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야고보서1장2절-4절, 시험을 만나거든
야고보서강해 2강. 시험을 만나거든(약1:2-4) 2008년2월3일 말씀
야고보서강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영적가르침이 우리에게 있기 전에는 야고보서강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2절에서4절입니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아주 짧은 세절의 말씀인데 이 세절의 말씀이 야고보서의 결론적인 말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서기록자들이 성령님의 도움에 의해서 어떤 때는 첫 마디에 결론의 말씀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고보서도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 야고보를 통해가지고 결론적인 말씀을 합니다. 말씀을 다시 보면 내 형제들아 가 누굽니까? 1절에 나옵니다.
누구냐면 흩어져있는 열두지파들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크리스천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지금 무슨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성서를 보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그랬습니다. 이 시험은 2절에 나오는 시험하고 13절14절에 나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같은 시험이었는데 다르다고 그랬습니다. 첫째 2절에 시험은 페이라스모스(peirasmos) 그다음13절14절 시험은 페이라조(peirazo)라고 원어를 보면 다르게 표현을 했습니다.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시험은 어떤 시험이냐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특히 앞으로 쓰시려고 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라고 말하면 되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은 준비는 안 되었지만 영적으로 더 성숙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 허락하시는 그러한 시험을 페이라스모스(peirasmos)시험이라 그럽니다. 지금 이 시험을 받는 사람들이 야고보가 말하는 열두 지파들 속에 있습니다. 다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열두지파들이 받는 시험은 이 시험보다는 페이라조(peirazo)시험을 많이 받는 사람들입니다 페이라조(peirazo)시험을 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을 보면 페이라조(peirazo)시험을 받는 이야기들로 가득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주님이 특별히 사용하시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서는 항상 소수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수를 요구하면서 다수에 대해서 꾸지람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깔려 있는 소수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다수가 아무리 꾸지람을 받아도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걸 참고로 하시고는 보면 이렇게 소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너희믿음의 시련이 있을 터인데 이 믿음의 시련이 무엇을 낳는다고 쓰 있습니까?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그랬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를 우리가 잘 외우시고 묵상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우리가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영어로 퍼펙트 앤드 컴퍼닉(Perfect and complete) 퍼펙(Perfect)은 무엇입니까? 완전하다는 소리입니다. 컴퍼닉(complete)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완전하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두 개를 붙여서 한국말로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이 말을 잘라서 퍼페 앤드 컴퍼닉(Perfect and complete)완성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주시는 것이 무슨 시험입니까?
믿음의 시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믿음의 시련이라는 단어가 이때 시련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도키미온(dokimion)이라고 그랬습니다. 사전에는 시련 후 인정된 다시 말하면 시련을 받는데 왜 시련을 받느냐면 인정시키기 위한 시련입니다 그러니까 미워서 하는 게 아니고 시련을 주어서 이제 합격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 주는 시련이라는 소리입니다 도키미온(dokimion)이라는 뜻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주는 시련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잖아요.
저도 지금 이 나이에 도키미온(dokimion)시련을 제 나름대로 많이 받아 왔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경험 없이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이런 도키미온(dokimion)시련 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지금 누가 합니까?
야고보가 하잖아요. 그러면 야고보는 이런 시련을 받았겠습니까?
안 받았겠습니까? 받았을 겁니다. 이런 시련을 받지 않고는 지금 이런 시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련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러면 우리가 야고보가 지난시간에 야고보에 대해서 배경설명을 했잖아요. 야고보가 어떤 믿음의 시련을 받았는지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사건 이후에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전에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부활사건이후에 크리스천이 되어서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와 보니까 열두제자들이 있는 겁니다. 제자들이 이분을 존경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늦게 들어왔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동생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분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이분은 크리스천귀족입니다 제자들과 다르잖아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로얄 페밀리입니다. 늦게 들어왔지만 열두 제자들 앞에서 목에다가 힘을 주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에 보면 이분은 나가서 전도했다는 소리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교회를 세우는 일을 누가 했습니까? 베드로를 통해서 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까 3천명이 교회로 오게 되고 나중에 또 베드로와 요한이 나가서 설교하니까 또5천명이 오고 그런 겁니다. 그것뿐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병자도 고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하니까 베드로가 쳐다보니까 죽어버리고 영 권이 누구에게 있는 겁니까? 베드로와 요한이나 이런 분들에게 있지 야고보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말들이 성서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안 받았겠습니까?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 나는 귀족인데 자기가 볼 때는 갈릴리 어부출신들이 교육도 못 받은 저 사람들이 우리 형님을 따라다니더니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는데 나는 이게 뭐야? 그런데 자리는 높은 자리지만 소위 말하는 종이호랑이인 겁니다. 이런 묘한 갈등 속에서 은근히 질투심도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이분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수장노릇을 한 겁니다.
수장이니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이 와서 물어 보잖아요 예컨대 히브리파와 디아스포라유대인들과 다시 말하면 두 그룹이 교회 안에 있어가지고 서로가 분쟁이 있을 때도 이분이 해결을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영 권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지도자가 되었으니까 이분이 갈등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 예루살렘교회 집사님 중에 빌립집사가 전도하고 그다음에 스데반집사가 순교를 당한 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교회가 핍박이 일어났잖아요. 교인이 지금 생각하면 약2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그기에 최고 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교회를 사도행전8장에 보면 흩트려 버렸습니다. 8장1절에 보면 사도 외에는 모두가 다 유대지방과 사마리아지방으로 흩트려졌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루아침에 풍지 박산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냥 흩트려진 게 아니잖아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핍박을 하고 로마 군인들이 합작을 해가지고 그러니까 대형교회가 하루아침에 풍지 박산이 되어 버린 겁니다.
누가 가장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야고보일 겁니다. 그런데 교회가 풍지 박산이 되어서 흩트려졌을 때 그래도 베드로와 요한은 가끔 사마리아지방으로 가서 전도도 하고 이랬는데 야고보는 그런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교회를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예수님의 동생으로써 로얄 페밀리인데 교인들은 다 흩트려지고 열두 제자들도 자기를 존경은 하지만 영 권이 안보이니까 속으로 아마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교회를 이렇게 들여다보면 꼭 초상집 같은 겁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이분이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개척된 것이 주후 몇 년입니까? 주후30년이라고 그랬습니다. 야고보서를 언제 썼다고 그랬습니까? 주후48년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18년 후입니다
18년 동안 야고보가 이 훈련을 받는 겁니다. 믿음의 시련을 받는 겁니다.
예루살렘교회수장으로써 훈련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주님께서는 이분을 이렇게 소위 격려해주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주후35년에 회심하고는 3년 동안에 아라비아에 가 있었잖아요. 그리고는 아라비아에서 다시 예루살렘에 들려서 누구에게 인사를 했습니까? 야고보에게 인사를 했잖아요. 다른 제자들보다도 그러니까 주님께서도 이분을 바울을 통해서 또 높여주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교회가 개척되었는데 예루살렘교회는 교인이 별로 없는데 안디옥교회는 교인이 많아진 겁니다. 바울도 그기에 계셨고 바나바 시몬 루기오 이런 사람들이 가서 자기 밑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가서 교회를 크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하루아침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도 받고 그러니까 이분이 그냥 앉아서 완전히 종이호랑이가 된 겁니다. 주님이 이분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자기 휘하에 자기 모든 백성들은 다가서 크게 잔치를 하는데 자기만 지금 혼자 앉아가지고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것뿐입니까?
주님이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예루살렘지역에 흉년이 나게 해가지고 교인도 얼마 없는데 교인들이 헌금도 안 내는 겁니다. 남아 있는 일부교인들이 헌금도 안 내고 왜냐면 흉년이 들어가지고 교회건물도 유지할 수도 없는 입장으로 와서 그럴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 소식을 듣고는 안디옥교회에 바울과 바나바가 헌금을 거두어가지고 야고보에게 드리는 겁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야고보가 참으로 힘들었구나. 이런 허탈감 속에서 자존심이 땅에 다 떨어지고 체면이 말이 아니고 내적 갈등이 있고 이런 모든 문제들이 심화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야고보를 훈련시키려고 거기다가 핍박을 더 가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자기가 자기 밑에 수하로 있던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가 목이 잘리는 사건이 일어났잖이요. 사도행전12장에 보면 그리고는 그분이 목이 잘리자 말자 자기 밑에 있는 베드로까지도 감옥에 들어가고 이런 사건들이 막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우리가 지금 야고보입장에서 보는 겁니다. 이분이 자존심이 얼마나 많이 깎였겠습니까? 그래도 자기의 육신의 형님인 예수를 섬긴다고 하면서 1장1절에 그랬잖아요.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는 자기가 예수님의 종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동생인 야고보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종으로 이분은 이렇게 모시는데 자존심이 이렇게 툭 떨어진 겁니다.
이런 자존심을 주님께서 다 아시고는 야고보를 올렸다 내렸다 연습을 시키는 겁니다. 이런 야고보가 18년이 지나서 열두지파 중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처럼 이런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글을 쓰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분명히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젊은 나이로서는 이제 쉽지가 않습니다.
그 수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조금 있으면 더 정도가 깊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원칙을 알고 있으면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아하!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구나. 라고 보고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서에 대답이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왜 허락했습니까? 인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런데 그 인내가 근방 오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인내를 생성하게 되는지 제가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믿음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진보하게 믿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 믿음이 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제가 믿음이라는 정의가 무엇이냐 입니다.
두 번째 누구를 믿는 다는 겁니까? 믿음의 대상이 누구냐 입니까?
세 번째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냐 입니다. 이 세 개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믿음의 정의 그다음에 믿음의 대상 그다음에 믿음의 내용입니다.
이 세 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의 정의는 히브리서11장1절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믿음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믿음과 어떻게 살았다는 내용들이 히브리서11장전체입니다
그러니까 이 히브리서11장을 우리가 깊이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정의를 봅시다.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습니다. 한국말 번역은 분명치가 않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분명합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야 됩니다. 바라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습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야 됩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바라는데 그게 그림으로 막 보이는 겁니다. 그것까지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내가 바라는데 그게 그림으로 보이는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확신으로 우리 눈에 그림으로 보여 지는 겁니다.
그다음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습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우리육의 눈으로는 안 보이는데 본 것처럼 내가 말하는 증거 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음의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부분에 굉장히 약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대상은 누굽니까?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그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면 믿음의 대상을 예수님의정체성을 우리가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신이시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다 예수님은 구약에도 계신 예수님이시다 창세전부터계신 예수님의 선재성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신약 때만 계신 예수님이 아니고 그 전에도 계셨다.
선재성(先在性)으로 예수님이 계셨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구원 자되신다.
예수님은 메시아시다 알파와 오메가시다 역사를 시작하셨고 끝을 맺으시는 분이다 그다음에 예수님은 우리인간의 주 만이 아니고 만유의 주라는 겁니다. 별들 동물들 생선 나무 어떤 생명체 어떤 자연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라는 겁니다. 만유의 주라는 소리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역사의 주관자시고 또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부활하시는 부활의 주님이시다 재림하실 분이시다 심판하실 분이시다 이분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이분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고 지배하시고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부분을 철저하게 우리가 묵상하고 고백하는 게 믿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이걸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십계명에서 제일계명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우리가 고백하는 사람이 수직적인 우상을 섬기지 않고 수직적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것을 제일계명이라고 그럽니다.
이것이 똑바로 서있으면 믿음이 있다고 그럽니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개념을 제가 새롭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믿음이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믿음의 정의가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안 보이잖아요 예수님을 내가 바라고 그 예수님을 내가 쳐다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그냥 예수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분이 창조주시다 이분이 만유의 주님이시다
이분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이분이 창조주시다 이분이 완전한 인간이시다
이분이 알파와 오메가 되신다. 지금 말씀한 이것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쳐다보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것을 내가 보는 겁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걸 고백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런 믿음이 계자 씨만큼만 있으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산을 옮긴다고 그랬잖아요. 산을 옮기는데 누가 옮깁니까?
내가 옮깁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옮기시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옮긴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예수님과 내가 열람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럼 세 번째로 무엇을 믿는 겁니까?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장에 믿음은 묵상했던 사람들을 주욱 보면 거기서 답이 나옵니다. 아벨이야기도 나오고 보면 믿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벨도 무슨 믿음이었냐면 우리가 영적으로 들여다보는 겁니다. 이분이 예수님의 보혈 예수님의 구속 주되심을 믿고 동물의 제사를 드린 사람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아벨에게 보여준 겁니다. 에녹도 마찬가지고 에녹도 다 제일계명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에녹이 매일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그랬습니다. 동행했다는 것은 지금 예수님과 동행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백했던 분이 에녹입니다 그래서 에녹에게 이야기할 때 히브리서11장에서 그랬잖아요.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사람임을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에눅이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눅은 예수님이 이런 분이구나 거기서 한 단계 더나가서 무엇을 믿었습니까? 천국에 가면 자기에게 상을 줄 것을 믿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상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녹이 들림 받았잖아요. 이 들림은 물 심판 전에 들림 받았는데 오늘날 환란 전에 들림 받는 사람들은 에녹 같은 사람이 들림 받는 겁니다. 그걸 예표로 보여주는 겁니다. 들림 받는 사람들의 예표로 아무나 들림 받는 게 아니잖아요. 에녹 같은 사람이 들림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대한 대상이 뚜렷했고 그다음에 막연하게 그냥 그분이다가 아니고 이분을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섬기면 천국에 가서 상을 받는다.
천국은 계급사회기 때문에 내가 천국에서 존귀함을 받는다는 에녹과 같은 믿음을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는 겁니다. 막연히 예수 믿는 게 아니거든요
분명한 동기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미시적인 삶을 살면서도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서 평소에 무슨 시각을 가졌습니까? 거시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충실하게 살아야 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저쪽이 또 있기 때문에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저세상시각을 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동시에 우리가 카메라도 보면 미시적인 카메라와 원거리를 보고 줌 렌즈로 당겨서도 보고 그러잖아요. 똑같은 겁니다. 소위 멀티기능을 가진 그러한 시각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겁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시각을 가지게 됩니까?
우리가 항상 영의 눈이 밝아지려면 어디에 연결되어 있다고 그랬습니까?
마태복음5장8절에 내 마음이 순수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영안이 뜨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믿음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하면서 내 하트를 순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게 아니고 하트가 순수해지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됩니까? 팔복에서 하트가 순수해지려면 첫째 복 있는 자는 마음이 가난해져야 하는 겁니다. 겸손해져야 되는 겁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내 속에 뭐가 있다는 겁니까? 내 속에 더러운 사탄의 성품들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두 번째로 애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무엇입니까?
애통하게 되면 온유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야생마가 가축이 되어서 예수님의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리고 성령님에 목말라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사람은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삶 속에서 이제 긍휼을 이웃에게 베푸는 그러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이 이렇게 변하는 겁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다음에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하트가 천천히 순수해지면서 청결해지면서 그때부터 영의 눈이 열리면서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막연히 믿음 믿음이 아닙니다. 인격이 그리스도인격으로 성화될 때 그러면서 내가 영의 눈이 떠지면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성서를 보면 주님의 인간구원계획의 성서의 눈이 환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다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보이면 보일수록 예수님으로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예수님으로 그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다보면 예수님과 초점을 안 맞추고 딴 데로 초점을 맞추다보면 악령이 와서 나를 지배해버립니다 성서를 많이 안다고 그래서 그 사람이 거룩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악령이 그 속에 왜 예수님이 빠져버리니까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신학이 어떤 때는 독소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빠져버리는 신학자들은 믿음의 조상인 노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 그랬습니다. 노아도 똑같이 그분도 그러니까 이미 이 단계까지 가기 전에 이미 믿음의 시련을 많이 받은 겁니다. 지금 말하는 노아도 그랬고 에녹도 그랬고 다 이 시련을 어느 정도 받은 다음에 눈이 떠지면서 방주를 지어라 그러니까 이분이 방주의 모습이 다 보이고 40일 동안에 노아의 홍수도 눈에 다 보이고 나중에 자기가족이 거기서 구원받는 모습이 다 보이고 다 이분이 믿음의 눈으로 본 겁니다. 봤으니까 순종한 겁니다.
120년을 보지 않고 할 수 있습니까? 그냥 막연히 믿음이 있다고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보이는 증거라 그랬거든요
그걸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트가 깨끗해야 됩니다.
하트가 깨끗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팔복의 단계 그것을 해야 합니다.
그걸 안하고 하트가 깨끗하다고 하면서 보인다는 것은 다 잘못된 겁니다.
다 잡놈들이 지배하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장래에 기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갈 때 이분이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그럴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갔잖아요. 그기를 처음에 가나안 땅이라고 말도 안했잖아요. 그렇지만 이분이 믿음을 가진 게 뭐냐면 이분이 자기에게 다 보여준 겁니다. 이삭을 받칠 때도 똑같았습니다. 이삭을 받칠 때 그냥 내 아들을 받치라고 헤서 받치는 막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이삭이 부활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죽지 않을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그랬습니까? 받치기 전에 모리아 산에 가봤잖아요. 가가지고 자기 사환보고 그러는 겁니다. 사환아! 내 아들하고 나하고 저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게 기다려라 이분이 다시 내려올게 그랬습니다. 자기 혼자 내려온다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아들과 같이 내려온다고 그랬습니다. 왜냐면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벌써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이렇게 훈련시켜가지고 이미 다 보여주신 겁니다. 가서 이것만하라 하면 아들 안 죽인다. 아들이 살아서 내려오는 것을 다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마음껏 한 겁니다. 봤기 때문에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지금 히브리서11장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모세도 그랬거든요. 히브리서11장24절26절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모세가 바로 왕궁에 있을 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에게 보여 주신 겁니다.
모세야 지금 바로 왕 밑에서 신나게 멋있게 영화를 누리면서 살고 있지 그걸 포기하라는 겁니다. 포기하면 포기합니까? 못 합니다. 그런데 상 주실 것 까지 어떻게 하실 것까지 다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다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랬잖아요. 그리스도를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했는데 그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다 본 겁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앞으로 큰 재물로 여겼으니 지금 자기가 왕궁에 사는 이것보다도 이분은 상 주심을 자기가 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었다는 겁니다.
시각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고 쉽게 오는 것이 아니고 훈련을 통해서 하트가 깨끗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예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고 제1계명 제2계명을 자기민족을 사랑하는 그것까지 그분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다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있는 모든 선지자들도 다 그랬다고 하면서 11장에 그러는 겁니다. 기생 라합도 그랬다는 겁니다. 기생 라합, 기드온,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모든 선지자들이 다 믿음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정의는 분명해졌습니까? 막연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강한 훈련을 통해서 내가 낮아지므로 그러면서 주님께 의지할 때 갈 바를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 의지할 때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제거되면서 내 속사람이 성화되면서 생겨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야고보자신도 이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야고보가 흩어진 열두 제자들 중에 특별한 제자들에게 하는 소리가 애들아! 너희들 이런 시험 페이라스모스(peirasmos)시험이 너희들에게 있는데 이것이 너희들에게 굉장히 좋은 사인이다 온전히 기뻐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시련이 때가 되면 인내를 낳겠다는 겁니다.
왜 인내를 낳습니까? 인내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것 때문에 저쪽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3장에 믿음이 있으면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믿음이 우리가 영화 보는 것처럼 앞이 다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망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천국에 간다. 거기서 그렇게 살 거다. 다 보이니까 소망이 따라오는 겁니다. 그 소망이 있으니까 내가 이웃을 무조건 사랑해줄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요즘 TV를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게 지금 MBC에서도 교계를 많이 공격하잖아요. 얼마 전에 MBC에서 공격하는 이야기를 어느 누가 나에게 이야기하는데 목사님! 제가 그런 걸 봤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왜 기독교인들을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을 싫어합니까? 왜 그럴까요? 답은 심풀합니다. 답은 지금 기독교가 번창하고 교회도 많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믿는 자가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저 세상을 향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만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불 초점이 되어야 되는데 싱글 초점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들이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취중하게 되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옵니까? 지도자들이 그런 사고방식에 있기 때문에 장로님들 목사님들이 다 이런 사고로 있기 때문에 교회가 보이는 것에 물량주의에 빠지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쪽을 못보고 이런 것을 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을 그대로 하는 겁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에 따라가는 것을 세속화되었다고 그러잖아요. 왜 교회들이 대형화됩니까?
그게 세속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합니다. 대형화되니까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신약에 예수님당시의 대형화 된 예루살렘교회를 흩트려버렸습니다. 사람은 커지고 유명해지면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눈이 이 땅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창조주시지만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눈을 이 땅에 두지 않고 저쪽에 두신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보고도 너희들도 눈을 이 땅에 두지 말고 저쪽에 두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부 예수님이 믿음의 시련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게 사랑의 사인입니다 그러니까 즐거워하라 그랬잖아요.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대형교회목사님이 아닙니다. 바울도 자기 교회를 제대로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떠돌이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봅시다. 물량주의 형식주의 남에게 과시하는 과시주의 대형주의 인기주의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어 라고 하는 기복주의 그렇기 때문에 경쟁하는 경쟁주의 유행을 추구하는 주의 세상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그래야지만 우리도 교인이 많이 모인다는 겁니다. 세상 복주의 팔복주의가 아닙니다. 세상행복주의 세상성공주의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의 모든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계관과 물질관과 자녀관과 모든 관이 이 세상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믿음공동체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세상과 분별이 안 되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들은 말로는 거룩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하는데 삶을 보면 우리와 같거나 우리보다 기대치에 어긋나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교계 안에 많은 겁니다. 교회 안에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밥맛없다 하는 겁니다. 악하려면 악해버리지 겉으로는 거룩한 체 하고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고 기도 많이 하고 기도원 많이 다니고 금식 많이 하는데 사람을 보면 시각이 전부 다 이 세상에 와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이 보니까 기대할 것도 없고 형식주의자들 같은 겁니다.
그리고는 가끔가다가 그럽니다. 교회들이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면서 막 떠듭니다. 당신 지옥 가 이렇게 남을 정죄하고 이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겠습니까? 변화된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들이 이렇게 공격을 받는 겁니다. 어느 정도 큰 교회가 되면 목사님들이 아주 잘 산다고 그러잖아요. 제가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게 있습니다. 신학생들이 뭐냐면 그저 졸업하고 교회 개척해서 300백 명만 모이면 그러면 웬만한 대기업에 이사급이 된다는 겁니다. 냉장고 교회에서 다 채워주고 차량유지비 다 지원해주고 아이들 대학까지 교회에서 다 시켜주고 보험이며 모든 것이 다 되어있고 그때까지만 죽어라고 교인 늘린다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게 무슨 사고방식입니까? 이 세상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 모두 그 사고방식입니다 이교회와 저 교회가 같은 교단이라도 원수같이 지내고 가까이서 서로 교인 빼앗아 오는 겁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있는데 왜 그럴까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웹사이트에서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탈세도 하고 목사님들이 세금도 안내고 크리스천들은 거짓말도 잘하고 잘 속이고 교회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기주의가 있고 허세부리고 가짜들이 많고 목사들도 가짜박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늘 기독교신문을 보니까 목사들 박사과정의80%가 가짜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가짜가 얼마나 많습니까? 대학도 가짜들을 이야기하잖아요. 교계에는 더 심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지 않고 영어를 하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받고 어떤 사람은 2년 사이에 철학박사 PHD를 받고 2년 사이에 어떻게 그걸 다 받습니까? 명함에다 다 달고 다니고 인도가면 그런 목사들이 수두룩합니다. 다들 돈 주고 그렇게 받습니다. 미국학자들이 한국 사람들 상대로 그렇게 해가지고 돈벌이 엄청나게 합니다. 한국이 봉입니다 봉 앞으로 더 많이 받을 겁니다. 한국교회가 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내니까 그것 가지고 목사님 박사학위를 그렇게 다 받게 하고 그다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프랑 카드 붙이고는 감사예배까지 드립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왜냐면 이 세상에 다 가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가 있으니까 목사님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감사하게 되는데 다 엉터리로 받은 것을 그래가지고 좋다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겁니다. 이게 되겠습니까?
이게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흩어진 열두지파들의 모습들이 이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야고보서를 스무 번 읽으라고 부탁드렸잖아요.
읽으면서 보세요. 그 안에 주님 복음 때문에 흩어져서 딴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 안에 문제투성인 겁니다.
왜 문제투성이겠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왜냐면 하트가 순수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트가 순수해지면 시각이 열리면서 전 세계가 보이는데 그것이 안 되어서 그러는 겁니다. 문제는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트가 순수해져야 하는 겁니다. 마음이 순수해져야 되는 겁니다. 마음이 순수해지라고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허락한 겁니다. 그러니까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허락 받았을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은 기뻐하라는 겁니다.
환호성을 부르면서 할렐루야 하라는 겁니다. 우리도 이 믿음의 시련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 만날 때까지 계속 받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은 눈에 보이는 이 삶 속에서 시련을 주잖아요.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이 오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느냐 입니다. 그래서 왜 나에게 주시는가?
그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목적을 알고 목적대로 살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재물의 시련이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시련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페이라스모스(peirasmos)를 주십니다. 재물의 시련의 페이라스모스(peirasmos) 어떤 분은 평생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안되어도 괜찮습니다. 안되어도 이걸 받으면서 엔조이하세요. 주님 안주어도 좋습니다. 이걸 통해서 내 마음이 더 가난하게 해주시고 나의 하트가 더 순수하게 만들어주시고 어떤 사람은 건강문제가 있습니다. 별난 약을 다 먹어도 안 되고 별난 처방을 대해도 안 됩니다 바울도 그런 것이 있었잖아요.
육신의 가시로 네 은혜가 그걸로 족하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자녀들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하고 하는데 왜 자녀들이 이렇게 말을 안 듣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걸로 평생에 가야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믿음의 시련을 주는 경우 나를 더 순수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부부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의 고통 좌절의 고통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고통 거절 감을 항상 가지고 있는 소외감 어떤 분은 나는 다 좋은데 왜 나는 미혼으로 지금까지 있습니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결혼을 했는데 그것도 주님이 주시는 시련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주님 나로 하여금 마음을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주셨군요. 내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시련이 내가 잘못한 것이 별로 없는데 네게 오는 이 시련을 내가 달게 받겠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하트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주기 위해서 내가 영의 눈을 뜨게 하고 믿음의 눈을 뜨고서 이 세상을 보고 믿음의 눈을 뜨고서 저 세상을 보는 그러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나에게 이것을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합니다.
하면 내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움직이면서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목적을 분명히 우리가 깨달을 때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눈이 떠지면서 그다음에 뭐가 옵니까?
소망이 보이는 겁니다. 왜냐면 저 세계가 보이니까 그러니까 인내할 수 있는 겁니다. 믿음의 시련이 무엇을 만듭니까? 인내를 만들어준다고 그러잖아요.
그 인내가 인간적인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내가 아닙니다.
저 세계에 큰 것이 보이니까 작어만한 이것들은 조무르기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것을 조무르기들을 이길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 나쁜 것들을 다 놓고서 저 나라에 가야되는 사람들입니다 그까짓 것 조그만 문제하나가지고 그것 때문에 인상 쓰고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그것 때문에 금식하고 이러지 마세요.
그냥 밟고 지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 세상만 보고 가는 겁니다.
왜냐면 언젠가는 다 놓아야 되는 겁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도 다 놓아야 되고 내 파트너도 놓아야 되고 재산도 다 놓고 가야되잖아요.
저 세계가 딱 보이는 사람은 지금 여기 있는 것 가지고 그냥 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 세계를 보는 사람은 죽을 준비를 항상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내가 또 숨을 쉬는 군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내가 숨을 거둘 때가 오잖아요. 이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룰 수가 있는 겁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사람은 다음시간에 말하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지혜를 간구하라는 겁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여기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8quApfSPp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