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고린도전서9장1절-27절, 자유를 포기한 바울
고린도전서강해 13강. 자유를 포기한 바울(고전9:1-27) 2009년6월21일 말씀
오늘은 고린도전서9장 강해인데 우리가 고린도전서강해 열세 번째로 들어가는데 고린도전서9장은 상당히 유명한 장입니다 특히 선교하거나 사역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인데 많은 부분에서 이 말씀을 목사님들이나 일반크리스천들이 설교할 때 인용을 많이 하는 말씀이 여기에 많습니다.
어떤 말씀이냐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정성을 많이 드렸습니다.
1년 반을 선교지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잠깐 잠깐 계셨는데 고린도교회는 1년 반이라는 긴 세월을 계시면서 이분들에게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특별한 교회인데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9장 전체를 읽기를 원하지만 읽었다고 가정 하시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드리면 근방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바울이 1년 반을 이렇게 정성을 드리고 복음을 전했는데 이분들이 다는 아니지만 그중에 일부가 자기네 선생님 되는 바울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또는 비난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가 들려오니까 성령님께서 바울보고 저들에게 편지를 쓰라 그래서 다른 편지도 되지만 9장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비판 내용이냐면 바울이 자기네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도가 아니라는 말이 교회 안에 돌았습니다.
왜냐면 교인들 일부 생각은 열두제자 중에 한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목회자가 되었기 때문에 정통사도가 아니라는 비난을 하는 겁니다. 어느 곳이나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두 번째 비난은 뭐냐면 이분이 자기네가 헌금을 한 돈을 가지고 자기개인용도로 이곳저곳에 마음대로 쓴다는 비난들이 또 있었습니다. 또 세 번째 비난은 뭔가 하면 이분과 바나바가 자기네가 드린 돈 가지고 자기 처를 데리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마음대로 여행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1절에서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상당한 마음에 심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해줄게 그러는 겁니다. 이분들의 질문이라는 말 원어를 보면 아나크리노(ajnakrivnw)라는 말인데 아나(ajna)라는 말은 윗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크리노(krivnw)라는 말은 비난을 하는데 밑의 사람이나 친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윗사람을 비난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이 아나크리노(ajnakrivnw)입니다.
밑에 분들이 윗사람을 비난할 때 쉽게 하지만 우리 주님은 별로 좋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대답하는 겁니다.
애들아 내가 너희들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겠다. 그러면서 나는 사도로써 나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그러는 겁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명령해서 너희교회에 보냄을 받은 파송 받은 인침을 받은 도장을 받은 사도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렇기 때문에 내가 1년 반 동안 너희들과 있으면서 너희들이 이렇게 구원을 받고 성경의 비밀을 깨달았잖느냐 너희들이 나의 열매라는 겁니다. 그중에 소수인 너희들이 왜 나에 대해서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이렇게 이분이 대답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럽니다. 성령님이 화가나셔가지고 바울을 통해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에게서 물질을 받을 권한이 없느냐 그리고 내가 내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한이 없느냐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런 권한이 있지만 내가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첫째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제자들에게 금전적인 사례를 받아야 되는 것은 당연하단다. 그렇지만 내가 이것을 하지 않았단다.
하면서 왜 당연한지 아느냐 하면서 일곱 가지의 당연 성을 제시했습니다.
일곱 가지 당연 성을 그러면서 첫째는 뭐냐면 7절에 그럽니다.
군인이 누가 자기의 비용으로 군복무를 하겠느냐 두 번째 포도원의 농부가 포도를 심고 자기포도를 자기가 따 먹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그다음에 양치는 목자가 그 양떼의 젖을 먹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그다음에 네 번째로 신명기25장4절을 인용하십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는 절대로 입에다가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겁니다.
다섯 번째는 레위기7장28절에서36절에 민수기18장8절에서20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는 좋은 고기를 선별해서 갖다 드려라 했습니다.
그다음에 첫 소산이나 제일 좋은 기름이나 제일 좋은 포도주나 곡식이나 처음 익은 열매를 꼭 제사장 아론에게 갖다드리라는 겁니다.
그분들도 잡수셔야 되는데 제일 좋은 걸로 잡수시게 갖다드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9장1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전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했다는 겁니다. 14절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5장12절13절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를 다스리는 자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잘 모시라는 겁니다.
왜냐면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했습니다.
여섯 번째 이유는 10절에 밭을 가는 자는 그냥 가는 게 아니고 열매가 나오는 소망을 가지고 간다는 겁니다. 곡식을 떠는 자들도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떤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망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종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하나님의 종을 잘 섬겨야 된다는 겁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11절에 너희들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기 때문에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신령한 것으로 먹였기 때문에 당연히 육신의 것을 얻어먹은 사람이 바쳐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17장7절에 이렇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런 권한을 다 가지고 있고 성서에서도 일곱 가지를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내가 자랑하는 것이 있는데 뭐냐면 내가 이 권한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바울의 아름다운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이 모든 권한이 있는데 내가 이 권한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너희들과의 관계에서 이유는 뭘까요 이유는 계속해서 바울의 편지는 거침돌이슈입니다 혹시 일곱 가지 중에 하나라도 내가 사용했다면 교인 중에 다는 괜찮지만 소수라도 한 사람이라도 그걸 가지고 마음이 불편하고 왜 목사님이 돈을 많이 받아갑니까? 왜 우리 목사님이 고급화가 되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을 까봐 바울이 나는 안한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라도 거침돌이 될까봐 왜냐면 바울이 15절에 그랬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자랑하는 것이 네게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내 권리를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27절에 바울이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봐 그랬다는 겁니다. 버림이라는 단어가 지옥 간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버림이라는 말의 원어는 아도끼모스(Adokimos)라는 말입니다 아도끼모스(Adokimos)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격미달 또는 거절되는 것 또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그런 뜻입니다. 아도끼모스(Adokimos)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종이 목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잘 가르치고 설교도 잘 하고 교회도 커지고 모든 게 잘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데 목사가 돈을 많이 벌고 그것 때문에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 교인들이 낸 돈으로 나는 일곱 가지 권리가 있으니까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집도 없는 사람이 많고 차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목사님은 일곱 가지 권리가 있다고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러다보면 어떻게 되느냐면 나중에 심판 때 예수님이 애야! 네가 아무리 했지만 너 때문에 실족당한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마태복음18장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실족당한 사람은 소자를 실족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진다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구원까지 잃어버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자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저 소자를 위해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피를 흘렸다는 겁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저 소자를 내가 하늘나라로 불려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네가 뭔데 내 피 흘린 값을 우습게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네가 뭔데 그러니까 바울이 거기서 버림을 당할까 두렵다는 겁니다. 내가 그게 두려워서 내가 실컷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 예수님이 야! 너 받을 것 다 받고 좋은 것 다 하고 교인들 돈 다 받아내고 그래놓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너 때문에 실족한 사람이 여기저기에 꽤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니. 바울이 그것을 아는 겁니다. 주님께서 구원까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는 바울이 상급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격이 없다는 것은 미달 되었다는 것은 상급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나는 상을 받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는 겁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말합니다. 나는 자유자라는 겁니다.
9장1절에 나는 자유자다 19절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값없이 전했다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 속에 범사에 참았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어떤 때는 참지 못할 일이 많은 겁니다. 내가 정성을 드려서 가르치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주고 받을 것도 안 받고 있는데도 뒤에서 씹는 사람이 나오니까 이게 참치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참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면 아주 멋있는 말을 썼습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 지언 정 내가 너 네들 돈 안 받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차라리 죽을 지언 정 하면서 점을 똑똑 똑 찍어놓았습니다. 이게 한국성경에만 찍어 놓은 게 아닙니다. 원어에도 보면 점을 똑똑 똑 찍어놓았습니다 왜 똑똑 똑 찍어놓았습니까? 이렇게 똑똑 똑 찍어놓은 곳이 성경에 두 군데가 나옵니다. 에베소서3장1절에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말할 때도 감옥에 앉아서 내가 예수의 믿음 때문에 예수의 믿음 때문에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그러면서 점을 똑똑 똑 찍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에베소교회에 전했는데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도 답답하니까 점을 똑똑 똑 찍어 놓은 것은 답답하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이분이 그랬습니다.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받아야 될 고난을 받지 않는지 아느냐 하시면서 나는 16절에 그랬습니다. 부득불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까봐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까봐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부득불이라는 말은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아난케(Ananke)라고 헬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하지 않고는 안 되는 내가 이렇게 희생하면서도 해야 되기 때문에 왜냐면 이 복음이 전해져야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약20년 전에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9장의 말씀을 그때부터 제가 깨달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섬기면서 절대로 돈을 받아가면서 안 하겠다 왜냐면 주님이 나에게 주신 돈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돈 써가면서 하겠다고 결단한 겁니다. 그때부터 주님의 일하면서 돈 받아서 한 일이 그의 없습니다. 가끔 어디 가서 말씀전하면 봉투 주는 것은 받습니다. 어떤 때는 그것도 제가 안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받으면 그 돈이 얼만지 모르지만 남에게 줘버립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말합니다. 받으면 누굴 줄까? 가지고 있다가 줄만한 사람 아무에게나 줘버립니다
고린도전서9장에서 보여주는 바울신학특징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지금 제가 말한 거침돌신학입니다 거침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이분에게 가득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목사님들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다 거침돌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굉장히 거침돌을 싫어하십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신학이 성육신신학입니다 세 번째가 미전도 족속복음화를 지향하는 신학입니다 네 번째가 달리기선수신학입니다
다섯 번째가 면류관신학입니다 성육신신학에 대해서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그럽니다. 20절부터 시작해서 말씀하시기를 실은 14절부터16절까지에 있는 이야기지만 고린도교인들에게 내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내가 유대인들 앞에 가서는 유대인들처럼 행동하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유대인 중에서 한두 명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스타일을 바꾼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21절에 이분이 또 그러는 겁니다. 율법 없는 자(이방인)에게는 내가 완전히 옷을 바꾸어 입고는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이분이 자기의 모습을 바꾸는 겁니다. 성육신신학입니다 그때그때 거기 가가지고 그분들과 대화하기 쉬운 방법으로 가서 모습을 바꾸고는 말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믿음이약한 자들에게 내가 믿음이 약한 자와 같이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내가 카멜레온처럼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 위함이라고 22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면서23절에 그랬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그랬습니다. 지난번에 비전 스쿨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의 차원이 인간 수혜자차원으로 내려 오셔서 유대인화 하시고 유대인 엇을 입고 유대인신발신고 유대인 음식 먹고 유대인종교에 관계되는 제사를 같이 지내고 전통을 수용하면서 같이 살았습니다. 왜냐면 코드를 맞추신 겁니다. 똑같이 우리도 어디가든지 상황에 맞추어서 코드를 잘 맞추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나라마다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가서 코드를 맞추는 그러한 일들을 저희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바울신학의 특징은 미전도 족속복음화에 그분의 목표가 있는 겁니다. 이분은 고린도교회도 그분들에게는 미전도 족속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서 주님께로 이끌기 위해서 이분은 자기의 권한을 다 포기해버린 겁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포기해서 무료로 다 주다보면 받는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인간의 성정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황 목사님이 10년 동안 돈 한 푼도 안 받고 여기서 하고 있으니까 우리 스텝들도 아주 적은 돈으로 하고 있으니까 아주 싸구려로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선교지에 가도 똑 갔습니다. 우리인간은 공짜로 받아놓으면 공기도 햇볕도 물도 공짜로 받았잖아요. 복음도 공짜로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고마움이 없는 겁니다. 선교지에 가면 그게 더 심합니다. 모든 걸 그냥 팍팍 팍 주니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루시퍼도 그랬고 아담도 그랬고 공짜로 받았기 때문에 그놈들이 다 그렇게 못되게 되어 버린 겁니다. 바울도 여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계속 공짜로 주다 보니까 당연하게 생각하고 조그만 덜 주면 거기에 대한 불평이 있었던 겁니다. 제가 이런 부분에서 지지난주에 우리 신학생들에게 제가 여기에 대해서 계속 강조를 합니다. 너희들 고마움을 알아라. 고마움을 알아라. 공짜로 받고 보면 이렇게 관례가 되어 버리고 버릇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크리스천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가서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너 네들 한국을 배워라 그러면 어떤 때는 이 말하면 500명 1000명씩 앉아 있다가 몇 놈이 일어나서 저에게 막 덤벼듭니다.
그러면 제가 하는 말이 우리한국이 50년 전에는 너희들 보다 더 못살았다 우리는 6.25전쟁이 일어나가지고 내가 그때 나이8살9살 때다 내 눈으로 보았다 건물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는 날씨가 4계절이기 때문에 봄에 씨 뿌리는 순간을 놓치면 굶을 수밖에 없다 너희 나라는 일 년 내내 농사를 짓지만 우리나라는 70-80%가 산이야 우리는 농사를 제 때에 못 지으면 먹을 것도 없는 민족이야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처음에 미국사람들의 도움을 받다가 70년대부터는 우리는 미국사람들보고 당신들은 가시오. 우리끼리 한다.
그래서 우리크리스천들은 십일조내고 헌금이 없는 사람들은 농촌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닭을 잡아서 들고 오고 쌀을 들고 오고 어떤 사람들은 금가락지 뽑고 목걸이 다 빼어서 하나님께 바치면서 우리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우리민족에게 복을 주어서 전 세계에서 10등가는 나라가 되었다 알지 그러면 안다는 겁니다. 우리코리아가 잘사는 것을 아는 겁니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미국에 있는 경제전문가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느냐 한국이 전 세계에서 2등으로 부자가 되는 나라가 된다고 예언한다.
왜 그런지 아느냐 한국민족이 똑똑해서가 아니야 한국교회가 똑똑해서가 아니고 한국교회 안에 소수의 우상을 섬기지 않고 주님께 바치는 사람들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때문에 전 민족이 이렇게 잘 사는 거다. 너희들이 너희민족의 소수가 되어라 그러면 앞으로10년20년 후에는 잘 살 것이다. 이렇게 제가 도전을 줍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반응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어느 나라나 똑같습니다. 뭐라고 그러느냐면 한쪽에서는 아멘! 할렐루야! 어떤 분들은 막 우는 겁니다. 자기네들이 그렇게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너 네들 언제까지 이런 집회할 때 너 네들 차비도 달라고 하고 하루 세끼 밥 달고 하고 연필 값도 달라고 하고 노트 값도 달라고 하고 언제까지 그럴 레 한국을 배워라 한국을 배워라 이놈들아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가난했다 그러면 거기서 막 통곡하면서 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양선교사들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자기네가200년을 선교했지만 열매 맺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그런다. 왜냐면 한국이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일어났다 그리고 십일조를 내었다 선교헌금도 내었다 너 네들은 왜 못하느냐 우리보다도 100년 전에 기독교가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100년 먼저 들어간 나라들입니다 그러면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아주 기분 나쁘게 앉아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들고 일어나서 황 목사님 하면서 나에게 막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한국이 돈 벌었지만 한국선교사들 보세요. 여기 와서 다 장사꾼들입니다 제대로 복음 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면서 우리를 막 공격하는 겁니다. 와서 프로젝트 만들어서 하지만 실제로 복음 전하고 정말 제대로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각 나라에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현지에 똑똑한 사람들이 볼 때 그러는 겁니다. 2년 전에 제가 필리핀에 가가지고 필리핀목사님들200명 앉혀놓고 제가 이렇게 떠드렸거든요 이놈들이 필리핀은 조금 잘 사는 나라인데도 나이가 저보다 조금 아래인 목사님인데 일어나서 황 목사! 여기에 온 한국선교사들 봐라 전부 엉터리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선교사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와가가지고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고 돈 게임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고 복음은 안전하고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에게 막 떠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기가 차가지고 다 제가 아는 소리를 떠드는 겁니다.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여기에 선교사님이 와서 앉아 계시지만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선교가 성공하려면 현지사람들이 자기네 돈을 내어가지고 와서 조금 가르쳐주세요. 여기 까지 가주어야 되는데 전 세계에 그런 데가 없는 겁니다. 미국사람들도 와서 집회한다고 그러면서 2-300명 모아서 호텔 빌려서 에어컨 있는 데서 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아주 시설 좋게 해서 밥도 호텔 밥을 줍니다. 호텔 밥값이 얼마나 비쌉니까? 그러니까 이제 몸에 다 베였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오면 호텔 밥을 먹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한국의 웬만한 목사님들 대형교회 목사님들 중형교회 목사님들 이름 있는 사람들은 호텔을 빌려가지고 설교 몇 번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용돈과 차비까지 다 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게 아프리카부터 전 아시아 남미 다 똑같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입니다. 이게 언제까지 이러겠느냐
이걸 제가 몇 년을 다니면서 떠드니까 막 덤벼들다가 이제는 거꾸로 미얀마가 얼마나 가난합니까? 미얀마에 그것도 양곤시내가 아니고 북쪽에 킴차카라는 사람들 그 사람들3년 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자기네가 비용을 부담 할 테니까 오십시오. 지금 미얀마가 그런 데가 세 군데에 있습니다. 숫자로 따지면 약2천명이 됩니다. 우리 돈 한 푼도 안 들어갑니다. 제 비행기 값까지 부담합니다. 선교를 제가 하면서 아하! 주님이 이렇게 하시구나. 제가 그분들에게 그럽니다. 너 네들이 이렇게 비용을 부담하니 보통 천 명이 모이면 어떤 때는 2천만 원 들어갑니다. 교통비만 천만 원 들어갑니다. 한 사람에게 만원씩 만5천 원씩 줘도 교통비가 그렇게 들어갑니다. 2천만 원 들어가는 것은 근방입니다. 그러니까 그 돈을 우리에게 부담을 안 지우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는 겁니다. 너 네들 정말 장하다 너희들이 우리 돈을 세이브해주니 이 돈 가지고 진짜 가난한 데 가서 이 돈을 쓰겠다. 너희들이 이제 우리선교의 동역자다 이제 너희 돈을 쓰는 거다 그러면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막 난리들입니다 지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가 점점 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AMI만 그렇습니다.
이게 주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미국선교사들이나 한국선교사들이 보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 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나는 모른다. 주님이 하신 거다. 이번에도 서 선교사님이 일주일 전에 이메일이 왔습니다.
타치레이라고 라오스와 타이 국경지역인데 우리는 타치레이 거기에서 라오스로 들어가면 미전도 족속이 꽤 많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지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타치레이에 서 선교사님이 10일 전에 갔다 왔습니다.
갔다 왔다는 보고를 저에게 이 메일로 보냈는데 목사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뭐냐고 그랬더니 타치레이 그 지역 크리스천들 소수가 미얀마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중보기도 팀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도를 하는데 제 이름은 들었지만 제 얼굴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황 목사님의 얼굴을 쫘악 보여주시더라는 겁니다. 그분들 기도 가운데 그래서 서 선교사님이 들어가 가지고 그분이 이렇게 생겼다고 사진을 주었답니다. 아! 맞다. 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메일 메시지에 뭐라고 왔느냐면 황 아무개목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인데 전 세계를 다니면서 나의 재림을 외치는 특별한 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 선교사님이 흥분해가지고 나에게 목사님! 목사님을 저 사람들이 목사님이 누군지 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다 받았다고 하면서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러는 겁니다. 황 목사님이 오는 비행기 값도 우리가 부담할게요. 이 사람들이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집회의 경비를 모두 우리가 부담할게요. 하면서 7월 달에 오라고 나에게 그러는 겁니다. 내가9월 달에 갈게 그러니까 좋다고 9월달에 절 따라 오실 분은 따라와 보세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아 너는 달리기선수다 너는 면류관신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9장24절25절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분이 주님께서 다 주신 겁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자신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라는 겁니다. 23절을 보세요.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받을 사람은 한사람인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은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한 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오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여기 보면 바울은 운동선수가 달음질하는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비유했습니다.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달린다는 겁니다. 미전도 족속복음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달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달리는 게 아닙니다.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목표가 뚜렷하고 나중에 면류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을 내가 다 포기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말씀에 20년 전에 감동을 받고 제가 지금도 온전치 못하지만 이 말씀대로 살아보자 하고 이만큼 지금 온 겁니다. 우리AMI형제자매들이여 한번 해봅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를 잊지 마세요 그리고 자꾸 묵상하세요. 그냥 듣고만 있지 마시고 자꾸 묵상하세요. 묵상하시고, 묵상하시고, 묵상하시고 주님! 바울의 다섯 가지의 비전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하시면서 조용히 주님과 대화하세요.
예수님! 이 다섯 가지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떠나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바울에게 특별히 9장에서 보여준 신학모습이 우리의 삶에 지배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던 멋있는 사람의 우리 모두가 되도록 우리도 이런 입장에서 이러한 복된 삶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바울의 신학
1, 거침돌신학
2, 성육신신학
3, 미전도 족속복음화를 지향하는 신학
4, 달리기선수신학
5, 면류관신학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8znjoKpjnI