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야고보서2장1절-13절,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야고보서강해 6강.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약2:1-13) 2008년3월16일 말씀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2장1절에서13절까지 말씀입니다. 지난시간에는 쓴 뿌리인 악을 베어내십시오. 라는 말씀으로 1장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2장에 들어와서는 쓴 뿌리가 있는 사람들 야고보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형상들이 일어나는가? 그중에 한 현상을 야고보가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 현상을 우리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가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 현상을 우리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아멘. 여기 나오는 말씀들을 우리가 간단간단하게 보려고 그럽니다. 2장에 나오는 첫째 이슈가 뭐냐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왜 사람들을 외모로 취한다고 여기에 말씀하셨습니까?
1절을 다시 보면 왜 우리크리스천들이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고 그랬습니까?
크리스천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걸 평소에 많이 듣는 말들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크리스천들이 믿음이 왜 없습니까?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믿음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 믿음은 기본 믿음입니다. 기본 믿음인데 어떤 믿음을 말씀하느냐면 1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이었냐면 1장에서의 믿음은 마음이 청결해지면 그다음부터 영의 눈이 뜨이는데 영의 눈이 뜨이면 저세상을 보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눈을 뜨는 믿음입니다.
우리인간은 세 가지 눈이 있잖아요. 육의 눈이 있고 그다음에 혼의 눈이 있고 그다음에 영의 눈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육의 눈은 많이 떠있습니다. 그리고 혼의 눈도 많이 떠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고 이러면 혼의 눈이 많이 떠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영의 눈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보느냐면 육의 눈과 혼의 눈으로만 사람을 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야고보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는 겁니다. 육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혼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는데 영의 눈이 떠지지 않아서 사람을 외모로만 본다는 겁니다.
그 말은 육적으로 혼적으로 사람을 본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한국교회를 봐도 교회는 엄청나게 많은데 신학교도 엄청나게 많은데 또 기도원도 엄청나게 많고 성서에 관한 책들도 많고 세미나도 많고 뭐가 엄청나게 많은데 세계에서 제일 많습니다. 선교사도 엄청나게 내보고 있고 그런데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교회가 아직도 믿음이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걸 우리가 단적으로 보면 외모로 모든 사물을 보는 부분이 우리한국교회에 굉장히 많은 겁니다. 외모로 예컨대 육의 눈으로 또는 혼의 눈으로 그쪽은 발달 되어 있는데 한국교회가 영의 눈이 발달 되지 않는 겁니다.
교회가 그러니까 한국사회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그 부분이 강합니다. 우리나라가 외형적인 부분에 눈이 많이 떠있습니다.
그걸 우선 교회를 떠나서 사회를 보면 근방 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성형외과가 가장 유명한나라가 한국입니다 성형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도 한국이고 외면을 중시하는 사회가 우리사회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외과의사가 천대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의사들 중에서 외과의사는 의사 중에 꽃입니다. 외과의사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 사회에서는 외과의사가 되면 목에다 힘을 줍니다.
군인 같으면 전방에서 소총부대로 전쟁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계통 성형외과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의과대학에서 공부제일 잘 하고 앞을 달리는 사람들은 다 이 계통으로 가는 겁니다. 지금 외과 의사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그것도 제가 TV에 어느 시리즈에 제가 봤습니다. 외과 의사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마다 난리들입니다
다른 나라는 외과의사가 상당히 권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성형 쪽으로 가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외적으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결혼대상도 얼굴을 많아 고쳐서 예쁜 사람을 찾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내적인 부분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가정출신이냐 어떤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았느냐 어떤 종교적인 백그라운드가 있느냐를 보지 않고 외적으로 보니까 이혼율이 OECD나라 중에서 제일 높습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전 세계에서 선교사들을 제일 많이 내보내는 나라가 전 세계에 대형교회가 50개 중에서 24-25개가 한국에 있는 그 나라가 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왜냐면 교회도 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도 속이 변하지 않고 겉으로만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태복음6장에 보면 외식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힐난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외식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가장 강하게 말씀하신 부분인데 너희들 구제하느냐 왜 나팔을 부느냐 이겁니다. 그다음에 기도 많이 하느냐
그다음에 금식을 왜 이렇게 많이 하느냐 왜 나팔을 부느냐 이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소위 형식적인데 강하게 집중하며 그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속에는 그대로 쓴 뿌리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겉치레하게 되고 외형적으로 크게 만들려고 그러고 조그만 무슨 일을 하려면 돈을 드려서 신문에 크게 내려고 그러고 사진 크게 내고 이런 모든 허세주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특별히 있는 특수한 현상입니다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그런 걸 비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게 상당히 강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지만 교계가 그것이 굉장히 강합니다.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에게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있지만 관심은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것이 교계 안에나 교회 안에 범람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그걸 하려니까 돈이 필요한 겁니다. 그걸 하려니까 명예가 필요로 하고 권력이 필요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그럽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이 사람들은 그럽니다.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렇다 또는 한이 많아서 그렇다 기타 등등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쓴 뿌리가 이 속에 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교적인 영향도 없지 않아 있고 불교적인 영향도 있고 유교는 특히 외식주의입니다. 외면중심적인 체면중심적인 이런 모든 문화가 이렇게 우리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가 영적인 교회가 또는 성공한 교회라는 잣대로 우리가 볼 때 어떤 교회가 성공했느냐 어떤 교회가 더 영적인가를 볼 때 겉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잣대를 잽니다. 건물이 크거나 또는 교인이 많거나 또는 헌금사이즈가 많거나 또는 담임목사님이 박사학위를 가졌는가? 안 가졌는가? 또는 담임목사님이 어떤 차를 가지고 계신가? 운전기사가 있는가? 없는가? 어떤 교단에 속해 있느냐 그 교회가 기도원이 있느냐 없느냐 교회에 버스가 몇 대가 있는가? 없느냐 선교지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 선교헌금을 얼마나 내 보내느냐 선교사를 얼마나 파송을 많이 했는가?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영적이냐 또는 교회성장에서 성공했느냐 안 했느냐 입니다. 이런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자연 세속화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모든 큰 것들 유명해지고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방법으로 하면 이렇게 다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동원하고 숫자를 늘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가리고 모든 방법과 정책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세속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사람 늘리고 크게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속화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화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대로 한다.
그 사람들의 표준에 맞추어서 한다고 말할 때 종교가 세속화되었다고 그러는 겁니다. 왜 이럴까요? 왜 종교가 세속화되고 이렇게 될까요?
하면 답은 딱 하나입니다 답이 뭐냐면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을 말씀하십니까?
그럴 때 여기 육의 믿음은 있습니다. 혼의 믿음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합니다. 혼의 부분은 그런데 모슨 믿음이 없느냐면 영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들 이 세상에는 관심이 있는데 저쪽 세상에 대한 것은 관심이 없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이 잘 되면 이게 사람의 하나의 자연현상입니다
저 세상 것이 안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로니까 자연현상입니다
과거의 기독교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시작은 저 세상 것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하다가 보니까 이 세상 것에 치중을 하는 겁니다.
건물을 많이 짓고 교단이 커지고 유명해지고 교권이 생기고 이러다보면 이 세상 것에 관심을 두게 되고 자연히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이게 우리 기독교만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나 들여다보면 꼭 세 가지 종파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기독교도 그렇죠. 아니다 소위 근본주의자들이라 그럽니다. 이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기네 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만 하자 딴 것은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면 우리가 사람인데 사람 쪽으로 가자 사람이 잘 살아야 되지 않느냐 소위 자유주의라는 게 있습니다.
좀 넓게 생각하자 우리인간을 생각하자 그러면서 인간 쪽으로 가주는 그게 어떻게 보면 세속화가 되는 겁니다. 아니다 너희들 둘 다 잘못되었다
중도를 지키자는 중도파가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근본주의자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중도파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그럽니다.
저도 중도파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자유주의자가 있습니다.
이성주의자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이성주의자라고 그러는데 사회복음에 참여하고 사회를 잘 가꾸는 사회자의자들입니다 저쪽 나라보다는 이쪽 나라에 대한 복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은 이쪽 사람들은 저쪽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이쪽과 이 세상과 저세상을 융합해서 같이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저 세상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슬람교도 보면 똑같이 이런 세 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에 과격분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펀트멘탈리스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다음에 대부분의 이슬람들은 다 세속주의입니다 그중에 중간도 있습니다. 지금의 이슬람교도 그렇고 유대교도 그렇고 근4천년 동안에 유대교도 항상 이 세 그룹이 있습니다. 지금 도 그렇습니다. 모자 쓰고 머리길게하고 까만 옷 입고 다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펀트멘탈리스트들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종교나 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사람이 종교에 대한 하나의 자연현상입니다 종교를 볼 때 종교인이 되려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7장에 그랬습니다. 기독교에 많은 지도자들이 나올 텐데 7장15절부터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말씀이 뭐냐면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기독교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이리의 속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모든 지도자의 모습은 다 있는데 양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쓴 뿌리가 있고 속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면 이 사람들은 열매가 제대로 안 맺힌다는 겁니다. 속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나중에 심판 때 하시는 말씀이 내 이름으로 네가 기적도 일으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서도 가르쳤고 선교도 했고 뭐도 했고 뭐도 했는데 예수님이 그때 내가 밝히 말하노니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마태복음7징15절부터 주욱 하반 절에 부시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나올 거라는 겁니다. 왜냐면 종교지도자들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부터 시작해서 저를 보세요. 거룩해 보이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가운을 입었잖아요. 이게 내가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이게 종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입니다. 기독교지도자들도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도 귀신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도 성서도 잘 가르칩니다.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도 설교도 잘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집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안수집사님들 권사님을 도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 잘할 수 있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만이 아닙니다. 이리의 마음을 가지고 방언도 터지고 예언도 하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누가 하는 겁니까?
마귀가 하는 겁니다. 더러운 영이 하는 겁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찰에 가보세요. 불교 안에 병고치고 다 합니다 우리나라사찰들이 교회보다 돈이 더 많잖아요 그렇습니까? 애들 학교시험 붙으라고 등하나사고 그것도 제가 TV에서 봤습니다. 저는 그것도 잘 모르는데 TV에 무슨 프로그램이 있다면 제가 딱 봅니다. 제가 공부하려고 KBS니 MBC에서 가끔 그런 프로그램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들려가지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듭니까? 굉장히 돈을 많이 드립니다. 그걸 다 보고는 그걸 다 적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게 뭐냐면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불교도 절간을 판다는 겁니다. 어느 절간의 가격이 얼만데 그기에 주지승이 나와 가지고 복덕방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게 나오는데 뭐냐면 여기에 회원이 몇 명이고 등들이 하나에 5만 원짜리 등이 몇 개가 있고 10만 원짜리 등이 몇 개가 있고 또 몇 십만 원짜리 등들이 몇 개가 있고 이걸 전부다 합하면 수십억이 됩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는 다 자리가 잡혔다는 겁니다. 앞으로 더 증축해서 더 만들면 돈이 얼마가 더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절이 얼마짜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비즈니스로 하는 겁니다. 기독교에도 이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독교에도 이와 비슷한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쪽 종교는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을 향한 것을 능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도 모든 걸 다 돈으로 계산하잖아요. 기독교신문을 보면 교회 팝니다. 하고는 얼마짜리입니다 교인이 몇 명이고 이런 게 가끔 나오는 겁니다.
그게 어디서 배워온 겁니까? 생각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기독교가 이렇게 되는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저쪽을 안 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고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소망은 있는데 저세상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야고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들이 저세상에 눈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봅시다. 시험이 나에게 오는데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시험을 주는데 시험이 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 시험을 받을 때 복 있는 사람은 시험이 오면 그 시험을 어떻게 보는 겁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구나. 이게 복된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시험이 오는데 그것 때문에 더 시험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더 시험을 받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아마주님께서 쪼아 되실 겁니다. 그런 소리를 나오지 못하도록 어떤 사람들은 20년30년40년을 계속 시험 때문에 불평하다가 끝내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잖습니까? 그런데 복된 사람은 시험이 딱 오면 나에게 어려움이 딱 오면 먼저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게 복된 사람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복 있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내가 더러운 악에 잡혀 있구나. 악한 영의 성품들이 내 속에 많구나. 라는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딴 사람을 보는 게 아니고 나를 들여다보는 마음을 그래서 마태복음5장에 팔복의 말씀이 참으로 복된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애통하게 되는 겁니다.
애통하면 그때부터 이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애통한 다음에 뭐가 옵니까? 애통하는 자 다음에 온유한 자가 된다고 그러잖아요. 온유는 무엇입니까? 온유는 야생동물과 가축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주님이 누굽니까?
우리에게는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그게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 삽살개들을 보세요. 주인의 말을 잘 듣잖아요. 주님을 즐겁게 해주고 그게 온유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처음에 환란이 오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겸손해집니다. 주님이 나에게 뭐라고 그러냐면 내속에 있는 문제를 내 스스로가 찾게 되고 그다음에 애통하게 되고 세 번째는 온유하게 되고 온유한 자는 그다음에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내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 뽑아내는 무기들을 준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네 가지무기를 말씀드렸는데 첫째 무기가 무엇입니까? 내속에 계신 퓨뉴마(Pneuma)성령님과 내가 교제하며 대화하는 겁니다.
그분과 내가 교제하는 두 번째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은 네 가지로 나타난다고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물로서 생수같이 오시기도 하고 두 번째는 비둘기처럼 오시기도 하고 세 번째 불같이 오시기도 하고 또 바람같이 오시기도 하고 그러니까 첫째 무기가 내속에 있는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제하는 겁니다. 자꾸 이야기하는 겁니다. 프뉴마(Pneuma)성령님 내속에 있는 성령님 내속에 질투하는 마음이 있고 불안한 이걸 조금 해결해주세요
그 한 마디만 자꾸 계속하는 겁니다. 누가 잘 되는데 보면 내가 속이 아픈데 이걸 해결해주세요 이 문제를 자꾸 그분과 대화하는 겁니다.
대화만 하지 않고 이분이 내 속에서 이놈을 만지는 것을 내가 믿음의 눈으로 보는 연습까지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보혜사성령님께 보혜사성령님! 물로서 내속에 들어오셔서 이놈을 씻어주세요 불같이 물같이 비둘기같이 그다음에 바람같이 그래서 보혜사성령님이 물같이 나에게 흘려 내려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느끼고 보는 겁니다. 영의 눈을 뜨고서 기도 가운데서도 이게 가능하고 찬양가운데서도 이게 가능합니다. 첫 번째 무기가 내속에 있는 성령님 두 번째는 보혜사성령님 세 번째는 말씀의 검 에베소서6장17절에 말씀의 검을 이제 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공부하기 전에 말씀을 보고 듣고 그다음에 쓰고 그다음에 공부하고 그다음에 메모리하고 암기하고 그다음에 말씀을 먹는 겁니다. 묵상하는 겁니다. 말씀을 묵상해야지만 양날달린 칼이 내속에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칼이 도려내는 것을 내가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하시고 느끼는 연습을 하시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내가 바라야 됩니다. 느껴야 됩니다. 그러다보면 이 속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잖아요.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6개월 일 년씩 이년씩 계속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변하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겁니다. 주님이 하루아침에 변하게 안하십니다.
그러면 또 뭐가 들어옵니까? 교만이 또 들어옵니다. 그래서 천천히 변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정리된 스쳐 지나게 된 내속을 그다음에 불교는 여기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빌게 하잖아요. 그런데 기독교는 거기에 성령님으로 채우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채우는 겁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뭐냐면 말씀이 검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고 영양소역할을 하십니다. 말씀이 영의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비타민역할도 하고 에너지를 주는 단백질역할도 하고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미네날 역할도 하고 성령님이 나를 영적으로 살찌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영의 눈이 발전되고 영의 귀가 더 열리고 영의 손 영의 발 영적인 부분의 우리의 모든 사지가 우리의 모든 기관이 발전이 되는 겁니다. 성숙되고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하다보면 그다음에 시각이 육의 눈을 위해서 매일 밥 먹고 혼의 눈을 위해서는 우리가 혼의 양식인 교육도 받고 하는데 영의 눈을 위해서는 이렇게 했을 때 영의 눈이 떠지니까 영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겁니다.
저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세상이 보이니까 마태복음5장8절에 그랬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랬잖아요. 영계가 보이고 육의 계도 보이고 혼의 계도 보이고 세 가지의 시각이 발전이 되니까 소위 균형 잡힌 크리스천이 될 수 있잖아요. 밸런스가 된 균형 잡힌 크리스천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어떤 과부를 봐도 또는 가난한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을 영의 눈으로 보고는 아! 영적으로 보고는 저 사람은 부자보다 더 낫구나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사람을 세 가지 눈으로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야고보식의 크리스천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눈으로만 봤던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의 눈으로만 본다고 그러고 두 가지 처음에 육과 혼의 눈으로 안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그러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육적인 부분과 혼적인 부분도 다 볼 줄 알아야 되고 영적인 눈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볼 때 밸런스가 균형을 잘 맞추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한국교회도 영적인 부분에 치중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육적과 혼적부분에 치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해도 그렇고 새벽기도운동도 우리가 많이 하고 수요기도 금요철야 많이 하는데 거기에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뭐냐면 영적으로 눈을 뜨면서 나의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시오. 라고 보다는 혼적이나 육적인 부분에 어떤 복을 위해서 기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겁니다.
주님이 그럴 때 그래 줄게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쪽부분만 자꾸 육과 혼 부분에만 복을 받다 보면 영적인 부분이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특수한 사람들에게는 같이 자라나지만 그러다 보면 이상한 크리스천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세속적인 크리스천이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천이 되다 보니까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런 식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변질 되니까 그걸 주님이 또 사용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럽니다. 돈 많이 내면 돈 더 벌게 된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헌금을 많이 냅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내는 데가 한국교회입니다 헌금 낼 때도 그 생각하면서 내는 겁니다.
헌금을 내면 내 자녀도 복 받고 나의 모든 게 잘 된다 여기 까지만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헌금을 내면 주님나라가 커진다. 주님이 기뻐하시니까 육적과 혼적은 주님이 책임져주실 거다. 이렇게 생각 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분을 생각 안하고 처음에 두 가지는 생각하지 말아야 되겠다. 는 겁니다. 처음의 두 가지부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고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첫 두 부분 때문에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큰 모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헌금 많이 내세요.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뭐가 잘 됩니다 첫 부분이 두 번째 부분이 그러니까 헌금도 많이 내고 건물도 많이 짓고 선교도 많이 하고 교회도 성장되고 우리가 그렇게 해왔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이런 부분들이 없지 않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교회가 변질되는 겁니다. 저세상을 찾는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겁니다.
교회가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할 사람 일어나세요. 하면 안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이 그런 사람을 싫어합니다.
희생하십시다. 해도 싫어하고 기타 등등 그러면 대답은 끝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가 조금 더 세 부분을 첫째와 둘째부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까 셋째부분까지 가려면 이제 우리는 쓴 뿌리를 제거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첫째 무엇입니까? 첫째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제하시고 두 번째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과 교제하시고 불같이 비둘기같이 물같이 바람같이 그러니까 찬양 팀들이 상당히 우리에게 보배스럽습니다. 찬양 팀이 서서 찬양할 때도 그 마음으로 찬양하셔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교인들에게 복을 내려주셔야 됩니다. 주님 저희들의 입술을 통해서 우리교인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이런 네 가지가 일어나는 것을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고 그럽니다. 불같이 물같이 비둘기같이 바람같이 이렇게 내려오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해서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 찬양 팀들이 우리들의 입술을 통해서 우리AMI형제자매들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도록 역사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받도록 그래서 목적이 기름 부으심만 받으면 안 되잖아요. 뭐라고 그럽니까?
찬양 팀들 그다음에 뭐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기름 부음을 받으시면서 우리들의 쓴 뿌리들이 태워지거나 씻어지거나 잘라지게 해주세요. 그래서 쓴 뿌리만 잘라지면 안 되잖아요. 그다음에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로 채워주세요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시켜주세요. 여기 까지 가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케 해주십시오. 그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 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포괄적인단어입니다 성령 충만 하면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이것이 다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개념을 우리가 성령 충만 이라고 그러면 할렐루야 아멘 이런 개념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 할렐루야 아멘이지만 근본적인 것이 해결 안 되면서 할렐루야 아멘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밖에 안 도니는 겁니다.
사람이 변해야 되는 겁니다. 사람이 변하면 이제 세 눈이 밝히 보이는 겁니다. 육의 눈, 혼의 눈, 영의 눈이 그러니까 이 세상을 볼 때 시각이 세 가지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겁니다. 세 가지 눈으로 사람을 볼 때도 육의 눈, 혼의 눈, 영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겁니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닥쳐와도 세 가지 눈으로 보는 겁니다. 이 문제를 가난한 사람을 봐도 그렇게 보는 겁니다. 고아들이나 과부들을 봐도 그렇게 보는 겁니다. 사회를 그렇게 보는 겁니다.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이 사회가 지금 여러 가지로 문제들이 많잖아요. 그것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교회를 보는 눈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내 자신을 보는 것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가족을 보는 것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물질을 봐도 물질에 대한 개념을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출세라는 개념을 봐도 이 세 눈으로 성공도 이 세 눈으로 다 보는 겁니다. 모든 사물을 볼 때 인류의 역사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세계 정치문제들 지금 경제문제들 지금유가가 100불이 올라가고 주식이 자꾸 떨어지고 있고 전 세계가 지금 경제공항 바로 직전에 들어가는 이런 것도 이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육의 눈으로도 혼의 눈으로도 그다음에 영적인 눈으로도 종합적으로 보는 겁니다.
이 세상이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이미 예언 하였잖아요.
그러니까 아하! 이게 점점 앞으로 되겠구나. 우리 눈에 보이거든요 그런데 혼의 눈을 가진 경제전문가들이 그렇게 보고 있거든요 앞으로 5년10년 후에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그분들의 눈으로는 혼의 눈까지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밖에 안 들여다봅니다.
그러니까 기름 값이 올라가면 왜 이러지 그래서 대통령 욕을 하고 누구 욕을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혼의 수준과 영의 수준까지 가주었을 때 이 세상을 볼 때 환히 보이면서 아! 이게 이렇게 되게 되어 있구나.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이 시대를 아니까 이 세대에 크리스천들이 할 일은 나가서 미전도 족속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겠구나. 그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이 시각을 보여주는 겁니다. 히브리서11장이 믿음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안에 나오는 사람들은 구약의 유명한 인사들의 이름들이 쫘악 나오는데 그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 주님이 뭐라고 그랬냐면 저들이 믿음의 눈이 있었다는 겁니다. 육의 눈, 혼의 눈, 플러스 믿음의 눈이 있었다는 겁니다. 영의 눈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기드온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 구약에 나오는 모든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다 세 눈을 가지고 계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겁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쓴 뿌리가 우리처럼 많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복잡하지 않았으니까
쓴 뿌리들이 그 당시에 별로 심각한 쓴 뿌리들이 많지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회가 복잡하고 매일 같이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쓴 뿌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문제는 사람을 우리가 외모로 보지 않으려면 쓴 뿌리를 제거해야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쓴 뿌리가 제거되고 세 가지 눈으로 사람을 보게 되면 믿음의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랬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못 한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눈으로 보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제가 다음시간에 설명하겠지만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그랬잖아요. 다 여기에 기인합니다. 믿음의 영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쓴 뿌리가 제거해야 된다. 쓴 뿌리가 제거되면 세 가지의 눈으로 보면서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기억하시며 그다음에 이분들에게 상급을 준다고 그랬습니다. 이분들에게 기업을 준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 나라에 가서 기업을 받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쓴 뿌리가 제거되면 그렇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고 이 세상에서 별로 이익이 없네요. 저쪽 동네이익 때문에 그럽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쓴 뿌리가 제거되고 세 가지 눈으로 보게 되면 이 세상의 삶이 매일매일 기쁩니다.
환경이 변화가 있고 환경이 복잡해도 항상 마음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보람이 있고 그다음에 모든 것을 내가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주님이 주십니다. 왜냐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겁니다. 그게 있으니까 전천후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게 되고 모든 사건들을 관리할 때도 겉치레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 하지 않고 형식이나 허세에 빠지지 않고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하나님에게도 인정받도록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환경은 변화가 안 되었는데 내가 변화가 되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자비를 베풀 수가 있는 겁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환경은 앞으로 점점 더 나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은 더 나쁘게 되어 있고 사람들의 관계성은 더 나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여기가 천국이 아닙니다.
못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법적으로만 하나님의 자녀들이지 삶의 모습은 다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평강을 찾으려면 안 됩니다 변화를 주려면 안 됩니다
더 나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시각이 변할 때 나에게는 이미 천국이 온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현재형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쓴 뿌리를 제거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불평도 없어지고 모든 게 다 감사하고 모든 사람을 내가 다 안아줄 수 있고 이런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쓴 뿌리를 없애려면 도구가 첫째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그다음에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 네 가지 물같이 비둘기같이 불같이 바람같이 그다음에 말씀의 검 그다음에 말씀의 영양소 우리는 설교를 듣기만 하고 말아버리는데 그렇게 해가지고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듣고만 가니까 지금 옆 사람과 오늘 들은 것을 서로 의견을 나누세요. 나중에 셀 모임에서도 하지만 이렇게 하실 때 내 것이 됩니다. 옆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F57IOVJxY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