그 유명한 창세기3장15절에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보여주는 장면이 뭐냐면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어라 그러는 겁니다,
지금 아담과 하와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습니까,
7절에 보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랬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그래서 제가 제목을 간단히 말하면 창세기3장15절의 제목을 제가 만든 말인데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이다 이렇게 보시고 그리고는 그 첫째 계획이 지금 창세기3장21절입니다, 이게 뭐냐면 가죽옷을 지어 입는 그래서 제가 가죽옷의 어린 양 이렇게 제가 말을 붙이고 싶습니다,
이제 아담이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잡아가지고 피를 흘려서 그 다음에 피를 흘린 그걸 가지고 가죽옷을 입었을 때 부끄러움을 면하겠다는 겁니다, 피 흘릴 것을 아주 유치원수준에서 아담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피 흘릴 것을 그러니까 구약전체가 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전에는 피를 흘리지 않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가지고 치마를 입었는데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창세기4장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제가 이번에는 아벨의 어린 양 이렇게 제가 말을 붙이고 싶습니다, 아벨의 어린 양 우리가 알다시피 아벨의 제사를 받았잖아요,
가인의 제사는 안 받았잖습니까, 왜냐면 하나님이 분명히 피를 흘려라 그렇게 지시를 한 겁니다, 4장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11장에 보면 나옵니다,
히브리서11장에 아벨은 믿음으로 더 옳은 제사를 드렸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믿음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믿음은 들음으로써 난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누가 분명히 말을 했던 겁니다, 아버지아담이 두 아들에게 분명히 말했던 겁니다,
애들아 동물을 잡아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라 그런데 아벨은 그 말씀을 믿고서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겁니다,
그런데 가인은 믿음이 없어서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드렸다는 겁니다, 피 가 없는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라는 겁니다,
창세기3장15절에 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다가 천년이 지나서 노아의 홍수사건이 있었습니다,
창세기6장14절을 보세요, 방주의 어린 양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랬습니다, 역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방주는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방주는 예수님입니다 방주는 예수님을 예표로 하는 이야기가 방주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 안에 몇 사람이 들어갔습니까,
여덟 분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들어가면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방주가 특수한 방주입니다,
역청으로 안팎을 칠했다고 그랬습니다, 그것도 안팎입니다,
역청이라는 것은 아스팔트 같은 것입니다,
그 역청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보고 있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안팎을 칠해야지만 심판의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 보면 칠했다는 겁니다,
구약에서 칠 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카파라 그러는데 카파라는 말이 어디에 쓰는 단어냐면 나중에 제사장들이 제사장제복을 입고 거기에다가 동물의 피를 발랐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똑같이 카파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방주의 어린 양 역청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구나,
보혈이 방주안팎에 칠해져야지만 심판이 물이 새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보혈이 심판을 막아 준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래서 대 구원계획인 창세기3장15절 말씀을 하나님이 마귀에게 선포하시고 아담에게 선포하시고 그 일을 순서대로 차근차근히 이루시는 것이 구약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제가 서론적인 측면만 말씀드렸는데 기회가 되면 또 말씀드리겠지만 전도와 관계되는 이야기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서론적으로 이 정도로 아시고 다음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VLmNAeWH0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