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마태복음21장1절-17절, 예루살렘의 입성(1)
종말론 7강, 예루살렘의 입성(1)(마21:1-17)
예루살렘입성하면 성서어디에 나오느냐면 마태복음21장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입성하면 머리에 떠오려는 것이 마태복음21장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21장을 우리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21장은 항상 기억하실 것이 우리가 이 장을 예루살렘 입성하는 것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려주일하면 마태복음21장입니다
마태복음21장을 우리의 시간으로 말하면 일요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일개념을 가지고 말씀을 하나하나 보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21장1절에서17절까지 주욱 보면 일요일 날에 주님이 어디에 들어 가셨냐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모습을 우리가 지도를 그려가면서 봅시다, 이스라엘지도를 보면 갈릴리호수 밑에 사해가 있습니다,
사해가 훨씬 큽니다, 그리고 사해꼭대기에서 지중해 쪽으로 26km가면 예루살렘입니다, 또 사해꼭대기에서 요르단과 경계하는 유명한 도시가 여리고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와 예루살렘에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예수님당시에도 사람들이 다니는 국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년 공생애 때 항상 갈릴리지방에 사셨잖아요,
그래서 갈릴리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는 직접 직선으로 가지 않으시고 꼭 여리고를 들려서 국도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다녔습니다,
사마리아지방에 들어가는 것을 제자들이 싫어했기 때문에 사마리아지방을 가쳐서 직선거리로 주님이 안 가셨습니다,
항상 밑으로 내려와서 여리고에 들렸다가 이렇게 예루살렘에 가시는데 가실 때 마다 우리 알다시피 예루살렘국도선상에 예루살렘못 가서 도시가 벳바게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감람산과 1-2km떨어진 가까운 거리로 감람산 언덕 너머로 조그만 마을이 벳바게 라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21장1절을 보면 벳바게라 쓰여 있습니다,
이때 벳바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귀를 가져 오너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벳바게 조금 못가서 다시 말하면 베다니입니다, 그래서 베다니에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항상 예루살렘에 오셨다가 주무실 때는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집에 가서 주무셨다는 학설이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길을 많이 다녔습니다,
벳바게. 베다니 이 동네를 많이 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즐겨 다녔던 길인데 우리 알다시피 선한 사마리아사람의 예화가 있잖아요, 그 예화도 여리고와 예루살렘간의 국도변에 일어난 예화입니다,
하나의 예화지만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한 사람이 다쳐서 누워있는데 누가 지나가고 누가 지나가고 그러지만 나중에 사마리아사람이 그 사람을 잘 보호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도 이 길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려고 하는 장면인데 지금 21장 장면이 뭐냐면 예수님이3년 공생애 동안에 주후26년부터 주후30년 유월절까지가 3년 동안에 예수님이 유월절을 몇 번 섬겼느냐면 4번을 섬겼습니다, 유월절 때마다 갈릴리지방 가버나움에 계시다가 항상 제자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따라서 여리고에 들려가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게 유월절이나 일곱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루터입니다
이걸 다 이해하셔야지만 사 복음서를 읽을 실 때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마태복음21장 장면은 뭐냐면 이분이 네 번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4라는 숫자는 뭡니까 고통을 경험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어떤 좋은 목표를 위해서 훈련하는 숫자가4라는 숫자입니다
유월절을 4번이나 연습을 하시고는 진짜로 유월절어린양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입니다 다른 유월절 때 들어가실 때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만은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들어가시는데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게 우리식으로 말하면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쫓으시며 돈을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시리라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시면서 주욱 나옵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21장14절15절16절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시편8편2절의 말씀을 지금 인용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들을 따라서 베다니에 유하시니라 이 말씀을 가만히 보시면 예수님이 지금 이렇게 유월절 일을 과거 모세 때부터니까 1900년 동안 동물을 잡아가지고 유월절어린양 모습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었잖아요,
보여주셨는데 실체의 유월절어린양이 지금 이렇게 들어오고 계신데 그분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특히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 서기관은 신학자들을 서기관이라 그럽니다, 제사장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목사님이나 가톨릭의 신부님들인데 이런 분들이 예수님을 지금 못 알아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러냐면 진짜 너희들은 못 알아보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못 알아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주욱 보면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이방인들은 소경들이나 어린아이들이나 불쌍한 거지들이나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서 이방인들을 지칭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실제로 앉은뱅이, 저는 자, 장애자들은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예수님 앞에 나타난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일어난 일과 영적인 상징적인의미가 섞어있습니다,
보면 항상 예수님이 하실 때 그렇게 합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예수님이 고쳐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예수님 앞에 와서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까, 이방인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15절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아이들은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상징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러는 겁니다,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게 다 정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이 사람들이 지금 이방인들이 자기를 보고 아 저분이 메시아다 저분이 여호와다 저분이 성전에서 저렇게 죽으실 메시아다, 라는 것을 외치겠다, 라고 말한 그 말이 이루어지기 위한 그 말을 어디서 했느냐면 시편8편2절에서 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는 겁니다,
언제냐면 천 년 전에 다윗에게 이렇게 예언한 그 예언이 다윗에게 누가 말했냐면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렇게 말해주었거든요 그때 여호와가 누구냐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내가 다윗에게 말한 말을 내가 지금 이루기위해서 너희들이 지금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떨 때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움직여나가는 부분이 이게 인간의 이성으로 보면 상당히 조직적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게 좋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 그 사건자체만 보면 그런데 그 사건 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기다리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건 그 자체만 보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섭섭하다 이러지 마시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이 사건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나님이 보여주기 위해서 이 사건이 있구나, 라고 멀리보고는 그 사건과 나와 언젠가는 좋은 일로 잘 될 거다 이렇게 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뭐냐면 예수님중심으로 좋은 일을 보는 겁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니까 우리 주님이 예수님이 통치하시니까 그분이 과연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런 쪽으로 보는 겁니다, 그분의 뜻을 찾아서 모든 사물을 우리가 해석하는 겁니다,
혹시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시고는 다시 12절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 가지고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에게 욕하는 장면이 나오잖습니까,
그분들이 그만큼 예수그리스도의 진가를 몰랐기 때문에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물질위주로 되어버리고 하나의 행사위주로 되어버리고 이런 식으로 자꾸 하다보면 그것이 하나의 세속화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잖아요, 이분이 주일날에 이렇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는 17절에 보면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베다니에다가 동그라미를 쳐놓으세요,
이분이 베다니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하룻밤주무셨습니다,
그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첫날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첫날은 우리가 말하는 주일날입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베다니에서 하룻밤주무시고는 일요일 아침에 18절부터 이른 아침에 성(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이걸 잘 보시면 주님이 하시는 행동을 보면서 이것이 그 시간을 보지 마시고 어떻게 역사 속에서 어떻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시는지를 우리가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는 오늘날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보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보는 우리 눈이 뜰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하신지라 이 시장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겁니다,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그러니까 열매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무화과나무는 뭡니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 이스라엘나라를 이야기할 때 무화과나무다 이렇게 말합니다, 잎사귀들은 무화과나무에 딸린 백성들입니다 이럴 때 무화과나무라 그럽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는 모습을 예수님이 지금 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열매가 없을까요 이분들이 과거 이천년 동안 구약 동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고 그러고 그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그 사건을 그렇게 많이 보여주고 행하였지만 이분들은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 모든 것은 예수님중심입니다 우리가 열매라고 할 때 이 무화과나무에 예수님이 달려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전날에도 보셨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랐듯이 나무자체도 열매 없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물들과 다 연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물들과도 그래서 우리가 지금 돌아가는 모든 사물을 봐도 그런 식으로 다 예수 중심으로 사물을 보는 영안. 지혜. 통찰력 이걸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부분을 제 나름대로 받은 것들을 일부를 나누어드리는 겁니다,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그랬습니다,
이게 지금 보시면 예수님이 영원토록 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사람들이 영원히 멸망하느냐 그럴 때 우리가 성서를 볼 때 해석을 잘 해야 됩니다, 다시 보면 예수님이 그 당시에 왜 이렇게 영원이라는 말을 썼을까 이렇게 하셔놓고는 나중에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나라가 다시 독립이 되고 나중에 바울에게 로마서11장25절에 이스라엘을 내가 다 구원한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영원토록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신학자들은 이것 봐라 말씀이 앞뒤가 안 맞다,
그러니까 성경에 쓰여 있는 말은 다 믿으면 안 된다 이러고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걸 가지고 탁 설명합니다,
이 말은 여기 보면 이런 말인데 이것이 어떻게 해석이 잘못되어서 이랬다
그 당시 뭘 하면서 별난 소리를 다 합니다,
그래서 하여튼 이 성경말씀이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100% 믿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은 그 당시에 실제 사실이고 이런 것은 그 당시에 말을 조금 붙인 거다, 면서 별난 소리를 다 합니다, 왜냐면 영적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말 안 들으면 애가 너 죽여 버리겠다, 하잖아요,
진짜로 죽이는 게 아니잖아요, 화가 나서 강한 표현으로 형용사가 들어갔는데 이런 것과 똑같이 영원토록 하시는 것도 전날에 하는 짓들을 보세요,
2천년을 연습하셔서 지금 예수님이 여기 오셨는데 아담 타락할 때부터는 약4천년이거든요 그렇게 까지 해도 몰랐던 이 사람들에게 화가 나셔서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화요일 날에 보시면 완전히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참고로 그렇게 알고계세요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여기 이 말씀만 가지고이야기하면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기고 다한다는 겁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 우리가 성서공부도 많이 하고 이 말씀만 가지고 별난 이야기를 다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어떤 사람은 독약도 먹어도 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금 월요일 날 하시는 이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항상 말씀 하실 때 앞뒤를 보시고 어떤 상황에서 믿음을 이야기 하였습니까 이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이시고 구속을 위해서 오셨다는 그 하나님이 거기에 대한 믿음입니다, 거기에 대한 믿음을 너희들이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짓들을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창조주라는 것을 구속 주라는 것을 믿을 때 그 믿음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안에 믿음 해놓고 다할 수 있다는 그 사이에 간격이 많거든요,
그 간격은 성서에서 많은 부분에서 그 사이에 조건들이 많습니다,
그 조건을 여기서 생략을 했습니다, 그런데 초점이 뭐냐면 무화과나무가 저주가 받은 것이 초점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왜 저주를 받았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 안했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무화과나무가 이렇게 저주를 받고 실제적으로 나무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나라가 저주 받은 게 언제입니까, 이미 민족은 일부만 빼놓고 예수님을 다 믿지를 않았으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저주받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실제로 저주 받은 게 언제입니까, 주후70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역사와 항상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말씀을 하는 게 몇 년에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후30년입니다 3년 공생애를 주후26년에 시작하였습니다,
주후30년에 무화과나무를 실제로 저주해놓고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나라와 사람들과 성전이 무너진 것이 주후70년입니다 그러니까 또 40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연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정확한 계획 속에서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4라는 숫자가 어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특별훈련기간입니다 이40년 동안 뭘 했습니까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유대인12명 나중에120문도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탄생되고 교회를 통해서 바울이 나중에 불리 움을 받고 그래서 바울을 통해서 1차2차3차4차 전도여행까지 다 해가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건너간 그 순간까지가 사도바울이 주후68년에 순교했거든요,
베드로도 그 당시에 순교하셨고 그러니까 그분들이 할 일이 끝나고 복음이 이방으로 넘어가는 그때 까지가 70년인 겁니다,
예수님이 정확하게 계획을 하신 겁니다,
복음이 이방으로 넘어가는 그때부터시작해서 이스라엘사람들을 폭삭 주저앉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너희들은 주저앉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복음이 이방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래 놓고는 그 다음날 화요일에 하신 말씀이 상당히 많습니다, 화요일 날에 예수님이 마지막 때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마태복음21장32절부터34절까지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게 지금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재림이 가까이 올 때 크리스천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예수님이 지금 월요일 날에 무화과나무를 저주를 하시고는 화요일 날에 다시 무화과나무와 관계해서 마지막 때 징조들을 설명하실 때 무화과나무를 다시 인용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1948년에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나라가 독립될 때 무화과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말씀을 제가 예전에 한번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월요일 날에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에 들어가 가지고 그날 하루에 하신 일은 뭐냐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와 그것은 주후70년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시고 실제로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리고 그리고 있다가 그 다음날 화요일에 이 무화과나무가 종말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어제 말한 무화과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내면서 살아날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21장23절을 보면 화요일 날의 시작입니다, 25장46절까지입니다 26장1절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는 것은 25장까지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이스라엘사람들의 날짜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우리가 지금 화요일 날 하시는 말씀인데 화요일에서 이틀이 지났다면 어떻게 되느냐면 화요일을 카운터를 하지 않습니다,
수요일이 하루 목요일이 하루입니다 그 이틀이 자나면 그러면 그다음날짜가 금요일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날짜 카운터는 이렇게 합니다,
그날은 카운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25장까지는 화요일입니다 그리고 월요일 끝나는 곳은 21장22절까지입니다,
그러니까 21장23절부터25장 마지막46절까지는 화요일입니다
그러면 간단간단하게 화요일 날에 예수님이 엄청나게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화요일 날에 우리 귀에 익은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화요일 날하고 그다음날 수요일 날도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날과 목요일 날 특히 수요일과 목요일 날에 하신 말씀은 목요일에는 무슨 말씀입니까,
성만찬 때 말씀은 수요일 날은 그렇게 중요한 말씀을 안 하셨는데 목요일 날은 성만찬 때 말씀을 엄청나게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성만찬저녁에 그것이 어디에 나오느냐면 요한복음13장14장15장16장17장까지 다섯 장이 성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전체가21장인데 21장중에서 하루저녁에 목요일 날 하신 말씀이 다섯 장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장 속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말씀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종려주일날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셔 가지고 특히 월요일부터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목요일저녁까지 하신 말씀들을 제가 그것만 집중적으로 한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우리가 자세하게 보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아하 우리주님이 마지막유언 같은 말씀들이 3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킨 다음에 제자들에게 주옥같은 말씀들을 그 나흘 동안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받으려면 그 나흘 동안에 하신 말씀에 깊이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이런 성서의 시스템을 알고 나면 어디에 내가 신경을 써서 우리주님이 어떤 부분에서 더 신경을 쓰시고 우리들에게 기대하시는가, 그걸 우리가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마태복음21장23절부터27절까지가 화요일 날 첫 번째 설교입니다,
성경에다가 첫 번째 설교라고 써놓으세요 우리나라성경은 잘 되어있는 게 한 대목마다 동그라미를 쳐놓았습니다, 그래서 동구라미와 그다음동그라미 사이가 한 대목입니다, 영어성경에는 그게 안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게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23절 앞에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그리고27절까지가 한 다락입니다, 그리고 28절 앞에 동그라미가 있어야 되는데 그걸 놓쳤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설교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이분들이(이스라엘지도자)스쳐 지나갔습니다,
대 제사장들에게 말해야 이해를 못하니까 그냥 적당히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그 사건에 대하여 한마디씩 뱉어내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게 그냥 심심해서 뱉어내는 것이 아니고 뱉어낸 말씀들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잖아요, 뱉어낼 때 왜 뱉어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항상 옆에 따라 다니잖아요 제자들 보고 들으라고 뱉어내시는 겁니다, 제자들 교육용 실습용 모든 말씀들입니다
그러니까 3년간 공생애는 제자들을 차출해 가지고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기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훈련시키는 거기서 나오는 모든 훈련내용들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겁니다,
그러면 훈련내용을 딱 보시면 뭘 주님이 훈련시키려고 그럴까요,
큰 대목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해 주려고 그럽니까,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는 게 그분들의 사고방식이 구약적인 개념을 가진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구역에 나오는 여호와가 나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내가 창조주하나님이다 그리고 삼위하나님 중에 제2위 하나님이신 성자하나님이라는 것을 우선 가르쳐주고 그것을 가르쳐주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분이 가끔 가시다가 기적을 베풉니다,
장님들을 눈을 뜨게 하고 베드로의 어머니열병도 고쳐주고 처음에는 약하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되어가지고 5병2어 사건으로 기적도 보여주고 예수님이 제일 처음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뭐라고 그랬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서령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세례요한에게 이분이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잖아요, 세례요한에게 이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였잖아요, 이분이 그걸 들었지만 나중에 제자들을 시켜가지고 그분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체크하라고 그랬습니다,
세례요한도 그렇게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듯이 제자들은 그 당시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을 다 뽑으신 다음에 데리고 다니면서 기적을 일으키신 다음에 나중에 가서는 죽은 자인 나사로까지도 살아나게 하신 겁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가 계속해서 고민하면서1년 반을 따라다닌 겁니다, 그게 지금 우리모습인 겁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한20년을 해도 아직도 저는 모태신앙이거든요 모태신앙인데도 아직도 나이가60이 되어도 정말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고 싶은데 이게 안 될 때도 있거든요 여러분들은 저보다 훨씬 나으시니까,
4-5년 만에 끝내겠지만 저는 그게 잘되거든요 제자들도 보면 똑같았습니다,
보시면 공생애 정도 되었을 때 예수님이 무리들보고 당신들 여기 좀 있어라 그리고 열두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가지고 가이사라 빌립보에 가서 물어보는 장면 있잖아요, 도대체 너희들 나를 따라다니는데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한분이 예레미야입니다 엘리사입니다 누굽니다. 누굽니다 별난 소리 다 하잖아요,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니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이렇게 말을 했지만 베드로야 그게 너가 한 것이 아니다
성부께서 너 입을 통해서 그냥 말한 것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열두제자들이 그걸 들었을 것 아닙니까, 아 하 그렇구나,
저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라는 것을 들었지만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들입니다 제자들 그 유명한분들을 뽑아 놓아 신데도 그래서 그다음에 마태복음16장이야기인데 17장에 가서 변화 산에 데리고 올라가잖아요, 특히 거기에 핵심멤버 세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분을 데리고 올라가서 변화 산에서 변화되고는 거기에서 이게 뭔가 하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내려오잖아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다 이분들이 그래놓고도 잘 모릅니다, 계속해서 보여주거든요 어떨 때는 마태복음8장 같은데 보면 귀신이 나타나가지고 귀신들린 자들이 당신이 다윗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입 다물어라 그러잖아요,
제자들이 다 들었는데도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몰랐다는 겁니다,
머리가 바뀌어 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슬비를 내리듯이 계속해서 자꾸 내려주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겁니다, 제가 한 시간을 다해도 나중에 물어보면 모르는 게 우리모습입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다 알면 그러면 골란 합니다,
특수한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은 다 이슬비 맞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그리스도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3년 동안 훈련계획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내가 구세주로써 구약에서 말한 모든 예언을 이루려고 온 하나님이다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 왔다, 그리고는 이 대속의 제물이 된 다음에 내가 다시 부활해가지고 내가 승천한다, 그리고는 너희에게 지상명령을 내려줄 거다,
여기 까지가4복음서의 내용입니다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겁니다,
너희들이 이제 지상명령을 할 때 너 네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
너희들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나의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는 안 된다 지상명령을 수행 못한다, 보혜사성령님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다려라 그래가지고 보혜사성령님을 받아가지고 뛰어나가는 겁니다, 그게 사도행전입니다 똑같이 지금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 화요일 날 제자들에게 어느 정도 트레이닝이 그의 끝난 겁니다,
우리 초등학교6학년 졸업하려면 지금 5학년 정도 되었을 때 화요일 날에 깊은 말씀을 해주는 겁니다, 나중에 너희들이 지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면서 두 번째 설교부터보시면 특수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애들아 복음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떨어졌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그것을 배척할 것이라는 겁니다, 소수만 빼놓고는 그리고는 복음이 이방으로 넘어갈 거라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예화들이 우리가 다 아는 예화들입니다
28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둘째아들은 이방인들입니다,
31절에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방인을 이야기합니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나라에 먼저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사도행전부터 나가서 뛸 텐데 제자들이 이걸 몰랐습니다,
그걸 깨달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울밖에 없습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바울밖에 없었습니다,
똑같이 세 번째 설교로 가시면 같은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하십니다,
같은 이야기를 더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이 나중에 복음을 받아서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겁니다,
유대인이 안하고 22장에 들어가서 네 번째 설교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나중에 이것만 가지고 제가 설명할 때 가 옵니다,
네 번째 설교에서도 그럽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들어갔는데 22장1절에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게 지금 이스라엘사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 보면 천국은 자기아들을 위하여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것 같으니 이게 지금 언제냐면 지난시간에 들림(휴거)의 시나리오 속에서 혼인잔치장면 생각나세요,
혼인잔치에 들림을 받고 들어와라 했는데 22장 네 번째 설교는 종말로 뛰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종말로 점프하여가지고 혼인잔치에 들어오라는데 혼인잔치에 들어오는 사람은 유대인 중에서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혼인잔치는 유대인들이 참가를 못합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이갈 우선 참고로 알아두세요,
그래가지고 혼인잔치에 안 들어온다는 겁니다,
앞에 첫 번째 설교와 두 번째 설교에서 보면 유대인들을 주님 앞에 1차로 안 온다는 겁니다, 아무리 불려도 안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8절에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방인들 가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오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이걸 제자들에게 훈련시키는 겁니다, 제자들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나중에2000년 동안 시작해서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온다는 겁니다,
아무나 잡아 오는 게 이방인이거든요, 왔는데 이방인 중에 두 가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방인 중에서 혼인잔치에 가는 사람들이 있고 혼인잔치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지금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14절에 그러는 겁니다, 이방인 중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고 구원받은 자는 많다지만 택함을 입고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는 겁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게 네 번째 설교입니다, 이게 화요일 날입니다,
그러니까 성서는 이렇게 마태복음21장부터 이렇게 주욱 보시면서 이게 화요일에 말씀하시는구나, 이러면 입체감이 생길 겁니다,
막연히 보는 것보다 입체감을 느끼라고 제가 이렇게 시간을 드려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22장15절부터 다섯 번째 설교로 들어가는 겁니다,
15절부터22절까지인데 유명한 말씀입니다 가이샤에게 우리 세금을 바쳐야 됩니까, 안 받쳐야 됩니까, 그런 이야기 우리가 다 알잖습니까,
그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이 장면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설교가 23절부터33절까지입니다, 여기는 부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주욱 있습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 설교가 34절부터입니다,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렇게 물었을 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러면 보세요, 예수님이 이 말을 해야 되겠는데 예수님이 이 말을 하시도록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여기 지금 누가 질문을 합니까,
율법사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잖아요, 율법사들이 질문했으니까 예수님이 내가 마지못해서 대답한다는 이게 아닙니다, 그것은 인위적인 방법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이분이 다 가르쳐야 되는데 그것을 드라마 식으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악한 마음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이런 질문을 막 던지는 겁니다,
예수님이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겁니다,
너희들 이런 식으로 질문해라 그러면 내가 이런 말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걸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내 마음을 섭섭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그런 사랑이 그렇게 할 때 너가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그 사람을 통해서 시험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이 미워요 안 밉습니까,
안 밉고 고맙습니다, 나를 주님 앞에 더 예쁜 나를 만들기 위해서 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주님 저를 위해서 저 사람이 저렇게 되니 저 사람을 주님이 사랑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운 사람이 없는 겁니다, 고맙지요 우리가 그걸 입체적으로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사물을 볼 때 영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단편적인 눈을 가지고 있을 때 성서를 볼 때도 단편적으로 봅니다,
그냥 이걸 단편적으로 보고 구약의 율법은 단편적이거든요
그래서 나의 눈을 뽑으면 내가 그 사람의 눈을 뽑는 단편적인 겁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그렇게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단편적인 사람입니다
단편적인 사람과 사귈 때는 항상 제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왜냐면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사귀다가 나를 단편적으로 보니까 예를 들어서 황 목사가 자기에게 편하게 해주고 잘해주면 나에게 좋지만 제가 이런 일을 하다가 보면 자기에게 편하지 않는 일을 하면 단편적으로 보는 사람은 그때 팩 하고 돌아서는 겁니다, 서로가 차원을 높여서 보는 겁니다,
차원을 높여서 보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기위해서 저분이 저러는구나,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그것을 보는 겁니다,
우리가 다 그런 식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서로가 편합니다,
이렇게 하여도 앉아주고 저렇게 하여도 앉아주고 왜냐면 그런 사람을 내가 필요한 겁니다, 서로가. 서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만 모이면 이게 천국입니다 주님이 그런 분들 위에 다가 복을 내려 주십니다,
또 우리교회 성도들도 그런 그룹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눈으로 성서를 보면 성서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kEG_5YVK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