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시리즈

4강. 이사야11장1절-2절, 다윗의 자손 예수

변명섭 2024. 2. 13. 14:40

성탄절시리즈 4강. 다윗의 자손 예수(사11:1-2)
이사야서11장1절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아멘.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성탄이 가까이 오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혼자 조용한 시간을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나이가 환갑이 지났으니까 지난60여년을 뒤돌아볼 수 있는 조용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혼자 가만히 앉아서 또는 누워서 지난60년을 이렇게 뒤돌아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에 의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내가 알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살다보니까 지금까지 왔구나.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이 철저한 하나님의 준비된 계획이었구나. 라는 것을 철저하게 느끼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이 저의 삶 속에서 오늘날 이 자리에 내가 있기까지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한 것도 아니고 또 내가 플랜을 짜가지고 계획을 짜가지고 온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된 것도 아니고 아하! 이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보이지 않는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내가 그냥 그 계획에 끌려서 지금까지 왔구나, 라는 것을 철저하게 느끼게 됩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가지고 저희 어머니는 제가 목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저는 전혀 거기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신앙생활을 주욱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군대에 있을 때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많이는 하지 않았지만 옛날에 화랑담배라고 있었습니다. 
한두 가치 피고 제가 미국에 유학 가서도 외롭고 힘들고 하니까 담배를 조금씩 피웠습니다. 술은 그 당시에 그의 안 마셨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구나. 이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는 그런 걸 다 끊었습니다. 유학생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미국생활30년 이상 주욱 하면서 나이40가까이 되어서 신학교에 가게 되고 완전히 잡을 바꾸어서 20여년을 하나님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수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수지에 와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주님이 제 나이40이 넘었을 때 신학교로 보내시면서 나에게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세계선교를 위해서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것이 내 마음깊이 막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별로 매력이 없어지고 그리고 기성교회를 보면 선교를 안 하는 교회를 보면 아주 답답하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하고 이런 마음을 20년 전부터 나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선교 지를 열심히 방문하고 또 거기에 대한 학문을 제가 깊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 그 계통의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필드에 가서 직접경험도 하고 소위 아카데미필드에서 가르치는데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백인들을 가르치고 이러면서 주님이 왜 이르실까? 그러면서 지나고 보니까 아하! 이게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구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말은 쉽지만 하나님은 철저하게 내 삶 속에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이미 이런 걸 다 계획하셨구나. 나는 몰랐지만 그러면서 성서를 보니까 사도바울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어머니태중에 있을 때 이미 계획하셨다는 겁니다. 또 다윗도 마찬가지고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다 계획하셨다가 하나님이 때가 되었을 때 그때그때 하나님이 들어서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에서 이런 게 있습니다. 예정론이나 아니면 자유의지론이나 자유의지론은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잘 보여서 내가 노력을 해가지고 최선을 다하니까 이렇게 되었다 이것이 자유의지론입니다 내 자유의지를 잘 발동해가지고 예정론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장중에서 내가 움직였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하! 나는 예정론자구나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게 가면서, 가면서 말씀을 보면서 내 삶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아하!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우리가 움직여지는구나. 라는 것을 아주 철저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예정론적인하나님을 우리가 보면서 특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동정녀탄생을 계획하신 것도 하나님의 철저한 예정론 속에서 탄생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죄를 진후에 창세기3장15절 우리는 다 알잖아요
여자의 후손으로 성자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없이 여자의 몸에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을 그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정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부터6천 년 전입니다. 6천년 훨씬 전입니다.
아담이 지어진 것은 우리가 언젠지 모르지만 아담이 타락한 것은 주전4천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6천 년 전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가 여자의 몸인데 처녀의 몸으로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4천년 후에 탄생하셨는데 그4천년 동안에 구약성경을 잠깐 섭력해보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하셨구나. 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제가 아주 쉽게 설명하려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설교로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창세기3장15절에 예수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으로 태어날 것을 여자의 후손이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실은 없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계획을 하시고는 약천 년이 지나갔습니다.  
천년이 지날 때 뭐라고 그러느냐면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이 다윗아 네가 앞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하나의 표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임금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약3백년이 지나갔습니다. 3백년이 지나가면서 계속해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했는데 주전2천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49장10절인데 야곱이 열두 자녀를 하나하나 놓고 예언을 하시는데 네 번째 유다를 놓고 예언하시는 말씀이 유다야! 너는 앞으로 너 후손 중에서 왕들이 나올 거라는 겁니다. 왕들이 나오는데 왕이 계속 나오다가 언젠가는 왕이 딱 끊어질 때가 온다는 겁니다. 언제 왕이 끊어지느냐면 실로가 나타날 때 실로라는 말이 뭐냐면 메시아를 말합니다. 메시아가 나타날 때는 왕이 딱 끊어지면서 그 후손부터 왕권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 창세기49장10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자손이 누굽니까? 그리고 천년 가면 유다의 자손이 다윗입니다 그리고300년 가다가 주전700년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사야서7장14절에 그랬습니다. 아사야야! 왕이 한분 나오실 텐데 그 왕은 메시아인데 처녀의 몸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언제 했습니까?
주전4천년에 이미 하신 말씀인데 그것을 그대로 숨겨놓고 계시다가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처녀의 몸에서 나올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비슷한 때 미가라는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미가야 그 왕이 한분 나오시는데 어디서 나오느냐면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미가서5장2절에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나오다가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쫘악 설명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부터 족보를 주욱 이야기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브라함부터 천년 후에 다윗인데 다윗이 예수님의 족보 중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인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있습니다.
솔로몬을 통해서 천년 후에 나오는 것이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의 족보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누가복음의 족보는 또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어떻게 나와 있느냐면 아브라함부터가 아니고 아담부터시작해가지고 예수님이 나오는 족보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다윗은 같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누구의 족보냐면 알고 보면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은 요셉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족보를 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나온 것은 요셉이고 다윗의 또 다른 아들 나단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다윗의 아들 나단으로 해서 제일 끝에 엘리(헬리)라 그럽니다. 엘리가 누구냐면 마리아의 아버지이름이 엘리입니다.
마리아의 아버지가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데릿사위로 들어온 게 요셉입니다 그래서 엘리의 아들이 요셉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을 실은 마리아를 지칭하는 겁니다. 마리아의 족보가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나오는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아니고 나단 쪽으로 해서 쫘악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실로(메시아)가 올 때는 왕권이 없어진다고 그랬습니다.
다시 창세기3장15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셉으로 나오는 게 하나님의 뜻의 아닙니다. 
왜 아닙니까? 여자의 후손이니까 요셉의 아들로 나오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계획은 여자의 후손으로 나오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뭐냐면 우리는 다 남자의 후손인데 요셉의 후손으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냐면 역사 속을 쫘악 보면 모세에게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런 법을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세는 주전1500년분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나오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방법을 제시해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획을 이루기위해서 그런데 우리는 성서를 볼 때 그 계획을 대충 읽다 보니까 우리는 이해가 안 되는데 모세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민수기26장34절이나 27장1절에서11절 또는 여호수아17장3절에서6절에 보면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법을 주었습니다. 한 족속 그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딸을 상속자로 하라는 그런 법을 만들었습니다. 구약에서 나오는 법들이 뭐냐면 전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한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딸이 상속권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해서 주욱 나오다가 주전4년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입니다 그러니까 실로가 태어난 겁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가 태어난 해가 주전4년입니다 주전4년에 이스라엘민족이 로마통치하에 있었거든요
로마가 주전63년에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로마가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지역을 로마사람이 와서 통치하거나 그러지 않고 에돔사람 헤롯왕이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헤롯왕3대가 통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전4년 그 당시에 아들 헤롯왕 이였는데 그 헤롯왕은 에돔사람인데 사마리아사람의 피를 4분지1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사람들도 유대인의 피가 조금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유대인의 피가 약간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이스라엘을 통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헤롯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들헤롯이 왕 노릇을 할 때 그 아들헤롯이 예수님이 태어나던 해에 죽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손자 헤롯이 왕이 되는데 그 당시에 왕이 되면서 로마 시이저 아구스도왕이 명령을 내리기를 그 사람 왕권을 빼앗아버려라 그 대신에 섭정을 시켜라 그래가지고 헤롯왕은 왕이지만 완전히 왕권이 없어진 왕이고 로마 군인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다윗 왕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해서 주욱 왕으로 나오다가 예수님이 태어나는 그 해에 왕권이 끊어졌습니다. 기가 막히게 창세기49장10절에 야곱이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왕권이 끝나면서 주후6년에는 완전히 아들도 왕권에서 쫓겨나버리고 그리고 이스라엘 땅을 로마군인들이 섭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처럼 산헤드린이라는 국회가 있었습니다. 한국말로는 공의회라 그럽니다. 그 전에 왕권이 있었을 때는 공의회가 모든 걸 결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결정을 했는데 주후6년에 가서는 완전히 공의회도 통치권이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통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맞는 게 이런 사회에서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가족은 왕권을 가지고 오다가 왕권이 끊어진 분입니다 왕권이 끊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왕 중의 왕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까지도 딱 끊어버렸습니다. 왜냐면 창세기3장15절에 여자의 후손으로 나온다는 그것을 이루시기위해서 이 라인으로 나오는 부계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딱 잘라버렸습니다 그걸 이미 누구에게 말했습니까?
야곱에게 하나님이 다 계획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보면서 이 큰 그릇을 보지 못하고 읽으면 이것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걸 다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 계획을 어떻게 이루느냐면 하나님이 마리아 쪽으로 태어나게 하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단 쪽으로 해서 나중에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너 애기를 가지라는 겁니다. 
요셉라인의 왕권이 없어지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22장3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전500년분인데 바벨론에 유배 갔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는데 뭐라고 그랬냐면 그 당시 다윗에게서 솔로몬라인으로 해서 내려오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에 계실 때 왕이 누구냐면 솔로몬에서17대 왕인 여호야김이라는 왕입니다 여호야김 왕 때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뭐냐면 여호야김아 너 네 왕들이 우상을 이렇게 많이 섬긴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 아들부터 아들이 누구냐면 여호야긴입니다 네 아들부터 시작해서 언젠가는 유다를 다스릴 왕권이 없어질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자유의지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우상을 섬기지 않았더라면 왕권이 계속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아닙니다. 우상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유도까지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 왕들을 통해서 우상을 많이 섬기도록 하신 겁니다.
그래놓고는 너희들 이것 때문에 내가 나중에 언젠가는 왕권을 끊어버리겠다
이렇게 까지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을 이루시는 것이 이러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게 계획하시는 겁니까? 그기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우주만상을 한 줌으로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개미보고 이 개미가 이쪽으로 오는데 저리가라 이놈아 안 그러면 발로 밟아버리겠다면서 내가 밟아버렸습니다. 
그러면 개미가 아! 치사하네 사랑도 없으시네 그럴 겁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향하여 그러시는 겁니다. 왜 말이 많으냐. 이리와 하고 밟아버리면 끝나잖아요. 내가 계획을 그렇게 짜서 하는데 왜 말이 많으냐.
이 피조물들아 하나님의 크신 절대주권과 이분의 예정적인 측면을 우리가 복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똑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제 간증 속에서 말씀드렸지만 이게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마리아사건을 보면서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랬습니다. 마리아야! 너는 참으로 복 있는 자다
마리아가 잘 난부분이 없었습니다. 마리아의 사촌언니 엘리사벳도 복 있는 자다 마리아가 잘하는 것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마리아를 특별히 봐주셔서 마리아를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예수님의 탄생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한번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모든 그것을 계획하시고 계획 속에서 내가 이해를 못하지만 하아하나 이루시는 구나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각자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다 계획하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세요.
아! 내가 어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이렇게 사는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왔는데 이것이 알고 보면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을 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구나. 나보다도 더 똑똑하고 나보다도 더 영리하고 나보다도 더 모든 부분에서 날고 가는데 그 사람보다 내가 지금 이만큼 온 나를 보면 이게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이것을 우리가 깨닫는 겁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계획을 나의 조그만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내가 목숨을 거둘 때까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지금 내가 어느 정도 절반까지 왔지만 아직도 모르겠다는 이런 생각을 하시고 주님! 주님의 뜻대로 나를 이끌어주십시오. 라고 주님 앞에 이야기할 때 이게 기도입니다
순수한 하나님과의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위해서 내가 이런 걸 갖고 싶어 하는데 이런 걸 주십시오. 하는 것은 은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기도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기도는 주기도문말씀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다시 말하면 주님이 나를 향한 뜻이 계신데 그 뜻을 나는 지금 모릅니다. 성령님 그 뜻을 나에게 지금 가르쳐주십시오. 그게 주님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기도입니다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언젠가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텐데 인간수명도 하나님께 달린 것 아닙니까? 내가 장수하고 싶어서 장수합니까?
요절하고 싶어서 요절합니까?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과 나와 관계 속에서 기도입니다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그래서 저도 혼자서 주님과 대화하면서 어떤 때는 딴 기도는 안 합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나에게 밝혀 보여주십시오.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그것을 구하는 기도만 하도록 성령님 내 마음을 주관해 주옵소서. 주루 이런 기도를 합니다.
나의 뜻을 이루지 말게 하시고 주님이 내 마음을 붙잡아서 내 뜻을 이루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저를 붙잡아주세요.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내 뜻을 이루도록 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그걸 허락하셔가지고 너 뜻을 이루고 너 마음대로 한번 가봐라 그런데 구약에서 여자의 후손4천년 과정 속에서 보면 사람들이 많은 업 벤 다운(up ben down)이 있습니다. 그 안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잖아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복잡한 사건이 아니잖아요. 심플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인간이 볼 때는 그 안에 복잡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들을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보면 그게 한 눈으로 보이는 게 이 모든 바울이 어떻고 다윗이 어떻고 솔로몬이 어떻고 그 양반이 우상섬기고 처가 몇 명이고 이런 복잡한 사건들이 주님의 눈으로 보니까 이게 다 연결되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모든 사건들이 막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위해서 성서를 그런 눈으로 볼 때 익사이팅(exciting)한 겁니다. 이것이 내 삶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과거30년산 사람들 40년산 사람들 50년산 사람들 60년70년산 사람들의 삶을 주욱 보면서 그분들의 모든 삶에서의 업 벤 다운(up ben down)들이 나를 오늘날 이만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런데 이것은 내가 계호기한 것도 아닌데 내가 원치 않는 방법으로도 가주었고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도 가주었고 어쨌든 이렇게, 이렇게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구나. 주님 앞으로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주님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이런 것을 우리가 알고 있을 때 이 큰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모든 사물을 보고 나의 인생을 볼 때 성서가 이해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이 그랬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내 속에는 파도가 치는데 범사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 큰 틀을 보는 사람은 그럽니다.
큰 틀을 보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애가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위해서 지금 나에게 이 어려움을 주시는군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 어려움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내 삶속에서 엄청나게 좋은 걸로 나타나 걸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지금 나의 이 어려움이 감사합니다. 로마서8장28절에 우리가 좋아하는 것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해서 선을 이루리라 이 큰 뜻을 본 사람들은 사도바울의 그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언젠가는 모든 일이 합해서 좋은 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계획이 그러시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그러니까 여러분들 자녀들이 수능시험 잘치고 못치고 여러 가지 생활이 조금 어렵드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내가 아픔도 경험하지만 그 아픔이 나를 지배하면 안 되잖아요. 그 아픔이 아하! 하나님이 나를 이쪽으로 끌고 가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조그만 하나의 점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털고 일어나야 됩니다. 그게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게 크게 보는 사람들의 우주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생활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믿음 없는 자들아 그럽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눈이 개미 눈이 되어가지고 보인 것만 보고 좋다 나쁘다 이렇게 자꾸 변하는 이놈이 이렇게 할 때마다 내 감정도 같이 변하고 우리AMI사역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다 보려주셨습니다. 어떻게 간다는 것까지도 주님이 어느 정도는 다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은 끝까지 너와 같이 갈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소중하게 생각해라 그 사람들은 여기서만 같이 가는 게 아닙니다. 영원히 같이 살 사람이야 하늘나라에서 그러니까 얼마나 소중합니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같은 동네에서 같이 살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연습을 해야 되잖아요 그것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겁니다. 눈에 보이니까 소중한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걸 보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고 하니까 운명 론 자아닙니까? 내가 노력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흘려가는 데로 흘려가면서 적당히 살면 되지 않습니까?
예배 끝나면 술집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하나님이 다 이끄실 텐데 막말로 하면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겁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는 분은 이 큰 그림을 보고 이 큰 그림 속에서 살려는 분은 항상 주님의 뜻을 나에게 보여주세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또는 내 속에서 제가 주님의 뜻을 위해 살도록 성령님 아에게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성령님 나를 인도해주세요
우리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큰 그림을 봤지만 그 큰 그림으로 가기 위해서 내가 일부로 저 멀리 돌아가지 않고 이것을 이루기위해서 내가 지름길로 갈 수 있도록 성령님 나에게 가르쳐주세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같은 값이면 이 뜻을 이루기위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계신데 이스라엘사람들은 보세요. 하나님의 뜻인 예수그리스도를 낳게 하는 민족인데 이 민족들이 딴 짓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빙빙 돌아서 고생을 엄청나게 했잖습니까?
그러듯이 될 수 있으면 지름길로 가도록 성령님 나에게 가르쳐주세요.
우리가 지름길로 가도록 또 뜻을 아니까 분명히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니까 그 뜻을 위해서 살려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겁니다. 
가까이 가고 그분과 가까이 교제하게 되고 그러니까 기도란 게 자유의지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때 기도란 게 큰 짐이 됩니다. 
기도 안 해서 이게 안 이루어져 기도하면 이게 다 이루어지고 기도 안하면 이게 안 이루어지는 이것은 아주 지엽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한국교회가 이런 식으로 가르쳐줍니다. 산기도가서 나무뿌리 몇 개 뽑아봐 그러면 돼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큰 그림 속에서 조그만 동네 게임할 때 그렇게 합니다. 그걸 했다고 해서 큰 그림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조그만 일들은 그것이 해결이 됩니다. 그렇지만 더 단수가 높은 사람은 나무뿌리 안 뽑아도 괜찮습니다. 뭐냐면 큰 그림을가지고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 내가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가도록 성령님이 이끌어주세요 이게 얼마나 큰 기도인지 아세요? 이것 주세요. 이것주세요가 아닙니다. 우리아들이 수능시험이 안 좋은데 주님이 이것 해결해주세요
하면서 절간 다니는 사람들하고 교인들이 똑같습니다. 그것 해결하려고 새까맣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학교정문에서 기도하고 앉아있고 기독교가 이렇게 타락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소원을 이루는 하나의 종교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지만 그보다 더 크게 하나님우리아들놈 수능시험 주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우리아들놈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떨어지면 그걸 통해서 더 큰일을 이루실 텐데 그 아픔을 통해서 이놈이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떨어지게 하십시오. 이렇게 덤벼드는데 주님이 이렇게 해야 되잖아요. 수능시험이 모든 팔자를 다 고칩니까? 이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주님 끝에 가서는 기똥찬 우리아들놈으로 만들어주세요 세계를 지배하는 아들놈으로 만들어주세요 더 크게 보시고 우리아들놈이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아들놈이 되게 해주세요. 수능시험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큰 그릇을 볼 수 있는 그런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뭐가 오는지 아십니까? 주님을 섬길 때 항상 평강이 옵니다  
평강, 우리하나님이 나를 지배하고 계시는구나. 내가 실수를 해서 죄를 지어도 내가 어디에 부족해도 주님이 나를 껴안고 계시구나. 하나의 부족한 그것 때문에 답답해하고 환경은 자꾸 변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굴에 인상 쓰고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안에서 평강을 얻는 겁니다.
우리주님이 하십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어렵지만 우리주님이 하고 계셔서 지금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상황을 보고도 감사하는 겁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주님의 역사하심을 내가 체험하게 됩니다.
아하! 이렇게 하시는구나. 그렇게 해서 나중에 좋은 일로 되었습니다.
아하! 이게 내가한 게 아니야 이걸 마음속 깊은데서 고백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사역이 이만큼 된 것도 주님 제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 이것해주세요. 저것해주세요 부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통하여 주님의 뜻만 이루십시오. 저는 이 말만 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그만해라 시끄럽다고 그러는 겁니다. 초점을 먼저 정확하게 맞추는 기도 이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지만 초점을 맞춥시다.
그러면 나에게 평강이 옵니다 평강,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주님이 하고 계시군요. 우리가 이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이 단련을 통해서 뭘 보여주시려고 그러시구나. 그러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나에게 와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감화 감동이 있고 감사가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걸 우리가 체험합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속에 불평이 없습니다. 그냥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우리교인들 소수가 아닙니다. 다수입니다 어저께 우리교회에서 졸업식에 참석한 젊은이가 그럽니다. 목사님 주일날 교인이 얼마 되지 않아 조그만 교회인줄 알았는데 제가 졸업식을 보고는 아하! 여기가 대단한 교회군요
자기가 그걸 느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이 형제가 똑똑하구나. 그랬습니다. 보는 눈이 있구나. 이런 비전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비전은 크리스천들 중에서는 안 가진 분들이 많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비전이 없잖아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그분들이 노래하는 걸 보세요.
어저께 제가 뉴스를 보려고 TV를 켜니 유행가프로그램이 있어서 제가 우심히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 봤습니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까 다 무슨 내용입니까? 사랑했는데 실연당했다는 슬픈 이야기 절망적인 이야기 그래서 외롭다. 그걸 듣고는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그리고 좋아서 박수를 치고 하는 걸 보면서 주여! 저 사람들 노래방에 가서 하는 게 이런 게 아닙니다.
이런 걸 하면서 스트레스 푼다고 그러죠. 혼의 부분의 스트레스는 그렇게 해서 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전이 없는 겁니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창조주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락 뮤직을 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 내용들을 보면 전부 파괴적입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도전적이고 퇴폐적이고 이런 것에 스트레스를 푼다고 그럽니다.
혼의 부분을 마음의 부분을 정당화시키는 노래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꼭 영의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건전한 클래식들 건전한 가요들 건전한 동요들 이게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까지 수준은 뭡니까? 마음을 다스리는 문화입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거기에서 한 단계 더 영의부분을 다스리는 그것이 찬송가입니다 복음성가입니다 이 수준으로 영의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영의부분의 최대의 영의부분의 찬송이 뭐냐면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복음성가들을 보세요. 다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고 사랑하는 고백들이 그런 찬송들입니다 우리뮤직 팀들이 그걸 중점으로 해서 찬양하잖아요. 
그래서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를 왜냐면 이분이 삼라만상을 지배하시는 분이고 나의 생사화복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분에게 내가 의지하며 이분에게 내가 기도드리고 경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속된말로 이분에게 따리를 붙이는 겁니다. 이분이 기분 좋게 그러면 이분이 나에게 은혜를 가득 부어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예수님! 예수님은 이 세상을 쥐고 계시는 분이시죠. 나의 생명을 쥐고 계시는 분이시죠. 내가 겸손하게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하고 그분에게 내가 완전히 무릎 꿇는 그게 우리가 드리는 찬양입니다 무릎 꿇고 주님! 저는 피조물입니다 저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큰 계획을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주십시오.
이렇게 무릎을 꿇는 연습을 하세요. 이것을 깨닫는 유행가가수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유행가를 집어던지잖아요. 그리고 복음성가를 부르잖아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모든 부분에서 예정 적으로 계획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계획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내가 지금 보지 못하지만 성령님께 매일매일 의지하면서 주님! 주님의 뜻을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그 뜻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해주십시오. 
왜냐면 어떤 분은 그럴 겁니다. 왜 자꾸 하나님만, 하나님만 말씀하십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목숨이 떨어질 때 여러분들 다 하님 앞에 가서 앉습니다. 
딴 분에게 안 갑니다. 그 예수님 앞에 딱 나타납니다. 목숨이 끝나는 그 순간에 누구에게 안 갑니다. 그러니까 그분과 나와 미리 가까운 교제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 가서 주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 크게 후회할 거다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이 세상에서만 사는 우리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만나야 될 만나는 그 예수님을 미리 만나서 그분에게 따리를 붙이면서 우리가살 때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기쁨을 누리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살면 그 복이 자녀들에게 흘려 내려가고 자녀들도 결론적으로는 예수님의 의지하면서 사는 자녀들이 되었을 때 그들은 복된 자녀들입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이런 것이 복된 게 아닙니다.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성탄절을 맞이해서 특히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그 예수님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계획하시고 그러면서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지만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계획하신 겁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을 그것을 철저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분의 계획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면서 다윗에게 말씀하기를 왕권을 가지고 오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왕 중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 중에 나단이라는 후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나오게 하시는 겁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요셉의 후손이 아닙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시작이 되시고 끝이 되시며 우리의 조그만 짧은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나의 태어남과 나의 죽은 그 모든 과정을 직접 계획하시고 운영하시는 우리예수님이시여! 그동안 저희들이 그러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냈던 부분이 있으면 용서해주시고 겸손히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나의 모든 삶의 주관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겸손히 저희들이 다시 모시고 경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존 귀히 올리는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잡다한 큰일들 작은 일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를 괴롭히는 그러한 일들이 다 필요하지만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그림을 보지 못하는 그런 누를 범 하지 않도록 이러한 모든 일들이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서 주관 자되시고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는데 나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우리주님이시여!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눈을 밝히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것을 나만이 아니고 우리가 삶 속에서 이런 것을 실천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후손들도 이 삶으로 우리를 따라올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우리가 받은 영적 복이 자녀들 대에 가서 그것이 혹시 끊어질 까봐 두렵습니다. 주님 우리교회의 형제자매들은 후손대대로 계속해서 이 영적 복을 누릴 수 있는 복을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