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2년11월25일

변명섭 2022. 11. 26. 22:32

지난주일 설교에서 "감람산의 신비란 무엇인가?"(슥14:4)라는 주제로 말씀 전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천국의 신비', '에덴동산의 중앙의 신비'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지난주에는 이어서 '감람산의 신비'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왜 '신비'(mystery)라는 표현을 하는가요? 이는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소화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은혜(헬. Karis, 영. Grace, 롬1:7; 고전1:3)와 성령님으로부터 전수받는 은사들(헬. Karismata, 영. Gifts, 고전12:8-10)로 옷 입힘 받아야만 소화할 수 있는 이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수 '남은자들'(히. Sariyd, 헬. Reimma, 영. Remnants, 사1:9, 17:6; 롬11:5)에게만 해당되는 이슈입니다. 이들만이 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마13:11-17). 나머지 크리스천들은 이에 무관심하거나, 이성이나 논리로 소화가 잘 안되기에, 의심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본주의적 크리스천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이 '신비'를 소화하며 이해하는 것이 구원의 요건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같은 크리스천으로 이 문제로 서로 다투면 안 됩니다. 이는 주안에서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듣는 자를 실족시키게 됩니다(딤후2:14). 한편 소화하는 '남은 자'는, 더욱 열심히 이 '신비들'을 공부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성장되어야 합니다(딤후2:15).

오늘 우리는 '감람산의 신비'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타락 전 '오리지널 감람산과 겟세마네 동산'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에덴동산(예루살렘의 동쪽)의 동쪽'이라고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 온갖 지진으로 인해 지형이 많이 변형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기록된 감람산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다윗 시대(주전1010-970)입니다. 법궤가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때, 그가 맨발로 울면서 감람산에 올라갔습니다(삼하15:30). 그가 감람산 정상에서 하나님께 경배 드렸습니다(삼하15:31-37). 그에게는 '감람산'이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 시대(주전970-930)는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감람산을 이방신들로 더럽혔습니다. 이곳에 이방신 산당들을 짓고 예배 드렸습니다. 솔로몬의 아내들(700명)과 첩들(300명)의 우상들인, 그모스(모압신)와 몰렉(암몬신)의 산당들입니다(왕상11:7-8). 이 일로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왕상12:25-14:20)과 '남 유대 왕국'(왕상12:1-24)입니다.

'남유대 왕국'(주전930-586)에 20명의 왕들이 있었습니다. 이중 18명의 왕들이 '감람산'에 이방 산당을 짓고, 가증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2) 왕만 예외였습니다. 히스기야 왕(13대, 주전715-686, 왕하18:4-7)과 요시야 왕(16대, 주전640-609, 왕하23:4,13-14)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스가랴(주전520-480)가 '감람산'에 대해 예언 받았습니다. 장차 신약시대가 마치게 될 때, 여호와(예수님)가 '감람산'으로 재림하신다는 놀라운 예언입니다(슥14:4). 또한 에스겔(주전593-565)의 예언입니다. 장차 천년왕국 시대(계20:1-7)에 제 4성전이 지어질 터인데(겔40-48), 이때에 예수님이 '감람산'에 내리신다는 것입니다(겔43:1-5). 이렇게 '감람산'이 '특별한 산'임이 틀림없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감람산'이 예수님의 특별 사역 지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처'였습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시며, 기도하셨습니다(눅21:37). 특히 기도를 주로 '감람산' 북쪽 산밑 동산(garden)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습니다(마26:36-46).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때에도, 감람산 벳바게 건너편에서, 나귀새끼를 취하시어, 이것을 타고 입성하셨습니다(마21:1-11). 고난주일 화요일에 그 유명한 '감람산 설교'(재림설교, 마24-25)도 이 산에서 하셨습니다. 목요일 '유월절 성만찬'(마26:26-29; 눅22:17-20) 하시고, '감람산 겟세마네'에 가시어 밤새 고통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마26:36-46). 그 후 예수님이 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행1:9). 두 천사가 말합니다. 너희가 본 그대로 예수님이 이 '감람산'에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행1:10-11). 스가랴의 예언(슥14:4)을 두 천사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도대체 '감람산'이 왜 이렇게 예수님의 주요 관심되는 장소인가요? 이곳이 바로, '타락 전 에덴동산'의 동쪽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타락 전 아담이 주로 지냈던 지역입니다(창2:8). 이곳에 여호와(예수님) 보시기에 즐겁고, 양식으로 좋은 모든 나무들을 자라게 하셨습니다(창2:9). 이 나무들에서 나는 열매들이 아담의 음식이었습니다(창1:29). 아담에게 이 모든 나무에서 나는 열매들을 마음대로 먹게 하셨습니다(창2:16).

이곳에서 아담에게 하나님의 창조목적 동역 자 직분을 주셨습니다(창1:28). 청지기 사명도 주셨습니다. 이곳을 잘 관리하고 지키는 사명입니다(창2:15). 아담에게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도 여기서 하게 하셨습니다(창2:19-20). 이곳에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짓게 하셨습니다(창2:21-25).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에덴동산'의 북쪽지역에 '뱀'(serpent)을 살게 하였습니다(창3:1). 이 '뱀'이 바로 '사탄'(satan)이며, '마귀'(the devil)이며, '용'(dragon)입니다(계20:1). 이 북쪽지역이 바로 '사웨골짜기'(창14:17) 또는 '힌놈 골짜기'(렘7:31)로 추정합니다. 이만큼 오리지널 '감람산 지역'이 창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이 지역에 있어야 함을 지레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이 내용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것 다 알아야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몰라도 됩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이런 내용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관심도 없는, 구원과도 관계없는, 어려운 공부를 가르치십니까? 관심 있는 분들이 많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요? 지난주일 설교에서 그 답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경외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하나님의 신비의 말씀'으로 가득 찬, '지식'(잠1:7)과 '지혜'(잠9:10; 시111:10)로 옷 입혀져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경외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분이 (1)수직계명, (2)수평계명, (3)지상사명을 순서대로, 부담 없이 감사하며 기쁨으로 수행합니다. 자발적 수행입니다.

누가 강압적으로 시켜서가 아닙니다. 아니하면 몸이 쑤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행하도록 이끄심 받습니다(마6:33). 아니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이렇게 만드십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인도하십니다.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케 하십니다. 이것이 곧 "성부와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베푸시는 은혜"(롬1:7; 고전1:3)를 받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거룩한 증세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자신이 원하든 안원하든, "시편 91편의 13가지의 복들"을 내려주십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기 때문입니다"(시91:14). 왜 이런 복들을 일방적으로 이들에게 내려 주시는가요? "예수님이 이런 분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의 뜻을 펼치는데 사용받기 위해서는, 이 복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들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심한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건져주십니다." "보호천사로 지키십니다." "이들의 기도응답 척척 해주시고, 장수로 이들의 삶을 만족케 해주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요긴한 필요 자가 되어", 이런 복을 받아, 이 세상 창조목적학교에서, 우수학생으로 지내다가, 본향으로 가는 '참 지식 자', '참 지혜 자'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