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강. 빌립보서1장1절-2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변명섭 2022. 1. 20. 08:55

빌립보서 2강.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빌1:1-2) 2000년 말씀
빌립보서강해 두 번째 시간입니다 빌립보서1장1절2절 말씀입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은 제가 이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여러분들과 나누기를 바랍니다. 제 말씀을 오늘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그분의 편지가 14개 정도가 있는데 신약의 27권 중에 14권이 이분이 쓰신 편지인데 이 편지를 쓰실 때마다 특별한 형식이 있었습니다. 그 형식의 특징 중에 첫째 특징이 뭐냐면 꼭 자기신분을 밝혔습니다. 또 자기와 같이 안부를 전하는 분의 신분을 꼭 밝혔습니다. 
그 신분을 이분이 빌립보에서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밝혔냐면 그리스도예수의 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분의 편지에서는 다른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어떻게 했느냐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종이라는 표현은 빌립보에서만 특별히 쓰시는 표현입니다. 로마서나 고린도전서나 또는 갈라디아서나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이런 곳에서는 이분이 그리스도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아파스(apostle)라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불리 움을 받은 자라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디도서에는 이분이 뭐라고 그랬냐면 종이요 사도인 이렇게 자기 제자에게는 특별히 본인의 위치를 밝혔습니다. 
종이요 사도인 이렇게 두 번을 디도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에게는 개인적으로 쓸 때는 뭐라고 그랬냐면 갇힌 자된 바울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편지를 쓸 때 이렇게 소위 특징들을 가지고 쓰시면 좋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서는 이분이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렇게 이분이 주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로드(Lord)라는 말을 예수님을 그래서 상대적으로 종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자신 자신의 표현을 이렇게 하는데 이분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신 다음에 꼭 결론적으로 따라오는 말을 이어왔습니다. 꼭 말씀 속에서 그것이 뭐냐면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편지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고 패턴입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어떤 때는 넘칠지어다. 그렇게 사도바울의 신학은 뭐냐면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 다음에 그다음에 자기제자들이나 편지를 받는 교인들에게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결론은 뭐냐면 은혜와 평강으로 넘친다는 나머지 모든 내용들은 이 말씀을 열매 맺기 위해서 주시는 내용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편지 마지막에는 항상 또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는 은혜가 있을지어다. 이렇게 결론을 또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처음에 하시고는 결론은 은혜와 평강으로 너희들이 넘쳐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성교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삶 속에서 뭐가 넘쳐나야 합니까? 은혜와 평강이  항상 넘쳐나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분이 자기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는 은혜와 평강에다가 한 마디말씀을 거기다가 부연했습니다. 디모데에게 하는 편지는 사도바울의 사역에 제일 마지막 때 이분이 순교 전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상당히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되어 있을 때입니다 
주후65년에 3차여행이 끝나고 또 감옥생활도 60년에서62년에 하셨잖아요.
그리고는 이분이 4차 여행을 하시면서 디모데전서를 쓰셨습니다. 
65년에 그때 이분은 영적으로 많이 성숙되어 있었을 때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시는 편지가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넘칠지어다. 이렇게 긍휼을 거기다가 집어넣었습니다. 본인이 주님을 섬기면서 긍휼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는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바울의 제일 마지막편지입니다 후서는 제2차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쓰신 편지인데 그때 이분도 똑같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넘칠지어다. 
흘려가는 패턴이 있습니다. 이분이 이만큼 긍휼을 자기가 맛보며 살고 있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체험하고 영의로 체험한 후에 자기제자에게 너도 이것을 가져라 그러니까 긍휼은 우리가 복 있는 자의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로 오는 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것이요 우리는 매일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되는 사람입니다 긍휼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다 불쌍하게 여깁니다. 
이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저 분이 철이 없어서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위에 올라 있어야만 그렇게 보이잖아요. 
내가 어느 정도 레벨이 높아야지만 저 사람이 철없이 노는 걸 보고 주님! 저분이 몰라서 저래요 이런 마음이 들고 그냥 껴안아 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닙니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야 되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그 단계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긍휼을 많이 맛본 분은 뭐라고 그러느냐면 용서하기를 좋아하시고 그리고 항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들어오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용납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옵니다. 예수 안에서 그러니까 율법주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적인 사람은 긍휼의 그 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사도바울의 직분에 대해서 우선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서 이 말씀을 제가 정돈해 나가겠습니다. 우선 이분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자기가 종이라고 그랬잖아요. 종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졸업식 때 영어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못 알아들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종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간단하게 정돈을 해드리겠습니다. 
종이라는 말은 영어로 스레브(slave)그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서어번트 이 단어는 어디서 나온 단어냐면 당시 유대사회가 봉건주의사회입니다 그래서 봉건주의사회라는 것은 주인이 있고 그 주인을 마스트(master)라 그럽니다. 또는 로드(Lord)라 그럽니다, 이렇게 소위 지주가 있고 그다음에 노예들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두 계층의 사회가 봉건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성령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 사회 모든 상황을 적용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면 영어성경에서는 더 로드(the Lord)라 그랬습니다. L를 대문자L를 썼습니다. 그래서 유대지방에 있는 봉건주의사회에서 로드가 진짜 한분밖에 없는 대문자L로 했습니다. 더 로드(the Lord)그래서 한국말로 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여 또는 주님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중국에 가면 중국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씁니다. 주와! 주와! 우리는 주님! 주님! 하는데 이 사람들은 주와! 그러면 아멘 하는 데 아멘소리가 진동을 합니다. 한사람이 주와! 그러면 왜냐면 이분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주와! 할 때는 주님이 내 생명까지도 컨트롤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들키면 감옥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주와!라는 개념은 그분들에게는 몸에 와서 쭈빗 닿는 느낌입니다. 이 주와가 이렇게 구약에서는 더 로드(the Lord)해놓고는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선지자들이나 또는 제사장들이나 이런 분들을 주의 종인 제가 이렇게 종이란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유대인들 다 종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종이라는 말로 자기네가 표현을 했습니다. 신약에 들어와 가지고는 그 로드(Lord)가 예수님으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더 로드(the Lord)가 신약에 와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들을 주의 종이라 부르잖습니까?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 종을 두 가지 종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15장12절부터18절까지 보면 봉건사회조직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이 종이 되면 그 종은 주인에게서 6년 동안 종노릇하다가 7년째 되는 때는 그 종을 자유롭게 만드는 겁니다. 그것을 안식년이라 그럽니다. 7년째가 안식년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그 종을 보낼 때는 농산물과 또는 가축과 포도주까지 해서 넉넉하게 주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종은 나는 주인집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주인의 식구들이 더 좋습니다. 
나는 안 가겠습니다. 하는 종이 있습니다. 그런 종을 영원한 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6년짜리 종이 아니고 영원한 종입니다 그래서 귀를 잡고는 대문문설주에다가 귀를 대고는 송곳을 귀를 뚫는 겁니다. 그때부터 너는 영원한 나의 종이라는 겁니다. 제가 졸업생에게 너는 어떤 종이냐? 송곳에 찔린 종이냐? 아니면 6년짜리 종이냐? 송곳에 찔린 종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주여! 주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리고 주님의 식구들도 나를 사랑하니까 나는 당신 집에 있겠습니다. 안수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어떤 종입니까? 귀가 뚫린 종들입니다 귀가 뚫렸기 때문에 항상 귀가 뚫렸으니까 주인집 말을 계속 들어야 됩니다. 바깥이야기를 듣지 말고 그래서 제목을 제가 귀 뚫린 종이라는 제목으로 졸업식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분들은 무슨 소린가 했지만 오늘 제가 간단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귀 뚫린 종은 여기 서 있는 나만이 아니고 우리교회교인들은 다 귀 뚫린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6년짜리 종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크리스천들은 주님! 주여! 이럽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두 가지 대별해서 그분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너가 귀가 뚫린 놈이냐? 너가 6년짜리 종이냐?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귀 뚫린 종들이 되기를 원하죠. 이렇게 귀 뚫린 종들을 우리는 헌신된 자들 충성된 자들 슬기로운 자들 성경에는 많은 표현들을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자들 부지런한 자들 남은 자들 제자들 많은 표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주인과의 삶이 하나로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인의 마음에 열람된 사람입니다 매일 주인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귀가 뚫려있기 때문에 어디가도 저 사람들은 귀 뚫린 사람이구나. 근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들은 목사님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근방 저 사람은 귀 뚫린 사란이라는 걸 근방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유니폼만 입어서는 안 되잖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얼굴 속에서 우리의 입속에서 귀 뚫린 사람의 모습이 보여야 되고 냄새가 나야 되고 그런 인상이 우리 속에서 흘려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종의 특권이 있습니다. 종은 첫째 귀 뚫린 종들은 평생 의식주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인이 다 해줍니다. 육신의 문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걸 걱정을 하니까 주인이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겁니다. 마음의 걱정 또는 인간관계의 걱정도 주인에게 알려주면 주인이 해결해줍니다. 혼인부분도 주인이 해결해줍니다. 또한 종의 자녀들까지도 주인이 다 해결해 줍니다. 왜냐면 자기 자산이기 때문에 종의 자녀들 중에 병이 나면 주인이 손을 봅니다. 그러니까 종이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이 다 해주는 겁니다. 그게 종의 마음입니다 주인은 종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인자신을 위해서 종이 건강해야 됩니다. 종이 안전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자기 자산에 손실이 갑니다.
종들이 다 병나 있으면 주인은 손해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종의 특권입니다
다 주인에게 맡겨버리는 겁니다. 주인에게 맡겨버리는 연습을 우리가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주인에게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맡기는 겁니다. 그런데 종의 의무가 있습니다. 종노릇하면서 첫째 의무는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주인의 뜻에 내 뜻을 열람시켜야 됩니다.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매일 종이 주인과 대화할 때 주인이시여! 주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가르쳐주세요. 내가 그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종은 대단히 예뻐합니다. 주인이 지시만 하면 예스 하고 그냥 순종하는 그런 종은 얼마나 예쁩니까? 음식이 저기 있어도 따로 먹다가 그러니까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종은 최선을 다하는 종이 이쁜 종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아주 합당한 종입니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사도바울이 나와 디모데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면서 그 속에는 뭐가 깔려 있느냐면 빌립보교인들아 빌립보에 있는 신실한 감독들아 집사들아 성도들아 너희들아 우리와 같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달라 이렇게 부탁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이 특히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종이라는 말을 쓴 겁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이 가장 사랑하고 기대가 많고 동역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첫날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다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종이다 너희들도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달라 그 의식을 가지라는 겁니다. 
아버지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너희 뜻을 거기다가 부합시키라는 겁니다. 
이것이 종 된 자의 사명입니다 이렇게 뜻에 부합이 되면 그러면 내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은혜라는 말과 평강이라는 말은 붙은 말입니다 같이 따라다니는 말입니다 그 말은 따로 있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교회가 은혜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남용합니다. 전 세계에서 그 말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은혜 받았다 은혜 받으러 가자 은혜 받으러 가자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하여튼 은혜 받으러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기독교는 은혜라는 단어에 대한 가치가 희석된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특히 우리보다 선진국은 은혜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시간부터 은혜라는 말을 가지고 깊이 보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냥 설교로만 듣지 마시고 은혜라는 말이 무엇인가? 사도바울이 은혜라고 할 때 그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느냐?
그것을 우리가 깊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하는 이 말씀을 잘 정리하여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으면 이게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다 같이 준비합시다. 은혜라는 말은 원어로는 뭐냐면 카리스(karis)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카리스마(karisma)가 있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어원이 카리스(karis)입니다. 이 말은 영어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그레이스(grace)이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레이스(grace)라는 말을 사전을 보면 프리기프트(free gift)다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무료선물이다 
이것이 그레이스(grace)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프리기프트(free gift)라는 것은 조건 없이 주는 것이 프리기프트(free gift)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건 없이 주는 것 저쪽에서 나에게 어떤 보답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무조건 주는 것이 은혜 프리기프트(free gift)입니다 왜 프리기프트(free gift)를 주는지 아십니까? 왜 하나님이 프리(free)로 주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도 프리(free)로 많이 주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왜 프리(free)로 주느냐면 너무나,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내 재산을 다 팔아도 이것과 바꿀 수 없이 비싸기 때문에 하나님이 프리(free)로 주는 겁니다.
우리주변에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이 프리(free)를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무엇입니까?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기입니다 공기를 돈을 주고 삽니까? 무료입니다 그다음에 물입니다 우리 몸에70%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물입니다 물도 무료로 주고 있습니다. 이게 돈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햇볕입니다. 
공기, 물, 햇볕이 없으면 만물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성장할 수 가없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복음을 무료로 주셨습니다. 에베소서2장8절9절에 이것은 무료선물이니 너희들이 자랑치 못하게 하리라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이 무료선물을 공해로 만드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무료선물을 파괴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의 큰 징조입니다 지금 어떻게 파괴하고 있습니까? 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공해로 만들고 있습니다. 공기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료선물을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다음에 햇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소중한 복음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유신학이 들어와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피 맞습니다. 그렇지만 타 종교에도 그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꼭 기독교만 아니라도 구원이 가능합니다. 라고 말하는 소위 종교다원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지금 전 세계기독교 안에 오염되고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 때의 하나의 징조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이 은혜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빌립보서에서 특히 그래서 이 부분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그럽니다. 이분은 복음을 깊이 깨닫고 나서 아하! 이것은 은혜구나 우리도 다 깨닫지 않습니까? 
이것이 은혜라는 이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공기를 오염시키듯이 햇볕을 오염시키듯이 물을 오염시키듯이 그기에 대한 감각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있지만 구원받았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감격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걸 그냥 공짜로 그냥 받아서 길가다가 하나 줍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이 감격이 왜 없느냐면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는 것도 이 감격 없이 하니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배로운 이 복음의 은혜 항상 감사가 넘쳐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감격이 없는 사람들 무료로 받았으니까 이분이 이렇게 되어서 복음의 감격을 받은 다음에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그 감격 이것이 엄청나게 강하게 있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나 여러분들은 그런데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그레이스(grace)를 매일 매일 삶 속에서 주시는 겁니다. 
이 그레이스(grace)를 소위 우리 잡음 죄가 매일 매일 짓는 죄가 무료로, 무료로 씻어 심을 받게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그레이스(grace)를 깊이 찾으시는 겁니다. 이 은혜를 그래서 매일매일 죄의 용서에 대한 감격을 감사를 매일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그와 동시에 같이 느끼시고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 느끼는 겁니다. 그것이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냥 가서 예배한번보고 손뼉한번치고 이렇게 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매일 가지고 그분과의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이렇게 지금 요구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이 은혜가 이게 내 노력에 의해서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 앞에 이렇게 순종하고 복종을 하면 예수님이 나에게 그 은혜를 부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원천이 저 위에서부터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이분들에게 말하잖아요. 이 은혜를 나만 간직하지 말고 본인이 그 은혜를 끼친 다음에 그 은혜를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은 남에게 나누어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에 나오는 전체가 그 이야기입니다 빌립보서2장은 나만 받은 은혜를 나만 간직하지 않고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예를 예수님부터시작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첫째는 그 예가 누구냐면 예수그리스도였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예수그리스도는 본체 하나님이라면서 쫘악 나오는 겁니다. 두 번째 사도바울이 나도 그런 사람이다 2장을 더 깊숙이 읽어보세요. 그리고는 사도바울이 나도 디모데도 그랬다 디모데뿐이냐 너희들 대표로 나에게 선물을 들고 온 그 형제가 누구냐 에바브로디도 이 사람도 그 받은 은혜를 나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달려왔고 그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기 위해서 이렇게 온 사람이다 소위 이타주의사람들 이기주의가 아니고 은혜를 받아 놓으면 이 은혜가 이타주의로 흘려나가야지만 그게 진정한 의미로 은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풍성히 받아라. 그랬습니다. 왜냐면 이 은혜의 잔이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남에게 나누어줄 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나누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를 나누어 주려면 이 은혜는 용서의 은혜 자비의 은혜 사랑하고 남을 이해해주고 이런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내가 남에게 나누어주려면 제일먼저 어떻게 해야 하니까? 
내가 그것을 받아야 됩니다. 받는데 찰랑찰랑 받으면 나누어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꽉 차게 넘치게 받아야 됩니다. 넘쳐야만 그것이 흘려나가는 겁니다. 자동적으로 흘려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어놓으면 더 새로운 것이 나오고 주면 더 새로운 것이 나오고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렇게 내 잔이 넘치도록 계속해서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도 그냥 주여 이렇게 주세요. 이런 기도가 아닙니다.
나의 영과 혼을 보좌로 끌고 올라가는 기도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가 계신 그곳을 하나님아버지가 계신 그 보좌로 내 영을 혼을 끌려 올려서 보좌가까이서 그분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임하시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에게 흘려 내리고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가난한 마음들 미워하는 마음들 질투하는 마음들 경쟁하는 마음들 이런 마음들이 서서히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마음들이 온유 하는 마음 절제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 오래 참는 마음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과 내 속에 있는 이 모든 더러운 마음들을 바꾸는 연습 그것이 매일매일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래서 주여 그러면 나의 영과 혼이 쫘악 보좌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가지고는 주님! 주님의 성품을 나에게 부어주세요 오래 참으시는 성품을 그리고 그 성품이 나에게 막 흘려들어오는 것을 내가 막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질투하는 마음이 나가는 것을 불평하는 마음이 나가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와 주와 하나가 되어 가지고 그 교제를 하는 그러면 매일매일 주님의 성품이 나를 채워줍니다 나도 모르게 그러다가 한 달이 되면 사람들이 너 왜 이렇게 얼굴이 더 예뻐졌느냐 그러니까 주님이 그랬잖아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면 우선 마음이 가난해야지만 주님의 것으로 채울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성품을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뭐냐면 겸손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니까 주님 저는 이 속에 주님이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지저분하는 것만 잔뜩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봐주세요. 주님의 것으로 가난한 겁니다. 
주님 이놈들을 봐주시고 주님 주님의 성품을 바꾸어 주세요. 마음이 가난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으로 천천히 한꺼번에 안 됩니다. 
절대로 한꺼번에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성화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원칙을 지금 말하는 겁니다. 이 원칙을 잊지 마세요. 이런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모습인지 아세요.
성경말씀은 많이 압니다. 예배도 새벽예배부터시작해서 수요 철야까지 잘 드립니다. 이걸 체험하지 못하면 첫째 어떤 사람이냐면 자기고집이 강합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기가 세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세어집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고는 예수 안에서 그 사람이 완악해 집니다. 예수 안에서 교만해 집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힘든 사람들입니다 
망치로 한번 때려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백성들이 교회 안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런 강한 사람들은 결론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변해 가느냐면 조직체에 평화를 화평을 깨뜨려 버립니다. 왜냐면 자기가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그룹을 만들고 나중에 그것을 깨뜨려버립니다
분리 자가 되고 파괴자가 되고 이렇게 하다보면 분리 자 파괴자 마귀 디아볼로스(Diabolos)마귀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면서 그래서 특히 우리교회는 한국교회는 분리 자가 얼마나 많은지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대한 예수교장로회 이름이 150개가 된다고 합니다. 이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면 남을 정죄하는데 상당히 바빠집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고 자비를 보이지 못하고 오래 참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고 도전적이고 율법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웃을 배려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전수받는 겁니다. 그런데 은혜 받는 사람들이 거꾸로 마귀성품을 전수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이런 사람들은 깊은 보좌의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렸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는 자는 예수님의 성품을 전수 받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어떻게 삶 속에서 나타나느냐면 이 세상은 변함이 없이 똑같습니다. 이 세상의 환경은 똑 같습니다. 이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내가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겁니다. 내 속에 풍요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 세상의 풍요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조리도 그대로 있습니다. 
악한 자가 잘 되는 것도 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한 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소외당하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예수이름으로 나를 이용하는 것도 내가 보고 있고 나를 헤치는 것도 내가 보고 있고 또 어떤 때는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도 내가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이 모든 부조리들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부터는 이런 모든 것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사도바울은 이것을 체험하고 보는 눈에 각도를 바꾼 것 밖에 없습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 눈을 감으면 그 문제들이 희미하게 보이면서 하늘의 보좌가 보이는 겁니다. 사도바울에게 그리고는 사도바울 속에서 하늘의 평강이 막 용솟음쳐오는 겁니다. 그 모든 문제들은 이분이 복음 전하러 나가면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 교회 안에서 교계 안에서 자기를 핍박하고 자기를 위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고 또 여러 가지로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그 분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그분의 편지를 보면 그게 다 나옵니다. 제가 결론과 비슷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은혜를 이렇게 체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보좌의 기도를 우리가 주님 앞에 하는 사람들은 눈에 각도가 세 가지의 각도로 사물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3차원의 세계가 아니고 4차원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가 4차원의 세계입니다 4차원의 세계 안에서 눈에 각도가 3가지 각도로 나타납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두 가지 각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의 눈의 각도가 있습니다. 사물을 육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은 그다음에 혼의 눈으로 그 사물을 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보는 것을 혼의 눈으로 봅니다. 그래서 훈련된 사람들은 문제 안에서도 잘 참으라. 
그것은 사회가 이래서 그런 거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도 끝 까지 볼 수 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보고 혼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혼의 지식의 눈으로 혼의 감정의 눈으로 혼의 윤리의 눈으로 또는 의지의 눈으로 이런 눈들이 혼의 눈들입니다 윤리 도덕 우리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의 눈이 있는데도 그 영의 눈을 가지고서 이런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육의 눈과 혼의 눈으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들은 육의 눈도 있고 혼의 눈도 있지만 너 네들은 영의 눈이 있는지 모르느냐 영의 눈을 깊이 떠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제 눈이 한국사람 치고는 작습니다. 그런데 제 눈이 몇 개가 있습니까? 최소한 3각도가 있습니다. 문제를 딱 봅니다. 육의 눈으로 보면서 혼의 눈으로 동시에 같이 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그것을 영의 눈으로 또 보는 겁니다. 그런데 눈이라는 것은 우리가 카메라를 봐도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주님에게 간구할 것이 영의 눈을 가지고서 영의 문이 상황에 따라서 어떤 때는 영의 눈이 현미경처럼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미경의 눈으로 아주 근거리에서 그것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육의 눈도 마찬가지고 혼의 눈도 마찬가지고 영의 눈도 마찬지로 아주 세포도 볼 수 있는 현미경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현미경 눈으로 보다가 줌렌즈로 망원경으로 보는 겁니다.
망원경으로 쫘악 올려서 보면 우주가 쫘악 보이는 겁니다. 아주 작은 세포를 보다가 쫘악 올려가지고 우주를 쫘악 보는 겁니다. 동시에 그것뿐입니까? 
망원경으로 보다가 근거리로 또 줌 렌즈를 약간 조정을 하는 겁니다.
아메바(Amoeba)를 보다가 초상화를 찍는 것처럼 가까이 보는 그런 줌 렌즈가 또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중거리를 보는 눈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중거리는 무엇입니까? 경치를 찍는 겁니다. 서울을 한번 쫘악 보는 겁니다.
카메라가 줌 렌즈가 있고 거리를 재는 줌이 있고 그다음에 옆으로 보는 와이드앵글이라고 파노라마(panorama) 눈을 좁게 볼 수도 있지만 좁게 보다가도 와이드앵글을 쫘악 벌려놓으면 쫘악 다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사람들은 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예를 들어서 공자 같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혼의 부분까지만 열심히 많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깊이보고 넓이보고 높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공자 왈 명자 왈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겁니다. 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차원을 떠나서 영의 눈으로 그것을 쫘악 봐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미경으로 볼 줄 알고 망원경으로도 볼 줄 아는 그런 윤활유를 가지라고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조그만 천막에 오셔서 근거리 눈을 가지고서 우리를 이렇게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그것 보다 더 깊이 아메바(Amoeba)속에 내 속에 있는 내 속 깊이까지도 이렇게 보고 계십니다. 그럴 때는 아주 세밀한 돋보기를 가지고 보고 계시는 겁니다. 돋보기도 필요가 없겠지만 이와 동시에 이분은 지금 이 순간에 한국전체에서 예배 보는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동시에 지금 보고 계십니다. 또 듣고 계십니다. 그것뿐입니까? 
전 세계70억 인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한눈으로 딱 보고 계십니다.
그것뿐입니까? 우주만물을 지금 한눈으로 딱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융통성이 이것이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이런 능력까지도 가지는 겁니다. 사물을 볼 때 단편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직도 한참 가야 되는 사람입니다. 사물을 볼 때 이 속에 들어 있는 다 차원적인 그쪽으로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다 차원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보좌의 기도를 보좌 가까이 가서 주님과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면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임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윤활유가 내 눈을 윤활을 시킵니다. 
그래서 내 눈이 점점 줌 렌즈도 되고 파노라마렌즈도 되고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시각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러한 시각의 소유자로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사도바울 같이 지금 나에게 자녀문제가 있습니다. 건강문제가 있습니다. 물질문제가 있습니다. 사업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볼 겁니다. 어떤 때는 현미경처럼 보고 망원경처럼 줌 렌즈로 넓혀서 어떤 때는 망원경으로 보면서 아하! 주님이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이런 문제들 알겠느냐 그걸 네 눈으로 한번 봐라 쫘악 올려가지고 망원경으로 네 문제를 한번 들여다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하! 네가 이게 필요하군요. 알았습니다. 나를 지금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옮기려고 성장시키려고 그러면 이 레벨로 옮기려고 그러면 내가 이것이 필요하군요. 주님! 사도바울은 그것을 다 본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도 눈을 이렇게 뜨고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선교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저에게 10여 년 전에 이런 걸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지역 중국, 인도 러시아 아프리카까지 주님이 하실 일을 저에게 쫘악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을 주님이 훈련을 시키신 다음에 시작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보여주십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이 그걸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아멘 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동역 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그리스도의 종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6년짜리 종이 아니잖아요. 결론의 말씀을 제가 드리겠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제가 정리한 거니까 눈을 감으시고 가만히 들어 보세요 바울의 편지는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 받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각 교회 교인들에게 이 은혜를 체험을 받아 평강의 삶을 살도록 부탁하는데 우리가 이런 줌렌즈를 가지고 보면 내 속에서 평강이 오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영적으로 눈 먼 자들에게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면 은혜와 평강이 없는 이러한 사람들이 아니면 복음을 전파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체험 받지 않고는 결코 복음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자 민족만이 아니고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특수사명을 띤 그리스도인의 집단입니다 우리교회교인들은 6년짜리 종보다는 귀 뚫린 영원한 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저에게는 간절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예수님과 깊은 대화의 시간을 통해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 받아 매일매일 주님의 성품으로 성화되는 은혜의 종이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이런 은혜의 종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윤활유가 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는 4차원의 시각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사물과 사건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자가 됨으로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의 평강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복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표본인 예수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인 복음을 미전도 지역에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모두 이런 복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귀한 일꾼으로 아버지하나님께 영광 드리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런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녀들의 장래는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녀들을 우리가 어떻게 키워야 됩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영원한 종의 대열에 서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나만이 아니고 내 자녀들까지 내 손자 손녀들까지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사랑하시고 그렇게 복을 주시면서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실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러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TEO__Rc-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