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빌립보서1장27절-30절, 복음에 합당하게 생각하라
빌립보서 7강. 복음에 합당하게 생각하라(빌1:27-30) 2000년 말씀
오늘말씀은 빌립보서1장27절에서30절입니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아멘.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이 약2천 년 전에 사도바울우리 선배님을 통해서 빌립보교회에 말씀하신 말씀을 지금 여덟 번째로 상고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저희들에게 영감이 넘쳐나게 하셔서 그 당시에 주님의 종을 통해서 하셨던 그 영감이 저희들에게도 임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냥 하나님의 말씀 설교의 말씀으로 간단하게 또는 그저 가볍게 듣는 저희들이 되지 않고 이 말씀 속에서 성령님이 나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이 말씀에 임할 수 있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부족한 종을 성령님의 강하심으로 붙잡아 주셔서 주님의 말씀만 전하지 저의 말이 전파되지 않게 하시고 이 말씀이 나갈 때마다 저희들 가슴 속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는 복된 말씀되게 하시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박히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 깊이 널리 높게 길게 적용되는 복된 말씀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미국의 부호들을 돈 많은 백만장자라고 그러잖습니까? 이런 분들을 우리가 이렇게 보면 이분들이 자산을 2세들에게 넘겨주지를 않습니다. 대물림을 하지 않는 것이 그분들의 일반사회상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이고 또 국가의 법도 상속세금을 많이 부과함으로써 그 다음대로 자녀들이 재물을 전가 받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IMF를 통해서 소위 말하는 상속세를 더 강화시키고 2세들이 경영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고 상속세를 많이 부과시켜서 보통50%이상이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 그래가지고 전문경영인을 세우고 그러므로 해서 그분들이 받은 재산을 그분들이 쉽게 가지지 않고 받음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키고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그 재산을 운영할 수 있는 이러한 방법을 우리나라도 지금 도입하고 쓰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잖습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재산에 대한 가치를 쉽게 넘겨주면 후세가 모르기 때문에 그럽니다. 왜냐면 그분들은 땀과 노력 없이 쉽게 받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땀과 노력을 들어서 쌓아놓은 재산이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잘 보존될 수도 없고 증식될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이런 식으로 해서 재산을 넘기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능력도 없습니다.
돈을 더 증식해야 겠다는 동기도 결여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결과 때문에 이분들은 대개 보면 물질을 오용해가지고 방탕하게 되거나 본인에게 패망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들은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지 않는 겁니다. 이병철씨도 보면 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한 분에게 재산을 많이 남겨주었지만 일일이 모든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분도 그걸 알기 때문에 제가 옛날에 대학 다닐 때 이병철씨 집안에서 가정교사를 약3년 반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 다닐 때 상당히 부자 집 아들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나는 돈이 없는데 왜냐면 서울 시내를 그 당시에 세단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 장관이 박스 지프차를 타고 다닐 때입니다 자유당 때 왜냐면 그분들이 타면 내가 앞자리에 비서처럼 앉아서 탔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제가 도도했겠습니까? 양복도 전화만 하면 제일모직에서 양복 사들이 와가지고 제 몸을 대고는 가봉도 직접 와서 하고 신발도 다 그렇게 하고 그러면서 지냈는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제가 특별히 가르치는 그분의 자녀 중에서 제일병원이라고 이사장하시는 분이 이동희박사라고 있습니다. 이분의 자녀들을 제가 집중적으로 가르쳤는데 이분이 이병각씨라고 이병철씨 바로 위형님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분이 돈이 많고 이러고 있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날 때도 굉장히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이동희박사라고 그분이 재산을 자녀들에게 안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다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분이 몇 년 전에 갑자기 폐암 선고를 6개월 받고는 세상을 떠날 때 재산을 전부 삼성에다가 다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녀들에게는 안 주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분이 똑똑한 분이시구나 자녀들은 그기에 직원으로만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잘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말에 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지금 오늘 말씀 속에서 사도바울이 감옥에 앉아서 고민하는 고민이 뭐냐면 그분이 가지고 있던 딜레마가 뭐냐면 똑같은 이런 현상입니다 무슨 현상이냐면 로마감옥주변에 있는 자기제자들이나 또 로마교회교인들이나 빌립보에 있는 빌립보교인들이나 똑같이 뭐가 있느냐면 엄청난 가치의 복음을 유산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에 대한 복음의 가치를 이분들이 알지를 못하는 겁니다. 너무 쉽게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분들은 쉽게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면 분쟁과 투기가 있는 겁니다.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자녀들도 똑같습니다. 삼성이나 현대를 보세요.
자녀들끼리 그것 때문에 분쟁과 투기가 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손상시켜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일곱 번 동안 계속해서 빌립보교회에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분들이 왜 이런 문제가 있느냐면 보면 복음의 가치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분쟁과 투기가 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도 딴 교회와 비교해서 보면 투기와 분쟁이 심한 교회로 소문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교회가 그래서 이런 걸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겁니다. 이유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한국교회가 복음에 가치성에 대해서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소위 말하면 그것을 영어로 말하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지 에반젤리즘(easy evangelism)이라고 그럽니다. 전문용어로 전도도그냥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잘 되고 이렇게 되니까 예수님을 믿으라. 믿기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냥 교회로 끌로 오는 겁니다. 소위 이지 에반젤리즘(easy evangelism)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쉽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보면 다 잘되고 그러한 사상이 우리한국교회에 깊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속에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느냐면 소위 교회성장이라는 하나의 큰 테마를 가지고 이렇게 우리한국교회가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마다 내 교회성장 그래서 모조건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심지어 타 교회에 있는 성도들까지도 데리고 와서 그러면서 우리는 그것을 전도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투기하고 분쟁하면서 전도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다가 말씀하시는 것이 똑같습니다.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씨앗을 가지고 우리에게 복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한국선교사들이 나가서 선교현장에서 다른 민족들과 차이점이 뭐냐면 분쟁하고 투기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남을 깎아 내리고 항상 기회만 있으면 동료선교사나 목사님을 깎아 내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점입니다 복음의 색깔이 변해진 겁니다. 나도 모르게 복음의 색깔이 변했는데 내가 영의 눈이 어둡고 영의 눈에 내가 영적으로 색맹이 있어가지고 그것이 색깔이 변했는데 변했다는 것을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병든 사람이 병에 대한 자각증세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안하십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있는 대단히 큰 영적인 병입니다 지금 우리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것 때문에 우리의 복음이 얼마나 비싸고 보배스럽고 숭고한지를 개념조차 희미하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기독교는 그저 축복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많이 쓰는 말이 축복이라는 소리입니다.
복 받으라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복음의 가치성을 우리가 재인식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보배스럽다는 것을 우리가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시작하는 기본 파운데이션(foundation)입니다 왜 열심히 안 하고 왜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는 이유가 뭐냐면 복음에 대한 가치성에 대해서 깊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아담이 죄를 지어시고 그분이 죄를 지으신 후에 주님은 창세기3장15절을 통해가지고 주님이 아버지하나님께서 내가 여자의 후손으로 내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게 함으로 너희들에게 문제를 해결하여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는 구약전체가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피를 흘릴 것을 동물을 잡게 하면서 연습을 시키고 그래서 제대로 잡지 않고 적당히 잡으면 이놈들아 하고 주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화를 내시면서 이러면서 철저하게 예수님의 피의사건을 구약 전체에서 피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사람이라는 하나의 연극배우를 뽑아가지고 피의 사건을 연극화 시키는 겁니다. 역사 속에서 그래가지고 출애굽사건을 한번 보여주시고 출애굽사건 속에서 나타나는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의사건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고 그리고 모세의40년 광야생활동안에 성막을 지어서 철저하게 피의중요성을 설명하시고 나중에 다윗과 솔로몬 때 성전을 지어서 성전에서 제사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예수님께서 더디어 4000년 후에 나타나신 겁니다.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것 때문에 왔다 그러시고는 이분이 3년 동안에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나중에 십자가에서 정확하게 피를 흘리신 다음에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 엄청난 하나님의 정성입니다 나를 위한 정성입니다 나를 주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변하지 않는 신실하심이4천년 동안에 끊임없이, 끊임없이 인간역사 속에서 주님의 사랑 아버지하나님의 사랑 애절한 우리의 위한 사랑이 계속 표현해왔습니다. 구약 속에서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그 가치를 구구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면서 기독교를 하나의 지식의 종교로 받아드릴 때 그냥 복 받는 종교로 받아드릴 때 우리는 투기하는 사람이 되고 분쟁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피의 역사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왜 피를 흘려야 됩니까? 이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하필이면 피를 흘려야 됩니까? 우리인간은 육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육의 눈을 떠서 육을 봅니다. 혼이라는 것은 지, 정, 의 다시 말하면 마음 또는 인격 정신부분을 혼이라고 그럽니다.
영어로는 소올(soul)이라 그럽니다. 영의 부분은 스피릿(spirit)이 세 부분이 다릅니다. 이걸 3분설이라고 그럽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육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피 입니다. 피가 육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살았다는 것은 피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혼에도 피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이지 읺는 피가 있습니다. 영혼세계에도 보이지 않는 피가 있습니다. 내 정신이 살았다는 것은 그 속에 보이지 않는 혼의 피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영에도 피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의 피는 우리가 보지 못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분이 육의 피가930살 이후가 되었을 때 없어 졌습니다. 아담이 처음에 지음을 받을 때는 영원히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은 바람에 육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이 930살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동시에 혼의부분도 이분이 나중에 가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영의 부분 이 부분은 그 즉시로 죽어버렸습니다. 영의 피가 즉시로 하나님의 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피를 가지고 이분이 태어났는데 그러니까 영원히 사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피가 없어져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대신 마귀의 피가 그 속에 들어가 버린 겁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녀가 되어 버린 겁니다.
나중에 마귀를 지옥에 보낼 때 자기네의 부모 집으로 가는 겁니다.
지옥 간다는 말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피를 잊어버리고 마귀의 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피를 재공급시켜주려고 하는 겁니다. 이 피를 공급시키기 위해서 동물의 피를 가지고서 사람이 눈으로 보도록 4천년을 연습게임을 시키시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성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그래놓고는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가지고 하나님이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피는 육의 피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피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는 소중한 피입니다.
하나님의 피 하나님이 피를 흘리신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눈으로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러한 피를 흘리시는 것을 보고 아하! 저분이 하나님이신데 피를 흘리시는구나 하나님이 흘리시는구나. 그것을 보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속에 있는 악령의 피가 싹없어지면서 하나님의 피로 대체되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구원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대가를 하나님이 지불하시고 나에게 주신 그 생명의 존재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다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렇게 정말로 엄청난 가격을 우리를 위해서 지불하신 겁니다. 이걸 가볍게 생각하년 안됩니다.
이것은 가격이 없는 겁니다. 이런 복된 그 피를 우리게 주신 것은 우리가 무엇이라 그럽니까? 복음이라고 그럽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이것을 나가서 전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이 피의 고귀성과 숭고성을 이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그때부터 삶에 대한 이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내 자신을 보는 내 눈이 변화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인식의 변화입니다 교회 안에 90%의 사람들이 인식의 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이 복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피에 대한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겁니다. 이것을 정말 보배스럽게 여기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겁니다.
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이 변화가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이 인식의 변화를 가진 사람은 먼저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물질관이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자녀관이 달라집니다. 가정관이 달라집니다. 미래관이 달라집니다. 교육관이 달라집니다.
철학이 달라집니다.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현대말로 말하면 저 사람이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했다고 그럽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인식의 변화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요즘 와서 정말 멋진 세상 사람들이 되려면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고의 전환이 사고를 전환시키지 않으면 이제는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21세기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사고의 전환의 기본은 어디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피에 대한 가치성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고의 전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사고의 전환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각의 변환입니다 우리가 육의 눈이 있고 혼의 눈이 있고 영의 눈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육의 눈을 가지고 혼의 눈을 가지고 이성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우리는 그기에 더해서 영의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보는 눈의 차원이 다른 겁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선교정책을 육의 눈으로 보고 그리고 혼의 눈으로 봅니다. 그다음에 영의 눈으로도 선교정책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 내 눈이 몇 개가 있습니까?
최소한3개가 있는 겁니다. 육의 눈으로 봐도 돋보기가 있어서 가까이도 보고 중간으로도 보고 멀리도 봅니다. 혼의 눈도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로 보는 겁니다. 영의 눈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러 층으로 보는 멀티앵글을 가지고 보는 그런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도바울에게 이러는 겁니다. 27절에 애들아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생활하라 이게 명령형입니다 우리말로는 합당한 자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원어와 똑같이 써놓았습니다. 복음에 가치에 맞는 사람으로 행동하라는 겁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비싼지 아느냐 그 가치를 왜 보지 못하고 싸구려행동을 하느냐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27절에 그분이 제일먼저 말하기를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아느냐 당신들은 복음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일심으로 한뜻을 복음신앙을 위하여 협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27절에 이 말이 무엇입니까? 한 마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분리가 있고 투기가 있다는 겁니다. 영안이 어둡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린아이기 때문에 시각에 문제가 잇는 겁니다. 이분들은 근시안적 눈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육의 눈으로 혼의 눈으로 영의 눈을 떴다고 하지만 근시안적인 영의 눈을 뜨고 사물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안경을 써야 하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한국교회가 이런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해왔고 그런 분들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근시안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소리 지르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저도 변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눈을 원시안적으로 뜨지 않고 근시안적으로 뜨면 그다음28절에 사도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복음전파 할 때 대적하는 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그런 사람들은 담대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왜냐면 현실에 의존하니까 내가 이렇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내가 빤히 알면서도 하는데도 내가 이러다가 내가 다치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담대하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우리교인들 절반이 나가지 않을까? 목사님들의 입장에서는 매일 같이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다고 사도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눈을 멀리 원시안적으로 뜨면 파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교회의 예를 안 들 수 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우선 나약합니다.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바른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선지자적인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교회는 소위 각 교단이 서로 하나가 되라 그래서 교회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주위계통이나 한국기독교연합회나 또는 KNCC이런데서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신문을 보니까 30여개의 교단이 하나로 합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색깔이 다 다릅니다. 특히 크게 색깔이 다른 것은 종교다원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교단과 그렇지 않는 교단과 연합을 하는 겁니다.
종교다원주의가 무엇입니까 다른 교회도 복음이 있다는 겁니다.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인데 가는 길이 다른 것 뿐이지 이렇게 주장하는 교리를 외치는 교단들이 우리나라에도 여러 교단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단들이 더 인기가 있습니다. 이제 그런 교단들과 다 하나가 되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육의 눈 혼의 눈으로 보면 아주 멋있는 원시안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아주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끼리 좋아지면 되는 것 아닌가 싸움하지 말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예수 밖에서도 하나가 되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주 접은 복음주의목사입니다 이런 것을 외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나약함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그분의 존재를 피의가치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이런 데까지 가게 됩니다.
원시안 적이 되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눈으로 보고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모든 이런 부분을 보면서 우리 서로 잘 지내지 뭐 이런 식으로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28절에 너희들이 그렇게 담대해져가지고 경고를 하지 않으면 예언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면 저들에게는 멸망의 사인이요 우리에게는 그렇게 해야지만 구원의 사인이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보면 죽고 사는 문제기 때문에 그렸습니다.
또 저들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피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그리고는 담대히 겁 없이 피를 전해야 되는데 깊이 깨닫지 못하면 그 피를 담대히 전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제가 첫째 뭐라고 그랬습니까? 첫째 피의 가치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시기와 분쟁과 다툼이 온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한 단계 더 발전해서 복음에 대한 용기가 없어지고 나약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복음의 유일성에 대해서 약해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빌립보교회에도 그러한 징조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빌립보교회만이 아니고 과거2천년 동안에 교회 안에서 나타났던 일입니다 지금은 더 심하고 그리고 사도바울이 마지막2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는 것뿐 아니고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우리보고 눈을 깊이 하나님의 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눈을 원시안적으로 뜨게 되는데 원시안 적으로 뜨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복 받는 레벨에서 한 단계 벗어나가지고 뭐냐면 너희들은 고난까지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왜 고난을 주시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는 그러한 습성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줘야지만 내 눈이 어디로 갑니까? 내 눈이 떠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고난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원시안적인 시각변화를 가져오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5장에 팔복 중에 그러잖습니까? 너희들이 나를 위해서 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즐거워하라 그랬지 않습니까? 왜냐면 그렇게 해서 시각의 변화가 오게끔 해서 시각의 변화가 온 다음에 그다음에 주님과의 깊은 영적인 대화를 하면서 주님의 뜻을 행해서 걸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을 때 네가 그런 눈을 뜨고 있을 때 근시안적인사람들이 너를 핍박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때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걸 받아야지만 세상의 상이 아니고 하늘나라의 상이 많아진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계속해서 하늘나라 일만 생각하고 주님의 시각과 맞추니까 주님이 이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복 받기 위해서는 필요한 겁니다. 아멘. 고난을 꼭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 하면 그저 복 받고 잘 되고 모든 것이 할렐루야 이것은 어린아이은혜라는 겁니다.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서 사도바울은 이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고난까지도 접수하는 성숙한 자녀들이 되라는 겁니다. 고난 받기 원하십니까? 고난 중에 제일 힘든 고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볼 때 물질적인 고난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고난입니다 건강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고난입니다. 정신적인 고난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든 고난이 뭐냐면 내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고난입니다
자존심을 죽이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나의 자존심이 묵살당할 때 그것이 제일 힘든 고난입니다 그기까지 가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그 경험을 직접 하셨습니다. 우리가 투기할 때 왜 투기합니까? 저 사람이 나를 우습게 안다는 겁니다. 또 나의 가장 건들지 말아야 될 부분을 건들릴 때 내가 팍 튕겨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튕길 때보면 아 저 사람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구나.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와도 주여 이렇게 하면 성숙합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사도바울뿐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피조물들에게 고난을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려면 간단하게 지면되는데 십자가지시기 이틀 전부터 얼마나 희롱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자존심 깎이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네가 하나님이냐? 하나님이면 거기서 내려와 보라 주님의 자존심 우리 같으면 개미새끼들이 나에게 까부는 겁니다. 발로 밟아버리면 끝나는 데 그런데 이분이 가만히 참으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그걸 구경하는 겁니다.
왜 그러십니까? 나를 위해서 그러시는 겁니다. 너희도 그 자존심 내가 경험한 이 자존심 깎아내림을 너희들도 경험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모본을 보여주는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4복음서를 읽으면서 특히 마지막수난의 과정을 읽을 때마다 주여! 나에게 이것을 직접 몸소 보여 주시는 그것을 우리는 항상 그런 은혜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선지자들도 그렇게 했단다. 주님이 사랑했던 선지자들도 다 고난에 참여했단다.
고난 중에 제일 힘든 고난이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 중에서 고난을 받은 겁니다. 제일 힘든 고난이 뭐냐면 예수 믿는 크리스천공동체 안에서 받는 고난이 더 힘듭니다. 그걸 각오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기독교는 교회가 성장하면 모든 게 다 잘 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반 쪼가리 복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그렇게 흘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영성이 더 깊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눈이 원시안적으로 눈이 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올 때마다 더 기뻐하라고 그랬잖아요. 시험이 올 때마다 기뻐하라 여기서 고난을 다 경험한분들이 있기에 그러니까 내 자존심이 깎기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 제가 주님께 더 가까이 갈려면 이런 경험을 해야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이것을 이길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가 있는데 그걸 저 사람들이 나를 깎아 놓습니다. 주여 내가 이것을 간수할 수 있는 능력을 나에게 주세요. 그러면 주님이 그걸 주십니다.
그걸 잘 받는 분은 복 있는 분입니다. 저나 교회는 근시안적인 현실에 안주하는 그러한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복음의 반 쪼가리 그것도 20%도 안 되는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교회성장에 초점을 맞추다보니까 교회가 돈이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정치적인 입지가 점점 강화되고 자본주의의 물결에 같이 물질팽배주의로 같이 흘려가고 있고 그것이 지금 오늘날 우리나라교회의 현실입니다 과거2천년 동안 교회역사를 보면 다들 교회들이 한때 그러다가 또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하나님께서는 다음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게 구라파에 교회들을 보세요. 한때 그러다가 넘어지고 요즘 와서는 자본주의가 극치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교회는 이 자본주의의 극치와 같이 동승해서 교회성장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저도 30년 전부터 한국에 와서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기에 주체하는 분들이 그럽니다. 광고를 낼 때 영적갱신을 위한 특별목회자세미나 이러면 많이 와야 300명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이라도 제목을 바꾸면800명에서2천명이 온다는 겁니다. 뭐냐면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자세미나 이러면 몰려온다는 겁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나라교회의 현주소구나 목사님들이 교회성장을 위해서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면 생존하기가 힘드니까 우리나라는 신학교를 너무 많이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신학교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콜링(calling)을 받지 않는 사람이 신학교에 너무 많이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오면 교회를 개척해야 되는데 이제는 교회를 개척할만한 여지가 없는 겁니다. 교회가 너무 많아가지고 그러니까 구멍가게를 여지저기에 차려놓고 서로가 싸움하는 식으로 되어 버린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게 생각하면 주님은 그 안에서도 움직이시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은 그의 막혀버렸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볼 때 저 사람들 제 정신이 아니구나. 이미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국내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가운데서 이제는 복음을 바깥으로 돌려라 저는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개척했지만 이것은 자민족을 위한 교회개척이 아니고 타민족을 위한 교회를 개척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여기에 보내주신 겁니다.
제가 언제 여러분들보고 나가서 딴 교회 교인들 빼앗아 오십시오. 라고 말했습니까? 교회를 빨리 배가합시다. 세배로 확장합시다. 그런 말 하였습니까?
안 했습니다. 주님이 준비된 사람들을 보내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성장을 위해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사역을 원하시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성장이라는 말자체도 저는 쓰기 싫지만 주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숫자가 적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숫자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일을 하고 있잖아요. 저희들은 수평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거지 수직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부족하지만 한국교회에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한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의 욕망입니다
그기에 여러분들이 동참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결론의 말씀을 간단하게 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그랬습니다. 그 말은 한국말로 합당이지만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가치에 맞게끔 행동하라는 겁니다. 그 가치를 깊이 깨닫는 겁니다.
그 가치를 깊이 깨달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주님과 매일매일 대화를 해야 하는 겁니다. 매일매일 주님과 갚은 대화를 해야 하는 겁니다.
주여 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소중함이 깊이 깨닫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매일매일 그분과 피의 가치에 대해서 대화하는 겁니다. 주여 내가 주님의 피만 생각하면 내 가슴이 뭉클하게 하시고 주여 매일매일 주님의 십자가사건을 내가 감사드리며 찬양 드리며 또 그분의 피의 사건에 대한 가치를 고백하며 헌신하며 이러한 개인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이 약합니다. 달라고만 합니다. 주님은 너와 나와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먼저 가지자는 겁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분의 피의 사건을 이렇게 감격하며 존경하며 감사하며 주여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십니까? 내가 그런 감정을 자꾸 내 속에서 발전시켜야 됩니다.
매일매일 발전시켜야 됩니다. 찬양 속에서도 그래서 우리의 대부분의 찬양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는 그 소리입니다 주님에게 나에게 복 주세요라는 찬양은 없습니다. 주님을 높이는 찬양입니다 주님이 높아지는 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만 높이시면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부어주십니다
제일 먼저 중요한 게 그분과 나와의 관계성을 다시 한 번 재정립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면 내 삶의 목표가 점점 더 뚜렷해집니다. 주님의 피의 역사가 내 속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지면 나의 영의 눈이 밝아지면서 사람의 목표가 눈에 앵글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시각인 원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근시안적으로 보면서 융통성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말했잖아요. 나는 죽어나 사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한다.
내가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겁니다. 그분말씀이 내가 근시안적으로 보면 내가 죽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괴로운 이 세상을 내가 뭘 하려 사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원시안적으로 보니까 내가 살아 있으면 나를 통해서 은혜가 너희들에게 전해지고 너희들이 더 잘하게끔 하려면 내가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원시안적인 사고방식으로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너희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주님을 위해서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겁니다.
다시 한 번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면 이렇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것은 첫째 여기서 이렇게 깨달은 자들은 투기와 분쟁을 하지 않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한다고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는 시각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교단을 떠나서 어느 교단이나 우리가 섬기는 주는 예수그리스도한분입니다 그러니까 교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근시안적인 사람입니다. 이제는 교파 성을 없애야 합니다. 예수성만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성도 없애야 합니다.
국제화시대입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담대해지고 예언가적인 그러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도 감수하는 자 왜냐면 고난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주님이 너 더, 더 원시안적인 눈을 뜨라면서 사인을 주시는 것이 고난을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고난이 올 때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주님을 더 가까이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이 고난을 없애주세요 그러지 마세요.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저 깊이 깨닫게 해주세요. 주님의 뜻을 더 밝히 깨닫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매일 보좌의 기도를 하면서 영의 양식을 매일 이렇게 먹어야 합니다. 감격하면서 그러면 영의 양식이 점점 나에게 풍성하면서 영의 눈이 뜨지는 겁니다. 밝히 뜨지는 겁니다. 환한 영의 눈이 되어서 시각의 변화가 오게 되는 겁니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오게 되는 겁니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올 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Uv9b11_ZV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