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마태복음13장33절-35절, 창세전 디자인하신 누룩교회사
저주와 복 시리즈 6강. 창세전 디자인하신 누룩교회사(마13:33-35)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마태복음13장33절에서35절의 말씀인데 그 말씀을 그대로 우리가 기억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같이 우리가 보겠습니다. 성령님께서 특별히 저희들을 말씀 속에서 가르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제가 섰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는 왜 창세전에 삼위일체론에 누룩을 넣도록 예정을 하셨는가? 이런 말씀으로 우리가 주욱 상고를 했는데 오늘은 창세전에 누룩을 예정하셔서 그 예정에 따라서 특별히 지난2천년 교회사에서 2천년 교회역사 속에서 예정된 누룩을 어떻게 진행시키셨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봤지만 누룩이라는 것은 항상 산고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산고 여자들이 애기를 낳을 때 받는 고통 산고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 누룩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룩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엄청난 산고를 경험하게끔 디자인을 하셨습니다. 오늘 여기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운 주님의 뜻을 잘 같이 소화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서에는 산고라는 표현을 몇 군데서 했습니다. 우선 산고라는 뜻을 헬라어로 오딘(Odi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산고라 이렇게 표현이 되었고 영어로는 버스팽(birth pangs) 버스(birth)는 태어나다 팽(pangs)은 고통입니다 그래서 산고라는 뜻은 제가 사전을 주욱 들여다보고 원어를 보면서 한마디로 말하면 뭐냐면 고통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산고라는 단어가 어디에 나오느냐면 창세기3장16절에 아담이 타락을 하면서 그 직후로 타락의 결과로 여자가 산고를 경험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지금까지 여자들은 산고를 경험하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산고라는 표현을 쓰셨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산고라는 표현으로 누가가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2장24절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산고라는 표현으로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세 번째 산고라는 표현은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에 바울이 표현을 했는데 적그리스도들이 많이 나와서 악한 일들을 할 터인데 그들이 나중에 예수님의 나타나시는 그때에 어떤 고통을 받는데 그 받는 고통을 산고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고라고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감람산설교에서 감람산설교는 마태복음24장과25장이 감람산설교라 그럽니다. 여기서 설교를 하셨는데 이 설교내용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에 징조들을 설명하시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들림을 받을 거라는 예언을 가르쳐주신 것이 감람산설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림 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그리고는 어떤 사람이 들림을 받을 것인가? 라는 표현을 일곱 가지로 비유를 드셨습니다. 그것을 감람산설교라 그럽니다.
유명한 세계어디를 가나 성서에 익숙한 분들은 감람산 설교가 무엇입니까? 하면 무슨 소리인지 다들 압니다. 우리마태복음24장과25장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말씀하였냐면 고난주일 화요일에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감람산설교를 통해서 어떤 징조들이 일어날 것인가? 그럴 때 이 징조들을 예수님이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했느냐면 산고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산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징조들 고통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그것을 산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이 올 것인가? 제일 먼저 예수님이 설명하신 고통이 뭐냐면 창조목적과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공격이 있을 터인데 교회가 또는 크리스천들이 이것 때문에 많은 혼돈을 하게 되고 이걸로 인해서 크리스천들이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산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자연도 산고를 경험할 것이라는 겁니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모든 자연이 선고를 경험할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들면서 많은 지진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것이고 또 기근도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날 것이고 이런 부분에서 24장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산고는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인간들끼리 산고가 있을 터인데 이것은 전쟁이라는 산고가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전쟁하는 산고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24장6절에서7절에 그리고는 네 번째로 사회전반이 산고를 경험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불법이 성하고 그러니까 법을 만들어 놓아도 법 지키는 사람이 없고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사랑이 없고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날 거라는 겁니다. 24장12절에 그리고는 또 어떤 산고냐면 크리스천들이 산고를 받을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크리스천들이냐면 예수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크리스천들이 다시 말하면 복음주의크리스천들이 산고를 경험할 터인데 어떤 산고냐면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을 거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그리스도밖에 구원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산고입니다 이런 산고들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을 봐도 알겠지만 이 산고는 창세전에 이미 디자인하신 겁니다. 이 모든 산고들을 그런데 이것을 창세전에 디자인했기 때문에 이것은 꼭 이 진리를 아는 사람만 알고 깨달은 사람만 깨닫고 소화하는 사람만 소화할 수 있다고 예수님이 이것을 마태복음13장33절35절 그리고 13장 전체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이것은 천국의 신비인데 미스터리즈 킹덤 오브 헤븐(mysterys Kingdom of Heaven)
예수님이 말씀하시면서 이 미스터리(mystery)는 이 신비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그래서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랬습니다.
너희들에게만 이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내가 허락했다는 겁니다.
기가 막힌 말씀을 하십니다. 나머지하나님의 자녀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게 디자인해놓았다는 겁니다.
이 미스터리(mystery)를 그러니까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게 이해가 안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너희들만 이걸 소화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머지사람들은 소화 못하도록 막아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오늘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소화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AMI식구들은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귀가 뚫리지 않고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안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저 이걸 소화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저에게 덤벼들지 마세요. 그런데 이런 산고가 있으면서 항상 뒤에 따라오는 게 있습니다. 산고가 있을 때 산고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꼭 뭐가 따라옵니까? 기쁜 소식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기쁜 소식이 따라옵니다. 아이가 출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특히 기독론과 삼위일체론과 창조목적에 산고를 허락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감람산설교에서 이 산고 삼위일체에 대한 공격 기독론에 대한 공격 창조목적에 대한 공격이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거라는 겁니다. 이것이 산고인데 이것을 누룩이라 그러는 겁니다. 누룩은 창세전에 디자인하신 것인데 누룩을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어디에다가 허락하셨나? 창조목적론에 누룩을 허락하셨고 삼위일체론에다가 누룩을 허락하셨고 기독론에다가 누룩을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했습니까? 종교다원주의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람산설교 마태복음24장4절5절에 그리고11절 또 23절에서28절입니다.
이것은 기쁜 소식인데 기쁜 소식이 산고를 통해서 꼭 일어나는데 마지막 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이 산고가 끝나면 무슨 기쁜 소식이 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꼭 기쁜 소식이 있을 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디자인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산고는 기쁜 소식을 던져주는 나팔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산고들은 우리지난시간에 이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과거2천년 기독교교회사에서 초대교회400년 동안에 산고가 있었습니다. 이 산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를 우리가 주욱 공부했습니다. 이단들이 쫘악 일어났습니다.
창조목적에 대한 잡소리들이 있었고 기독론에 대한 잡소리들이 있었고 제가 잡소리라고 말합니다. 또 삼위일체에 대한 잡소리들이 이 400년 동안에 있었습니다. 그기에 대한 모든 신학적인 이단학설들은 제가 다 설명해드렸습니다. 이 산고가 몇 년 동안 있었습니까? 400년 동안 있었습니다.
400년 동안 있고는 그다음에 항상 산고가 있은 후에 산고는 무엇을 통해서 산고를 합니까? 하나님이 누룩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이 누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마태복음16장12절에 누룩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이라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는 것, 기독론을 부인하는 것, 창조목적을 부인하는 것 삼위일체와 기독론을 부인하는 것은 창조목적을 부인하는 거나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400년 동안 누룩을 통해서 산고가 끝난 후에 어떤 기쁜 소식을 주었습니까? 4대 공의회가 있었던 겁니다.
4대공의회가 있으면서 제일 마지막 공의회가 451년 칼케톤 공의회입니다
칼케톤 공의회에서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달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첫째 예수님의100%신성 예수님의100%인성 또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그리고는 창조목적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만 영광 돌린다는 이 큰 주제들을 기쁜 소식을 만들어 낸 곳이 4대 공의회 마지막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것을 다 정리를 해주었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누룩이 400년 동안에 있다가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룩 때문에 산고를 교회가 400년 동안 경험하다가 더디어 기쁜 소식을 주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이게 창세전에 이미 디자인 된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세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려고 하느냐면 창조목적과 창조하신 삼위하나님과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예수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서인데 이것을 아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 400년 동안에 여기에 대한 가짜 뉴스들을 가짜 가르침들을 그것을 누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짜들을 풀어놓으신 겁니다. 400년 동안 풀어놓았다가 이걸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을 겪다가 이제야 이게 진짜다 하고 보여준 것이 4대 공의회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해가지고 누룩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3장33절에 하신 말씀이 이 누룩이 여자에 의해서 들어 와가지고 부풀어져가지고 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누룩이 400년 동안에 어디까지 퍼졌습니까? 로마제국전체에 퍼져 버린 겁니다. 이렇게 퍼지고는 그다음에 중세시대로 들어가는 겁니다. 중세시대가 500년부터 1500년까지입니다 종교개혁일어나기 전까지입니다 중세시대에 들어갈 때 또 첫400년 동안에 누룩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으면서 기쁜 소식은 들어 왔지만 있으면서 또 새로운 누룩을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마리아신학과 단성론입니다
마리아신학은 삼위일체에 곁다리 붙은 겁니다. 왜냐면 나중에 마이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와이프로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에 곁다리 붙은 삼위일체를 공격하는 하나의 새로운 모습이 마리아신학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중세 때 그리고는 단성론 지난시간에 제가 다 설명했습니다.
단성론은 기독론을 또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성론을 말하는 애굽정교회, 시리아정교회, 알매니아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 이런 정교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100%신성과100%인성을 믿지만 삼위일체론을 믿지만 거기다가 예수그리스도는 본성이 신성만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단성론입니다 본성인 인성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양성론은 예수그리스도가 본성이 신성이지만 33년 동안 인간이 되었을 때는 신성만 가지고 계신 게 아니고 완전히 신성을 포기하시고 인성이었다고 하는 양성론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성론은 로마가톨릭이 그것을 믿고 있었고 또 그리스정교회도 양성론을 믿고 있었고 종교개혁 이후에 우리개신교들도 양성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세시대에 기존 처음400년의 그 누룩들도 따라 붙어서 계속 지금까지도 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도 있어왔고 그러면서 거기에 더 첨가된 게 무엇입니까? 마리아설과 단성론이 또 첨가되었습니다. 누룩이 더 심한 누룩들이 그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누룩이 퍼진다고 예수님이 그랬기 때문에 누룩이 더 퍼지게 한 것이 500년부터1500년 동안입니다 천년동안에 유럽전체에 퍼져버렸습니다
이 누룩이 유럽전체에 그 당시에 개신교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러다가 현대 교회로 왔는데 중세교회 때 기쁜 소식이 무엇이었습니까?
중세교회를 마무리하면서 종교개혁인 겁니다. 이런 천년동안에 누룩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이 기쁜 소식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은 특히 어디에 대한 공격이었습니까? 종교개혁은 중세시대 때의 마리아학설 거기다가 또 단성론에 대하여 그렇지만 마리아에 대하여 더 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대교회가 시작이 되었는데 1500년부터 지금 예수님의 재림 까지가 현대교회입니다. 현대교회는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누룩이 더 강했고 이 누룩은 더 복잡한 누룩입니다. 그리고 영향력이 더 커졌습니다.
이 누룩이 그리고 영역도 더 넓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이 누룩은 기존 유럽에서 아프리카대륙으로 다 퍼지고 아시아대륙으로 퍼지고 중남미 오세아니아 북미까지 전 세계에 누룩이 쫘악 퍼졌습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인데 누룩이 이렇게 퍼지는데 기쁜 소식은 무엇이겠습니까? 현대교회에서 누룩이 이렇게 퍼지다가 기쁜 소식이 올 터인데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기쁜 소식인데 예수님의 재림 전에 엄청난 아픈 산고가 있을 것을 예수님이 이미 창세전에 디자인 하셨고 그리고는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디자인하신 것을 다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확인 하셨습니다. 감람산에서 이런 배경을 깔아놓고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첫째 질문이 산고를 당하는 자가 누굽니까?
산고를 당하는 자 산고의 주 대상이 누굴까요? 그러면 누굽니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 산고대상이 고통당하는 사람은 누구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왜냐면 이 산고가 어떤 산고입니까?
산고의 대상이 하나님의 사람들인데 그분들에게 어떤 부분에서 산고 누룩을 집어넣어 놓았습니까? 첫째 창조목적론입니다 두 번째는 삼위일체론 세 번째는 기독론입니다 여기에 누룩을 집어넣어 놓았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시끄러워지고 혼돈에 빠지고 아픔을 경험하면서 교단이 갈라지고 그러면서 왔던 겁니다. 그러면 또 질문입니다 산고의 주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금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은 훈련학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학교입니다 그래서 학교시스템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시키기 위한 것인데 무엇을 교육시키기 위한 것입니까? 항상 우리가 이런 논리를 펴보면 세 가지 학교 주요 필수과목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창조목적론 두 번째 삼위일체론 그다음에 기독론입니다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정체성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누군가? 라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저쪽동네 영원세계에 우리가 계속 있었더라면 거기서 우리가 마음대로 태어나가지고 이런 시간 속에 7천년 이 세상이 없었더라면 이것도 우리가 그쪽에서 배울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쉽게 배우니까 거기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걸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 아주 창세전에 디자인 하신 겁니다. 시간세계를 만들어가지고 거기다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던져놓고는 누룩을 집어넣어가지고 산고를 경험하게 한 다음에 이것을 뼈저리게 배우게끔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이 7천년이라고 그래서 내가 7천년을 여기서 삽니까? 아니죠.
우리가 배우는 것은 고작해야 70-80년입니다 그것도 고작해야 어떤 사람은 20대에도 저 나라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을 주신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입니까? 이 세 가지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영원세계에 올라가면 창조목적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그분께 영광 드리는 것이 창조목적 아닙니까? 그다음에 그기에 계신 예수님을 아! 저분이 누구신가? 삼위하나님이 누구신가? 이걸 철저하게 배워야지만 올라가서 그분들을 내가 제대로 그분들 앞에 나의정체성과 그분의정체성을 서로가 아니까 제대로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 올라가서 그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 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알다시피 그러면 교육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교육방법이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육방법을 어떻게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누룩을 집어넣어 놓은 겁니다. 이 누룩을 집어넣게 하신 겁니다. 마태복음13장33절에 보면 천국의 신비 중에서 일곱 가지의 비유를 주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룩비유입니다 누룩비유를 33절에 끝내시고는 35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모든 비유 일곱 가지는 뭐냐면 창세전에 내가 이미 다자인한 거라는 겁니다.
창세전에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이 교육방법을 창세전에 이것을 디자인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누룩도 창세전에 다 디자인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룩을 어디에 집어넣는지 우리한번 공부해봅시다.
누룩을 어디에다가 집어넣습니까? 누룩을 우리한국말로는 떡이라고 그랬지만 실제로는 빵입니다 우리가 빵에다가 그러니까 순수한 빵에다가 누룩을 집어넣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누룩이 들어있는 빵에다가 누룩을 안 집어넣습니다. 순수한 빵에다가 누룩을 집어넣는 겁니다.
그다음에 누룩의 기능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 누룩의 기능은 순수한 반죽입니다 순수한 반죽을 가지고서 빵을 만들 때 그 빵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무교병이라고 부릅니다. 누룩이 들어 있으면 유교병이라 그럽니다.
반죽을 만들 때 거기에 누룩을 집어넣으면 누룩이 하는 일이 첫 번째로 부풀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양을 많게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그렇게 부풀게 하는 기능이 있고 두 번째로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이것도 시각적으로 자극을 줍니다. 세 번째로는 먹음직하게 식욕을 돋구는 누룩을 집어넣으면 빵이 고소한 맛이 납니다. 미각적 자극을 주는 그런 기능을 합니다.
또 빵을 풍부하게 해주는 시각적 자극을 줍니다. 그뿐 아니라 빵을 아주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시각적 자극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이 빵은 모든 사람이 선호하는 빵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입맛에 맞는 빵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이 이 누룩의 기능입니다 그러니까 이 누룩이 들어있는 삼위일체 누룩이 들어 있는 기독론 누룩이 들어있는 창조목적론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보기도 좋고 양도 많고 맛도 있고 들으면 듣기도 좋고 우리주변에 그런 가르침이 많습니다. 그러면 누룩이 없는 빵은 무슨 빵이라고 그럽니까? 무교병이라고 그럽니다. 무교병은 모양새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드럽지도 않고 단단합니다. 식욕 나게 안 합니다.
보기도 안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교병은 사람들이 찾지를 않습니다.
인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은 그러면 제목을 바꾸어서 누룩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순수한 반죽에만 들어가는 겁니다. 누룩이 들어있는 반죽은 아닙니다. 순수한 반죽에만 들어갑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적은 양을 집어넣게 되어 있습니다. 반죽만큼 집어넣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적은누룩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고린도전서5장6절 갈라디아서5장9절에 바울이 이런 단어를 썼습니다. 작은 누룩 그다음에 속성 중에 하나가 처음에는 적은 누룩이 딱 들어가면 감지하지 못합니다.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냥 순수한 반죽 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구별을 못합니다. 그리고는 속성 중에 하나가 순수한 반죽과 섞는 겁니다. 섞어버리는 겁니다. 혼합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순수한 반죽을 변질시키는 단서를 제공하는 겁니다.
조그만 누룩하나가 그리고 이것이 서서히 퍼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3장33절에 누룩이야기를 하실 때 뭐라고 그러느냐면 여자가 누룩을 이렇게 집어넣는데 숨겨가지고 이게 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일반사람들은 전혀 모르게 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누룩을 딱 보면 숙성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누룩을 집어넣고 숙성시킬 때 아랫목에 놓고는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이렇게 숨겨놓는 겁니다. 그래야 이놈이 자라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숨겨놓는다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감지를 못하는 겁니다. 감지를 못하는 과정 속에서 이 누룩은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부풀게 되어 있는 겁니다.
담요를 씌워놓아야만 부풀잖아요. 안 씌워놓고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르게 이게 온 로마제국으로 퍼져버린 겁니다.
온 세계로 퍼져버린 겁니다. 예수님이 누룩이야기를 하시면서 마태복음13장33절 오늘 본문에 그랬습니다. 때가 차면 온 반죽이 부풀게 된다는 겁니다.
때가 차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예수님은 이런 모든 일을 디자인하실 때 그분의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차야지만 됩니다. 우리는 이때를 기다리고 또 이때를 보는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 이런 말씀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풀은 것을 가지고 빵을 만드는 겁니다. 빵을 만들면 그 빵이 맛있겠습니까? 맛이 없겠습니까? 아주 맛있는 빵으로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변질된 기독론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변질된 삼위일체론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창조목적을 가르치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유명해질까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가 성장하고 이런데 관심 있으면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이것은 변질된 창조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가지고 내가 영광 받으려고 하는 이런 짓들 이런 것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게 유교 병입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기가 있는 빵입니다 식욕을 돋구는 빵입니다 식욕을 자극시키는 빵입니다
그래서 입맛을 다 바꾸어버립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이 입맛이 다 변해버렸습니다 기독론에 대한 입맛 삼위일체론에 대한 입맛 창조목적에 대한 입맛을 다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기본가르침을 변질시켜버린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변했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이 누룩비유를 누가 가르쳤습니까? 예수님이 가려치신 겁니다. 마태복음13장33절에서 이 누룩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이 누룩비유를 예수님이 언제 디자인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전에 똑같이 마태복음13장35절에 그랬습니다. 창세전비유를 예수님이 일곱 가지의 다른 비유들도 주욱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천국의 신비들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장11절에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이 신비들은 특별한 제자 급 사람들만 소화하는 것이다 딴 분들은 소화를 하려고 그러면 내가 빼앗아서 너희들에게 주겠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질문이 있는 겁니다. 도대체 창세전에 이 비유를 디자인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대답이 가능합니까?
첫째 우리는 누룩이 들어가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누룩과 관계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한마디로 말해서 빵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빵은 성서에서 무엇입니까? 영적인 의미로 또는 성서적인 의미로 빵은 무엇입니까?
딱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걸 성서에서 찾아내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빵은 나다 나를 지칭하는 거다
그러면서 나는 진짜 빵이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6장32절에 나는 진짜 빵이다 지금 세상에 있는 것들은 가짜 빵들인 겁니다. 그러면서 또 뭐라고 그러느냐면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35절48절에 그리고 예수님이 계속해서 나는 참된 양식이다 진짜 음식이다
요한복음6장5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나는 무교병이다 그랬습니다. 출애굽기12장8절에 누룩이 없는 빵이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베드로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무죄하신 분이시다 이 빵이 무죄하신 그래서 무교병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베드로전서2장22절에 무교병이라는 것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누룩이 없는 분입니다. 그다음에 흠 없는 어린양이다 베드로전서1장19절에 흠이 없는 무죄하신 어린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빵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슨 론입니까? 기독론입니다 순수한 빵은 순수한 기독론입니다
이 빵에 누룩이 들어가 버리니까 무슨 론이 되어 버립니까? 누룩기독론이 된 겁니다. 기독론을 우리가 알려면 자동적으로 따라서 같이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론입니까? 삼위일체론인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론만 따로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꼭 기독론은 뭐와 같이 알아야 합니까? 삼위일체론과 같이 알아야 되는 겁니다.
안 그러면 기독론이 변질되어 버리는 겁니다. 온전한 기독론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학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기독론만 따로 이야기하다가 1세기2세기3세기4세기 때 온갖 누룩들이 나온 겁니다.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알려면 무엇을 알아야 됩니까? 삼위일체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그것을 우리가 엘로힘(Elohim)이라 그럽니다. 엘로힘(Elohim)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라는 의미는 창조의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독론하면 빵 하면 기독론과 삼위일체론과 창조목적론 하나로 팩 케이지로 되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라도 누룩이 들어가 버리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훈련을 우리에게 시키기 위해서 세 부분에 누룩을 디자인 하신 겁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려고 그러면서 이 세 부분이 기독교의 키(key) 교리들입니다 아주 중요한 최대의 초고의 교리들이 이 세 교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교리들을 우리가 더 철저하게 깨닫게 하려면 거기에다가 누룩을 집어넣는 겁니다. 누룩을 집어넣어서 교육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육과정에 들어갔지만 초등학교나 유치원이나 중등학교레벨로 하다가 제대로 소화를 못하고 저 나라로 갑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저 나라에 가도 일반계층의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저 나라에 가서 우리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 세 부분에 철저한 훈련을 받고 누룩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교육을 제대로 받아 놓고는 이것을 내가 나 만이 아니고 내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가르쳐주는 일까지 하는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1세기 때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나만이 알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왜 우리가 나누어 주어야 합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은 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나그네로 온 사람들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닌 겁니다. 나그네입니다. 잠깐 이 학교에 입학해가지고 때가 되면 졸업해야 되는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깨달은 사람은 졸업 전에 내가 이것을 빨리 가르쳐주어야지 나누어주어야지 하는 그러한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을 때는 그런 걸 하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보면 아하! 저 사람은 나쁘다 좋다 가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어느 계층정도 영원세계에 가서 있겠구나. 라는 것이 보입니다. 제 눈에는 그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이 이 정도밖에 없겠구나. 지금 이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복 받고 살지만 그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복들 아닙니까?
시각에 엄청난 변화가 오는 겁니다. 그러면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누가 창세전에 어떤 분이 이 누룩을 집어넣는다고 했습니까?
어떤 분이 마태복음13장33절에 보면 예수님이 딱 그랬습니다.
누가 이 누룩을 집어넣는다고 그랬습니까? 여인이 그랬습니다.
도대체 여인은 성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여인은 예수님의 신부 감을 이야기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 하면 성서적으로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다 동의하지만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건물을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을 에클레시아(Ecclesia)우리크리스천들을 교회라고 그럽니다. 크리스천들 한 사람도 교회고 두 사람도 교회고 100사람이 모여도 다 교회인 겁니다. 건물 조직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개인 또는 단체 또는 그룹들 이것을 여인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어에 어 우먼(a woman)이라는 것은 크리스천들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다시 말하면 이 누룩을 누가 만들어 내느냐 이겁니다. 누가 만들어 냅니까?
불교신자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 이슬람이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
이 누룩을 타종교의 어떤 유명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이 누룩을 만들어 가지고 누룩을 집어넣는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크리스천들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겁니다. 교회가 누가 이런 말을 합니까?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렇게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소위 기독교교단이 신학교가 목사들이 신부들이 신학자들이 누룩을 만들어 가지고 이런 짓을 한다는 겁니다.
누룩이 어디에 관한 누룩입니까? 기독론과 삼위일체와 창조목적에 이 여인이 여기에다가 누룩을 살짝 만들어가지고 집어넣어 놓고는 숨겨놓았다는 겁니다. 언제까지 숨겨 놓느냐면 전체가 부풀 때까지 숨겨버릴 거라는 겁니다.
전체가 부풀 때까지 그러면 보세요. 단계적으로 첫 초대교회400년 동안도 로마제국이 부풀 때까지 있다가 잠깐 보여 주었습니다 그다음에 중세시대 때도 유럽전체가 이 누룩으로 꽉 차 있을 때 잠깐 뚜껑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종교개혁이후부터 지금까지 지금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 이 누룩이 전 세계에 다 퍼졌습니다. 그러면 이 누룩이 무슨 누룩일까요
이 누룩은 처음400년의 누룩의 잔재들이 지금까지 있습니다.
그 누룩도 계속 따라오고 그다음에 중세시대 때 누룩들 단성론과 마리아사건 이것도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후부터 만들어 놓은 새 누룩이 무엇입니까? 종교다원주의입니다 모든 종교는 같다 예수그리스도가 타 종교에도 다 있다 부처도 그리스도고 마호메트도 그리스도고 아무개도 그리스도고 공자도 그리스도고 노자도 그리스도고 다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예수도 그리스도고 그래서 모든 종교는 한 하나님 앞에 그냥 가는데 여기다가 지금 뭐냐면 죽어서 어디로 가느냐면 죽어서 잠깐 이렇게 있다가 이 세상을 변화시켜서 이 땅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서 이 땅이 천국화가 된다는 겁니다. 이걸 무슨 주의라고 그럽니까? 후 천년주의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죽어서 저쪽 낙원에 간다는 개념을 가르치는 신학교나 교단들이 이제는 점점 없어집니다. 이제 그의 없어졌습니다. 죽으면 잠깐 여기 있다가 이 세상이 변화되면 부활해가지고 여기서 다시 산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후 천년주의라고 그럽니다. UN이 그래서 존재하는 겁니다. WCC에서 가르치는 게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사는 천국으로 만들자 이 세상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되고 동성애자들도 사랑해야 되고 타종교사람들도 사랑해야 되고 우리는 다 같이 살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요즘 뭐가 나옵니까? 우리가 지난시간에 봤습니다.
예수회나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는 뭐라고 그럽니까?
그 사람들도 이 비전입니다 전 세계를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자 그래서 정부도 하나로 만들고 경제시스템도 하나로 만들고 종교도 하나로 만들고 이걸 만들기 위해서는 골치 아프니까 전쟁도 우리가 없애야 된다.
그러면서 뭡니까? 인구도 줄이자 쓸데없는 말썽꾸러기들 다 없애버리자 그러니까 전쟁을 자꾸 일으키는 겁니다. 핵무기를 만들려고 그러고 이놈들이 뒤에서 다 관리하고 있는 겁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천국 화시키는데 소수 엘리트들이 천국 화를 시키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있어야 되는 겁니다. 지금 이런 일들이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지금 보세요. 이슬람이 저렇게 못되게 놀죠.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런 일들이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바보입니까? 예수님이 힘이 없습니까? 예수님이 이슬람저놈들보다 힘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가만히 놓아두는 게 아닙니다.
이분이 컨트롤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시진핑이 보다 힘이 없습니까?
예수님이 부틴 보다 힘이 없습니까? 김정은이 보다 힘이 없습니까?
이게 예수님의 디자인 속에서 움직여가는 겁니다. 이런 게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엄청난 산고가 올 것을 예수님이 이미 예언하시고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사는 우리들은 이 산고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독론에 강해야 되고 삼위일체론에 우리가 강해야 되고 창조목적에 강해야 되는 겁니다. 강해라고 이 엄청난 산고를 허락하신 겁니다.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런데 현대교회에서는 마지막 때 이 산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면 예수님이 감람산설교에서 이렇게 두 가지로 디자인하였습니다.
마지막 때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냐면 마지막 때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시면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마지막 때라는 것은 예수님이 공중 재림해서 오는 직전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면 이런 산고들이 일어날 때 들림을 받는 사람이 있고 남아있는 성도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게 크리스천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비 기독교인들은 상대도 안 됩니다. 두 종류의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겁니다. 들림 받는 크리스천들이 있고 들림 못 받고 남아있는 크리스천들로 분리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들림 받으려면 깨어있으라 그러는 겁니다.
깨어있으라 그러면서 이분이 일곱 가지의 비유를 쫘악 드시는 겁니다.
우리는 다 공부했습니다. 뭐냐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밭에 있는 두 사람이 갈라진다는 겁니다. 맷돌 가는 두 여인이 갈라진다.
그다음에 현명한 종과 악한 종으로 갈라지는데 어떻게 갈라지느냐면 열심히 때를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안 전하는 사람이 딱 갈라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를 맞추어서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을 현명한 종이라 이렇게 예수님이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는 종을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악한 종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들림 받으려면 여러분들도 현명한 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저위에 올라가서도 높은 자리에 있으려면 우리는 NK에 복음을 전해야 되고 지금 우리가 한국말로 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 일본 소련 중국에 우리가 지금 배운 것을 전해야 되는 겁니다. 직접 전하는 일도 해야 되고 여기에 기도로 동참하고 물질로도 동참하고 시간으로도 동참하고 여러 방법으로 동참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AMI교회는 제가 목회자로써 여러분들이 여기에 동참하는 지혜 있는 종이 되라고 제가 이렇게 불리 움을 받고 여러분들 앞에 지금 오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라고 제가 외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저주입니다 매일 그냥 축복, 축복, 축복 그러려면 우리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은 주님이 따라와서 주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여러분들이 필요한 걸 다 아시고 해주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에 나옵니까? 아닙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목적이 분명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일곱 가지를 이야기하였잖아요. 이야기하면서 또 열 처녀의 비유도 들고 달란트비유도 들고 양과 염소비유도 들고 이렇게 일곱 가지를 들면서 들림 받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을 구분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들림 받는 사람보고 뭐라고 불렸냐면 그분들에 대한 명칭을 예수님이 했습니다.
마태복음24장45절에 양식을 나누어주는 현명한 지혜 있는 종들아 이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되잖아요.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 또 뭐라고 그러느냐면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을 현명한 처녀들이라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25장8절에 또 25장21절에 착하고 신실한 종들입니다 달란트비유를 드시면서 그러는 겁니다. 또는 이와 반대로 이것을 하지 않는 마지막 때 기독교인들을 예수님께서 뭐냐면 악한 종이라 그랬습니다. 24장48절에 어리석은 처녀들이라고 그랬습니다. 25장8절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그랬습니다. 25장26절에 거기다가 예수님이 뭐라고 했느냐면 쓸모없는 종들이라 그랬습니다.
25장30절에 마지막 때 주님이 보실 때는 쓸모없는 종들이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마태복음13장에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 하실 때 들림 받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기독교인들일까요 이분들은 가시떨기 기독교인들이지만 상위그룹들 같습니다. 그리고 옥토기독인들 또 지혜가 없는 들림 받지 못하는 분들은 돌밭 기독교인들 또는 하위계급의 가시떨기들 그런데 제가 자주 이야기하지만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 같은 기독교인들 마태복음13장45절에 이 사람들은 아주 들림 받는 쪽으로 집어넣으면 됩니다.
한쪽은 뭡니까? 그냥 보물을 발견했지만 그것을 팔지 않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한번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복 있는 종말성도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복 있는 종말신자는 나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분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누룩과 산고의 신비를 듣고는 그걸 깨닫고 삶에 적용하며 순종하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이것을 순종하고 깨달은 사람은 무엇을 가지게 되느냐면 시대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시대가 지금 어느 시대구나 그렇게 해서 제가 오늘 2천년 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으로 누룩과 산고의 개념 하에서 지금 여러분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누룩과 산고의 기독교역사 속에서 마지막 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코앞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깨어있어라 그런데 문제는 이게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지적으로 훈련받아도 이게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주변에 바쁜 일이 많고 뭐가 많고 우선순위가 이게 안 되니까 죽으라고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안되면 그 자리에 그냥 있으세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나 안 됩니다. 안 되면 그냥계세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뭐가 임해야 됩니까? 은혜가 임해야 됩니다. 은혜가 그러니까 다 나가서 복음전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복음전하는 일에 후방에서 전하는 사람들 전방에서 전하는 사람들 여러 가지 기능들이 많잖아요.
이 기능을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고 이 공동체가 할 수 있도록 같이 가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은 자는 어떤 특색을 가졌나요. 이 세대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첫 번째 특색은 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나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뭐로 나타나느냐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룩과 산고의 신비를 듣고 깨닫고 삶에 적용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이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굶주린 제가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나그네 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겁니다. 육적으로도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되지만 육적으로만 도와주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육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저차원의 세계입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NK사람들 그 많은 NK들이 저기 와 있지만 그 안에 소수가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시잖아요. 보내주시면 우리가 정성 드려서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게 은혜 받은 특히 오늘날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은혜 받은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이 세대에 주님의 뜻 안에서 사용받기를 위해서 최대한 사용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을 착하고 신실한 종아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 있는 사람 섬기는 은사 베푸는 은사 격려해주는 은사 찬양을 잘하는 은사 주차장 관리하는 은사 식당봉사 셀 섬김 은사 헌금 내는 은사 NK은사 중국 소련 일본 외국인 사역 이 모든 문서사역 이 모든 은사들을 주님이 주신 것을 내가 이걸 가지고서 최대한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대로 사용받기 위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어떤 세계관입니까?
우리가 가져야 되는 세계관은 창세전에 천국의 신비를 예수님이 디자인 하셨구나. 라는 큰 그림을 하나의 틀로 잡아가지고 이 세계를 보는 세계관입니다 다시 말하면 산고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구나. 거기에 산고를 위해서는 누룩이 반듯이 있어야 되는구나. 오늘날 교계에도 누룩이 많고 기독론에도 누룩이 많고 삼위일체론에도 누룩이 많고 창조목적에 누룩이 많아야 되는구나.
그러니까 마리아신학도 있어야 되는구나. 이게 많이 퍼져야 되는구나.
단성론도 마찬가지고 예수회도 그렇고 프리메이슨도 그렇고 일루미나티도 중교다원주의도 그렇고 이게 있어야 되는 겁니까? 없어야 되는 겁니까?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하! 프리메이슨 나빠요 그놈들 없애야 되는데요. 일루미나티 나빠요 그놈들 없애야 되는데요.
이러고 앉아있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이게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예수님의 디자인이라는 것을 못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웹 사이트를 보세요. 프리메이슨 나쁘다 누구다. 누구다 그냥 몰아내어야 한다. 그게 예수님의 뜻입니까? 반대 입니까? 반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학이 사람이 노력을 해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열심히 하면 프리메이슨도 자빠지고 없어질 것이고 일루미나티도 없어질 것이고 666도 칩도 이걸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이게 다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무엇을 위한 디자인입니까? 삼위일체론과 기독론과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한 디자인입니다 그러니까 누룩을 허락하였는데 예수님 재림 전에는 엄청난 강한 누룩을 허락하신 겁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예수님의 재림까지 이게 전 세계에 퍼지게 되어 있는 겁니다.
왜냐면 누룩이 전체에 퍼진다고 말씀하였잖아요. 이것도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독수리시각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독수리시각을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우리 세계관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정문제도 있고 자녀문제도 있고 경제문제도 있고 건강문제도 있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들 때문에 내가 지금 완전히 시각이 이 땅에 것 그것만 쳐다보고 앉아 있는 겁니다.
저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 틀에서만 내가 이해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당신들 가정문제 해결하려고 나의 어떤 고민을 해결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잖아요. 창세전에 십자가사건은 내 고민 문제해결하려고 예수님이 이렇게 디자인하신 게 아니잖아요.
왜 예수님을 자기 틀 속에 집어넣어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럽니까?
이렇게 큰 틀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모는 세상에 이런 풍파들 비리들 폭풍들 태풍들 이런 것은 있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내가 뭐로 봅니까?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서에도 그랬습니다.
독수리는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쫘악 창공을 타고 올라가서 쫘악 밑으로 내려다보는 겁니다. 평강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문제 김정은이가 어떻고 문재인이 어떻고 트럼프가 어떻고 이런 일들은 이미 다 일어나게 되어 있고 주님의 뜻 안에서 하나하나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는 독수리입니다 딱 올라가서보고는 마음에 평강이 있는 겁니다. 주님! 뜻을 이루십시오. 저는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지고 제가 이렇다 저렇다 정치적인 대화 여러분들에게 합니까? 저는 안하잖아요.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내가 우리가 어쨌다 지금 정권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기도는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시각이 독수리가 아니고 참새시각을 가지고 다람쥐시각으로 가지고 그러면 아무리 기다려도 안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겁니다. 왜냐면 그 시각가진 사람은 그것만 가지고 기도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 세상을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이 학교를 다녀도 그냥 유치원 초등학교 수준에서 뛰다가 저 동네에 가는 사람이 있고 대학 대학원 박사학위 코스를 뛰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다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소리 지릅니까?
우리 모두가 다 박사코스공부하자고 시각을 조금 올립시다. 독수리시각으로 올립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마태복음28장18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피조물의 모든 생사화복과 인간의 모든 역사와 지금 오늘날 우리나라 남북문제 여러 가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매스컴에서 나오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 다 주님의 장중에서 하고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딱 보면서 예수님 저에게 우리에게 가르쳐주십시오.
이 시대를 분별하고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될지를 가르쳐주십시오. 그러한 기도를 하는 지혜 자들이 되도록 주님 우리에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큰 독수리시각을 가질 때 자녀문제 가정문제 사업문제 경제문제 건강문제 모든 잡다한 문제들을 주님이 장중에서 해결해주실 것을 저희들이 알기에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면서 독수리시각으로 올라갈 때 주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가정문제도 해결하여 주시고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들을 주님이 해결하여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재미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시각을 독수리시각으로 올리고 예수님의 주권을 내가 인정을 할 때 그 주권에 내가 의지하며 그 주권을 내가 찬양할 때 나의 이런 조그만 문제들은 그냥 해결되는 것은 경험하게 주님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게 진짜 복입니다
주님 이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하심이 항상 우리를 지배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창세전 디자인하신 누룩교회사(마13:33-35)
1. 기독교의 역사는 산고의 역사입니다, 성서에 이 산고시대에 여러 가지로 논의 했는데 그 성구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특히 감람산설교에서의 산고의 의미를 논의 해봅시다. 산고 후에는 통상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2. 2000년 교회시대에 있었던 세 단계의 산고들이 무엇입니까? 이것의 특징에 대해 상고해봅시다.
3. 산고를 당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그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산고를 경험하게 합니까?
4. 성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누룩이란 무엇이며 이 누룩을 어디에 사용하며 누룩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5. 누룩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6. 천국의 신비들 중 하나가 예수님의 누룩이인데(마13:33)이것을 예수님께서 창세전에 디자인 하셨다고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는데(마13:35)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7. 누룩이 들어가는 대상이 빵(bread)입니다. 영적으로나 성서적으로 이 빵은 무엇이며 누구를 의미합니까? 왜 이 빵에 누룩을 예정하셨습니까?
8. 여자가 누룩을 빵에 집어넣을 것을 예정하셨는데 이 여자는 누굽니까?
그녀가 이 누룩을 몰래 집어넣을 것이며 전체가 부풀기까지 숨길 것이라고 했는데(마13:35)이것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현실화 되었습니까?
9. 오늘날 현대교회가 겪고 이는 산고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까?
10. 복 있는 종말성도들을 특징이 무엇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oiLTcqaP_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