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강해

4강. 야고보서1장12절, 생명의 면류관

변명섭 2022. 5. 19. 08:43

야고보서 4강. 생명의 면류관(약1:12) 2008년3월2일 말씀 
오늘 말씀은 1장12절 말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아멘. 오늘은 야고보서강해 네 번째 날입니다
제가 지난시간에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데 시험을 뭐라고 그랬습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로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를 성장케 하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시험을 주시는데 지금 오늘 말씀에 시험을 잘 참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옳다 인정함을 받아야 되는데 그렇게 인정을 받은 후에는 약속이 있는데 무슨 약속이냐면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기에 보면 형용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주느냐면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그러면 다시 우리가 어디로 연결되느냐면 지상계명입니다. 
지상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수직계명입니다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끔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주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시련이 없이는 절대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개념이니까 이걸 외우셔야 되겠습니다. 지난번 세 번 이야기하면서 종합적인 개념인데 이 원칙만 알면 이다음부터는 많은 부분에서 풀려나갑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왜 시련을 허락합니까? 시험을 허락하는 이유는 주님이 나를 들여다보라고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안 됩니다. 복된 자가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나를 들여다보라고 그러면서 겸손해지는 겁니다. 그것을 마태복음5장에서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음이 가난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서 내 속에 잡다한 악의 성품들이 있구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그것이 한 단계 올라가면 애통하게 됩니다. 내가 이것이 있으면 안 되겠구나 애통하지 못하는 것도 그게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애통해야 됩니다. 애통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지성과 감성에 문이 열리게 됩니다. 마음에 문이 열리면서 그다음부터 내 속에 있는 퓨뉴마(punuma)성령님 내 속에 계신 퓨뉴마(punuma)성령님과 내가 대화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성령님이 이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내재하신 성령님이 그다음에 바깥에 계신 성령님이 누굽니까? 파라클레토스(paracletose) 이 성령님이 또 무엇을 합니까? 나에게 성령님의 불을 내리시고 성령님의 소낙비 성령님의 생수를 내리시는 겁니다. 이게 공군의 미사일 같은 겁니다. 이 안에는 보병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이 더러운 악령의 성품들을 잘라내고 씻어내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잘려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노트정리만 하지 마시고 묵상을 하셔야 됩니다. 묵상을 하지 않으시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묵상을 하시면 말씀의 검이 내 속을 씻어내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잘라내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태우기 시작하시면서 쓴 뿌리가 제거되는 겁니다. 쓴 뿌리가 제거되면 내 속이 어떻게 됩니까? 순수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5장8절에 마음이 순수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영계가 열리기시작하는 겁니다. 영안이 떠이니까 영안이 떠이면 뭐가 생깁니까?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이 과정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믿음은 그때부터 영안이 떠이니까 보이는 겁니다. 영화 보듯이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겁니다. 이 세계보다 저 세계가 보이기시작하는 겁니다. 소망이 저쪽으로 있게 되고 이 세계에 대한 것이 보이기는 보이지만 이것이 나의 마지막세계가 아니구나. 나의 진짜 마지막세계는 저 세계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물질에서도 내가 해방할 수도 있는 겁니다. 모든 보이는 것 때문에 내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있다가 없어지겠구나. 라는 믿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 믿음이 들어오면 그다음에 뭐가 자동적으로 들어옵니까? 내가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오는 많은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누가 나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든지 누가 나를 막말로 씹어도 누가 나를 어떻게 해도 인내를 할 수 있고 저분이 왜 저러는가.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분을 내가 안아줄 수가 있는 겁니다.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 인내가 있으면 그다음에 뭐가 있습니까? 인내가 있으면 그다음에 소망이 보이는 겁니다. 바울도 그랬잖아요. 그래서 고린도전서13장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순서가 있습니다. 
믿음이 먼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주욱 말씀하시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냥 믿음이 안 생깁니다. 하트가 깨끗해야 됩니다.
그러면 소망이 보이니까 이제부터 지혜가 나오는 겁니다. 영적인 지혜 하늘의 지혜가 지난시간에 지혜에 관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아가페사랑이 내 속에서 형성되는 겁니다. 이 순서를 잊지 마세요. 
제가 지금 설교를 했지만 테입을 사다가 또 들으셔야 됩니다. 
저도 그래서 반복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완전히 묵상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험을 참는 자는 여기까지 왔다는 겁니다.
제가 설명한 여기까지 온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이것이 옳다함을 인정함을 받은 후에 그다음에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수준이 되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왜냐면 그냥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게 안 됩니다. 죽어라고 해보세요. 안 됩니다. 이 수준까지 가야지만 예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현상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의 상급이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겁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는 생명이요 그랬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면류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 생명이라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면류관입니다 오늘 면류관에 대해서 제가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려고 그럽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있었잖아요. 일곱 교회 중에 다섯 교회는 꾸중을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그 중에 면류관을 약속한 교회가 두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냥 네 상이 빼앗기지 않도록 무슨 상인지 무슨 면류관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런 교회에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그냥 받는 게 아닙니다. 요한계시록2장10절 전후로 보시면 환란과 궁핍을 받은 교회가 이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는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로 환란을 허락하셨습니다. 궁핍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헌금도 많이 안 들어오고 교인들도 가난하고 하나님 일을 하려면 녹녹치가 않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도 다들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벌써 교회가 뭐가 많습니다. 풍성합니다. 그게 복이 아닙니다. 절대로 복이 아닙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복을 빼앗아가는 사인입니다 이 세상 것이 많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저세상을 향해서 저세상을 보고 가르치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것은 이 세상의 교회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랬습니다. 환란과 궁핍을 받은 교회로써 내가 너희들을 옥에 던져가지고 시험을 받게 하겠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서머나 교회가 많지가 않습니다. 다 교회들은 잘 되려고 그럽니다.
핍박을 안 받으려고 그럽니다. 세속화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들은 생명의 면류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의 상급은 있지만 저 세상에서의 생명의 면류관은 없다는 겁니다. 성서에서는 면류관을 일곱 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일곱 가지로 그런데 일곱 가지를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드리겠는데 일곱 가지의 면류관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면류관이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머지 여섯 가지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기본되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격이 있어야지만 나머지 면류관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한국말로 기본이라 그럽니다.
음식점에 가서 무엇을 시킬 때 기본이 있는 그런 말을 제가 가끔 듣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트가 순수해져야지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머지 여섯 개의 면류관도 이것을 기초로 해서 하트가 순수하지 않으면 나머지 면류관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 면류관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질까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줄까요?   
아닙니다. 아니면 소수의 크리스천들이 받나요. 맞습니다. 소수가 받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정해집니까? 하트가 순수해야 되고 그다음에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 질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정해집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려고 그럽니다. 우선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을 보면 존 번연이라는 유명한 분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이 크리스천들의 여정을 이렇게 소설식으로 썼는데 아주 재미있게 제가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나에게 이 책을 사주어 가지고 읽어보라고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때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삶이라는 것은 나그네 삶이라는 겁니다. 나그네 삶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우리세상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생해서부터 결혼하고 나중에 죽어서 낙원으로 가는데 천국으로 가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어떤 순간에서 서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움직입니다. 계속 발전하면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인생의 이 과정을 보면 대부분이 발전적으로 가잖아요. 
그런 인생의 과정대부분을 보면 순탄치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우리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에 갔을 때 나중에 제대로 간 사람은 면류관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운동선수 같다는 겁니다. 마라톤선수 같다는 이런 말도 씁니다. 그 개념은 제가 조금 있다가 정리해드리고 우리인생이 가는 길을 보면 지형이 가파르고 언덕도 있고 강도 있고 바다도 있고 절벽도 있고 내리막길 오르막길 비포장 도로 오솔길 돌밭 길 진흙 길 거름길 등 우리가 가는 길이 편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환경도 보면 맹수도 있고 모기도 있고 벌레가 있고 독사도 있고 폭풍도 있고 폭우도 있고 폭염도 있고 폭설 배고픔 강도 외로움 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들이 이런 길을 향하여 가는데 여러 방법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크리스천들이 어떤 사람은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걸어가는데 가다가 쉬었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또 가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크리스천 중에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갑니다.
어떤 사람은 걸어가다가 단거리선수처럼 막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거리니까 막 뛰다가 서 있다가 또 걸어가다가 또 뛰어가는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그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30살 정도 되어가지고 갑자기 은혜를 받아가지고 단거리로 뛰지 않고 중거리로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거리는 100m입니다 중거리는 500m뛰다가 숨이 가빠가지고 스톱해서10년 정도 딴 짓하다가 또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뛰다가 또 딴 짓하고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바울은 어떤 사람이냐면 바울은 마라톤선수입니다 바울은 30살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가지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33년을 63세가 될 때까지 예수님이 33세에 돌아가셨잖아요. 똑같습니다. 이분이 주후35년에 예수님을 만나가지고 주후63년에 참수당하셨습니다. 33년 동안에 이분은 예수님을 만나서부터 그 전에는 걸어가다가 그때부터 이 사람이 마라톤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분이 세상 끝나기 직전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마라톤게임을 하다가 이제는 면류관을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면류관은 어떤 사람들이 써느냐면 마라톤 게임하는 사람들이 써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올림픽 게임에서도 마라톤 게임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이 쓰잖아요. 이분은 고린도전서에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를 주욱 합니다. 그런데 마라톤선수는 가다가 서면 안 됩니다.
마라톤선수는 천천히 갈 수는 있지만 달리기를 쉬면 안 됩니다 한번 뛰었으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뛰어주어야 되는 게 마라톤선수입니다 
이분은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9장26절에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한다는 겁니다. 이분은 목표가 뚜렷했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이분이 말씀하십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상 면류관을 얻고자 달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목표 지향적이고 목표가 뚜렷했고 그 다음에 무엇을  받는다는 것까지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계속해서 고린도전서9장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운동선수는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모든 일에서 절제한다는 겁니다. 운동선수가 절제하잖아요. 똑같이 마라톤선수들은 마라톤에서 장거리로 뛰기 때문에 절제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절제하느냐면 똑같이 그랬습니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한다는 겁니다. 동기가 무엇입니까? 저쪽이 보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크라운이 면류관이 보이기 때문에 이분이 이 길이 험난하지만 보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생명의 면류관은 이미 따놓은 겁니다. 
벌써 영계가 보이는 겁니다. 주님이 나에게 크라운을 주실 것을 면류관을 주실 것을 다 본 겁니다. 그러니까 달리는 겁니다. 나중에 크라운을 주는 예식장까지도 다 보신 겁니다. 다 보시니까 그냥 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빌립보에서 그랬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들어갔을 때거든요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지금 감옥에 앉아 가지고 그러는 겁니다. 내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내리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쫓아가노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말 번역을 쫓아가노라 이렇게 해놓았는데 이게 영어로는 아이 프레스 온(I press on)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내 자신을 눌려가면서 왜냐면 저 상이 보이니까 마라톤을  뛰는데 힘든 겁니다. 딴지거는 사람들도 많고 뭐가 많지만 그렇지만 나를 푸시해가지고 프레스 온(press on)하면서 계속 간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목표가 보이니까 그러는 겁니다. 저는 우리AMI형제자매들이 그냥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목표가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목표를 보는 사람은 시각이 그쪽으로 가 있는 사람은 조그만 일에 삐딱삐딱하지 않고 그게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삐딱삐딱하는 사람은 저 쪽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오늘 말씀을 서로가 나누면서 시각을 저쪽으로 멀리 보아야겠구나. 이게 얼마나 복 있는 자인지 모릅니다. 바울이 그럽니다.
내가 나를 계속 프레스 온(press on)하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빌립보서2장16절에 감옥에서 그러는 겁니다. 나의 다름 질 하는 것이 헛되지 아니하고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계속 폐달을 밟아주어야 되는데 폐달을 밟지 않으면 마라톤선수가 가다가 서버리면 그 사람은 마라톤선수가 아닙니다. 단거리선수로 전락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속 폐달을 밟아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고린도전서9장27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마라톤선수 되라고 전파한 후에 내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렵다는 겁니다. 한국말 번역이 잘 못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이 상실된다는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고 너희들이 마라톤선수가 되라하고 그냥 이렇게 푸시하고 그랬는데 내가 가다가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면류관 받게 되었는데 나만 면류관을 못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될까봐 나는 더 열심히 나를 푸시 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참수 당하기 바로 직전에 쓴 편지가 무슨 편지입니까? 디모데후서입니다 이분이 33년을 마라톤게임을 하시고는 마지막골대 앞에 크라운 앞에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도 이렇게 뛰어라 하시면서 이분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디모데후서4장6절에서8절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말씀입니다. 6절부터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러니까 이분은 나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와 같이 이렇게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는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비전을 가지고 뛰는 사람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면류관이 생명의 면류관에서 의의 면류관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왜 주님을 섬깁니까? 
특히 마지막 때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옴을 깨닫고 그분이 오실 것을 기대하며 그래서 우리가 선교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AMI공동체가 이방에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나 여러분들이 의의 면류관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 중에서 잘못된 견해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면류관에 대해서 한번 보세요.
바울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분이 똑똑한 분이 아닙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분이 왕창 변하여서 이분이 모든 것을 다 집어 던지고 그리고는 예수님만을 위해서 살았습니까? 이분이 왜냐면 영안이 떠가지고 저쪽 세계를 봤습니다. 고린도후서12장2절에 보면 뭐가 나옵니까? 이분이 3층천 낙원 구경도 했습니다. 그기에 올라가보니까 이게 계급사회구나. 거기에 올라가보니까 면류관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 받고 거기에 올라가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면류관을 받고 그 사회에 올라가서 대접을 받는 높은 위치에 있는 그러한 사랑이 되겠구나. 다 본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편지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주 강조하는 겁니다. 상징적이면 이분이 이렇게 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똑똑한 분인데 계산이 상당히 빠른 분이 아닙니까?
제가 일곱 가지 면류관리스트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첫째 생명의 면류관 야고보서2장12절입니다. 이 면류관은 기본 되는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이나 집사님 장로님들이나 평신도들이나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야고보에게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에게 알려준 면류관이 두 개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 개인데 요한에게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야고보에게 알려 주었지만 아까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 요한에게 알려 주었잖아요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잖아요. 두 번째 요한에게 알려준 것이 계시록12장1절에 보면 열두 별의 면류관이라 그랬습니다. 이 면류관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이 받는 면류관입니다 이분들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구약은 신약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의 그림자다 그랬잖아요. 
모형이고 심벌이고 소위 신약크리스천들에게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구약에서 연극배우로서 이분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습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거기에 지도자들 열두 지파 지도자들에게 열두 별의 면류관이라는 이름으로 면류관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요한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또 요한에게 계시록4장4절과 14장14절에 금 면류관이라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요한이 하늘 보좌에 올라가니까 24장로들이 보좌주변에서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24장로들이 누구냐 할 때 일반적으로 열두 지파들의 대표들로 그다음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상징하지 않을까 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계시록14장14절에는 예수님이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신 장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무엇, 무엇했습니까? 생명의 면류관 열두 별의 면류관 그다음에 금 면류관 그다음에 영광의 면류관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베드로전서5장4절에 영광의 면류관은 어떤 분들이 받느냐면 베드로전서에 보면 5장1절에서부터 주욱 보면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하! 목사님이겠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만은 아닙니다.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은 순장들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구역장들도 그렇습니다.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양 무리에게 밥을 주고 양 무리를 케어해주고 양 무리를 보호해주고 양 무리에게 편안하게 해주고 양 무리가 자라나도록 하는 그러한 모든 목사님만이 아니고 장로님들 권사님들 안수집사님들 순장들 각 부서장들 다 포함되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주는 면류관인데 이런 분들이 이 면류관을 받으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처음에 생명의 면류관의 자격을 부여받으셔야 됩니다. 
하트가 순수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전서5장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그러느냐면 양 무리를 치는 자들에게 조건을 딱 붙여 놓았습니다. 뭐냐면 부득이 하지 말고 양 무리를 칠 때 내가 장로니까 집사니까 목사니까 내가 타이틀 때문에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입니다 권사니까 내가 해야 된다. 그런 마음을 가지 말라는 겁니다. 목사니까 내가 해야 된다 이런 마음을 싹 버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벌써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할 때는 주님이 여기에 끼지 못하는 겁니다.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누가 시키니까 하는 게 아니고 내가 봉급 받으니까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득이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쫒아 자원함으로 하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면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다시 말하면 이걸 말하면 돈이 얼마 생긴다. 이걸 하면 내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계산을 하면서 하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겁니다.
까다롭습니다.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계산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하트가 깨끗한 사람은 영안이 떠있기 때문에 그것이 보이는 겁니다. 
저 사람이 계산을 하는구나. 계산을 안 하고 하는구나. 보입니다. 
헌금 내어도 계산안하고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하는 사람이 또 있고 그러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그랬습니다.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면 다시 말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마인드가 어떻게 옵니까? 
하트가 깨끗하면 옵니다. 하트가 깨끗하면 자원의식이 생기고 누가 보는 게 아니고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님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내가 매일 관계하는 사람은 주님이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목사님을 기쁘게 하게 위해서 누굴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은 목사님이 마음이 변하면 같이 마음이 변해버리고 목사님이 자기를 싫다고 하면 그냥 돌아서가지고 딴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안 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그런 것 때문에 굉장히 피해의식들이 있습니다. 교인들을 보면 겁을 냅니다. 저 사람이 언제 또 나의 등을 칠까 지금은 좋은데 여기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목사님들만 아니라 지도자들은 언제 저 사람이 나의 등을 돌릴까 그게 먼저 겁이 나는 겁니다.
저는 그 단계는 지나갔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나 이쁩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 등 뒤에서 뭐라고 그래도 이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복이 아닙니까?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그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도 젊을 때는 안 됩니다. 나이가 이 정도 되니까 
내가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잘 안 되었습니다. 저도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면류관입니까?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그다음에 소망의 면류관 그다음에 썩지 않는 면류관 이것은 바울에게 주신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어떤 면류관이냐면 자기 민족이 아니고 타 민족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복음만 전해서는 안 됩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9장 전체가 이 이야기인데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이랬습니다. 바울 저분이 우리에게 받은 헌금을 가지고 자기마음대로 하고 돈을 마음대로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섭섭해서 하는 이야기가 고린도전서9장이야기입니다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당신 돈을 그렇게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문이 이렇게 났느냐면 실은 내가 당신들이 내 제자들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나를 위해서 돈을 다 써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병정이 어떻게 제 돈을 들이면서 군대 생활하느냐 그러는 겁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자기가 농사짓는 것을 자기가 먹는 것 뭐가 잘못이냐 이겁니다. 또 뭐냐면 구약에서 모세율법에서 맷돌을 가는 소가 뱅뱅돌면서 맷돌을 갈잖아요. 그럴 때 보통 때는 입을 가려놓았지만 맷돌을 갈 때는 입을 열어놓아 지가 갈면서 지가 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의 비유를 들면서 내가 너 네들에게 영적음식을 주고 너희들에게 이렇게 잘 했는데 당연히 너희들이 나의 생활비를 되어주고 선교헌금 필요할 때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안 했다는 겁니다. 
나에게 준 이 권리를 내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 중에 몇 사람이 혹시 실족할까봐 그래서 내가 밤 낮 없이 내가 일을 했다는 겁니다. 
이런 말이 9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여보세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아느냐 나는 예수 안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내가 그 자유를 내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교인들이여 그러니까 바울에게는 이방사람들인 겁니다.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내가 안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안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경기를 할 때 달리는 사람이 이렇게 해서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고린도전서9장15절부터 보세요.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성서에 보면 점을 똑똑똑 세 개 찍어 놓은 게 있습니다. 에베소서강해 할 때 제가 말씀드렸는데 여기에도 점이 똑똑똑 세 개가 찍어 있습니다. 에베소서3장1절에도 점이 똑똑똑 찍어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바울의 감정을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17절에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실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습니다.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게 상급입니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내가 당신들 돈을 안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실족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그러면 내가 달음질하는데 이게 헛 달음질하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참으로 조심해야 됩니다.
지도자들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있으면 상급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소자를 실족해하거든 마태복음18장에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물속에 빠져라 그러니까 우리 같은 지도자들이 굉장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 민감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가 희생하면서 여기서 바울은 이방사람들에게 희생하면서 그분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면서 자기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분들이 예수님께 헌신할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려 왔던 사람들에게 크라운이 무엇입니까? 
썩지 않는 영원한 크라운입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9장25절에 사도바울이 약속하신 크라운입니다 우리AMI식구들이여 우리 모두가 이 크라운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바울에게 주신 은사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네팔이니 미얀마니 캄보디아니 아프리카케냐니 여기 각 나라에 우리가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헌신하고 있잖아요.
지금 4층에 있는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양보하고 우리 것을 주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왜 줍니까? 어떤 때는 이 학생들이 건물을 더럽게 하고 해도 우리가 욕을 못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혹시나 실족할까봐 여기 와서 부엌도 지저분하게 해놓고 해도 우리가 다 눈감아주고 우리권사님들이 잘 하시잖아요 왜냐면 애들이 실족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이 무슨 크라운을 우리에게 주려고 그럽니까? 썩지 않는 크라운을 주시려고 그다음에 크라운이 뭐냐면 기쁨과 자랑스러운 소망의 면류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2장19절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도 이방교회입니다 
바울에게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 겁니다. 2장2절부터 보세요. 우리가 성서말씀을 읽어 가면 그 뜻이 그대로 나옵니다. 이분이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설명하는 겁니다.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이분도 이런 시험을 받는 겁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4절을 보세요.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지금 면류관 받는 사람의 조건 자격들이 여기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5절에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여기 보면 자녀를 테크니온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이분이 지금 이방선교를 하면서 데살로니가교회 안에 문제가 많고 이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뭐라 뭐라 말을 하고 바울이 기분이 나쁘지만 우리가 참으면서 너희를 유모가 자녀를 키움 같이 이렇게 지금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영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면서 주님 저도 우리가 이 사역을 이방사역을 하면서 내가 유명해지고 내가 어떤 이익을 위해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 말씀을 이렇게 보면서 제가 계속 묵상을 합니다. 사람에게 보여 주지 않게 해주세요. 혹시 이런 부눈이 있으면 주님 저를 책망해주세요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아야지만 지금 약속의 면류관이 오거든요 9절을 보세요.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보세요. 이분이 고린도교회만이 아닙니다. 여기 데살로니가교회에서도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왜 그럴까요?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교인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벌써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합니다. 헌금 내놓고 어디에 썼습니까? 까다롭게 말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벌써 그런 사람이 나오면 이 교회가 시끄러워 집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썼는지는 매달 다 기록해가지고 우리가 운영위원회다가 보고를 합니다. 그렇지만 교인들에게는 보고를 안 합니다 여러분들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운영위원들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황 목사가 개인적으로 안 쓴다는 것만 제가 보여주면 됩니다. 제가 안 쓰면 되잖아요. 그다음에17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이분이 지금 말하는 것은 이렇게 이분이 희생을 하면서 이분들을 자라나게 할 때 내가 받는 것이 뭐냐면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 면류관을 받는다는 겁니다. 너희들 때문에 사람에게 받으려고 하지 않고 주님이 이렇게 했을 때 너희들 때문에 내가 받는 면류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면류관이 보이니까 내가 면류관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기쁨의 면류관 또는 자랑의 면류관 소망의 면류관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방사람들이 자라도록 우리가 희생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그분들이 자라게 하는 것을 우리가 했을 때 우리AMI비전스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돈 들여 가지고 우리가 정성 드려서 그분들을 자라도록 우리가 했잖아요. 우리가 유명해지려고 했습니까? 우리가 어떤 이름 날리려고 합니까? 우리가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아니잖아요. 그런 것 있으면 주님이 다 도멸 시켜주세요. 황 목사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그런 마음이 있으면 우리를 싹 씻어주시고 주님만 나타나게 하시고 그것이 우리 소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면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이런 비전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무슨 비전입니까? 소망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손해보드라도 하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가 6월 달에 하잖아요. 이것저것 계산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추석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고향에 가야 되는데 가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고향 가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 것 따지지 않고 하는 사람만 하는 겁니다.  
왜 그때 합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미안합니다. 마는 우리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따지는 사람은 이게 우리게임장에 같이 게임을 못하는 겁니다. 우리는 비전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면류관이 있습니다. 무슨 면류관입니까? 의의 면류관입니다 
이것도 바울에게 주신 겁니다. 아까 바울이 참수 당하기 직전에 주신 겁니다.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4장8절입니다. 의의 면류관은 이분이 그랬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이것도 이방인들을 섬겼던 바울에게 주님이 약속하신 면류관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을 섬기다보면 우리가 면류관을 최소한 몇 개를 가질 수 있습니까? 썩지 않는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일곱 개 중에 네 개는 따놓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게 되겠습니까? 어떤 분은 그럽니다. 목사님 신앙생활 높은 위치에 있으려고 합니까? 치사하게 왜 그러십니까?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올라가서 봅시다.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가 아니고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다가 보면 바울은 목표지향적인분임을 분명하게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목표지향적인 크리스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간단히 하고 끝내겠습니다. 면류관은 소수의 신실한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분들은 천국에 가면 지도자계급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지도자계급의 사람이 될 것을 일곱 개의 면류관을 보여 주면서 우리에게 가이드라인으로 보여 주었습니까? 그것은 따라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기본 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무엇부터 시작이 됩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부터 시작이 됩니다. 페이라스모스(peirasmos)가 무엇입니까? 시련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떠날 때까지 끊임없는 시련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련이 나를 슬프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 시련 때문에 내가 더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그 시련이 나를 더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듭니다. 물질의 시련 가족의 시련 여러 가지 시련들이 주변에 있잖아요. 건강의 시련 이런 것이 올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그런 우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성숙한 우리 크리스천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_5cjWakdR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