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야고보서2장14절-26절, 행함이 없는 믿음
야고보서강해 7강. 행함이 없는 믿음(약2:14-26) 2008년3월30일 말씀
야고보서2장14절부터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신학교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유명하면서도 이 말씀 때문에 교단이 갈라지고 여기 나오는 말씀 때문에 지금도 소위 진보진영신학과 보수진영신학과의 대립이 있습니다. 그만큼 야고보서2장14절부터26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제가14절부터 읽겠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7절이 아주 핵심입니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이때부터 믿음의 대표적인 성서에 두 분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멘.
이 말씀은 소위 진보주의신학자들이나 교회 교단에서 항상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보수주의 또는 복음주의신학자나 교회나 목사님들은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알고 또 금식도 하고 기타 등등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이분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고아나 또는 과부나 사회에 쳐져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서2장17절 말씀을 보십시오.
행함이 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또 이분들은 성서말씀 또 한 가지를 인용하십니다. 두 개의 말씀을 꼭 기억해두세요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25장41절에서46절의 말씀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예수님이 들림 받는 사람들의 조건 중에 말씀하시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배고팠을 때 먹여주었고 목말랐을 을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돌봤고 헐벗을 때 옷을 입혀주었고 병들었을 때 고쳐주었고 감옥에 있을 때 와서 심방하였느니라. 그런데 양들은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양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양들아! 내 아버지께 너희들은 복 받을 자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옆에 있는 염소보고는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염소에게 뭐라고 질책을 하였냐면 저주받을 자들아 그랬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 모든 두 말씀을 보면 소위 진보주의사람들은 복음주의사람들아 봐라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성서 많이 공부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만 이웃의 배려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 사람들은 저주받을 사람들이다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까지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그래서 진보주의크리스천들이 전 세계에 약20억 중에서 약80%의 크리스천들이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WCC라 그러지 않습니까?
세계교회협의회라 그래서 이쪽 사람들은 이쪽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강합니다. 그래서 WCC쪽에서는 기독교의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아프리카나 남미나 또는 아시아의 가난한나라에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또 인권에 대해서 아주 특별히 관심이 많고 또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는 나라에 대한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고 이런 분들이 이쪽에 속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분들이 특히1970년대80년대는 상당히 시끄럽게 목소리를 크게 내었습니다. 소위 민중 신학이라고 그래서 박정희 정권이나 또는 전두한 정권 때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핍박 받는 자들을 대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해서 그분들에게 덤벼들었던 그 모든 분들이 이쪽에 속해 있는 크리스천그룹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분들을 뒤에서 도왔던 WCC의 모든 세계크리스천그룹들도 여기에 다 같이 속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도 자유화가 되면서 민주화가 되면서 이런 분들이 한 때는 정권까지 잡고 소위386세대라고 그러잖아요. 이분들이 또 파워를 가지다 보니까 문제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신학에 속해 있는 교회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순 보수는 아니지만 복음주의라고 그럴까요? 저는 그쪽에 속해 있습니다. 보수는 좋은 말도 되지만 별로 좋지 않는 말도 됩니다.
그렇지만 복음주의라는 것은 예수님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는 그런 시각을 가진 신학입니다 저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이런 인도주의적 사고방식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진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하면 이 세상 사고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이웃에게 잘 해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자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본문의 말씀과 아까 마태복음25장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는 겁니다. 문자적으로 그대로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주님이 사랑하시는 칭찬을 받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약점이 뭐냐면 영적측면을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저세상 쪽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하고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내용이 거기에 들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한 때는 영적측면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육적인 사회적인 이 세상 것으로 해석을 잘 하지 않다보니까 그런 오류가 생겼는데 1974년부터 로잔대회라고 그래가지고 세계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모인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우리도 사회를 책임지는 일을 우리도 해보자라는 기치를 들고 그때부터 복음주의교회들이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변화시키고 말씀대로 문자적으로 이 두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 우리도 이 사회에 공헌하자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런 일에 교회가 눈을 뜨자 저 쪽 생각만 하지 말고 이런 운동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그런데 그것이 빨리 진행되지 않았지만 특히2000년도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 이 운동이 갑자기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기독교가 사회에 지탄을 받으면서 대형화되고 물질화되고 세속화되고 되면서 이쪽을 보지 않는다고 해가지고 많은 지탄을 해왔거든요. 그러니까 갑자기 요 근래에 2-3년 남짓한 지금부터 교회가 이쪽부분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양면을 육적은 측면과 영적인 측면을 양면을 우리는 다 안아야 되는 그런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세상만이 아니고 이 세상도 봐야 하는 왜냐면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해주고 도와주라고 해놓고 예화를 야고보가 무엇을 들었냐면 아브라함의 예화를 들고 라합의 예화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라합은 가난한사람들을 도와준 일도 없고 사회복음화 쪽에 사람들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사회복음화 쪽 눈으로도 꼭 봐야합니다
우리가 인도주의고 현실주의적으로 봐야 되지만 나중에 다시 영적인 측면으로도 봐야 되는 겁니다. 만약에 영적인 측면을 안 본다면 사회복음화적인 측면만 본다면 타 종교에도 다 있습니다. 타 종교도 이런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도와주는 일는 타종교도 다 합니다.
그러니까 타종교와 차별화가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유주의자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하다 보니까 타 종교도 있으니까 타 종교와 기독교와 똑 같다. 라고 보기까지 된 겁니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까지 되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가다 보니까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라합의 예를 들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러잖아요. 또 믿음의 아버지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분명히 이 사람은 사회사업을 잘 해서 믿음의 아버지가 된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회사업 쪽을 간구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야고보서에 보면 뭐냐면 이삭을 믿음의 눈으로 바쳤다는 겁니다. 이삭을 바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의미도 있지만 미래적인 의미도 그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분에게 바치라 그랬으니까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부활할 것을 이분이 보신 겁니다. 부활의 눈으로 그 부분은 제가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지만 이분이 두 눈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 세상의 눈과 또 저세상의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보고 본문의 말씀에 그랬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다 그랬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다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잠깐 보겠습니다. 이 부분을 잘 보세요. 이 사람이 이 세상의 눈을 가지고 또 저세상의 눈을 가지고 두 눈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야고보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뭐냐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경험해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시험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연단입니다 이 세상의 시험과 연단을 경험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었을 때 눈이 저 세상의 눈도 뜨게 된다는 겁니다. 시련을 당하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습니까? 우리의 속사람인 쓴 뿌리가 제거된다고 그랬습니다. 쓴 뿌리가 제거된다면 영의 눈이 밝아져서 저 세상 쪽을 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도 이 훈련을 시켰습니다. 아브라함도 근방 믿음의 사람이 된 게 아닙니다.
이분도 아브라함의 스토리들을 보면 아주 하나님이 정확하게 이분에게 페이라스모스(peirasmos)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꼭 페이라스모스(peirasmos)훈련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 어떻게 훈련 받았느냐를 간단하게 조금 봅시다.
제가 말씀을 드릴 때 듣지만 마시고 본인도 정리를 같이 하세요 그래야 지만 본인도 정리가 되고 이것을 이웃에게 정돈하여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셀 모임에서 이런 것을 정돈해서 말할 수 있는 연습을 하세요.
그냥 이렇게 저렇게 집어서 이야기하지 말고 정돈해서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그런데 그걸 잘 하는 사람이 있느냐면 전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당시만 해도 노아홍수가 끝난 후입니다 노아 홍수가 끝나고 셈부터 아브라함까지가 몇 대입니까? 9대입니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는 10대입니다. 창세기11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12절부터 주욱 보시면 그 때에 첫 아이를 아버지가 몇 살 때 낳았습니까? 창세기5장에서 홍수전에 아담타락에서부터 홍수전까지는 첫아이를 100세 가까이 되었을 때 낳았습니다.
그런데 홍수이후에는 첫아이를 창세기11장10절부터 보면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그랬습니다. 창세기5장에 보면 첫 아이를 100세 전후에 낳았습니다. 13절에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6절에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8절에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벌써 첫 아이를 낳는 나이가 100세에서 30세로 줄어들은 겁니다. 이렇게 주욱 나가다가 이분들의 후손인 아브라함이 아이를 낳으려면 주님이 몇 살 때 주었어야 됩니까? 30세에 주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처가 몇 살 때 애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10살 차이니까 20살 때 이미 아이를 가졌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자기네 고향인 갈대와 우르를 떠나라 할 때가 아브라함이 60세고 사라가50세 때입니다 그때도 아이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이미 이분들은 동네에 웬만한 사란들은 다 아이들이 있는데 나이가 60세가 되었는데도 아이가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갈등이 마음속에 있었던 겁니다. 이분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이미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을 떠나라 그럴 때도 이분이 마음에 아픔이 있었습니다. 떠나면서 자식이 없으니까 누구를 사랑합니까? 자기조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이런 갈등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딴 여자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문화는 일부다처제 문화인데 아브라함이 본성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 처 사라만 아이를 못 낳아도 그냥 데리고 있었고 딴 여자를 넘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람이 무던했던 사람 같습니다. 성품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본래 본성이 착하고 겸손했던 사람 같습니다.
이 사람이 하란에 가서 몇 년을 있었습니까? 15년을 있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나고 몇 살 때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왔습니까?
75세가 되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 왔는데 그때도 자녀가 없었잖아요
그리고는 10년이 지나갔습니다. 몇 살 때입니까? 아브라함이85세가 되고 사라가 75세가 되었을 때 사라가 말하기를 자기네 애굽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86세 때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에게 오랫동안에 무자녀훈련을 시킨 겁니다. 무자녀훈련을 맏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자녀가 없으면 자존심에 상처가 있고 히브리서11장12절에 그랬습니다.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을 보고 그랬습니다.
죽음 자와 같이 방불했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자녀가 없을 때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했다 그러니까 많은 부분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정말 마음에 갈등이 있었고 이 세상에 살맛도 없었고 그런 입장으로 주님이 낮추어 놓았습니다. 그런 외로운 삶을 살았는데 이 사람이 그런 가운데서도 무슨 일이 있었냐면 예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애야 너에게 자녀를 줄 텐데 그 자녀의 후손이 모래알 같이 많아지고 하늘의 별같이 많아지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는 소리가 나는 지금 아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메섹에 있었을 때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하란에서 가나안 땅에 내려오면서 다메섹에 들렸든 모양입니다
그때 자기 집에 자기가 임대했던 그 집에서 다메섹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애기를 낳았던 모양입니다 그 애기 이름이 엘리엘셀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피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집에 세를 들었던 아주머니가 애기를 낳은 모양입니다 이 나라 문화에 의하면 아브라함의집에서 웬 여자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양자로 데리고 올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러니까 아이 낳을 것도 없습니다. 다메섹에서 세 들었던 아주머니가 낳은 엘리에셀을 내 후손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처절한 상항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아들이 아니고 꼭 사라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네 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창세기15장6절에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 그랬습니다. 믿었다 했지만 이분이 완전히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 어려운 상항 속에서도 그냥 억지로 믿은 것 같습니다. 믿었는데 이분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도대체 그 말이 진짜라면 한번 나에게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암소3마리와 수양3마리와 산 비들기와 집 비둘기새끼를 가서 취하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암소들과 수양은 배를 자르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너무 작으니까 자르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고 나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솔개가 와가지고 죽은 고기를 먹으려고 그러니까 솔개를 쫓아내면서 거기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비전이 나타난 겁니다.
그 비전이 유명한 비전입니다 뭐냐면 네 후손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지만 이방나라에 가서 400년 동안 종노릇을 하다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 땅으로 다시 오리라 그리고는 네 자녀들이 수없이 많아지리라는 이런 비전을 보여 주시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이 자꾸 의심을 하니까 이걸 보여준 겁니다. 그렇지만 이분이 거기에 대해서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17장에 들어가서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99세가 되었습니다.
99세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내가 너에게 이름을 바꾸어 주겠다.
그래서 이분의 이름이 아브람이라는 이름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삭을 낳기1년 전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이라는 뜻은 그런데 아브라함은 만민의 열국의 아버지라는 소리입니다 선교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고귀한 아버지는 그냥 자기 가족의 아버지지만 이분은 만민의 아버지가 된다는 겁니다. 사래라는 이름은 공주라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공주 행세를 하던 아주마가 하루아침에 사라로 변하는 겁니다.
만민의 어머니로 변하는 이렇게 하면서 열국의 어머니가 되겠다고 그러니까 지금 나이가 몇 살입니까? 89세 된 할머니가 아브라함과 같이 웃었다고 그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심중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웃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와 언약하는 거다. 너 아제 조금 있으면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 지어라는 겁니다.
이삭이라는 것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가지고 이삭이 그다음에 출생한 겁니다. 이삭이 출생하자말자 이미 이스마엘하고는 14년 기간 동안에 정이 들은 겁니다. 이스마엘이 86세에 낳았으니까 14살이 된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스마엘은 이제 너희 집에서 쫓아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성서에 보면 이분마음이 심히 아팠다고 그랬습니다.
실은 근방 태어난 이삭에게는 정이 안 들었잖아요. 창세기21장11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이 심히 아팠고 괴로워서 근심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쓴 뿌리를 제거하는 과정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겪은 다음에 시간이 많이 흘러가지고 이삭이15살 정도 되었을 때 성서에는 정확하게 몇 살이라고 안 나오지만 추측으로 그런데 이삭을 또 받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데리고 논다고 화를 내실 것이고 요즘 말로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할 텐데 이미 이 과정이 다 올 때까지 주님이 이 사람의 쓴 뿌리들을 많이 제거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서 많이 제거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이 사람은 이삭을 받치라 할 때는 이미 이삭을 받치는 그 순간에 이미 이삭을 대신해서 어린 염소가 나타날 것을 다 환상으로 봤고 다 본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22장5절에 그랬습니다. 자기사환보고 그러는 겁니다. 너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내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우리가 다시 이 자리로 내려올게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거기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다 알았습니다. 이 수준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영의 눈이 밝아져야 되는 겁니다. 오늘 야고보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게 이겁니다 아브라함이 산 믿음을 가졌는데 산 믿음은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이삭이 살아나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믿음을 행동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뭐가 조건으로 갑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훈련이 많이 필요로 한 겁니다. 이런 믿음의 행위가 따라 오려면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랬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행위를 아브라함이 막연히 하는 게 아닙니다. 이분은 분명히 봤기 때문에 행위로 연결된 겁니다. 비전을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라합도 똑같습니다. 라합이 가나안여자입니다
이분도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훈련을 받은 여자 분입니다 특별히 이분은 자기의지로 기생이 된 게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여자가 싫어가지고 같이 살고 있다가도 이혼증서를 발행하면 여자는 이혼 당하게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 번 이혼을 당했던 여자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많았던 여자입니다. 요한복음4장에 사마리아인이 나옵니다. 사마리아여인도 우리가 생각할 때는 나쁜 여자로 생각하는데 절대로 나쁜 여자가 아닙니다.
이 여자도 그 당시에 남편이 다섯 명이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는 네 남편이 아니라는 말이 맞습니다.
왜냐면 이분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남편이 이혼증서를 내면 그대로 쫓겨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당시 문화입니다 그 남편은 과거에 다섯 명을 가졌는데 자기 본인에 의해서가 아니고 쫓겨난 여자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그냥 이혼증서 던져 놓고 그냥 동거하는 남자로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상처가 많은 여자입니다. 이런 여자가 사마리아여인입니다.
라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라합에게는 그런 아픔이 있으니까 라합이 소위 신적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지만 자기네 동네에 있는 가나안의 하나님을 찾다가 어떤 소식을 들었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이 홍해를 건너왔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그분에게 은혜를 부어가지고 이 여자에게 눈을 뜨게 하셔가지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시고 이 땅에 하나님이신 것을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라합이 본 겁니다. 이 아픔을 통해서 본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스라엘정탐꾼들이 왔을 때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의 하나님께서는 위에 있는 하나님이고 아래 땅에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잖아요. 숨겨주었잖아요.
똑같이 당신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는 것은 틀림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가 환상으로 본 겁니다. 라합이 봤기 때문에 분명히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와가지고 꼭 우리가족들 보호해주세요 거기에 대해서 증표를 만들어주세요. 당신들이 분명히 올 텐데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겁니다. 이런 믿음의 여자였습니다. 이런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분들은 이런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시련을 경험케 하십니다. 이 여자는 복된 여자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 여자가 나중에 남자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 남자이름이 성서 마태복음1장5절에 보면 살몬이라는 남자입니다
살몬과 사이에서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라합의 몸에서 보아스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누구와 결혼을 했습니까? 룻과 결혼을 해가지고 오벳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증조할아버지입니다 그래가지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다윗의 아버지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보면 다윗의 조상으로 라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두 분을 우리에게 이렇게 소개해주는데 야고보를 통해서 이분들은 보면 특색이 뭐냐면 산 믿음을 가지려면 속사람이 쓴 뿌리가 없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 믿음을 가지려면 시험인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 없이는 절대로 산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나는 이것을 우리가 알기에 우리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용광로를 우리에게 항상 허락하십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물질용광로 건강 또는 자존심 깨지는 일들 자녀를 통한 용광로 그래서 우리 쓴 뿌리들을 제거시켜주는 일로 우리 마음이 가난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어떻게 됩니까? 애통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애통하게 됩니다. 애통하면 그다음에 뭐가 됩니까?
온유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온유라는 것은 집에 키우는 삽살 강아지처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예컨대 목마르다는 것은 내 속에 있는 퓨뉴마와 내가 교제하게 되고 그다음에 파라클레토스와 교제하게 되고 성령의 물처럼 불처럼 비둘기처럼 바람처럼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됩니까?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가 퓨뉴마와 대화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 있는 퓨뉴마와 기도로서 대화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찬양을 하는데 이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 찬양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퓨뉴마와 대화하고 그다음에 바깥에 있는 파라클레토스와 대화하면서 그분을 초청하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매일 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 하면서 나를 씻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잘 안하게 됩니다. 잘 하라고 하는 신호가 무엇입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입니다 그러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가 꼭 있어야 됩니다. 어려움이 꼭 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이지만 있었고 예수님의 조상 라합에게도 있었습니다.
라합이 얼마나 부끄러운 경험을 했습니까? 이런 것을 다 주님이 일부로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서1장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냐면 이것은 속사람을 청소하는 하나의 신호탄이라는 겁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나 여러분들은 이런 저런 시험을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시험을 우리가 경험하면서 우리 속사람이 완전치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청소되고 있는 겁니다. 청소되고 있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아직도 한참 시간이 가야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50세 이상 주님이 복을 준 사람은 젊을 때부터 이런 걸 경험하고 속사람이 깨끗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속사람을 깨끗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은 보는 눈까지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다시 제가 반복합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영의 눈을 뜨고 본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영의 눈이 보이는 수준에 갔을 때 믿음이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 없이는 보이는 수준 카르디아가 깨끗해져야지만 이게 보이는데 이것이 깨끗지 않으면서 믿음 있다, 믿음 있다 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보여야 됩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줍니다.
왜 도와주느냐면 그냥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는 타 종교 사람들도 다 도와줍니다. 예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도와줄 때 무엇을 보느냐면 이분이 지금은 거지모양이지만 복음을 받은 후에는 이 사람은 천국에서는 영화로운 하나의 존재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게 보이니까 사랑을 베풀어주고 도와줄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도와주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겁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해놓고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해놓고도 내가 더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오느냐면 속이 깨끗해져야 되는 겁니다. 속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하나님이 하십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허락하십니다. 아픔을 허락하십니다.
시험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시험받는 사람들이여 힘들지만 그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어떤 사람은 여기 와서 앉지도 않습니다. 좋다고 밖에서 뛰어놀지 참으로 감사한 겁니다. 우리가 별로 큰 믿음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아미공동체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행동으로 그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무슨 행동으로 보여주느냐면 첫째 우리4층에 AMI신학교가 있잖아요. 이 사람들 그냥 불쌍하니까 우리가 도와주는 게 아니잖아요. 이 수준이 아니잖아요. 여러분들 중에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왔으니까 그냥 도와주자 이 수준에서 벗어나라는 겁니다. 왜냐면 저는 이게 딱 오는 겁니다. 이분들이 고아나 마차나기지로 갈 바를 모르는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데 하나님이 특별히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마음의 결단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무엇으로 보이느냐면 저분들이 자기나라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빛을 발하면서 전하는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나는 목사로써 이분들에게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대로 여러분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서 그런데 할 때마다 밥을 해주거나 옆에서 한번 웃어주거나 악수해주거나 비전스쿨을 같이 하면서 서로 허깅을 해주면서 눈을 뜨는 겁니다. 주님이 이 학생들을 통해서 이렇게 하겠구나. 이 비전을 보는 연습을 하세요. 믿음의 눈을 뜨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 눈을 가졌던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늘의 별을 봐라 실제로 보는 겁니다. 보면서, 보면서 별 하나하나가 자기후손처럼 보이는 겁니다. 모래를 자꾸 보다보면 자기후손숫자처럼 보이는 겁니다. 비저라이즈하는 겁니다. 우리4층 학교에서 25개 나라의 100여명의 졸업생들이 나가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눈에 보이는 겁니다. 저 형제 저 자매가 어디어디에서 아프리카 어디에 중동 어디에 인도 어디에 쫘악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브레씽해주는 겁니다.
주님 보호해주시고 열심히 뛰게 하세요. 세속화되지 않고 주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 되게 해주세요. 이게 막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역을 하잖아요. 현재 12개 나라에 25명이 와서 앉아있습니다. 우리가 돈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저 사람들이 돈 내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건물 속에 와가지고 밤낮없이 밥 먹으면서 찬양하고 앉아서 공부하는데 이 애들이 졸업하고 어떻게 될 것인지 눈에 보이는데 지금도 우리한국에 온 대부분의 애들이 목회를 합니다. 자기민족교포교회를 하는 겁니다. 그게 다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만나서 불편하지만 악수도 해주시고 어떤 때는 마음의 감동이 오면 헌금도 좀 하시고 이게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나에게 시킬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의무감에서 벗어나서 이걸 안 하면 내가 몸이 간지러워야 되거든요. 누가 시켜서 이런 단계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담임 목사가 교회에 있든 없던 관계가 없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비전만 던져주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항상 목사님이 있으면 움직이고 없으면 안 움직이고 우리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잖아요. 알아서 돌아가는 왜냐면 저는 그냥 비전만 던져주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알아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주니까 제가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감사한건 두 번째고 우리주님께 주님! 이렇게 신실한 분들을 주님이 우리교회에 보내주셨네요 저분들 천국에 가서 크게 사랑해주시고 높여주세요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교회에 붙어있지 않고 이 교회가 성장되지 않겠네. 담임목사님 봉급도 드리지 말아야겠다는 교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님들이 교회를 떠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그런데 저는 막 돌아다녀도 그런 말하는 사람 없잖아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없을 때 더 열심히 한다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시잖아요. 어저께 비전스쿨을 보면서도 주님! 제가 피곤해서 혼자 뒤에 앉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일어나서 외국인학생들 안수해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나서 안수 한 겁니다. 지금 우리선교지에 4천여 명이 흩어져서 사역을 하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영화를 보듯이 보이는 겁니다. 지금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모습들이 그 비전이 있으니까 섬기는 일이 있으니까 저도 하루가 멀다고 이렇게 선교지를 돌아다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저처럼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 안에도 12개 나라의 하나님의 종들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보면 언어적으로도 불편하고 문화도 다르고 습성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여러 가지 불편한 게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웬만한 교회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이미 이런 부분은 아마 졸업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형제들 지금은 보기에 우리와 다르고 가난하게 보이고 더럽고 헐벗었지만 저 사람들은 존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봐야하는 겁니다. 저분들은 깨끗하고 영광체로 나중에 나타날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것을 보는 겁니다. 그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우리가7년 환란 때 우리는 환란을 겪지 않고 공중혼인잔치에 올라갈 터인데 우리AMI식구들은 다 올라가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없어져버립니다. 다 위에 올라갔으니까 올라갔을 때 이 건물을 통해서 지나갔던 주님의 이방족속들이 거기서 우리와 같이 잔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게 보이는 겁니다.
그게 안 보이면 제가 이걸 왜 합니까? 제가 보이기 때문에 우리AMI형제자매들이여 보셔야 됩니다. 보도록 해야 됩니다. 그걸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질적 고통이 있어야 됩니다.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야 됩니다. 어떤 때는 관계적인 문제도 경험해야 됩니다. 쓸데없는 핍박도 받아야 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경험도 받으셔야 되고 어떤 분들은 자녀를 통해서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고통들이 따라옵니다. 어떤 분은 없어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고통이 없어도 그런 사람은 그게 복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이 있어도 복이고 없어도 복이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해져서 매일 눈물 흘리면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내 속에 이런 더러운 것을 뽑아주세요 내 속에 미움이 있고 질투가 있고 내가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속에 화가 있고 불안하고 이런 것을 다 없애주세요 어려움이 없는데도 매일 그렇게 주님과 대화하는 사람은 그게 복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속이 깨끗해지면 이 믿음이 보이잖아요. 눈이 뜨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이 믿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이 믿음을 가지면 행동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행동으로 따라와 줍니다.
제가 볼 때 저를 보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히들 합니다. 어제도 열심히들 합니다. 이방선교에 열심히 참여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걸 보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방선교사역이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행위도 아니고 요식행위도 아니고 어떤 종교행위도 아니고 의무행위도 아니잖아요.
우리는 주님이 지상명령을 하셨으니까 이것이 내 눈에 보이니까 하는 겁니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세상에 가면 우리가 섬겼던 모든 만민들과 영원히 같이 살 것이 내 눈에 보이니까 하는 겁니다.
그분들이 우리의 친구고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이 보이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믿음 자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는 그것은 죽은 믿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세계를 보지 못하니까 믿음이 커져가지고 그것이 보일 때 행동으로 나타나니까 이게 참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 믿음그대로 가지고 주님나라에 가는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육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겁니다. 영의 눈으로는 보이는데 제가 결론적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광로연단이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절대로 필요합니다. 건강 물질문제 자녀문제 관계성문제 믿음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들 모욕당하는 일들 핍박당하는 일들 우리를 거짓으로 온갖 악담을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꼭 필요로 합니다. 당해야 됩니다. 당할 자신이 있습니까? 주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넘어지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주님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그러시는구나. 주여 나에게 계신 퓨뉴마시여 이 문제를 내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시고 내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퓨뉴마시여 씻어주세요. 그리고는 파라클레토스와 대화하시고 그리고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 말씀을 묵상하셔야 되고 말씀의 검으로 깨끗해진 속을 말씀으로 채워야 됩니다. 영의 영양소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자유주의사람들이 말하는 사회복음도 우리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사람들 인본주의적으로 인도주의적으로 그분들을 도와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만 머물지 말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저세상에 일들을 저세상사람이 되기 위해서 저 세상 쪽을 우리가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양면을 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필요한 것을 다 줍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 주고 또 하늘의 양식까지 주고 해서 이 세상에서 저세상까지 모든 선물을 우리가 주어야 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고 그것이 주님이 말하는 온전한 살아있는 믿음이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LfRSzBUE_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