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빌립보서1장3절-5절, 율법과 복음
빌립보서 3강. 율법과 복음(빌1:3-5) 2000년 말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일 주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고백하며 그분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가 남녀 간에 사랑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이전보다 더 매일매일 발전한다는 겁니다. 후퇴하면 안 됩니다. 매일매일 발전합니다. 오늘은 어제 보다 이 만큼 더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의 관심에 더는 내가 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찬양을 한번 불려 보겠습니다. 찬송가512장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를 불려 보겠습니다.
합니다. 하고는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찬양이 그렸습니다.
합니다. 하고는 예수님을 쫘악 바라보면서 내가 사랑하려면 주님의 사랑이 나에게 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보좌에서 그 사랑이 도와주는 것을 내가 받아서 먹는 겁니다. 예수의 사랑이 나에게 그것을 받으셔야 됩니다.
받지 않고 말로만 이전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말로 백번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나에게 흘려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을 쫘악 마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성품을 나에게 주세요. 그리고는 묵상하는 겁니다.
주님과 가만히 묵상하는 겁니다. 그 성품이 나에게 오도록 찬양을 부른다는 것은 마음 문을 여는 겁니다. 마음 문을 여는 원칙은 어디에나 다 적용이 됩니다. 교제할 때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에 말씀을 할 때도 똑같습니다.
사도바울의 다른 편지에도 똑같습니다. 빌립보교인들과 교제를 하시기 때문에 교제를 하실 때 이분은 항상 어떻게 시작하느냐면 이분들의 마음 문을 열도록 먼저 접근을 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아주 사도바울에게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그것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만드십니다. 이분의 편지 속에서 그래서 제가 편지 앞부분을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이유가 그렀습니다. 오늘말씀을 보시길 바랍니다.
빌립보서1장3절에서5절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 말씀인데 이 말씀 속에는 엄청난 깊은 사도바울의 마음이 잠겨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시간에 사도바울의 깊은 마음을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데로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 그분의 편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성령님이 가르쳐주셔서 쓰시는 편지입니다
그 편지를 보시면 항상 편지가 다섯 요소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다섯 요소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첫째는 뭐냐면 인사말이 한두 절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인사말을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누구라는 것을 이렇게 받는 분들이 누구라는 인사말이 있은 후에 그다음에 두 번째로 그분의 접근방법이 수신자의 호감을 사려고 하는 수신자의 마음을 여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서론을 전개합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을 칭찬해주고 감사표시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있다는 말로써 우선 기분 좋게 해주는 겁니다. 그분들의 모습 속에서 보이는 장점을 들어서 부각을 시켜줍니다.
이것이 꼭 사도바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항상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한 우리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항상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이게 성령 충만한 사람의 접근방법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마음을 오픈시켜주어야지만 그다음에 할 말을 할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렇게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감사를 표시할 때 마음의 문을 오픈합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지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방적인 내 이야기만 해서는 부부간에 대화가 안 됩니다 항상 남편이나 부인이나 여보 고마워 오늘 수고 했어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 몸에 베여야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방세계를 보세요. 입에 붙은 말이 무엇입니까? 땡큐(thank you)입니다. 땡큐(thank you) 다음에 그분들이 많이 쓰는 말이 익스큐즈 미(Excuse Me)그럽니다. 살다 보면 자꾸 부딪치잖아요. 감정을 건들리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아엠 쑈리(I'm sorry)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면 그 감정이 확 열리면서 마음 문을 엽니다. 그러니까 땡큐(thank you) 아엠 쑈리(I'm sorry)가 그분들의 삶의 전체를 지배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러면 마음 문이 열리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 문을 두 번째로 서론적으로 연 다음에 본론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소위 본론을 서술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원칙적인 성령님의 계획을 향해서 가르쳐주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이런, 이런 부분에서 성령님이 지금 말씀하신다. 그래야 들을 것 아닙니까? 본론을 말씀하십니다. 본론을 말씀하신 다음에 네 번째로 이렇게 본론이 이런고로 그다음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간청하는 것이 있다 요청하는 것이 있다고 명령 같은 말씀을 거기다가 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왜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말을 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논리적으로 요구한다. 그다음에 거기다가 강한 요구를 하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꼭 마지막에 결론을 말씀하시는데 그기에 꼭 따라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서론에서는 뭐가 따라 왔습니까?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다시 결론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이렇게. 이렇게 가르쳐주는 대로 살 때 은혜와 평강으로 살게 된다는 그러니까 목적은 다시 말하면 모든 걸 다 잊어버려도 우리 속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되느냐면 은혜의 삶과 평강의 삶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사도바울의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걸 보면 3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랬습니다.
너희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이분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로 간접적인 표현으로 쓰셨습니다. 사람이 감사라는 말을 들을 때 땡큐(thank-you)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산소를 공급받는 걸아십니까? 우리의 삶 속에는 너무나 내 마음을 쿡쿡 찔려주어서 숨이 가픈 겁니다. 숨이 가쁠 때마다 무엇을 먹는지 아십니까? 저 사람이 나에게 한마디 한 것이 나를 탁 쏘면 그때 탄산가스를 탁 마시는 겁니다. 그래서 가슴이 뛰거나 아니면 얼굴색이 변하거나 탄산가스를 주는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삶이 지옥 같습니다.
질식해버립니다. 우리가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아무리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도 탄산가스를 이웃에게 뱉어내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탄산가스를 집어넣어 주십니까?
항상 산소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도바울도 보세요. 이분들에게 산소를 공급하십니다. 숨을 쉬도록 산소를 공급받아야지만 이분이 힘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마음 문을 열수 있는 파워가 나오는 겁니다. 산소를 공급 받아야지만 힘을 받아가지고 산소가 공급되면 마음 문이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는 감사하는 말과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소를 집어넣어 주는 겁니다.
격려해주는 말과 칭찬해주는 말은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사도바울은 전수를 받아서 우리로 하여금 사용하기를 명령하십니다. 그렇지 않는 성품은 마귀의 성품입니다 입만 열면 탄산가스를 집어넣어주는 사람 오늘은 사도바울이 산소를 집어넣는 서론이 3절부터11절까지인데 이 서론을 제가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처음에 첫 산소를 집어넣는 3절과5절의 말씀만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분의 서론을 간단하게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에 산소집어 넣는 이야기를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내가 너희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다음에 7절과8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내가 너희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다시 말하면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깊이 사랑하는 줄 아느냐 이렇게 그분들에게 말해주는 겁니다.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9절 말씀을 보면 얼마나 정기적으로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주고 너희들을 생각해주는지 아느냐 사도바울이 지금 감옥에 이렇게 앉아 가지고 심한 감옥은 아닙니다. 소위 가택연금입니다 이렇게 앉아서 에바브로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을 받고는 혼자서 가만히 눈감고 주님과 대화를 하면서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빌립보교회교인들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었던 것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겁니다. 제가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언제 개척이 되었습니까? 주후 몇 년입니까? 주후50년 또는 51년 많아야 52년 이때입니다 왜냐면 2차 여행 때니까 2차 여행이 주후50년에서52년까지가 2차 여행입니다 제가 볼 때는 약51년 정도에 빌립보교회를 개척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감옥에서 편지 쓸 때가 몇 년입니까?
주후60년입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화와 사도바울과의 관계는 몇 년 동안 돈독한 관계입니까? 약9년10년에 관계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10년이니까 이제는 괜찮은 관계가 된 겁니다. 이제는 서로가 다 아는 사이가 된 겁니다. 그 10년 동안에 이분이 여기에 교회를 개척하고는 그다음에 이분이 그 밑으로 내려가서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 했을 때 이미 빌립보교회가 물질을 대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그리고 그 밑으로 내려가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을 때 물질을 데고 기도의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다시 안디옥에 돌아가서 3차 여행할 때도 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열심히 데었던 교회가 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나 고린도교회도 사도바울이 3차 여행을 할 때 물질을 데었습니다. 기도도 했는데 그런데 빌립보교회와 차이점이 뭐냐면 빌립보교회는 물질을 데고 기도를 하면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교인들이 사도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전혀 보지를 않고 그분의 장점만 보고 계속 뒤에서 밀었습니다.
그게 빌립보교회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와 고린도교회는 돈을 얼마주고 씹는 것을 동시에 하는 겁니다. 주고 씹고 주고 씹고 하는 그게 차이점입니다 저도 선교 비를 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저에게 도와주고는 뒤에서 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아하! 저분들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구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씹으면 씹는 동시에 헌금 낸 것은 하늘에 기록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바보인지 모르는 겁니다. 황 목사를 위해서 준 것이 아니고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주님 앞에 바친 건데 나는 하나의 도구인데 나를 씹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주님을 씹어야지 그러니까 절대로 그런 바보짓을 하지 마세요.
절대로 그 헌금을 내가 잘못 쓰면 내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그게 성숙한 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그것을 잘 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보면 항상 고맙게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겁니다. 어떻데 저렇게 괜찮은 사람들을 나한데 붙어주셨습니까 주님! 괜찮은 사람의 가치를 알려면 괜찮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어야 됩니다.
상대적으로 그래야지만 괜찮은 사람을 비교로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앉아가지고 과거를 들여다보는데 이분이 3차 여행 때 아주 탄산가스를 잡수신 경험이 있거든요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얼마 돈을 조금 줘놓고는 얼마나 사도바울을 씹는지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에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 제발 좀 나를 괴롭히지 말라 왜 탄산가스를 나에게 주느냐 그래서 이분이 본인이 괴로운 모습들을 그분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고린도전서9장 후서에도 9장과 11장23절부터17절에 이분이 자기 심정을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분들에게 우리가 다 아는 말씀들입니다 한번 사도바울이 얼마나 지금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받았던 고충들을 이분이 고린도교회에다가 그랬습니다. 이런 말을 아무리 그 사람들에게 해야 그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합니다. 씹는 사람들은 씹는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씹히는 사람이 말을 하면 변명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으라고 이분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고생했느냐를 제가 23절부터2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11장23절을 보세요.
그걸 하나하나 종목별로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냥 한쪽만 듣고 말지 말세요. 사도바울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냐면 1차2차3차 여행 절반까지 과정에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를 더 많이 하고 이분이 그러니까 간단 간단하게 짧은 기간 동안에 옥에도 갇혔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히기 전에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어떻게 죽을 뻔 하였나면 동료유대인들에게 39번씩 다섯 번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되어 일주일을 꼬박 어두움 속에서 지냈으며 또 여행할 때마다 강에 빠져 죽을 뻔도 했고 강도의 위험도 당했고 동족들이 쳐들어 와서 죽을 뻔 했고 심지어 이방사람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고 어떤 때는 큰 도시 시내에 들어가니까 큰 도시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고 어떤 때는 광야에 가니까 또 그렇고 바다에 가니까 바다의 위험도 있고 특히 거짓형제들 중에서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리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잠도 자지 못하고 배도 고프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떨리고 다했다는 겁니다. 그런 경험을 다 하고는 지금 감옥에서 가만히1차2차3차 여행을 생각하면서 이분이 빌립보교인들이 떠오르는 겁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리도 삶 속에서 그렸습니다. 고마웠던 사람이 떠오르는 겁니다. 다른 교회교인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이렇게 아주 선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 나와서 어려움이 있을 때 저를 도와주신 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 특별히 여기 앉아계시는 우리 홍 목사님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울 때를 생각할 때마다 홍 목사님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어째든 여기 편지를 보면 처음 1절을 보면 누구에게 썼는가? 우리가 다시 한 번 보세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그러니까 일반 교인들입니다 교인들 이름을 먼저 명시 했습니다.
보통 감독부터 또는 집사부터 높은 사람이름을 먼저 이야기하는데 여기서는 사도바울이 교인들 이름을 먼저 명시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렇게 보면서 아하! 이 교회는 지도자들도 괜찮았지만 특히 성도들이 괜찮았구나. 이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교회에 평신도들이 실제로 자기를 위로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위로 자가 되고 격려 자가 되고 하니까 위에 높은 분들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교회 안에 실세들이 평신도들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세력 없는 사람들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일 수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신세를 진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복음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끼쳤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복음의 빚진 자들로써 바울에게 저들이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분들이 가졌던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타주의라고 그럴까요.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인데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누가 어려울 때 내가 나가서 도움을 주고 주님께서 이런 사람이 되라고 빌립보교회다가 사도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2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왜 되어야 되느냐 첫째로 예를 드시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런 분이라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죽는 사람들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이분이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예화를 드는 겁니다. 애들아 나 바울도 여기에 속해있다는 겁니다. 나도 이런 사람이다 그다음에 애들아 내 제자인 디모데도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너희들이 잘 아는 편지를 들고 온 에바브로디도 그 사람도 이런 사람이다 누가 어려울 때 동무가 되어주고 격려해주고 힘을 부어주는 그러한 일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냐면 내가 알기로는 너희들이 이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겁니다. 왜냐면 2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멀었지만 그렇지만 다른 교회에서는 참으로 괜찮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작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찬송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매일매일 성숙되어야 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교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에게 어떤 사람들이냐면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가정 소중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저는 그렸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은 황 목사야! 내가 너한데 신실하지 않느냐 우리가 신실한 말을 한국말로 하면 의미가 조금 희미해지지만 신실이라는 말이 뭐냐면 페이트 볼(faith ful)이라는 말이 뭐냐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한국말로 그것을 어떻게 번역했느냐면 충성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강아지가 주인에게 충성하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충성 그것을 영어로는 페이스 볼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번 주인을 만나면 그 주인과 변함없이 사귀는 사람을 변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로 우리인간관계에서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성령 충만하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은 이 부분에서 주님을 닮아가면 저는 이런 사람을 가장 높이 평가를 합니다.
페이트 볼한 사람을 왜냐면 나는 주님에게 페이트 볼 하지 못합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이 변합니다. 어떤 때는 주님 사랑합니다.
그래놓고는 나중에 가서는 주님이 생각 할 수 없는 나쁜 짓을 합니다.
그래놓고는 또 주여 죄송합니다. 이게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게 우리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변수로 가득찬 겁니다. 우리는 변하는 피조물들입니다 그분은 내가 변하는데 이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막 흔들리는데 그러니까 우리처럼 막 변하는 사람들은 주여! 주님이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을 나에게 주세요. 우리인간관계에서도 가장 힘든 게 나는 잘해주는데 저 사람이 마음이 변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저 사람이 마음이 변해도 나는 걱정해주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말이야 내가 볼 때 대단히 신실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타 교인들을 보면 신실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사도바울도 조그만 상황이 변해지면 이 사람도 자기도 변해가지고 서로가 변하니까 이게 혼돈이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 잡아먹는 겁니다.
최소한 한쪽은 변하지 말아야 되잖아요. 최소한 한쪽은 변하더라도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은 딴 게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 특히 우리민족은 엄청나게 변하는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기회만 보고 내가 저 사람에게 이용가치가 있으면 가서 이용하고는 살짝 도망 가버립니다. 이용만하고 도망 가버립니다 줄 섰다가 이용가치가 없으면 도망 가버립니다 그러니까 온 세상이 다 그런 겁니다. 교회 안에도 그렇고 정치계도 마찬가지고 이 사회가 전부 이용만 하려고 그러니까 상대방을 이용하지만 또 상대방은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이게 복잡한 겁니다.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전부다 별난 사람들이 교회 와서 예수이름으로 변하지 않는 예수이름으로 다 모여서 서로 서로 변하는 게임을 하는 겁니다. 이러니까 어지러운 겁니다. 주님이 볼 때 너희들이 그래가지고는 내 일을 못한다. 소위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 주님이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빌립보교회 사람들은 특히 평신도들은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네가 어려울 때 봐라 뒤에서 변하지 않고 밀어주는 사람들이 누구냐 너는 변했는데 빌립보교안둘이 우리인간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외롭습니다. 왜냐면 이런 사회 속에서 정말 변하지 않는 친구가 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 빼놓고 그런 사람이 한 분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한분만 있으면 나와의 관계에서 그런 사람에게 내 것을 다 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 보여주지만 내 속도 다 보여주는 겁니다. 그 런 사람이 있나 없나를 어떻게 하면 정답이지 아십니까? 제가 조금 있으면 60가까이 됩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 머리 휜 사람 말 가끔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사람 있습니까? 내가 지금 밥 끼니를 굶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 돈10만원이 당장 필요로 합니다. 내가 지금 마음 놓고 누구에게 가서 빌릴 수 있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10만원이 큰돈도 아닌데 어디 가서 말하려면 저사람 아니야 저사람 안 돼 알고 보면 그런 사람주위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것 경험하십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나와 신실한 관계에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드세요. 그런 사람을 만들려면 내가 이기주의로 그런 사람과 상대하면 안 됩니다 내가 준 것만큼 그 사람이 그걸 기억합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주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그러면 그 사람과 나와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다 이기주의입니다 이용하기 위해서 조건부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은 그래서 주님은 나의 친구라 그러지 않습니까? 주님은 세상에서 이런 친구들을 나 닮은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사귀라는 겁니다.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내가 이런 사란이 되는 것이고 내 주위에 형제자매가 이런 사람이 되도록 권고해주는 겁니다. 주님께서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사람들이 이렇게 신실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래서 이분이 말씀 속에서도 한마디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주님 이런 사람들을 나에게 붙어 주서서 감사합니다. 저도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주여 우리교회 무리 속에 안디옥사역 속에 이런 사람들을 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나의 개인적인 어떤 감사로만 끝나지 않고 이 모임들을 주님이 시용하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황 목사의 뜻을 이루지 마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이것이 제 기도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 감사의 내용을 보시면 이분이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하는 대상을 주신 것을 감사하라 이방나라를 향해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같은 동역 자를 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 10년 동안 사도바울의 동역 자 역할을 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내가 너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10년 동안 너희들이 나에게 한 것은 말 할 것도 없거나와 복음을 위해서 크게 보는 겁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가 동역 자가된 겁니다.
이걸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는 겁니다. 우리끼리 또 나와 여러분들과의 삶과 이것이 맞아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도바울의 사역은 이런 선교를 향한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방을 향해서 전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편지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 똑같은 소리입니다 이방을 향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여길 보면 말씀이 조금 깊어집니다. 4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보면 내가 간구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간구라는 말은 기도라는 말과 다릅니다. 원어를 보면 그래서 우리가 원어를 공부하는 겁니다. 원어로 기도라는 말은 프로슈카스라 그럽니다. 그런데 여기서 쓰는 말은 간구를 뭐라고 그러느냐면 데에시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기도는 그냥 개인적인 일방적인 기도를 할 때는 프로슈카스라고 쓰는데 간구라는 말은 데에시스라는 말은 뭘 의미하느냐면 헬라어는 중국말과 비슷해서 말 한 마디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뭐냐면 어디에 뭐가 부족해서 결여되어가지고 그 결여된 것을 채워주기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을 말할 때 기도가 데에시스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데에시스라는 말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는 것 이것을 데에시스라는 겁니다. 이때 한국말로 간구한다는 말로 써놓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중보기도를 부탁하느냐면 빌립보교회가 이렇게 칭찬을 받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성령님의 눈으로 볼 때 그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걸 놓고 내가 지금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주님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기도한다는 겁니다. 첫째 문제가 무엇입니까?
2장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교인들이 보니까 하나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2장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거기 보면 겸손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자기가 남보다 이렇게 서로가 비교하면서 남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때 이런 비교의식을 가지고 그 안에 보면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그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내가 주님 앞에 간구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주여! 주님이 나에게 주신 주님의 백성들을 이런 문제들을 놓고 바울처럼 열심히 주님 앞에 간구를 해야 되잖습니까?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함을 주님 용서해주세요 저는 바울의 편지를 보면서 항상 주님에게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바울처럼 정말 주님의 심정으로 이렇게 간구하는 사람 되게 해주세요. 이런 말씀을 주님께 기도로 자주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간구라는 내용 속에서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그리고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분쟁하고 이렇게 하면 사도바울이 볼 때 너희들이 나에게 기도도 해주고 물질도 보내지만 내 속에 있는 마음에 기쁨이 실제로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너희들 안에 내용을 들여다보면 안에 부글부글 끊는 게 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무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다른 교회에 비하면 훨씬 괜찮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그러니까 완전히 괜찮은 게 아니고 그 속에 아직도 그런 게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런걸 보시면 이분이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도 사도바울이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릇이 큰 겁니다. 그런 문제가 여기저기에 보이지만 이분마음속에 기쁨으로 왜냐면 다른 교회와 비교하여볼 때 그래도 괜찮은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빌립보서 하면 기쁨의 편지라 그러지만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왜 이분이 기뻤을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분들이 신실했기 때문에 기쁜 겁니다.
그 안에서 관계성에서 서로가 비걱비걱하는 것은 있겠지만 왜냐면 사람이기 때문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서로가 자라나는 겁니다.
비걱비걱해야지만 자라납니다. 전혀 문제가 없으면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을 성품을 보니까 비걱비걱하지만 한분 한분을 보고 그 안에 전체 흐름을 보면 이 사람들은 신실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아하! 감사합니다.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나오는 기쁨이 있는 겁니다. 그분들이 소중한 겁니다. 소중하니까 아끼고 사랑하니까 그분들에게 더 성숙하라고 간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이분이 말씀하시는 게 마지막에 첫날부터 마지막지금까지 복음으로 교제한다는 겁니다.
성경에는 교제라는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말은 교제로 영어로는 펠로쉽(fellowship)이라합니다 너희들이 이런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나와 관계에서 보면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이방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로 묽 임을 받은 동역 자들이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너희와 나는 복음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펠로쉽(fellowship)이라는 말이 나와 여러분들은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코이노니아(koinonia) 왜 교제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혼자서 살수 없기 때문에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교제를 요구하십니다.
교제를 요구하는 목적 중에 큰 목적하나가 뭐냐면 교제하면서 산소를 공급받기를 원하십니다. 교제하면서 탄산가스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혼자 가만히 있으면 탄산가스가 옵니다. 가만히 앉아서 걱정하면서 있으면 교제의 목적은 산소공급입니다 제가 산소공급을 격려와 칭찬과 소망을 집어넣어 주는 겁니다. 감사하다는 말 이것이 산소를 집어넣어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항상 그럽니다. 성령님의 교제하심과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성령님이 매일 나와 동거하시면서 매일 나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심을 이런 말입니다
교제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격적인 주고받음 입니다 인격적인 주고받음 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매일 나와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래서 그분에게 산소를 공급받아야 됩니다. 쉼을 공급받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교제가 필요한 겁니다. 사도바울도 이분들과 함께 이런 분분에서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교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겁니다, 여기 서있는 황 목사도 여러분들이 나와 복음의 동역 자들이고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그냥 서로가 교제하는 겁니다. 펠로쉽(fellowship)입니다 제가 코이노니아(koinonia)에 대해서 정리를 간단하게 다시 내려 드리겠습니다.
코이노니아(koinonia)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그냥 일방적인 교제입니다
목적 없이 서로가 그냥 교제하는 겁니다. 그것이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교제가 우리에게 더 중요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교제는 한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해서 하는 행위입니다 그 방법은 지금 제가 말씀드렸지만 시간을 서로가 나누는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바쁘지만 내가 참작해주는 겁니다. 물질로 코이노니아(koinonia) 물질로 서로 힘주는 일을 하는 겁니다. 기도로 그럽니다. 말씀공부 하는 걸로 코이노니아(koinonia)하는 겁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렇게 했습니다. 예배를 같이 보는 것도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선교여행을 같이 가는 것도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어제 같이 몽골리안 예배에 얼굴만 잠깐 비춰도 그것은 힘주는 일로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이런 코이노니아(koinonia)가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부분에서다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 코이노니아(koinonia)는 목적을 하나로 가지고 하는 겁니다. 목적 없이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코이노니아(koinonia)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 아브라함과의 계약입니다 또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니 거제서야 끝이 오리라 하신 이방을 향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전해주는 일을 하는 우리가 순종하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서로가 힘을 받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힘 빼는 일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가 코이노니아(koinonia), 코이노니아(koinonia)하면서 서로가 힘을 집어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목적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 제가 할 수 없지만 나는 힘주는 일을 한 코너에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럴 때 왜요! 주님! 그래야지만 이 공동체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주님 저를 이렇게 사용하십시오. 라고 기도할 때 라고 비전을 가질 때 여러분들은 은밀한 의미에서 선교사들입니다
보내는 선교사들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목적이 깨끗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빌립보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말씀이 2장1절에 나오는 겁니다. 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선교를 하는 빌립보교인들이여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 말은 산소를 집어넣어주어서 그런 말입니다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산소를 집어넣으면 나(바울이) 기쁨이 충만해지겠다. 왜 기뻐집니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방사역이 더 발전되기 때문에 기쁜 겁니다. 이분은 개인적인 자기욕심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쁜 뜻을 이룰 수 있는 파워를 가지게 되니까 예들아 너희들은 이렇게 산소를 집어넣는 일에 전력을 다해라 우리 모두가 다 사도바울에게 주신 이 사명이 우리에게 떨어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산소집어 넣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시간을 들어서 산소 집어넣는 일을 하시고 물질로 기도로 말 한마디로 얼굴 한번 씨익 웃어주므로 아엠쏘리 함으로 감사합니다. 함으로 그러면서 산소 집어넣어주는 일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Fu_iQKO_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