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8월13일
지난주 설교 제목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마23:23-24)였습니다.
이 주제의 핵심 내용이 십일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십일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입니까? 왜 여호와 하나님(예수님)이 십일조를 요구(신14:22; 말3:8)하십니까? 그 이유를 모세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예수님)을 경외(fear)하는 것을 항상 배우게 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You may learn to fear the Lord your God always, 신14:23).
다시 말해, 하나님 자녀들이 십일조 생활을 통해, 죽을 때까지 항상 예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may learn to fear) 말씀에 방점(focus)이 있습니다. 항상(always) 입니다.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계속성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십일조 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며 복' 입니다. 창조목적학교의 '우수 학생'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경외(fear)의 의미는 '거룩한 두려움과 존경' 입니다.
그러면 경외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예수님) 이십니다(신14:23).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이분이 우리의 '생사화복 주관자' 이십니다(신30:19). 삼위 하나님 중, 직접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부탁하여 우리에게 관여해 달라고 부탁하실 때, 우리에게 오십니다(요14:16). 예수님을 통해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요16:23).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주권자'(마20:15; 롬9:6-23)이시며, 우리의 '생사화복 주관자'(신30:19) 이십니다. 우리의 '경외 대상자' 이십니다. 이분을 경외할 때, 삼위 하나님이 함께 경외 받으십니다.
우리가 왜 이 예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로버트입니까? 인간은 자존심이 없습니까? 인권은 없습니까? 예수님이 무척 이기주의적 분이시네요. 대부분의 '비 하나님의 자녀들'이, 종종 예수님에 대해 이런 질문들을 던집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은 자'는, 아무리 이성이 강하고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해도, 신기하게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예수님이 '주권자'이시며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믿고, 겸손히 예수님 앞에 무릎 꿇습니다. 왜 이들이 무릎 꿇을까요?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들이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롬1:7; 고전1:4), 하나님 자녀로 예정되어 불리 움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롬8:29-30).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소화 할 수 없는 복음의 신비 영역입니다.
이 은혜 받은 자는, 십일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습득한 재물이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말3:8). 그런데 은혜 받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십일조를 하지는 않습니다. 십일조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십일조는 구약의 요건이지, 신약의 요건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오늘의 본문(마23:23-24)에 의하면, 이 가르침이 비성경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한편 대부분의 성도들이 십일조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단지 '종교의식 참여 행위'로, 또는 '이 세상 복 받기 위한 수단'으로 합니다(말3:10-12). 이것은 '낮은 수준 십일조 인식' 입니다. 좋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목적과 인식으로 하던, 십일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레27:30-32; 신14:22; 마23:23-24). 이렇게 일단 '낮은 수준 인식 십일조'로 시작하게 하십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때에 맞추어, 조금씩 서서히 '여호와(예수님)를 경외하는 자'로 '영성을 업그레이드'시켜 주십니다. 모세에게 약속하신 '여호와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신4:23).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때가 되어(전3:1-8), 조금씩 '영성 업그레이드'를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서서히 업 그레이더 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여호와를 아는(호4:6,6:6) 지식(잠1:7)과 지혜(잠9:10)에 배고파하며 목말라 하게(마5:6) 되어 있습니다. 7대 신학 주제들을 열심히 배우며 공부하도록 이끄심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 민족과 타 민족에게 이것들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거룩한 전도와 선교 욕심'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자발적 성령님의 이끄심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십일조와 관련하여, '소경된 인도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엘리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입니다. 이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들이야 말로, 하루살이처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정성들여 채로 걸러내며, 십일조를 드리는 종교인들 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 종교 행사에, 예수님(의와 인과 신)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하루살이 정성드린 종교행사입니다. 이보다 더 큰 종교행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있는 약대(의와 인과 신) 종교 행사라고 하십니다. 이 약대가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이들이 이 약대를 맛 보지도 않고 그냥 삼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 종교 행사'는 하는데, '십일조 주체'이신 예수님 없는 십일조 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예수님을 경외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 근육운동' 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 주변에, 십일조를 계산하는데 있어,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입에서 세금을 제한 후의 십일조인가? 아닌가? 고정 수입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하고, 마이너스 생활하는 사람들은? 전혀 수입이 없는 사람들은? 계산하기 애매하고 힘들어서, 가끔 목돈으로 십일조 또는 그 이상의 액수를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언급한 연보에 대한 가르침이 우리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로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5-8). 억지로 하지 마시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각자에게 베푸신 은혜와 은사와 믿음의 분량에 따라(롬12:3-8) 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지난 40여 년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세계 교회들을 보아 왔습니다. 크게 두(2) 부류로 구분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주는 교회'와, (2) '받는 교회' 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주는 교회들'이 '미국'과 '한국'에 있습니다. 나머지 나라 교회들은, 예외가 있지만, 받는 교회들로 주종을 이룹니다. '주는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이, 자타가 인정하는, '선교 대국들' 입니다. 재림전 '리더 추수꾼 나라들' 입니다. 이 두(2) 나라 없이는, 재림전 마지막 추수사역(마24:14)의 성취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책임이 막중합니다. 민족적으로, 복음적으로, 선교적으로 어깨가 아주 무거운 나라들입니다. 이 두(2)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기대가 큽니다. 복 받은 두(2) 나라 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두(2) 형제 파트너입니다.
어떻게 이 두(2) 나라가, 이렇게 세계 복음화의 주역이 될 수 있었나요? 이는 영적, 인적, 물적 자원이 뒤따라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을 위해, 두(2) 형제 복음 파트너에게 이 세(3) 요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영적 풍요, 인적 풍요, 경제적 풍요입니다. 이 풍요 가운데, '십일조 팀들'을 주셨습니다. '십일조 팀들'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는 팀들'도 주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이 두(2) 나라가, 재림 전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추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1885년에, 미국 장로교회가 언더우드를, 미국 감리교회가 아펜젤러를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십일조 팀들'과 '그 이상으로 하는 팀들'의 믿음의 헌신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셨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향해, 이 일을 1980년대까지 계속했습니다. 100년 가까이 입니다. 예수님을 경외하는 미국인 크리스천들로부터 입니다.
이제 놀랍게도, 이 땅에 뿌린 '이 조그마한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큰 나무로 만드셨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큰 선교 대국으로 만드셨습니다. 세계 만민이, 이 '한민족 큰 나무 가지들'에 깃들게 하시고 계십니다(마13:31-32). 여기에 우리 한민족 '십일조 팀들'과 '그 이상으로 하는 팀들'의 헌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경외하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오늘날도,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지상사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십일조의 위력이 미국과 한국을 이렇게 선교대국으로 만들었음을,
두(2) 나라 교회사에서 배우게 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