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2년4월2일 칼럼

변명섭 2022. 4. 3. 06:42

22년4월2일 칼럼

오늘날을 '적그리스도'(Antichrists)시대라 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보편화된 기독교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성서적 뜻을 물어보면, 언뜻 정확히 대답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상식 수준에서 이렇게 대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기독교 행위자 또는 이런 행위 자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적 정답은 아닙니다.

 

이 '적그리스도'(헬, antichristos, 영, antichrist)라는 표현은, 사도 요한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특수 호칭명사입니다(주후85, 요일2:18,22,4:3, 요이1:7). 이는 'christ'에 'anti'를 앞에 붙인 단어입니다. 이 'anti'에 4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 against, (2) in opposition, (3) in place of, (4) false 입니다. 또한 'christ'를 헬라어로 'christos'라 하는데, 이는 '구원자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anti'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antichrist' 입니다. 이것을 다음 4가지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1)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에 대항하는 자(against), (2)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의 반대위치에 있는 자(in opposition), (3)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를 대체하는 자(in place of), (4)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로 가짜 행세하는 자(false)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궁금증이 있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도 요한의 예언 때문입니다. 그의 예언이 이러합니다. "마지막 때(the last time, 초림에서 재림까지 시대, 교회시대)에 많은 적그리스도들(many antichrists)이 일어날 것(shall come)이다"(요일2:18)라는 경고적 예언입니다. 1세기부터 재림 때까지,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하나도 아닌,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출현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디자인하신 것을 요한에게 예언케 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왜 '적 예수', '적 성부', '적 성령'이 아니고, '적그리스도'이며, 이것도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해결 받아야 합니다. 이는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이 '적그리스도들'에 의해, 삼위 하나님 중 성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집중 공격받을 것을 미리 디자인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삼위 하나님 중,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로 기름부음 받은 분)라는 사실에 대해 집중 공격이 가해질 것을 미리 디자인하셨습니다. 이는 창조목적학교 학생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기독론'(그리스도론)에 철저히 훈련되어 숙지되어야만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입니다. 아니면 디자인된 '적그리스도들'에 의해 믿음을 잃거나 방해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아주 적은 Sunday Christian이나 Nominal Christian(명목상 기독교인) 수준으로 머물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영적 유아 기독교인'(헬, nepios,고전3:1)이나 '영적 어린아이 기독교인'(헬, paidion,마18:2)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그리스도들'의 유혹과 속임으로, '진짜 그리스도'로 무장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이 '영적 유아'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다 천국으로 갑니다.

 

한편 '영적 사춘기'(헬, teknion, 요13:33), '영적 청년'(헬, neaniscos, 요일2:13), '영적 아들'(헬, huios, 마5:9,45), '영적 아버지'(헬, pater, 고전4:15) 수준의 하나님 자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그리스도들'의 정체성'과 이놈들을 허락하신 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인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절대성과 중요성을 가르침 받게 하여,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을 신실히 섬길 수 있게 인도하십니다.

 

'가짜 그리스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기능적 교육방법'으로, '진짜 그리스도'를 이들에게 교육시키십니다. 기독교의 파라독스 중 하나입니다. 창조목적학교 교장 되시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르치시기 위한 '역기능적 교육방법'입니다. 많은 가짜들이 활개치도록 하여, 혼돈케 하여, 하나님이 왜 이런 가짜들을 풀어 놓으셨는지 고민하도록 하십니다.

 

학생들이 진짜에 갈급하며, 진짜의 소중함을 절감케 하며,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분별력을 고취케 하므로, 진짜를 더욱 사랑하도록 이끌어주는 교육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그리스도를' 왜 이 세상에 보내주셨는지 깨닫게 하는 교육방법입니다. 또한 왜 하나님이 이런 '가짜그리스도를 통한 산고'를 디자인 하셨는지도 깨닫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이 '산고'를 통해야만 '해산의 기쁜 소식' 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산고의 원칙'(창3:16; 마24:7)을 가르쳐 주시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이 '산고의 원칙'과 계획대로,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교회 안에 '가짜 그리스도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풀어놓으셨습니다. 1세기부터 5세기에, 예수님의 인성(100% humanity)을 부인하는 영지주의(Gnoticism)와 Doketism, 예수님의 신성(100% deity)을 부인하는 Ebionism과 Arianism등 입니다. 교회가 400년간, 이들 디자인된 '가짜 그리스도들'에 의해 엄청난 산고를 겪었습니다. 이 '산고'로 니케아 공의회(주후325),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에베소 공의회(431), 칼케돈 공의회(451)를 열게 했습니다. 이 네(4) 공의회를 통해 '해산의 기쁨'을 맛보게 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 승천 후 400년,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그 때 칼케돈 공의회에서 채택한 '마리아 학설'로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지금까지 이 '마리아 학설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재림 전에 '종교다원주의 산고'(마24:4-5,23-28)와 '두 짐승 산고'(계13:1-18)를 디자인하시고, 오늘날 온 세계 교회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재림 전 반드시(헬, dei, 영, must, 마24:6) 일어나야만 하는 가장 강력한 '적그리스도' 세력들입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며, 누구의 잘잘못도 아닙니다.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전능하신 하나님'(창17:1; 계15:3)의 철저한 '역기능적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놀랍게도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이것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역기능적 교육 프로그램'속에서 교육받는 우리 학생들의 할 일이 무엇인가요? 이 교육프로그램의 주 필수과목들을 철저히 공부하며, 이것을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내 민족과 타민족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으로 나누는 사명입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부라고 '감람산 설교'에서 약속하셨습니다(마24:37-25:46).

 

이 필수과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론', '삼위일체론', '창조목적론', '기독론', '성령론', '성화론', 교회론', '종말론' 입니다. 난무하는 '적그리스도들'의 정체성과 시대분별력을 가지려면, 이 필수과목들을 공부하도록 성령님이 이끄십니다. 여러분들이 요즈음 매 주일마다 이 필수과목들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있으며, 열심히 가르치며 전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나팔수들로 조금씩 변모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어렵고 딱딱한 주제들을 공부해야 합니까? 몰라도 괜찮습니다. 구원의 필수요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 있는 자는 말씀에 배고파하게 되어 있습니다(마5:6).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황목사님, 좀 가벼운 설교하시면 어떨까요? 삶에 지쳐있는데, 마음 위로 받고픈데 말입니다. 인생 당면 문제들을 해결 받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런 요구를 하는 AMI교회 교인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상기 필수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들을, 성령님께서 소화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며, 말씀 안에서 해결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온갖 위로의 말씀들을 들어왔는데, 걱정과 근심에서 해결 받고 위로와 평안을 계속 누립니까? 듣는 그 순간 또는 며칠 동안 위로와 평안을 누리지만, 오래 지속이 안 됩니다. 근본적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독교의 비 본질'을 다루는 설교와 성경공부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인 필수 과목들로 무장되어 있지 않고, '비 본질들'인 선택과목들에 주로 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본질 메시지들'에 익숙한 자는,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시각의 초점이 이세상 주변의 대소 사건들에만 머물게 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병아리 시각자'('두더지 시각자'를 이렇게 부르기로 함)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세상, 이세상, 저세상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한편 은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조금씩 '본질'공부에 접어들다 보면,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시각의 발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아리 시각자'에서 '참새 시각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때(kairos, 전3:1-6)가 되면, '새끼 독수리 시각자'로, 그리고 '어른 독수리 시각자'로 변모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본질과목' 공부의 중요성입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지만, '기독교의 본질'인 필수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각 변화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필수과목에 충실한 자는 이런 엄청난 시각의 발전을 선물로 전수받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시각의 변화'를, 주 안에서의 '믿음의 변화'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자유 의지'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AMI공동체에 이런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목회자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이 '필수과목들'에 충실하도록 은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받음으로 해서, '시각의 발전', 즉 '믿음의 성장'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는 복된 자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